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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속에서 밝혀진 천심과 민심은 사회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를 수용하려면 자기반성적 성찰이 필요하고, 많은 경우 적지 않은 고통을 수반한다. 사회변화는 그것에 따라 또는 그것을 위해 구성원에게 자기변화를 요구하고, 자기변화는 자기 아닌 자기를 ‘낳는’ 자기부정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거듭남 또는 중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를 고집하며 그 자리에 머물고자 애쓰는 반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자기를 형성하는 자기반성적 성찰을 추진하는 내적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서 찾고자 한다.
부끄러움은 후회와 닮은 면이 있고 때로는 뒤섞여 있기도 하지만, 양자가 동일하지는 않다. 뭉뚱그려 말하면, 부끄러움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고 때로는 붉은 빛으로 물들이지만, 후회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지 않고, 따라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은 색이 없다. 후회는 아쉬움을 동반하거나 어리석음을 탓하지만, 부끄러움은 했어야 할 일에서 도망친 것(비겁함) 내지 외면한 것(무책임) 또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위를 한 것(미안한 마음)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엄밀한 구별을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논거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 다만 아랫글을 위한 것이니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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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의 공자제자열전에는 부끄러움과 관련된 원헌(=자사)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공자에게 물어볼 만큼 특별히 그것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모양이다.1
공자 사후 원헌은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때 위나라 재상인 자공이 말 네 필이 끄는 마차에 호위병까지 거느리고 시골길을 헤치며 그를 찾아온다. 가난한 마을에 사는 사람이 넉넉할 리 없건만 자공은 그를 보는 순간 부끄러웠다.(혹은 창피하였다.) 원헌의 남루한 옷차림에 그를 마주 대하는 자신의 위상도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자공은 원헌에게 어쩌다 병이 들었냐고 묻는다. 그런 자공에게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온다.
재물이 없는 것을 가리켜 가난하다 하고 도를 배웠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하지요. 헌은 비록 가난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에 자공은 아까와는 다른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기뻐하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그 순간만의 것이 아니라 그가 평생을 간직하고 되새겨야 하는 것이었다.2
사마천은 원헌과 공자의 대화를 앞에 놓음으로써 부끄러움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나라에 도가 있어서 녹을 받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녹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이를 『중용』 10장의 말에 비춰보면, 나라에 도가 있다고 해서 관직에 올라 녹을 받고 안락을 누리거나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목숨을 걸고 뜻을 지키지 않고 녹을 받아 챙기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3 그렇다면 자공의 관직 생활은 그의 본래 뜻을 지키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다른 한편 승벽, 자랑, 원망, 탐욕에 대한 언급은 자공의 호화로운 마차와 기병이 자랑하려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뜻을 지키며 초야에 머물러 있던 원헌을 부끄러워한 자공은 그와 정반대의 자리에 있던 셈이다. 그래도 자공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그 한마디 말을 평생 부끄러워했다. “공은 어쩌다 병이 들었소?”
맹자는 부끄러워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부끄러워할 일 앞에서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는 것은 사람답지 못한 처사라고 일갈한다.4 자공이 (원헌과의 만남을) 기뻐하지도 못하고 떠난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으리라. 부끄러워할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의 네 가지 기본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것은 자신과 관련된 유일한 가능성으로서 나머지 것들의 현재화에 기여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5 부끄러움이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행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우리와 좀 더 가까운 몇 가지 예를 들어 뒷받침하고자 한다.
2
오래전 읽은 탓에 유감스럽게도 저자를 기억하지 못하는–혹시 그를 아는 이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한 단편 소설이 있다. 거기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대단히 선하고, 여느 할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손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할아버지였다. 손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던 할아버지였지만, 그에게는 손자가 묻고 또 물어도 그저 웃음으로만 답할 뿐 말해주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손자에게 결코 열어 보여주지 않은 작은 상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손자는 그 상자를 찾았다.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할아버지는 그것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며 끝내 말없이 가신 것일까? 고이 보내드릴까도 생각했지만, 죄송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도 육모방망이였다. 이것이 왜 여기에? 거기에는 연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바로 동학혁명의 해. 아! 할아버지가 당시 관군으로 동학군을 향해 이 방망이를 휘두르셨던 것이 아닐까? 그렇구나.
할아버지는 당시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허풍을 떨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고, 보여주지도 않은 채 한평생 안고 있었다. 버리고 잊을 수도 있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비록 명령을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라도 부패와 학정, 그리고 외세에 저항하는 민초들을 뚜드려 잡은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속죄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방망이에 이리 터지고 저리 깨지고 쓰러져갔을 농민들, 그들을 그렇게 저지해야 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방망이와 함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속죄했던 것이리라.
이것이 작은 부끄러움의 한 예라면, 또 다른 예들도 있다. 동학과 비교될 1980년대 광주항쟁 때의 일이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6 우리 애가 “중2 때 5・18 광주사태가 터졌어요. 사방에서 총소리가 나니까 밖에 못 나가게 하고, 무서울까 봐 이불로 꼭 덮어줬지.” 이 땅의 어머니라면 아마도 예외 없이 누구나 그렇게 했으리라. 그러나 훗날 그때의 진실을 안 그 아이는 이것이 부끄러웠단다.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숨고만 있었던 게 미안했단다. 이 깨달음, 미안함, 부끄러움은 그를 시위 맨 앞에 서게 했다. 1987년 6월 9일이었다. 그날 그는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러고는 끝내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젊음을 앗긴 이한열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했고,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 이것이 앎을 행동으로 바꾼 내적 힘이다. 삶을 바꾸고 죽음도 넘어서게 만드는 그것, 부끄러움 앞에 또다시 부끄럽게 서지 말라고 자신을 앞으로 앞으로 밀어내는 그것은 존재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작은 외침이다. 그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불러낸 또 다른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6・10항쟁의 원천일 것이다. 그런데 이한열들을 향해 현대판 육모방망이 최루탄을 쏘아대던 이들 속에 저 할아버지는 있을까? 있었으면….
우리는 근래에 또 하나의 부끄러움을 만났다. 제자의 눈에 비친 그는 치열하게 사는 분이다.7 그 이유가 궁금했던 제자는 그에게 왜 그리 하시냐고 묻는다. ‘부채의식’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80학번인 그는 당시 현실을 외면했다. 그는 “학생운동 별로 참여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만 했고, 그게 학생의 본분에 맞는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랬던 사람들이 어디 그뿐이랴? 그러나 모두 그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그렇게 생각했던 자기에게서 벗어난다. 사회변혁을 위해 “학우들이 몸 내던지고 피 흘리며 죽었는데, 살아 있는 자신은 현재 사회를 만드는 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라는 그의 인식 때문이다. 아마도 달라진 현실에 무임승차해서 결과만 누리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죄스러운 마음이 남아 그 미안한 마음이 부채의식으로 자꾸 남는다.”
여기에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직접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스러워하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 배후에는 ‘학생의 본분’이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학우들의 죽음을 외면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세대는 다들 그런 마음일 거라 본인이 별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지만, 실제는 이와 전혀 다름을 그의 청문회는 보여주었다. 저 할아버지는 불행하게도 다수가 아니다. 그는 다음 세대가 자신처럼 부채의식을 갖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공정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김상조 교수이다. 그에게 공정사회는 사회변혁을 위한 저들의 항쟁을 이어가고, 그 항쟁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육모방망이의 내면화가 부채의식이란 말일 게다.
이들에게 공통인 부끄러움은 깨달음이며 삶의 길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은 그런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크든 작든 각자의 영역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현실은 부채를 졌음에도 그것에 대한 의식 없이 오히려 부채를 부정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치(無恥)의 사회는 중병(重病)이 든 사회이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는, 또 않아도 되는 건강한 사회로 들어서는 길은 있을까? 친일, 독재, 억압, 학살, 거짓, 폭력, 횡포, 외세 의존 등 부끄러워할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의 궤변이 걸러지고 통용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8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경향이 드러나고 길러지고 존중되는 사회로 전환하도록 하는 교육은 어림없는 것일까? 이익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위해 무한경쟁을 강요한다면, 그럼으로써 그 배후에 숨어 있는 자본과 맘몬을 섬긴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꿈일 것이다.
3
바울은 믿음의 사건을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의 자리바꿈으로 이해하고, 지금 의의 종은 지난날의 행위와 그 결과들을 부끄러워한다고 한다.(롬 6:21) 그것은 자공이나 저 할아버지에게서 보았던 평생의 부끄러움일 것이다. 그 부끄러움이 ‘죄’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고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기 어렵다. 부끄러움 없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라 말하기 어렵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다. 적어도 종교 영역에서나마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부끄러움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원헌이 말하는 의미의 ‘병’에서 벗어날 길을 여는 데 종교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같은 부끄러움은 스바냐 3장 1-8절에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획득한다. 이 본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부분적으로 평행법을 포함하고, 전체적으로는 교차법을 보여주고 있다.
A 1 폭력적인 성읍, 배반하고 모독하는 그곳에 대한 저주 선언
B 2 성읍: 명령과 교훈 거부, 의지하지 않음, 가까이 가지 않음
C 3-4 지배층: 고관, 재판관, 예언자, 제사장의 불의와 악
D 5a 야훼: 정의를 드러냄
E 5a 불의한 자(들): 부끄러움 모름
D 6 심판자 하나님: 여러 민족
B 7a 성읍: 하나님 경외와 교훈 수용 권고와 심판 경감 약속에도
C 7b (지배자들의) 부패한 행위들
A 8 심판경고
스바냐는 요시야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요시야에 대한 열왕기하 23장 25절의 평가에 비춰보면 스바냐의 이 같은 시대 평가는 충격일 수 있다. 특히 요시야의 개혁 조치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요시야가 개혁하기 이전부터 그의 사후까지 예언했던 예레미야도 요시야의 업적에 대해 침묵하고 심판을 계속 선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렘 25:3), 그 충격은 완화될 것이다. 그의 개혁과 이 예언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와 예루살렘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기만 하다. 요시야의 제의 개혁에 대해 보도하는 열왕기하 23장에는 사회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나 예언자들에게 제의는 사회정의가 전제된 상태에서만 의미가 있다. 만일 요시야의 개혁이 종교적 차원에 국한된다면, 그 개혁은 예언자들의 관점에서는 제대로 된 개혁일 수 없다. 아모스 5장 21-24절은 제의와 정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9 물론 그는 요시야보다 훨씬 이른 시대의 예언자이다. 그런데도 그의 다음 증언은 제의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의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공의(~인의)와 정의(~법의)임을 밝힌다.
나는 너희 절기 행사들이 역겨워 거절하였고 또 너희 성회도 기쁘지 않다.
너희가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쳐도 나는 받지 않고 너희 살진 화목제물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치워라! 네 악기 가락도 나는 듣지 않겠다.
(다만) 정의가 넘치는 물처럼, 공의가 늘 흐르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이처럼 예언은 사회정의의 표현으로서의 제의를 지향한다. 따라서 개혁은 이를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 비록 요시야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개혁을 했다 해도 그 목표와 내용은 사회정의여야 했다. 그가 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보도가 없고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가 요시야의 개혁조치들을 외면했다면, 그것들은 내용이 결여된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혁 시대에 예레미야는 “악한 자의 길이 순탄하고 사기꾼들이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나님에게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렘 12:1) 요시야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그의 개혁이 충분치 못했고 이스라엘의 사회적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한 데 있으리라.(이것은 예레미야가 22장 15-16절에서 요시야를 정의와 공의를 행한 왕이라고 평가함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스바냐가 특별히 문제 삼는 자들은 고관, 재판관, 예언자, 제사장 등 지배계층이다. 고관들의 폭력성과 재판관들의 탐욕은 각각 울부짖는 사자와 먹이를 하룻밤 새에 말끔히 먹어치우는 저녁 이리에 비유된다.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신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을 짓밟음으로 불의에 기여한다. 미가 3장 9-11절에 따르면 그들은 돈을 위해 정의를 미워하고 곧은 것을 비틀고 폭력을 지배도구로 삼는 자들이다. 지배계층의 이 같은 폭력과 부패가 이스라엘 백성의 원성을 자아냈을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는 것으로 응답하신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스바냐는 바로 지배계층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에서 찾는다. 바로 여기에 스바냐의 독특성이 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침마다 예외 없이 공의를 드러내지만-이것은 구체적인 진술이 아니어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남길 수 있다-그들은 그것에 비춰지는 자신들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이 없어 달라지지 않고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해오던 행위를 계속한다. 심판을 마다하지 않는 하나님을 알려주어도 ‘그럴 리가’ 하며 꿈쩍 않는다. 마치 스스로 최면을 걸듯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냐? 재앙이 우리에게 닥칠 리가 없다.’(미 3:11b)라며 큰소리이다. 반항적이고 모독적인 이 성읍과 그 지배층에 하나님은 심판을 기다리라고 최후 경고를 한다. 그러면 달라질까? 부끄러움의 부재는 이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사야 26장 10-11절은 그들에 대해 절망적 선언을 한다.
악인은 은총을 입어도 의를 분명 배우지 않겠고,
곧은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며 야훼의 위엄에는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야훼여 당신 손이 높이 들려도 그들은 쳐다보지 않고,
백성의 열심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10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마도 야훼에 대한 열심으로 정의를 배우고 공의를 실천하려는 자들의 존재이다. 그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부끄러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하나님의 심판 의지와 결단도 그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무치는 사람에 대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배반의 한 요인이다.(다른 한 가지는 탐욕이다.)
존재 뿌리까지 닿는 부끄러움은 사람 속에 있는 자기변화의 단초이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압살하는 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인격적 장애일 뿐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인격적 장애자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지식을 지배하고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개혁이 있어야 할 곳이다. 표면적인 개혁조치를 취하며 안심하고, 자신들의 폭력과 배반과 모독을 감추는 현실에 스바냐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배계층과 자본가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겉치레 개혁은 더 큰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표면적 개혁은 개혁의 대상인 그들의 탐욕을 가리고 기득권을 확대 보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교회가 눈 돌려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자기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교회에 허용되는 은총이다.
1 史記 列傳 7 仲尼弟子列傳
原憲字子思 子思問恥(원헌자자사 자사문치)
孔子曰 國有道 穀 國無道 穀 恥也(공자왈 국유도 곡 국무도 곡 치야)
子思曰 克伐怨欲 不行焉 可以爲仁乎(자사왈 극벌원욕 불행언 가기위인호)
孔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弗知也(공자왈 가이위난의 인즉오부지야)
원헌의 자는 자사이다. 자사가 부끄러움(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라에 (법)도가 있어서(~잘 다스려져서) 녹을 받고, 나라에 (법)도가 없어도(~잘 다스려지지 않아도) 녹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恥)이다.
자사가 물었다. ‘승벽, 자랑, 원망, 탐욕’ 곧 이기려 하고 자만하고 원망하고 탐욕부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를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지는 모르겠다.
2 孔子卒 原憲遂亡在草澤中(공자졸 원헌수망재초택중)
子貢相衛而結駟連騎 排藜藿入窮閻(자공상위이결사연기 배여곽입궁염)
過謝原憲 憲攝敝衣冠見子貢(과사원헌 헌섭폐의관견자공)
子貢恥之 曰夫子豈病乎(자공 치지 왈 부자기병호)
原憲曰吾聞之 無財者謂之貧 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 若憲貧也 非病也(원헌왈 오문지 무재자위지빈 학도이불능행자위지병 약헌빈야 비병야)
子貢慚 不懌而去 終身恥其言之過也(자공참 불역이거 종신치기언지과야)
3 國有道 不變塞焉 強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強哉矯(국유도 불변색언 강재교 국무도 지사불변 강재교)
나라에 도가 있다고 막힌(~옹색한) 처지를 바꾸지 않으니 참으로 강하고 굳세구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죽음에 이르러도 (뜻을) 바꾸지 않으니 참으로 강하고 굳세구나
4 『맹자』 진심장 상 7
孟子曰 恥之於人大矣(맹자왈 치지어인대의) 爲機變之巧者 無所用恥焉(위기변지교자 무소용치언) 不恥不若人 何若人有(불치불약인 하약인유)
맹자가 말하였다.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큰 것이다. (부끄러울 때) 임기응변의 기교를 부리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쓸 일이 없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같아지겠는가?”
*不恥不若人 何若人有는 우선 부끄러움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부끄러움은 성인과 같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5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에 대해서는 『맹자』 공손추 상 6, 고자 상 6 참조. 또한 진심장 상 6, 하 31도 참조. 맹자는 이 마음들을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초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인의예지는 단초들의 실현 형태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약용, 『맹자요의』, 인개불인인지심장 참조.
6 https://goo.gl/T1tidK
7 http://tioom.tistory.com/1410
8 새끼 밴 사슴을 잡았다가 뱃속에서 죽은 새끼를 발견하고 미안해하는 암사자의 모습이 보도된 대로라면, 그것은 동물에게도 일종의 부끄러움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비록 다른 동물들을 먹이로 삼을 수밖에 없는 세계지만, 마치 거기에도 강자가 그의 힘을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https://goo.gl/VUjvtk)
9 미가 6:6-8, 호세아 6:6, 9:13, 이사야 1:10-20, 예레미야 7:1-7 등도 참조.
10 히브리어 본문은 ‘백성의 열심’인데, 개역개정판 등에서는 이를 ‘백성에 대한 야훼의 열심’으로 옮긴다.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위에서 자공이 원헌을 만났을 때 그가 느낀 것과 같은 부끄러움이다.
김상기 |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과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감신대와 한신대에서 강의하며, 백합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위기Ⅰ‐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기도』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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