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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情談 (2017년 3월호)

 

  로마제국의 다원주의 정책과 초대 기독교의 평등공동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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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출애굽의 영웅 모세, 바빌론 포로기의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구약성서의 인상 깊은 주인공들을 한마디로 지칭한다면 ‘나그네’, ‘떠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이들 삶의 실제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족장들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살길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이주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주체적인 선택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보면 조상 대대로 살던 자기 땅에서 쫓겨나거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피동적 측면을 지닌다. 소수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주는, 설사 외견상 스스로 떠나는 형태를 띤다 하더라도, 사실은 뿌리뽑힌 삶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근대적 의미의 국가체제가 수립되고 자본주의가 확고해지면서 자율적 선택에 의해 이주하는 경우는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로 국한되고, 사실상 자기 땅에서 밀려난 난민들, 디아스포라의 삶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전쟁과 인종분쟁, 세계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면서 민중들의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삶이 유례없이 파괴되고 있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뿌리뽑힌 삶이 대규모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자본이 극대화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전 세계를 하나의 이윤 공간, 즉 하나의 시장이자 하나의 공장으로 재편해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한편으로는 땅에 기반을 둔 토착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파괴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중심적이고 소비중심적인 생활양식을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전 세계에 확산시킴으로써 각 나라의 풀뿌리 민중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온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발적으로든 강제로든 국제이주 노동자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전 세계적인 자본의 움직임 속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와 자본주의의 형성기는 일치하지만, 오늘날 국가는 자본의 끝없는 자기 확장을 위한 충실한 보조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국가라는 경계는 자본과 상품의 이동은 최대한도로 원활하게 하는 반면 노동력, 특히 단순 노동력의 이동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각국 노동임금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상이한 경제발전 단계,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격차야말로 국적 불문의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반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격차를 지닌 세계 각국의 국경을 넘어 자본과 상품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국제이동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세계화는 자본과 상품이 국경을 넘나드는 길은 탄탄대로로 뚫어놓았지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국경을 넘나드는 길에는 곳곳에 차별의 장벽을 설치해놓았다. 특히 단순노동 인력이 경계를 넘고자 할 때는 불법이라는 낙인과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화폐의 추상적 보편성은 세계 어느 곳이든 침투할 수 있지만,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노동력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동일 노동을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국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불법 이주 노동자가 양산되고, 이들은 사실상 가장 낮은 단계의 영세한 자본의 착취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민이나 국제이주 노동자 문제를 이야기할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한 토착적・자립적 삶의 방식의 붕괴와 전 세계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문제 상황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비추어보면 ‘다문화사회’라는 말은 결과로서의 현상만을 기술할 뿐, 오늘날 온갖 형태의 난민, 국제이주 노동자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호명하는 정확한 언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제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다문화주의적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사회경제적 차별의 문제를 문화적 차이의 문제로 다루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불평등을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과라기보다는 편견의 결과처럼 보이게 만든다. 따라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향한 노력 대신 개개인이 인종과 성, 계급, 문화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없애는 것이 마치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가 불평등이 아니라 각자의 태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제이주 노동자들은 추상적 수치로 환원될 수 있는 노동력이기 이전에 자기 터전에서 뿌리뽑힌 자들로서 구체적인 몸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 즉 가족과 집과 친구가 있고, 특정한 관습과 문화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평등한 인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선거유세 기간 내내 보호무역주의, 미국 최우선주의를 내세웠고, 취임하자 제1착으로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21세기 새로운 전체주의 사회의 개막일 수 있고, 파시즘의 부활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양극화를 낳아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보와 성장이 멈춘 시대. 그런 시대에 이미 우리는 들어섰다. 많은 학자들이 지난 200여 년간 이어져 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위기에 대해 말한다. 자본의 끊임없는 확대 축적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라면, 이제 더 이상 자본의 확대 축적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자본주의체제가 지속되려면 자본가들이 축적된 자본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빈곤이 심화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투자를 이윤으로 전환시켜 줄 소비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가가 상품을 생산하면 상품을 구매해줘야 하는데, 구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빈곤과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1 현재 전 지구적 자본은 상품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실물경제와 유리된 투기자본의 형태로 순환되고 있다. 자본주의체제 자체가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이 도래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들, 이주 노동자들은 이러한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최일선에서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인간 삶이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고국에서든 타국에서든 민중의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삶이 파괴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끝없는 물질적 욕망에, 사회적 차원에서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극단적으로 천박하고 조급한 자본주의에 기인한다. 인간 행위의 윤리적 동기를 끊임없이 문제삼아 온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사실상 국익이나 다른 어떤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 구체적인 인간을 도구화・대상화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존귀한 자녀이자 하느님 안에서 형제요 자매라는 성서의 확고한 메시지와도 상치된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성서를 통해 들어야 할 가장 절실한 목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관한 확고하고도 지속적인 지지의 목소리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 역시 따뜻한 관계와 우애를 갈구하는 존재로서 살아 있는 인간 누구나 동등하고도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특정한 장소와 관계, 전통에 뿌리박은 삶의 복잡성을 긍정하고 기뻐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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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약 300여 년에 걸친 군사적 정복을 통해 지중해 연안의 거의 전 지역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었다. 이처럼 로마가 당시로는 전 세계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둔 것은 세계화로 상징되었다. 지구화 곧 세계화는 ‘신적인 아우구스투스의 업적’(Res Gestae Divi Augustus)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으며, 그는 이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를 로마의 지배 아래 복속시키고 제국의 경계선을 지구의 경계선과 같게 만들었으며, 로마인들의 세입을 안정시키고 일부는 증가시켰다.”라고 했다.
로마는 피정복지의 귀족들이나 지배계급과 후원자/의뢰인(patron/client) 관계에 의해 광대한 제국의 사회적 연결망을 구축했다. 지역 유지들은 황제나 황제 가족의 호의를 사 황제의 의뢰인이 됨으로써 자신들이 속한 지역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했다. 황제를 위해 새로운 신전을 짓거나 운동경기를 여는 데 자금을 댄 지역 유지들은 비문에 이름을 올리거나 주요 공직에 임명되었고, 명예로운 지위에 올랐다. 그 결과 맨 꼭대기의 황제로부터 제국 각 도시로 내려오는 다단계의 사회적 관계의 피라미드, 즉 경제력과 의존성의 피라미드가 생겨났다.2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순전히 물리적인 경찰력이나 행정기구, 군대만으로 그처럼 광대한 영토를 관리하고 다스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후원자/의뢰인 제도는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다단계의 명령/지배체제이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그물망으로서 기능했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자율적인 자치조직, 또는 삶의 그물망이 아니라 철저하게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피라미드로서 밑바닥 민중의 피땀을 빨아올리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사회적 빨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제국의 경찰력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실질적인 감시와 통제의 기능까지 했다.
변방의 속주들과 농촌지역에서 로마는 자신의 의뢰인인 협조적인 지방 귀족들을 이용하여 ‘질서’를 유지했다.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식민화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매우 유용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룩한 로마의 ‘평화’와 ‘질서’의 실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가령 팔레스타인 대다수 농민의 삶이 잘 보여준다.3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삼중의 권력체계, 즉 로마제국과 그 의뢰인–왕인 헤롯 가문, 그리고 사두개파 대제사장들로 대표되는 종교권력 아래 삼중의 조공, 조세로 인한 경제적 수탈을 당하며 삶의 파괴를 경험했다. 이들에게는 로마에 내야 하는 높은 세금, 로마 군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주어야 한다는 명령, 간헐적인 게릴라식 교전으로 인해 땅과 생계수단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투스가 이룩한 세계화의 결과로서 ‘로마의 평화’와 후원자/의뢰인 제도, 이 둘은 외견상 로마제국을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로 보이게 했지만, 사실상 ‘로마의 평화’란 로마의 칼과 창에 의해 정복당한 민족의 입에 채워진 재갈과 쇠사슬을 뜻했고, 후원자/의뢰인 제도는 민족적 차이를 떠나서 제국의 어느 곳에서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제도였다. 피정복민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로마제국의 통치는 군사적 폭력에 의한 지배였고, 그가 세운 새로운 세계 질서, 즉 팍스 로마나는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황폐화하는 무질서였다. 제국의 수도와 도시 지역의 부유한 권력층에게는 팍스 로마나가 질서를 의미했지만, 피정복민들에게는 기존의 촌락공동체적 삶이 붕괴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을 의미했다.4
따라서 로마제국이 내세운 평화와 질서의 구호 이면에는 민족과 지역, 계급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있었고, 제국은 어떻게든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했다. 정복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영토, 문화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게 된 로마제국은 우선 공식적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취했다. 오로지 인종에만 근거해 편견을 갖거나 특권을 부여하는 일은 비교적 드물었다. 로마는 유대인을 포함해서 각 민족 집단이 정부의 간섭 없이 자신의 법과 관습에 따라 사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그러나 로마는 그리스 문화와 함께 로마 자체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옹호했다. 그리스–로마의 문화, 경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산이 필요했고, 재산을 소유하고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시민권이 있어야 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지역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로마의 시민이 될 수 있었다. 로마는 정복지의 귀족에게 협력의 대가로 시민권을 수여했다.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고향에 살든, 멀리 떨어진 타지에 살든 속주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경제적 권력과 그리스–로마 문화를 통한 로마의 지배는 기왕의 토착적 지배체제 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착취구조가 자리잡는 것을 의미했고, 문화적 차원에서는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들의 전통적이고 자생적인 삶의 방식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원주의적 문화정책은 강압적으로 그리스–로마 문화를 토착민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생적이고 토착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를 시대에 뒤떨어지고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고, 그것은 토착민 중 일부가 제국의 문화를 동경하여 고향을 떠나 헬레니즘적 대도시로 이주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제국의 문화와 생활방식, 특히 토착지역의 상류계층이 흉내내던 그리스–로마 문화와 생활방식을 혐오하고 거기에 저항했다. 결국 표면적으로 다원주의 정책을 폈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실질적인 파괴와 착취는 토착적인 문화와 삶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문화적 획일화의 경향으로 가게 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포함된 거의 전 영역에서 제국에 의한 세계화는 표면상 문화적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피지배민족의 억압과 삶의 파괴로 이어졌다. 따라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도시와 농촌의 갈등 양상으로뿐만 아니라 도시 안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로마제국에 의한 세계화의 혜택을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들과 그들이 흡수한 토착 지배세력이 소수의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었던 반면, 대다수의 토착민은 그리스–로마 문화에 결코 흡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헬라화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전통적인 생활양식, 그들만의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법적, 문화적 특성을 고수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하나의 통일체였던 로마제국이 내적으로는 불평등한 두 부분, 즉 로마와 그에 결탁한 세력과 토착민으로 분열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제국 내 대도시의 하층민으로 유입되어 외국인 거주자로 살아갔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에 의한 세계화의 실질적 의미는 고국에서건 타국에서건, 아니면 농촌에서건 도시에서건 민중들의 자생적인 삶의 기반을 밑바닥에서부터 뿌리째 뒤흔들고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지배계급의 혁명과 항쟁의 분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로마제국에 대한 이러한 투쟁들은 정치운동임과 동시에 종교운동이었고, 계급적으로는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저항적 성격을, 지역적으로는 서방에 대한 동방의 대항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안보를 위해 로마는 피정복민들에게 충성, 즉 복종을 요구했고, 이때 로마가 피정복민들에게 요구한 정치적・군사적 충성을 나타내는 ‘fides’, 또는 그리스어로 ‘pistis’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낼 때 사용한 말과 동일한 단어였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로마의 통치방식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기본적으로 그것은 폭력에 의한 통치였다.5
이처럼 로마제국은 외견상 문화적 융합주의, 다원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적 정복과 공포에 의한 통치를 했다. 이로 인해 정치적・사회적 혼란과 갈등, 대립은 증폭되었고, 이것은 정신적・영적 혼란과 위기로 이어졌다. 또한 이것은 대중적 종교가 융성하는 토양이 되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종교들은 억압받는 자들의 열망과 희망을 반영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묵시문학에 내포된 반로마적 특성, 어떤 형태든 지배를 거부하는 아나키즘적 특성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에는 서방에 대한 동방의 승리만이 아니라 자유와 자치를 염원하는 동방 민중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초대 기독교의 탄생과 전파 역시 동일한 역사적 맥락 안에 있었다.

3
어느 시대든 진정한 종교는 그 시대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민중의 마음을 파고든다. 당시 로마제국에 의한 세계화와 그로 인한 민중의 자생적 삶의 파괴, 내면적 위기와 상실감은 참된 종교라면 반드시 진지하게 끌어안고 고투해야 할 문제였다. 유대교 내의 갱신운동으로 시작된 예수운동은 로마제국의 세계화로 인해 내적으로, 외적으로 피폐해진 유대 민중의 삶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었고, 민중은 거기에 열렬히 반응했다. 예수가 그려준 하느님나라의 질서는 로마의 제국적 질서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으며, ‘팍스 로마나’로 상징되는 로마제국의 신질서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호슬리는 로마제국의 신질서와의 관계에서 예수와 예수운동의 의미를 밝혀주었다.6 그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리 촌락공동체의 사람들에게 군사적 폭력과 삼중의 경제적 수탈을 의미하는 로마제국의 지배가 하느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선언했다. 예수는 로마의 제국적 질서가 임박한 하느님 나라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종말론적 확신 속에, 사회적 갱신의 선교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수와 예수운동은 하느님이 이미 그 백성들의 삶 속에서, 또한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했다. 아직은 제국의 무시무시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지만, 로마 지배자들과 헤롯가의 왕들과 대제사장들이 하느님의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는 제국의 영향을 치유하고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재건하도록 백성들을 일깨우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예수는 하느님나라가 임박했다고 확신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 생활형태를 이루던 마을공동체에서 평등주의적이며 서로 간에 지원하는 사회경제적 관계를 재확립하는 사회갱신의 프로그램을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호슬리는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의 기본 정신을 모세계약에서 시작되고 예언자들에 의해 계승된 계약공동체의 부활에서 찾는다. 그는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사회가 해체되는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백성들을 갱신했던 전통, 특히 계약에 근거한 협동과 정의를 갱신한 전통에 입각하여 모세와 엘리야, 즉 민족의 창시자와 갱신자와 같은 예언자의 역할을 맡아 로마 제국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치유하며, 백성들의 계약공동체를 갱신했다. 이 모든 측면에서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상황 속에 완전히 뿌리박고 있었으며, 그런 관점에서 잘 이해할 수 있다.7

갈릴리 민중들은 촌락공동체에서의 나눔과 협동의 삶을 통해 모세계약에 근거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이 나눔과 협동의 촌락공동체적 삶을 부활시키고, 상호 호혜적인 사회경제적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또한 테러리즘과 폭력에 기반을 둔 로마제국과 그 의뢰인–왕들의 통치로 인해 자긍심을 잃고 내면적으로 갈가리 찢긴 민중들의 마음을 스스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향해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전한 하느님나라의 실질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예수는 로마제국의 세계화로 인한 군사적 폭력과 경제적 착취의 파괴적 영향을 치유하고, 촌락공동체의 문화적 전통과 공동체의 활기를 되살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갈릴리의 촌락들에서 행한 예수의 하느님나라 선포는 과거 그 주민들이 모세계약의 평등주의적 전통에 따라 살아온 공동체적 정신과 협동의 정신을 재활성화하고, 제국의 폭력이 가져온 신체적・정신적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방의 과정을 통해 예수는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고, 고통과 시련 중에 절망한 백성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제시함으로써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계약공동체는 갱신되고, 해체되어 가던 공동체들은 상호협동과 지원의 삶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그럼으로써 말 그대로 하나의 새로운 물결, 새로운 운동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제국의 세계화에 의해 파괴된 토착적이고 자치적인 삶의 회복운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선전 선동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는 제국의 선전 문구가 제시하는 다원주의적 세계화의 미래를 신뢰하지도 않았고, 헬레니즘적 대도시에서의 삶의 스타일을 흉내내지도, 거기서 뭔가를 끌어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수가 제시한 하느님나라의 미래는 사실상 유대 민중이 공유한 과거에 있었다. 미래의 하느님나라의 실질적 원천은 과거 이스라엘 전통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억압적인 외국의 통치에 저항하기 위한 말씀의 근거들을 이스라엘 전통 속에서 찾았을 뿐만 아니라 협동적이며 위계질서가 없는 공동생활의 원리도 그 속에서 찾았다. 로마제국의 세계화에 의해 파괴되고 뿌리뽑힌 민중적 삶의 회복을 위한 자율적이고 자치적 삶의 원리를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평등주의적 모세계약 전통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호슬리의 말대로 “예수는 이처럼 정의롭고 협동적인 정치경제적 관계의 원리와 전통적 가치에 호소하고 그것들을 적응시킴으로써 백성들에게 사회적 혁명 속에서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인생을 장악하도록 요청했다. 하느님이 심판과 구원을 통해 그들 편에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서로를 분열시키는 행동을 자제하고 협동을 다시 확립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모두를 피폐하게 만든 가난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원한 대신에 그들은 연대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부자들의 착취적인 형태, 즉 다른 사람들의 가난과 절망을 이용하여 이웃을 속이는 부자들의 행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백성을 회복시키는 행동이 임박했다는 확신 가운데 그들은 계약의 정의의 원리에 새롭게 헌신해야만 했다. 제국의 지배 행태, 즉 ‘큰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를 모방하는 대신에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8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국의 세계화에 의한 파괴로부터 토착민들을 치유하고 상호 호혜적인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평등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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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로마제국의 건설과정은 지중해 연안의 거의 전 지역과 민족, 계급을 포괄하는 광대한 제국의 건설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다양한 부족과 민족, 계급을 통합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로마제국은 외견상 여러 민족과 계층, 지역을 포용하는 다원주의 정책을 폈으나, 실질적으로는 황제를 우두머리로 한 촘촘한 후원자/의뢰인 시스템에 의한 특권적 통치와 사회적 통제, 강력한 군대에 의해 유지되는 폭력적인 착취체제였다. 가난한 피억압계층과 식민지 민족에게 로마제국의 통치는 폭력 그 자체였고, 여차하면 십자가처형이라는 무시무시한 보복을 당할 수 있었다. 로마가 이룩한 평화란 제국의 건설과 유지를 위해 창과 칼의 공포를 통해 이룩한 평화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 제국의 통치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 평평한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국의 통치란 끔찍한 계급적・인종적・성적 차별 사회였고, 문화적 다원주의란 그러한 차별을 은폐하는 구호일 뿐이었다.
예수운동과 바울의 초기 기독교운동은 제국의 지배와 통치방식을 미화하는 온갖 선전 선동과 구호에 말려들지 않고 실질적인 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을 직접 대면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의 통치자들 사이의 대조를 명확히 의식하고 있었다.(고전 2:6-8) 그리고 이 대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대안사회를 창조하고자 했다. 초대 기독교는 끔찍한 차별에 근거한 제국 안에 보편적 평등주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초대교회는 그러한 평등과 우애의 질서를 실험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평등주의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는 인간들의 내면은 자유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 위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섬기는 자유다. 이러한 기독교인의 실존은 다원주의라는 미소 뒤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이기심을 감춘 로마의 포용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제국이 포용정책이라는 가면을 쓰고 실제로는 제국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그 어느 것도 가차 없이 박멸해버리는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다면, 바울의 기독교는 서로 돕는 우정과 환대의 자발적인 공동체를 이뤄감으로써 신분계급 사회 내 곳곳에 평등사회의 효모를 심어나갔다.
결국 오늘날 필요한 것도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의 다원주의 정책에 맞서 실질적인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로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갔듯이, 현실적으로 다른 원리에 근거한 사회를 위한 세포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때 초대 기독교인들은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나라, 자발성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아름다웠던 초대 기독교의 노력도 결국 로마제국이라는 독수리의 날개 아래 포섭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그 기억은 신약성서 안에, 우리 안에 살아남아 산 위의 마을처럼 사람들이 쳐다볼 수 있는 등불이 되었다.

1 고부응, “고난의 시대 몰락한 대학,” 「녹색평론」 148호, 87-88.
2 Peter Garnsey & Richard Saller, “Patronal Power Relations,”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ed. by Richard Horsley(Harrisburg, P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96-103.
3 R. A. Horsley, 박경미 역, 『갈릴리: 예수와 랍비들의 사회적 맥락』(서울: 이화여대 출판부, 2007).
4 이것이 R. A. Horsley, 김준우 역, 『예수와 제국: 하느님 나라와 신세계 무질서』(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의 기본 주제이다.
5 R. A. Horsley, 김준우 역, 위의 책, 55-61 참조.
6 이하 예수와 예수운동에 관한 서술은 위의 책을 토대로 한 것이다.
7 R. A. Horsley, 김준우 역, 위의 책, 207.
8 R. A. Horsley, 김준우 역, 위의 책, 209.


박경미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신약학 교수로서 신학대학원장,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요한공동체의 문학과 신학』 외 다수가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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