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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情談 > 시의 입술로 말하는 성서
성서情談 (2016년 4월호)

 

  꽃다발을 안고 내게로 왔네
  

본문

 

낮고 캄캄한 땅의
20살 청년




너무나 많은 해묵은 살인
너무나 많은 정신적 고문
너무나 많은 감옥들
너무나 많은 행복한 나치들

너무나 많은 정신 나간 학생들
너무나 부족한 농장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들
너무나 부족한 개암나무

(앨런 긴즈, <루트 게비트>)


열두 살 즈음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마친 소년 예수. 이후 성서 기사 속에서 잠시 사라지고 없으니 너도나도 궁금하다. 너무나 많은 십대 이십대들 속에서, 울긋불긋 도드라진 옷을 입고 활기와 재기를 뽐내는 젊은이들 속에 끼지 못하고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고민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변혁의 칼을 가는 젊은이였을까. 아니면 근근한 살림을 꾸리면서 일당벌이 시급에 허덕이는 고달픈 아르바이트 청춘이었을까. 사막바람이 부는 작은 평지와 산골짝, 캄캄한 식민지 갈릴래아(사 9:1)에서 예수는 과연 어떤 희망을 품고 청년기를 보냈을까.
로버트 냅에 의하면 고대 로마시대엔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쥔 상류층 부자들은 1%, 중산층과 그 목전에 비비적거리던 평민은 25%, 하루하루 살아가던 빈민은 65%, 종노릇으로 살아야했던 노예가 자그마치 10%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로마 식민지 전역에도 마찬가지 사정. 세금을 더 쥐어짜고 걷어 들여야만 이 상류층의 욕망은 충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조세에 대한 백성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반란군 대장이며 열심당 지도부 히스키야의 아들 유다. 갈릴래아 호수 동쪽 촌락 가말라 출신인 젊은이 유다는 치가 떨리는 민중의 설움과 고통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빚더미 세상. 아무리 일해도 빚을 지고 마는 구조악. 이스라엘 전역 백성들은 고리대금업자 자본가들이 포진된 크고 작은 사설 금융권과 세무공무원들에게 지독히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의 기도(주기도)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다’는 그 죄는 다름 아니라 ‘경제적 빚’을 가리킨다. 빚을 갚아준다는 것은 그래 얼마나 큰 복권이며 해방인지 예수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빚이 옥죄고 든 인생들은 숨도 편히 쉴 수 없을 만큼 곤란한 세월을 살아내야 했다. 미국 대선의 돌풍이 되고 있는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그 누구도 가난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다. 예수가 만나는 부자들마다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라고 하신 말씀은 경제 불균형이 심각한 사회였기 때문이지 무슨 자기 개인이나 공동체의 치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거액 기부에 주저하지 않는 선한 부자들이 없지 않아 있고, 이를 국가와 종교가 장려하는 박수도 적지 않으나 전체적인 불균형을 개선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례일 뿐.

“우리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 아버지는, 부자들이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급료를 주는 것은 결국 계속 사람들을 속이고 마음을 다른 데로 분산시킴으로써 들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어.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펠리페의 말이 그치자 윌리엄이 맞장구를 쳤다. 이른바 “발전을 위한 노사 협약’을 말이지?” 샤엘이 말을 이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결속을 느슨하게 만든다.” (에르네스토 카르디날, 『민중의 복음』 중)

한쪽으로 편중된 자본은 일부에겐 축복과 행복이겠으나 대부분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가족은 해체중이며 평준하고 화목해야 할 공동체가 조각조각 깨지고 붕괴되는 마당. 이에 분개한 ‘열심당, 젤롯당(Zealot), 시카리당, 혁명당’의 지도자 유다는 조세저항 투쟁, 정권반대투쟁을 이끌었다. 물론 로마총독부와 그 앞잡이들은 즉각적으로 진압작전을 명령하여 맞불을 놓았다. 저항의 불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유다 반란군은 로마병영 무기고를 털었고 산악지대에 매복하며 저항의 급을 한 단계 높여나갔다. 로마는 주둔군 가운데 공수부대 특전단을 급파하여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다. 주 이스라엘 로마군이 주둔해있던 세포리스와 지휘부 가운데 방위사령부가 있던 티베리아스 왕궁까지 반란군 자객이 나타나기에 이르자 ‘초토화’라는 곤봉을 휘두르며 저항세력 말살에 ‘초집중’하였다.
로마군은 장차 저항의 씨가 될 사내아이를 죽이는 유아학살과 요인납치, 반란군과 내통한다는 명목으로 갈릴래아 처녀들을 윤간하고 짓뭉갰다. 시리아에 있던 로마주둔군 2개 군단까지 끌어들여 안팎으로 유다 반란군을 조여가기 시작했는데, 의심 가는 거주지는 무조건 방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2천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또한 젊은이 6천명을 체포, 노예로 팔아버렸다는 요세푸스 전쟁사 기록도 남아있다.
너무나 많은 전쟁과 학살, 그러나 너무나 적은 평화와 어린 목숨. 이 와중에 열두 살 예수는 어디로 난 길을 따라 피해 있었을까. 일제시대 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래도 연희전문을 다니다, 경성유학을 와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난뱅이 예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유학이었으리라. 당시 막대한 돈이 드는 예루살렘 유학은 나자렛 청년에겐 그림의 떡. 예수의 언어 습관과 경전 이해로 보아 분명히 고급 토라를 공부했을 터인데, 에세네파 공동체나 여타 비슷한 수도 공동체에 들어가 공부했을까. 아니면 멀리 유대인들이 자리 잡고 정착한 디아스포라 공동체까지 여행을 떠나 머물면서 토라를 공부했을까.
이십 대 시절, 아주 먼 인도와 아라비아 반도를 여행했을 것이라는 설화들도 있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그는 이미 가난한 자매형제들의 근거리 친구, 순례자들의 동반자,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촌동네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으로 불린 우리들의 이웃인 청년이었다. 예수는 유별나게 도드라진 뚝별새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어깨를 건 친근한 형제였다.

예수는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 2: 23)

청년은 낮고 캄캄한 땅 갈릴래아 나자렛 동네를 근거지로 삼고 십 대에서 이십 대로 성장했다.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갔다.” (눅 2:52) 너무나 많은 불의와 비겁함과 부끄러움 속에서 너무나 적은 지혜와 연민, 용기와 분노, 사람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혼신을 다해 지켜간 청춘이었다. 구원나무, 해방나무 예수는 척박한 땅에서 한 모금의 물로도 포기하지 않고 단단히 커가는 중이었다. 동굴과 석회석으로 된 집이 고작이었던 척박한 나자렛. 이곳에서 예수는 히브리어 네세르(싹, 새싹, 어린 싹)마냥 푸른 희망의 싹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꽃다발을 안고
내게로 왔네




딸 일디타의 열한 번째 생일 날

아버지인 나는
수풀과 덤불 속을 헤치며
소도록한 길을 만든다
오전의 햇살 아래 그 길을 걷다가
잠시 앉아 이름 모를 꽃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일디타가 세상에 나온 날이었네
그녀는 꿈에서 꽃다발을 안고
내게로 왔었더랬다
꽃다발을 안고 내게로 왔네

(체 게바라 어록)


예수 시대는 수공업 시대였다. 바울을 보아도 천막 제조공이라 불리지 않았던가. 스케노포이오스, 곧 양탄자 직조공이나 천막천 직조공. 여자들과 사기꾼들이 부여잡은 수공업이라 별로 인기가 없었던 직업인데 아뿔싸, 사도 바울은 이쪽 종사자였다. 율법학자들은 대개가 직업 하나씩을 부여받아 대를 이었다. 대사제들이야 놀고먹기 위해 수탈을 자행했지만 회당장이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공동체의 후생비로는 가족부양이 어려워 직업에 충실하기도 했다. “우리는 유다에서는 모직물을, 갈릴래아에서는 아마제품을 여자들로부터 살 수 있었다.”는 당시 기사를 보면 갈릴래아에서 여자들은 직조 수공업에 많이들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2만 5천 명 가량이 거주했던 대도시 예루살렘엔 많은 수공업품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고급 메이커 의복(이름난 직조공의 옷감)과 사치품들도 거래되었다. 지중해와 인접한 곳도 아니면서 예루살렘은 무역의 중심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성전 순례객을 비롯하여 종교행사가 연일 진행되는데다 헤로데 왕가의 사치가 끝도 없는 것도 그렇고, 낙타꾼 대상인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도성이었다. 국고가 바닥을 보든말든 상관없이 건축하기를 즐기고 사치품 들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아그리파 2세는 자기 배만 불리는 흥청망청으로 일관한 통치연한이었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마 3:4) 세례자 요한은 예루살렘 도성을 향하여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분노했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말아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마 3:7-10)

저 흔한 직조된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세례자 요한은 야생 낙타 털옷을 걸쳐 입고서 들판에 우뚝 섰다. 귀족의 신분을 알 수 있었던 허리띠가 유행이었으나 그는 가죽을 찢어 만든 허리띠를 걸치고서 민중의 친구, 민중의 형제임을 명예로 삼았다.
돈도 제법 벌고 재미도 볼 수 있었던 의사로 출세하는 길을 포기하고 쿠바혁명군의 사령관으로 싸웠던 체 게바라. 그의 기쁨은 딸을 위해 꽃길을 내주는 것, 딸이 가져다준 한 다발 꽃이었다는 일기는 마치 세례 요한의 광야생활을 보는 것 같다. 요한은 예수에게 꽃길을 내준 셈이었고, 예수의 방문이 그에겐 하늘이 안겨주는 보상과 같은 꽃다발이었으리라.
빗물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로 우산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는 싸움판이 아닌 것이다. 우산은 비를 피하기 위한 방편일 뿐. 우산 하나면 세상의 모든 빗속에서 고요할 수 있음이다. 하늘이 세상을 심판할 때는 별이 파괴되고 태양이 그 불을 꺼트리는 종말론자들의 허풍스러운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바로 예수와 같은 참사람의 나타남이 심판이다. 멸망의 폭우 속에서는 참사람의 우산을 우리가 쓰고 그의 보호하심 아래 놓이는 일이 구원이다.
세례자 요한과 같은 예언자가 외치는 그 정의로운 목소리야 말로 바로 세상을 준열하게 꾸짖는 신의 심판이다.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 예수의 출현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며 이 세계가 새로운 시대로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광경이었으리라. 더 이상 불의와 죄악은, 탐욕스러운 자본과 제국은 그 민낯을 숨길 수 없었다. 만천하에 그들의 죄, 불의가 드러났으니, 이제 나눔의 공동체와 해방의 행진만이 해결책이 아니겠는가. 예수는 갈릴래아를 돌며 하나님 나라가 먼 훗날이 아니라, 사후의 어떤 세계가 아니라, 바로 당장 이곳 바닥공동체, 밥상공동체 안에 임재하였음을 보여주었다.
하늘 아버지는 수풀과 덤불 속을 헤치며 광야에 길을 내었고, 그 길을 따라 젊은 예언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 머물던 광야로 나아와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 그 가운데 예수와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까지 이 행렬은 꽃을 들고 내게로 오고 또 당신에게 찾아가고 우리의 후세들에게도 영영히 반갑게 찾아갈 것이다. 사귐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독사의 족속들 욕심꾸러기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대면이 될 것이리라.


구름의 백성과
소년 예수




그 산속에서는 금을 캐내고 있네
황량한 바이칼의 초원을
한 나그네가 운명을 저주하며
자루를 어깨에 메고 도착했네

어두운 밤중에 탈옥해 나왔다네
정의를 위해 고통받던 감옥을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구나
눈앞엔 바이칼 호수가 펼쳐져 있으니

나그네는 바이칼에 다가서서
어부의 배를 타고
슬픈 노래
고향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네

나그네는 바이칼을 건넜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리운 어머니
아아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와 형님은 평안하신가요?

너의 아버지는 벌써 무덤에서
차디찬 흙속에 잠들어 있고
너의 형은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발에 찬 족쇄 소리를 울리고 있단다
너의 형은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에서
족쇄 소리를 울리고 있단다

(막심 고리키, <바이칼 호 너머 황량한 광야에서>)


시베리아는 차가운 머리칼이 날리는 광야다. 얼음만이 살 수 있는 추운 땅. 그곳에 끌려간 자들이 부른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러시아 제정 말기, 많은 지식인들과 특히 청년장교들 사이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기운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적발된 자들은 시베리아 유형을 당해야 했다. 데카브리스트란 12월의 사람들을 뜻하는데,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청년 장교 백여 명이 시베리아 유배를 떠나기도 했다. 어쩌면 모른다. 청년기 예수도 노예로 끌려가 어디선가 데카브리스트들처럼 시대를 한탄했을지도. 정치범 양심수 일가족에 얽힌 이 노래는 모정이 물씬 느껴진다. 광야에서 어머니를 생각할 때 어찌 변절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서 한없이 죄송스럽더라도 심장에 댄 결심으로는 어떤 후회나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얼음 땅 시베리아는 러시아혁명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트로츠키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를 낳은 곳이었다. 시인은 말한다.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청정한 정신을 무장하는 땅이라고. 바이칼 호수 물은 러시아의 뜨겁고도 맑은 핏톨이라고.
그곳뿐이런가. 우리에게는 정의와 투혼의 땅 남녘이 있다. 이쯤에서 시인 김남주의 ‘어머니’를 찾아 읽어보기로 하자. 남녘이라는 광야에서 길어 올린 그의 시는 유들유들 연생이들하고는 다른 강직하고 땀직한 광야인, 야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
가다 먼 길 구풋하면 먹어 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사형 구형 놓기를 남의 집 개 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김남주, <어머니>)


예수 또한 광야에서 수많은 변절의 유혹들과 협박 앞에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앙다물었을 것이다. 그를 키워준 산하와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주먹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요세푸스(Vita 53)에 의하면 갈릴래아에서 수도 예루살렘까지는 걸어서 3일 정도 걸리는 거리. 하루에 30Km를 걷는다고 볼 때 가능한 날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눅 7:34)로 알려진 예수가 도심지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왜 쓸쓸한 광야로 걸어갔을까. 남으로는 사마리아, 북으로는 나르 엘 카지미에,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으로는 요르단 평원이 있던 곳 갈릴래아 나자렛. 사막 바람과 아네모네 들꽃 냄새가 섞여 날아오던 투란 평원의 남쪽이요 이즈라엘 평원의 북쪽에 위치한 나자렛은 산악지대다. 그런데 더 어디로 깊이 외따로 걸어가 광야를 만난다는 말인가. 루돌프 오토의 말대로 신비가 지닌 두려움과 매력에 빠지기 좋은 곳, 두말할 것 없이 광야만이 사막의 신 그리스도에게 적합한 왕좌의 땅이다. 하나님의 통치(Reign of God)는 예수의 일생일대 화두였다. 황제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 이는 곧 로마에 대한 반역이고 반란으로 읽힐 수 밖에. 하지만 여타 다른 정치 혁명가들과는 매우 결이 다른 시대 인식과 역사접근이었다.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이런 입장은 그토록 열망해오던 메시아 사상과 동일한 구체성이다. 하나님의 통치란 인간 근원적 혁명이요 죽음의 날까지 ‘지속적인 투쟁’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영구혁명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내어맡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곧 광야살이, 야인 생활, 자기를 낮추고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는 밑거름의 삶을 각오하고 작정할 때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마침내 십자가 죽음까지 연결되는 ‘일관된 삶의 지향’을 예수는 제 생을 다해 몸소 보여주었다.

임의진 | 목사는 시인이며 수필가이다. 현재 <경향신문> 칼럼니스트로 ‘시골편지’를 장기 연재중이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5·18기념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성서연구를 인도하고 있다. 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 『앵두 익는 마을』, 시집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동화책 세계위인전 『예수』, 『예수 동화 1, 2』 등을 펴냈으며 월드뮤직전문가로 <여행자의 노래>, <가스펠 여행>, <노르웨이의 길> 등 많은 선곡음반을 발매했다. 세계의 숨은 노래와 시를 찾아나서는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2023년 8월호(통권 7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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