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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남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정작 남북 사이에는 아무 접촉이 없다. 저 두 나라의 협상 결과에 모든 것을 내맡겨 놓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짜놓은 국제적 그물에 걸려 이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는 북이나, 이를 구실로 미국이 구상하는 방어체계에 부지를 내준 남이나 이래저래 시달리기는 매한가지이다. 북은 차치하고, 남의 정치권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안보의 이름으로 남북 갈등과 대결을 고착화하고, 거기서 정치적 이익을 찾으려는 세력의 눈치를 본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미래가 상당 부분 미국과 중국에 달려 있는 형국이다.
북을 겨냥한다는 사드가 전술적인 면에서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설치에 합의한 지난 정권의 의도는 군사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듯하다. 사드배치 결정의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북의 핵실험이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점찍어둔 것으로 보이는 사드배치 예정지는 그 효용성뿐만 아니라 그 목적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와 특별히 긴급한(!) 이유도 없는데 한미 양국은 왜 졸속 합의에 이르렀는가이다. 지금에 드러난 것이지만, 사드배치 합의는 공식 문서 하나 없는 비정상적 결정이다. 법적 구속력도 없는 결정이 이 나라와 동북아를 뒤흔들어 놓고 있으니 해괴한 일이다. 합의 발표 당시에도, 아니 그 이전부터 사드배치가 초래할 대내외적 갈등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예상되었던 만큼 그 결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긴 과정이 있어야 했다.
사드배치가 결정된 것은 2016년 7월 8일이다. 국방부 정책실장과 미8군사령관은 사드 1개 포대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하며 “양국은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로 결정했다.”라고 하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드배치 결정이 ‘실무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사드배치를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는 미국방부 부장관의 2014년 9월 발언 이래 2년 가까운 논란 끝에 내려진 결정인데, 국방부의 정책실장 정도가 한국을 대표하니 꽤나 싱거운(?) 결말이다. 이는 사드배치를 단순한 무기 하나 들이는 정도로 인식하게 만들려는 상징적 행위이자 동시에 국회의 비준이나 동의 요구를 차단하기 위한 꼼수이다. 꼼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드 부대 설립에 필요한 부지로 한 기업의 골프장을 제공하면서 대신 부지를 맞교환해 주기로 한 것이다.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억지 논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성주 사드는 그 설치 목적도 불분명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사드는 처음 선전과 달리 서울 방어와 무관하다. 그 외 지역에 대해서도 실질적 방어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라는 말은 수식어에 불과하지 않은가? 사드에서 필요한 것이 단지 레이더 기능뿐이라면, 현재 한국군의 탐지 능력도 모자라지 않는다. 게다가 미군의 탐지 기능까지 더해진다면, 사드가 목표로 삼는다는 북의 무기들은 그것 없이도 이미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그것들이 무엇이든 현재도 발사하자마자 거의 동시적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사드는 북을 겨냥한 미사일 요격체계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사드의 실제 용도가 무엇인지 더욱더 궁금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한미동맹의 군사력 보호”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보다 더 정확하게는 ‘미국의 군사력’ 보호일 것이다. 그 범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광범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 보호, 다시 말해 미국의 안전과 이익을 곧 한국의 안전과 이익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사드배치를 찬성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미국과 현 정권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사드배치를 완료함으로써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다음에 들어설 어떤 정권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사기행각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권이 이렇게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세력의 온갖 정치이념 공세와 함께 체념과 자조 속에 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드배치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굴욕과 희생이 요구되는 만큼 차기 정권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사드배치 결정은 결코 독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2015년 11월), 오바마가 극찬한 한일위안부 합의(2015년 12월), 남북공존과 평화의 토대를 파괴하는 개성공단 폐쇄(2016년 2월), 미국의 MD 확장(미, 일, 중, 러의 입장)과 편입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사드배치 결정(2016년 7월), 사드에 의해 수집된 정보 공유를 넘어 일본의 꿈인 군사대국화 실현을 위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2016년 11월) 등 탄핵 직전 1년간 이루어진 연쇄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이 흐름은 그것들로 끝난 것이 아닐 것이다.[예컨대 ‘군수 물자 교환’에 관한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이 그다음 단계가 될 수 있다.] 안으로는 역사의식 왜곡과 부재를 꾀하며 남북의 상생을 부정하고, 밖으로는 미・일에 종속적 지위를 강화하는 이 조치들 중심에 사드가 있다. 사드 때문에 야기된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조차 중국을 탓하며 사드배치 정당화에 이용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목적과 이익을 자기의 이익으로 간주하게끔 다수가 길들여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정당한 우리의 위치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이는 자신에 대한 현실 인식뿐만 아니라 미래상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제 그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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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의 역학 관계는 많은 경우 동등하지 않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그 관계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특정한 관점을 수반하기 때문에, 맹자의 말을 빌려 단순히 큰 나라와 작은 나라로 바꾸고자 한다. 맹자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적정한 관계에 대해 사대(事大)와 사소(事小)라는 한 쌍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한다.1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이웃 나라와 교류하는 데 도가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탕왕이 갈나라를 섬기고 문왕이 곤이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왕의 할아버지 고공단보] 대왕께서 [북방 오랑캐] 훈육을 섬기고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를 섬겼습니다.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을 즐거워하는 자이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을 외경하는 자입니다.
하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을 외경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합니다.
시경의 구절입니다. “하늘의 위엄을 외경하고, 때에 맞춰 (문왕의 법)을 보전하리라.”
고대 중국의 복잡한 정세에서 한 단면만을 보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몇 마디 말로 정리해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국제’ 관계의 기초를 힘의 우열과 경쟁에 두지 않고, 꼭 도달할 수 없는 이상만은 아닌 상생과 공존의 규범에서 찾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사소’와 ‘사대’는 그 한 가지 현실적 형태이다.
여기서 ‘섬기다’는 뜻의 사(事)는 양방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복속, 종속/예속, 주체성 결여, 복종 등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사대’는 소국이 대국에 굴종해서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는 형태의 외교적 행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힘의 불균형에 의한 정치적・군사적 긴장을 완화, 억제하고, 자국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확보하고, 평화적 공존을 위한 현실적 외교 수단이다. 반면에 ‘사소’는 군사적 정복과 지배를 꾀하는 대신 소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절을 교환함으로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관계를 도모하고 견제하는 외교 정책이다.2 이처럼 사대와 사소는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평화적 공존과 안정을 지향하는 상호 외교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이러한 관계와 질서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을 유가의 중심 개념 가운데 인(仁)과 지(智)에서 찾는다. 국제 관계에 이를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통상적 어법을 따른 것으로 보면 이해될 수는 있다. 요즘도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대국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어법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어떤 점에서 ‘인’이고 ‘지’인가?
탕왕은 제사에 쓸 소가 없고 제사드릴 곡식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이웃 갈나라 왕에게 제사에 쓸 소를 보내고 밭을 매도록 자기 땅의 사람들을 보냈다. 이를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일종의 내정간섭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맹자를 따라 ‘인’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탕왕은 갈나라 왕이 소를 잡아먹고 김 맬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박 땅의 노약자들을 죽이고 식량을 강탈하자 그와 그의 나라를 정벌하였다.’ 이 점에서 ‘인’은 끝까지 관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의 경우 월나라 구천이 보복에 뜻을 두었다는 점에서,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3 그가 보여주듯 무조건적인 굴종이 아니다. 고공단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침공해 들어와 땅과 백성을 요구하는 훈육과 융적에게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땅과 백성을 내어주고 빈곡을 떠나 기산 아래로 옮겨간다. 그러나 뒤에 빈곡 주민들이 그를 따라 이주해 온다.4
이러한 ‘지’와 ‘인’의 관점에서 파악된 사대와 사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춘추』 해설서인 『좌전』은 사소와 사대의 근본을 ‘예’(禮)로 규정한다.5 이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지와 인을 통합할 수는 있지만, 그 심층을 들여다보게 하지는 않는다. 그 근본은–고공단보의 이야기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듯이–백성의 삶을 중심에 놓고 정의를 베풀고, 백성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의 입지를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의 생명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됨이다. 백성을 섬김에서 사대와 사소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맹자의 윗글은 이를 ‘하늘’과 연관짓는다. 하늘의 뜻을 알고 이를 즐거움으로 삼기에(시편 1편 2절과 비교) 자기보다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다. 그 뜻을 즐거움으로 삼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지만, 하늘을 외경하기 때문에 그 뜻을 거스르지 않고 큰 나라를 ‘섬길’ 수 있다. 이때 하늘의 뜻은 평화와 상생이다.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종교적이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이해를 따르면, 사대와 사소는 단순한 외교 정책과 수단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실현시키는 방법이 된다. 특히 한 국가는 단순히 양자 관계가 아니라 다중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대와 사소는 한 국가에 동시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강대국에 비굴하지 않고 약소국에 폭력적이 되지 않게 하는 사대와 사소는 지금 북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외교적’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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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와 사소와 관련하여 맹자에게서 본 ‘하늘’은 이사야 30장을 다시 읽게 한다. 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서 존립 위기에 부딪힌다. 그들의 선택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말하는 이사야 30장은 1-7절, 8-17절, 18-26절, 27-33절의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앞의 두 단락만 다루고자 한다. 두 단락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6
I. 1-7절
a 1절 저주받아라! 야훼의 말씀이다.
고집불통인 자들: 계획을 세우고 동맹을 맺음, 야훼께 의
지하지 않음
b 2절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 야훼께 묻지 않음, 도움을 구하
고 피난처 찾음
c1 3절 바로의 힘에 의탁하고 피난처 찾는 것이 수치와 모욕이
될 것
c2 4절 이집트에 도착한 사람들: 고관들과 사신들
5a절 유익을 줄 수 없는 이집트 때문에 수치를 당했음
b 5b절 결과: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은) 도움과 유익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와 모욕이 될 것
c3 6절 유익을 줄 수 없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의 모습, 네겝
짐승들에 대한 경고
7a절 이집트는 헛되고 도움은 쓸모없을 것
a 7b절 야훼의 말: 이집트는 라합7
II. 8-17절
x 8절 1-7절의 기록 명령과 목적
a 9절 야훼의 이스라엘 고발: 반항, 거짓, 야훼의 법 거부
b 10-11절 예증: 이스라엘의 말 인용
a 12절 야훼의 이스라엘 고발: 야훼의 말 무시, 억압과 거짓 신뢰
b 13-14절 심판: 죄악이 드러나고 야훼가 철저히 무너뜨릴 것
a 15절 야훼의 이스라엘 고발: 구원과 힘을 얻을 야훼의 길 거부
✽돌이키고 가만히 있고 잠잠하고 신뢰하는 것
b 16절 이스라엘의 말 인용과 심판 응답:
도망가리라–너희 도망갈것이다
빠른 것을 타리라–추적자들이 더 빠르리라
17절 심판과 심판의 철저성: 소수만 남을 것
30장에는 비판받는 자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서 관련 사건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집트와의 동맹을 처음으로 암시하는 열왕기하 18-19장은 이 본문이 히스기야 시대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유다는 아하스 이래 앗시리아의 봉신국이었지만, 701년경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의 반앗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였고8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히스기야가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9 그리고 이집트와의 동맹과 참전 가능성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지역의 반앗시리아 동맹에 가담케 했다면, 이사야가 반앗시리아 동맹보다 이집트와의 동맹을 비판한 이유가 납득될 수 있다.
그렇다고 유다가 계속 앗시리아 봉신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이사야가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사야에게 앗시리아는 한때 하나님의 심판 도구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기 때문이다. 앗시리아에 대한 심판은 곧 유다의 정치적 해방이다. 이 상황에서 유다가 이집트의 힘을 빌리는 것은 정치적・군사적으로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사야는 그것이 야훼와 무관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계획을 실행하지만 나(야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동맹을 맺지만 내 영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10 …이집트로 내려가지만 내 입에 묻지 않았다.
이렇게 맺어진 이집트와의 동맹은 무위로 끝나고, 반앗시리아 동맹국은 앗시리아에게 참담하게 패하고 만다. 유다는 멸망의 위기를 모면하지만, 그 대가로 46개의 성읍을 잃고 성전을 훼손해가며 막대한 공물을 바쳐야 했다.(왕하 18:14-16) 이것은 유다의 동맹정책으로 빚어진 피해가 고스란히 유다 백성에게 전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사야가 두 세력 사이에서 권고하는 대안은 ‘돌이키고 침착해야 구원을 받고, 태연하고 신뢰하는 데 너희 힘이 있으리라.’는 것이다.(15b절) 그에 따르면 어느 세력도 선택과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들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거두어들이고 야훼께로 돌아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태연하게 있을 때 구원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존립의 위기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답은 권력자들이 야훼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을 버리고 동맹국으로 도주하는 것에서, 부분적일지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야훼의 관계는 그들과 백성의 관계와 상관관계가 있다. ‘돌이키고 침착하고…, 태연하고 신뢰하는…’ 것은 야훼와 백성을 향한 양방향의 자세일 것이다. 야훼에 대한 신뢰는 다시 말해 백성에 대한 신뢰라는 가시적 형태를 취하고, 후자는 전자를 함축한다. 백성을 신뢰하면 동맹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적어도 경쟁적인 강대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의 신뢰 없이 설 수 있는 군대가 없고, 그런 정치 또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훼와 백성을 신뢰할 수 없는 권력자들이 택한 길은 오직 억압과 왜곡뿐이었다.
그들은 나의 말을 거부하고 억압과 왜곡을 신뢰하고 그것(들)을 의지하였다.(12절)
그러나 지배 수단으로서의 억압과 왜곡은 국가의 심각한 계급적 분열을 초래하고,11 최종적으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야훼는 그와 백성을 버리고 피난처를 찾아 큰 나라로 달려가는 그들을 더 빠른 속도로 쫓아가 심판하리라고 한다. 이집트를 이용해 앗시리아의 봉신국 지위를 벗어나려고 하던 유다의 시도는 유다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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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황은 물론 이와 다르고, 조금 더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남북 관계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북을 사소(事小)하지 않는 남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 같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이용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북을 겨냥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을 위해 사드배치를 허용한 남에 중국은 경제 보복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북에 대해서는 제한적일지라도 미국의 군사적 조치까지 묵인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남과 북을 통제하려는 한편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렇게 주고받으며 오가는 사이에 한국은 없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사대(事大)할 줄 모르는 사대주의적 임시 정권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에 봉사할 뿐이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권에 자존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상황이 두 나라의 경쟁 가운데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려면, 하늘과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가 행해지고, 그에 따라 하늘과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드 철거가 사대의 시작이라면, 북 지원과 협력은 사소의 시작이다. 이러한 정치가 국민의 촛불로 밝혀진 새 정권에 거는 기대이다.
1 『맹자』 양혜왕 하 3
齊宣王問曰 交鄰國有道乎(제선왕문왈 교린국유도호)
孟子對曰 有(맹자대왈 유)
惟仁者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유인자위능이대사소 시고탕사갈 문왕사곤이)
惟智者爲能以小事大 故大王事獯鬻 句踐事吳
(유지자위능이소사대 고대왕사훈육 구천사오)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이대사소자 낙천자야 이소사대자 외천자야)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낙천자보천하 외천자보기국)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시운 외천지위 우시보지)
2 이를 ‘기미’(羈靡)라고 한다.
其慕義而貢獻 則接之以禮讓 羈靡不絶 是聖王制御蠻夷之常道也
(기모의이공헌 즉접지이예양 기미부절 시성왕제어만이지상도야)
그가 의(리)를 사모하고 공물을 바치면 그를 예와 겸양으로 맞이하며 견제하고 끊지 않는다. 이것이 성왕이 오랑캐들을 제어하는 불변의 길이다.(漢書 匈奴傳 下)
전한(前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난촉부로”(難蜀父老)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천자가 오랑캐들을 ‘기른다’는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뜻은 견제하고 끊지 않는다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맹자가 예로 든 사대는 보다 적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맹자가 ‘지’의 예로 월나라 구천을 든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오나라 부차에게 패배한 후 20년 동안 쓰디쓴 담즙을 맛보며 보복할 날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나라를 정성으로 섬겼으며, 결국 부차를 몰락시켰기 때문이다.
4 고공단보는 덕을 쌓고 공의를 행하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받들었다. 훈육과 융적이 그를 공격하고 재물을 요구했을 때 그는 주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다시 공격해와 땅과 백성을 요구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분개해서 싸우고자 했다. 이에 고공이 말했다. “어떤 백성이든 군주를 세우고 이로써 자신들을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융적이 우리를 공격하는 목적은 우리 땅과 백성에게 있습니다. 백성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나 때문에 싸우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고 그들의 군주가 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솔들과 함께 마침내 빈(곡)을 떠나 … 기산 아래 머물렀다.
積德行義 國人皆戴之 薰育戎狄攻之 欲得財物 予之
(적덕행의 국인개대지 훈육융적공지 욕득재물 여지)
已復攻 欲得地與民 民皆怒 欲戰
(이복공 욕득지여민 민개노 욕전)
古公曰 有民立君 將以利之 今戎狄所爲攻戰 以吾地與民
(고공왈 유민입군 장이이지 금융적소위공전 이오지여민)
民之在我 與其在彼 何異
(민지재아 여기재피 하이)
民欲以我故戰 殺人父子而君之 予不忍爲
(민욕이아고전 살인부자이군지 여불인위)
乃與私屬遂去豳… 止於岐下
(내여사속수거빈… 지어기하)
–史記 本紀 周本紀.
✽이에 대해서는 양혜왕 하 12-15장도 참조
5 禮者 小事大大字小之謂 事大在共其時命 字小恤其小無
(예자 소사대대자소지위 사대재공기시명 자소휼기소무)
‘예’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돌아보는 것을 일컫는다. 사대는 큰 나라의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며, 자소는 작은 나라의 작고 없음을 채우는 것이다.
–『좌전』 소공 30년
✽또 다른 곳에서는 신(信)과 인(仁)으로 말하기도 한다.
小所以事大信也 大所以保小仁也
(소소이사대신야 대소이보소인야)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길은 신뢰이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전하는 길은 인자이다.
–『좌전』 애공 7년
6 1-7절과 8-17절이 현재처럼 한 본문이 된 것은 편집 결과이다. 여기서는 이를 전제로 하고 한 본문으로 읽고자 한다.
7 라합은 파괴적인 혼돈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바다 괴물로서 다른 구절들에서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더는 독자적인 세력이 아니라 야훼에게 굴복한 무력한 존재로 나타난다.(사 51:9, 욥 9:13, 26:12, 시 87:4, 89:10 참조)
1-7절의 구조는 유다가 의존하려는 이집트의 무기력을 드러내는 a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야훼에게 굴복한 라합에게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이 강조되고, 그 결과가 b와 c에서 예고되고 실현된다. 9-17절은 다시 9-12절(A):13-14절(B):15절(A):16-17절(B)의 평행구조로 정리된다. 이스라엘의 거부와 그에 대한 심판이 반복되며, 심판에 강조점이 있다. 양자를 연결하는 8절은 유다가 역사적 반성 없이 야훼의 길을 계속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 팔레스타인 지역의 반앗시리아 동맹은 지중해 연안을 확보하기 위해 서진 정책을 펴던 사르곤 왕의 갑작스런 사망(705년 BCE)을 계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앗시리아 제국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산헤립이 701년에 이 지역을 정벌했을 때 8명의 왕들이 그에게 4배의 조공을 바친 까닭은 그들이 사르곤 사후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유다가 끝까지 저항했음에도 앗시리아가 유다에게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는 유다가 이 동맹에 처음부터 가담한 것은 아니었음을 시사할 것이다.
9 산헤립의 한 비문에 따르면, 반앗시리아 동맹의 에크론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구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지만 이집트-구스 군대는 엘테케 근처에서 패배한다. 반앗시라아 동맹의 중심에 있던 유다 역시 이집트와 동맹 관계에 있었을 것이다. 열왕기하 18장 17절 이하의 이야기가 히스기야의 또 다른 반앗시리아 정책에 따른 앗시리아의 재침공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 역시 히스기야의 이집트 동맹을 뒷받침한다.
10 본문은 ‘…헌주(獻酒)를 붓지만 내 영에게 (붓지 않고)’이다. 그 행위는 동맹을 맺는 의식절차 가운데 하나이다.
11 그 극단적 예를 『맹자』 양혜왕 하 12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나라와 노나라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목공이 물었다. “우리 관리들 가운데 사망자가 33명이나 되는데 백성을 그들을 위해 죽지 않았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하여 아랫사람들을 도저히 살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백성은 지금이나 후에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는 (저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풀면 이 백성은 윗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吾有司死者三十三人而民莫之死也(오유사사자삼십삼인이민막지사야)에서 대명사 ‘之’는 33인을 받고 ‘之死’는 ‘死之’가 도치된 것이다.
김상기 |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과 독일 뮌스터 대학교 신학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감신대와 한신대에서 강의하며, 백합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위기Ⅰ-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기도』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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