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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을 일과 누군가의 열정
가상의 이야기이다. 미국에 어느 상원의원이 있었다. 그가 비행기로 워싱턴을 오가다가 한 가지 위험한 일을 보았다. 항공기를 조종하는 기장이 있는 조종실을 스튜어디스가 너무 쉽게 드나드는 거였다. 그래서 상원의원인 그가 법안을 제출했다. 조종실 안쪽에서 기장이 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설비를 장착하라는 내용이었다. 취지는 좋지만 이 법안이 워싱턴 정가에 문제를 일으켰다.
당장 항공업체들부터 난색을 표명했다. 모든 비행기에 이런 장치를 만들어 설치하는 비용도 상당한 데다, 그렇게 무게가 늘어난 만큼 비행기를 운항하는 데 연료가 더 든다는 거였다. 게다가 비행기 동체의 개조와 무게 변경으로 인해 이착륙 때 작용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고, 또 거꾸로 조종석 안에서 기장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복잡한 일이 이어진다는 거였다.
기자들은 법안을 제출한 상원의원의 뒷조사를 하고 다녔다. 비행기 제조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추측 기사가 나왔고, 연이어 상원의원이 속한 지역구 출신의 아무개가 운영하는 잠금장치(도어록) 업체와의 관련설까지 쏟아졌다.
온갖 혼잡한 논란과 추문 속에서 상원의원은 고전했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해당 법안을 표결에까지 이르게 했고 결국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법안에 따라 미국 내 모든 항공기는 물론이고, 미국 영토에 도착하는 외국 항공기까지 다 보안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비난은 끊이지 않았고 추문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젠 다른 나라에서까지 험담이 쇄도했다.
결국 이 상원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조용히 자신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다 쓸쓸히 죽었다. 비문에는 그저 상원의원이었다는 사실만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상원의원의 노력 때문에 9・11테러를 일으키려던 테러범들은 테러에 실패했다. 바로 그 보안장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9・11의 영웅으로 이 상원의원을 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 당연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칭찬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단 사건이 터지고 난리가 나야만 비로소 입에 거품을 물고 정부를 비난하는 의원들과 기자들이 쏟아지고, 그들이 영웅으로 부각된다. 9・11도 그렇다. 일이 벌어진 후에는 보안문을 만드는 법보다 더 심한 법안이 제출되어도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탄식과 한숨 속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내면서,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강력한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침없는 열변을 토해내는 어떤 정치인이 영웅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 이야기는 나심 탈레브가 『블랙 스완』에서 상상해낸 이야기이다. 저자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비난을 온몸으로 감수해야 하고, 그렇게 노력해도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
사실, 기업마다 조직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란 것이 있다. 종종 기업의 총수나 친인척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것을 보고, 그 기업인들보다 그들 주변의 보좌진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저런 식으로 하면 기업 이미지가 망가질지 몰랐던 거야?
아니 그걸 대응팀에서 막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던 거야?
월급 받으면서 저런 일도 하나 미리 못 막아?
이런 비판은 옳다. 하지만 위기관리 대응팀은 속이 탄다. 그들이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재벌가 총수에게 문제점을 말하며 조언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문제의 소지에 대해 충실한 조언을 했다. 하지만 총수 일가가 듣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은 이유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그것이 문제라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소신을 굽히지 않고 줄기차게 극한 간언을 하는 경우, 그 간언은 옳지만 그 사람은 죽고 만다. 퇴직을 당하든지 좌천을 당할 각오가 아니면 그런 옳은 말을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선배들의 피와 시체를 밟고 이룩해낸 겁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옳은 것이 옳게 된다는 거였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기업과 그 기업의 이익을 위해 말하는 것인데도 그 기업의 총수는 그것을 고깝게 생각하고 그를 내친다는 거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랬다. 임진왜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뜻있는 대신들의 우려에 따라 선조 임금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돌아온 사신은 당파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전략을 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숭이 같은 자이옵니다. 감히 우리나라를 침범할 재략(才略)이 없사옵니다.
- 아닙니다. 군비(軍備)를 확장하고 군사들을 조련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침범할 것이 분명합니다.
당장 듣기에는 먼저 말이 당연히 좋다. 그냥 잘 즐기며 이대로 지내자는 말이다. 지금까지 해온 준비와 태평성대가 임금의 은혜라는 말로 들린다. “당신은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라는 말이 누구에게든 더 그럴듯한 것이다. 한주먹거리도 안 될 섬나라 오랑캐들 때문에 호들갑스럽게 군사를 준비하고 성을 수리한다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공연히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면 더 그렇다.
선조의 결정은 우리가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겪은 참혹한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이(李珥)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는 것에 대해 지금 역사학자들이 이런저런 이견을 내놓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당시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은 귀족 출신들이 독점하고 그들만의 정치를 펴는 곳이었다. 로마가 확장하여 넓어지면서 평민들의 의견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그전처럼 작은 도시국가였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테지만 세계적인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이것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로마 원로원에 평민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귀족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설치는 것을 도저히 눈꼴시어서 봐줄 수 없는’ 감정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말 제대로 옳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현실적 문제이기도 했다.
로마의 역사를 아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때 로마가 호민관(護民官)이라는 평민들의 대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로마는 세계국가의 문턱에서 좌절했을 것이고 우리가 아는 그 로마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작은 도시국가에서 조금 세력을 확장하려다가 좌절한 그렇고 그런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평민 출신 호민관을 두어 정무관의 집무 및 원로원의 결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호민관 제도는 거저 생긴 것이 아니다. 쟁쟁한 귀족이자 명문가의 자제인 크락쿠스 형제의 개혁과 그들의 피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와 소신, 줄기찬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위기로 생각하고 매사에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위기담론을 유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무사안일로 현재의 보신만을 휘황찬란한 언변으로 정당화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와 내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자의 어떤 말을 들어야 할까? ‘일어나지 않을 일’인지 ‘일어날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냔 말이다.
그 지긋지긋한 산당
솔로몬의 용렬한 아들 르호보암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스라엘의 왕조는 둘로 나뉜다. 다윗 자손들이 통치하는 남쪽 유다와 르호보암 때에 갈라져 독립한 북쪽 이스라엘로 나뉜 두 왕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성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위가 각각 계승되는 것을 연대순으로 나란히 기록하는데, 주로 남쪽 유다에는 우호적인 시선이고 북쪽 이스라엘에는 비판적 시선을 취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헤매며 강한 민족의식을 지니게 된 이스라엘 은 자신들의 신을 야웨 하나님이라 믿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장소로 예루살렘에 그 유명한 성전을 건축했다. 이후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야웨신앙이 있다면 말이다. 즉 야웨 신앙을 지닌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고, 그것이 곧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정체성과 정통성의 근거가 되었다.
문제는 나라가 분리되면서부터였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나라가 나뉘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을 향해야 했다. 그건 북왕국의 존재 가치를 흔드는 일이었다.(왕상 12:26-27)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린다는 것은 곧 북왕국이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와 쉽게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북왕국에서 대안을 냈다.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라고 우기면서,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다.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 사설(?) 신전인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 북왕국의 정통성을 흔드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후 많은 선지자가 나서서 이를 비판했지만 꿈쩍도 안 했다. 본질적으로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왕기 기자를 비롯한 성서의 저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북왕국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남왕국 유다가 생각지 못한 해괴한 짓을 벌인 것이다. 여기에 다시 르호보암이 등장한다. 분단의 책임자인 르호보암 말이다. 그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상 14:22-24)
굳이 변호하자면, 예루살렘 성전이 없는 북왕국의 산당 건립은 정치적 행동으로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남유다의 행동은 그야말로 패륜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데 굳이 산당을 만든 것이다. 물론 남유다의 행동도 정치적 이유에서 출발한 것은 맞다.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려 한 것이니 말이다. 산당과 우상을 세우고 아세라를 세운 것은 토착 신앙에 대한 인정과 함께 남색을 비롯한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하나의 정치술이었다. 하지만 이 일이 끼친 해악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두고두고 이어졌다. 무도한 왕이 아니라 유능하고 현명한 왕,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들조차도 그 산당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왕상 15:11-14)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상 22:43)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2:2-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4:3-4)
돼먹지 못한 왕들 말고 성군(聖君)이라 일컬을 만한 왕들도 산당을 혁파하지는 못했다. 산당은 그야말로 이방신을 섬기는 곳으로 야웨 신앙의 정통성을 흔드는 적대적 요소였다. 하지만 왕들도 그것은 어쩌지 못했다. 수많은 개혁을 하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것만은 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머니인 태후를 폐위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고도 산당은 없애지 못했다. 정말 성서에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것이 산당이다.
이기적인 하나님의 한숨과 탄식
“왜 산당을 없애지 못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북왕국의 경우를 보면 된다. 백성들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남유다도 마찬가지다.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르호보암이 만든 이 괴상망측한 산당이 일단 한번 자리를 잡자 도저히 왕도 뽑아낼 수 없는 뿌리를 뻗치고 만 것이다.
그럼 “이토록 백성들이 좋아하는 산당을 왜 굳이 없애야 할까?” 여기에 대한 답도 간단하고 분명하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산당을 없애야 했다.
교회를 조금 오래 다닌 분들이라면 이쯤에서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 이기적인 양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굳이 하나님을 변호할 필요는 없지만, 일단 하나님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이렇다.
산당을 없애는 것이 백성들에게 이롭다.
예루살렘 성전과 달리 산당은 ‘사설 신전’이기에 아무 곳에나 의미를 두고 세우면 그만이었다. 즉 맘만 먹으면 특정 지역에 신성을 부여해서 멋대로 산당을 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산당의 난립은 자연스레 그 지방 토착세력의 강화를 수반하고, 당연히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결국 산당의 건립과 확장은 중앙집권적 형태의 국가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산당의 확대는 강력한 주변 나라의 좋은 먹잇감으로 나라를 분열시키는 기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당을 건립하려는 지방 토착세력들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 수밖에 없고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와 확장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라의 힘은 점점 빠져나갔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차례로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강력한 국가공동체 건설에 실패했으니 말이다. 그 중심에는 산당이 있었다. 산당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지방 기득권 세력이 민중을 우매하게 만들고 이런저런 꼬드김과 부추김을 통해, 성적 쾌락과 방종은 물론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달콤하고 현실적인 이유까지 제시하며, 그들을 민족 공동체의 정신에서 분리시켰다. 야웨 신앙으로 하나였던 민족이 사분오열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만 나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갈가리 찢겨진 것이다. 결국 산당의 폐해는 백성들의 끔찍한 고통으로 귀결되었다. 나라의 멸망과 포로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포로생활 내내 파괴된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돌아와 제일 먼저 성전을 건설한 이유를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보아야 한다. 자신들이 그토록 우기던 산당 제사가 어떤 가공할 문제를 초래할지 미욱한 그들은 당시는 몰랐던 거다. 바벨론 강가에 앉아 눈물로 노래를 부를 때에야(시 137:1)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9・11이 발생한 후 아무리 테러방지법을 발효시켜도 죽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산당을 혁파하고 야웨 신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부르짖은 것은, 하나님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나라의 힘이 빠져나가는지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의 울부짖음이었다. 북왕국과 남왕국의 수많은 예언자의 피를 토하는 음성이 그러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당장의 쾌락과 당장의 행복이 더 달콤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경고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민중은 몰라도 지도자는 안다. 백성들은 몰라도 위에 있는 권력자들은 잘 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까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때론 자신들의 진심과 본의에 침 뱉는 민중의 아우성에 낙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든 낙심한다. 그러니 인간이다. 지도자도 인간이고 장관도 인간이며 목사도 인간이다. 하지만 낙심한다면, 자신의 소신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멈춰 선다면, 그대로 포기한다면, 그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옳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자신보다 더 훌륭한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비켜주는 것이 옳다.
예수도 욕을 받았고, 모세도 평생을 주름살 속에서 살았다. 산당을 없애는 것이 옳다면 없애야 한다. 방법의 과격함이냐 온건함이냐는 선택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당을 혁파해야 한다는 원칙은 단호해야 하고 흔들려서도 안 된다. 그것이 백성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약해서 자신의 판단에 흔들리고 후회하고 번민하는 인간들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방향을 제시하셨다. 그건 하나님의 이기심도, 아집도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방향이었다. 그것을 백성들은 몰랐어도 지도자는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도자로 높여 삼으신 거니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 길로 가지 않은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산당은 왕이 없애야 했다. 백성들은 할 수 없다. 백성들의 일은 백성들이 하지만, 왕이 할 일은 왕이 해야 한다.
성군 요시야가 그런 일을 하기는 했다.(왕하 22-23장) 그래서 성군(聖君)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늦었다. 대세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늦었다. 요시야가 조금만 일찍 태어났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만 일찍 각성했다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든다. 하지만 소용없다. 지난 일을 땅을 치고 후회한들 콩알만큼도 바뀌는 것은 없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성서에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의도가 아닐까?
“당신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면 용기를 내라. 시간이 무한정 당신을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유광수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으며 현재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이다.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제1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왕의 군대』, 『윤동주 프로젝트 1, 2』, 『가족기담』, 『고전, 사랑을 그리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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