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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한 공연한 핑계
솔직히 말하면 난 세미나나 포럼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신선한 내용이 머리를 상쾌하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런 특별한 은총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대부분 지루하고 따분하다. 재미없으면 빨리 끝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기본을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아서 그야말로 고역이 따로 없다.
뭔가 다른 내용을 듣고 배우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데, 이토록 내가 싫어하게 된 이유는 강연자들이 내가 알고 싶은 것만 빼놓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들은 ‘자신도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건지, 아니면 강연자로 초청받았는데 모른다고 하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대부분의 강연은 무척 권위적이다. 다른 의견은 끼어들 틈이 없다. 글쎄 교회로 치면, 성경구절을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설교 대신 그냥 무조건 믿으라고 외치는 설교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런 내가 몇 주 전에 여러 이유로 꼭 참석해야 하는 포럼에 갔다. 발표자는 과학자인 교수였다. 이 둘은 내가 극도로 꺼리는 조합인데, 더군다나 지루한 교수의 말투에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식으로 난도질해대는 이상한 과학자 마인드라면, 정말 견디기 힘들다.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만능주의, 과학결정주의를 아직도 신처럼 떠받드는 분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은데, 이런 분들 입에선 절대로 “모른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이성과 과학이 결국 밝혀낼 것이다. 신비란 없다.
신비가 없다는 말엔 대강 동의하지만 앞의 말은 그야말로 광신(狂信)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다. 아무튼 이런 과학자가 교수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교수들이 본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들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섬기며 ‘아는 척’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사와요~!’ 하는 결의를 다지는 학생들 앞에서 힘주어 아는 척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교수들 중에 이상한 짓(?)을 해서 물의를 빚는 경우가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데, 일반인이 보면 ‘정말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건 잘 몰라서 드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너무 당연하게 학생들 앞에 광휘(光輝)의 아이콘처럼 나서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신이 슈퍼맨 아니면 신과 동기동창이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게 된 거다. 명민한 학생들이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그대로 반응해주니 그런 착각은 점점 망상으로 치닫게 되고, 마침내 일반인이 보기에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황당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과학자와 교수의 나쁜 경우가 공통으로 조합될 때는 정말이지 답이 없다.
그런데 이번 포럼은 완전히 달랐다. 눈이 확 뜨였다.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배워온 과학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그 두 시간 동안 배우고 깨달았다. 과학이 그렇게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또 신나는 것인지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 강연자를 돋보이게 한 것은 깊은 학문적 통찰과 탁월한 전달력뿐만 아니라 진실에 대한 분명한 입장 때문이었다. “그건 아직 모릅니다.”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겁니다.”와 같이 명쾌하고 분명한 대답을 거침없이 해댔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진정한 권위가 그에게 있었다. 공자가 말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란 사실을 아는 현명한 분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 이런 분을 선생으로 모시고 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에너지는 보존된다. 전기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전환되어도 에너지는 동일하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럼 전등을 계속 켜놔도 낭비가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가 거의 죽도록 맞은 후, 과학과 담을 쌓고 산 기억이 떠올랐다.
딱히 그 과학 선생님이 폭력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랬지만, 그 시간은 과학시간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질문은 적절한 거였다. 대학에 들어와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에너지가 무질서해지는 쪽으로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그 선생님이 원망스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설명은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었다. 에너지가 보존되니 전등을 계속 켜놔도 되는 것 아니냐는 내 한심한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됐다.
전등을 계속 켜놓으면 전기 에너지가 공기 중에 빛 에너지로 분산된다. 흩어지긴 했지만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에너지의 총량은 같다.(제1법칙, 에너지 보전의 법칙) 하지만 그렇게 흩어진 에너지를 다시 모으는데 또 다른 에너지가 들므로(제2법칙, 엔트로피 법칙) 네 말처럼 함부로 전기를 켜면 안 된다.
말은 복잡하지만, 에너지라는 것이 보존은 되지만 모인 것이 자꾸 흩어지는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전등을 함부로 켜면 안 된다는 거고, 그래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과학적 사실이고, 이런 식의 설명은 과학 선생님에게 그리 어려운 것도, 낯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분명한 것은 선생님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내용을 몰라서는 아니란 점이다. 나를 평소에 싫어해서 그러셨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그날 과학 선생님이 설명보다는 폭력으로 대응하신 이유는 내가 당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보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보다 그때 선생님께 더 중요했던 것은 권위였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 악명의 원인
권위적이고 갑갑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다. 학교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고, 심지어 가정에도 있다. 예수 시대에도 이런 권위적인 자들이 있었다. 예수가 그토록 성토하고 비판했던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예수가 바리새인을 비판한 것을 두고, 예수가 민중 편에서 기득권과 권력을 성토했다고 본다면 그건 예수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물론 예수는 민중의 편에 섰다. 하지만 ‘민중’이라는 편 가르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부자들은 돈이 많으니 민중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은 권력자들이니 민중이란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단 말인가? 예수는 그런 편협한 시각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가끔 예수를 무슨 혁명의 투사인 것마냥 마구 끌어다 붙이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에게 그런 혁신적인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견강부회(牽强附會)하면 곤란하다. 예수는 세리와 창녀의 친구이기는 했지만 부자들과도 소통했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욕을 했지만 바리새인들과도 교유했다. 한밤중에 그를 찾아와 거듭남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이었다.(요 3:1) 또 예수는 율법적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판했지만 그 율법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율법에 대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외칠 정도였다.
예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판한 것은 그들이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민중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에 그들을 전복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바리새인답지 않고’, ‘서기관답지 않았기’에 비판한 것이다. 본래 바리새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겠다는 의도에서 생긴 자들이고, 그래서 당대 민중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서기관들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준수하게 하기 위해 율법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 정당한 평가이다. 이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따르고 지키려는 노력을 가장 앞서서 하는 자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교회의 목사나 장로들이라고 할 것이다.
예수는 권위적이고 교조적인 작자들,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정작 그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우겨대기만 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비판한 것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 7:19)라고 한 예수의 탄식은 진정이었다. 본질을 벗어나 권위적 형식으로만 남은 껍데기 신앙을 준열하게 꾸짖으며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다.
당나귀만도 못한 선지자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무찌르고는 모압 땅으로 들어섰다. 모압 왕 발락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 무시무시한 떨거지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닌 데다가 그들의 신이 너무 막강해서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다 못한 발락 왕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민 22:5-6) 그런데 어렵사리 청빙한 발람은 정작 하라는 저주는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복을 빌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모압 왕 발락의 계략은 실패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망하고 만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한 것이 있다. 모압 왕의 뜻과 달리 이스라엘을 축복한 선지자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점이다.(민 31:8, 수 13:22) 더욱이 바른 길을 벗어나 미혹되어 악한 꾀를 추구하는 불의한 자(벧후 2:15), 어그러진 길로 이끄는 자(유 1:11), 책망 받아 마땅한 자(계 2:14) 등과 같이 부정적인 언급을 할 때마다 ‘발람의 길’, ‘발람의 교훈’ 등과 같이 발람은 파렴치한 악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다.
물론 발람은 청빙되어 갔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허락하셨고(민 22:20), 거듭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저주할 수 없다.’고 발락 왕에게 말했고(민 22:38, 23:8, 12, 26), 실제로 저주를 한 것이 아니라 축복을 했다. 그런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임을 당하고 또 불의한 선지자의 대명사가 된 것은 아무래도 억울해 보인다.
하지만 발람은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정말 불의한 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것은 맞다. 하지만 발람은 왕이 보낸 복채와 재물에 눈이 멀어(신 23:4, 느 13:2)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사신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을 제 집에 머물게 하며 밤에 하나님께 여쭤보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이미 그는 재물에 현혹되어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날 밤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 22:12)
어쩔 수 없이 발람은 모압 왕의 사신들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다음에 더 높은 고관들이 더 융숭하게 재물을 들고 오자 다시 그들을 유숙시킨다. 또 하나님의 뜻을 들어보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확인했다. 분명히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의미를 그는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발람은 다시 또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자 가라고 하신다. 그건 정말 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미혹된 그가 우겨대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는 그가 다음 날 모압 왕의 대신들을 따라 나귀를 타고 떠나려고 할 때 벌어진 그 유명한 나귀 사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민 22:22)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길에서 그를 치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얼간이 선지자 발람에게 그것이 보일 리 없었다. 오히려 여호와의 사자를 본 당나귀가 도망치려고 좁은 길 담 쪽으로 몸을 비틀자 나귀를 타고 있던 발람의 다리가 담에 끼이듯 비벼졌다. 화가 난 발람이 당나귀를 채찍질하고 지팡이로 마구 때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때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열자, 나귀가 발람에게 ‘왜 때리느냐?’고 대들었다. 그러나 아둑시니처럼 눈이 먼 발람이 바로 눈앞의 상황을 알 리 없다. 결국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밝게 하자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선 것을 보게 된다.(민 22:23-31)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준엄히 책망한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민 22:32-33)
이런 책망에도 발람은 또 허세를 늘어놓는다.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상투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민 22:34)라는 번지르르한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이미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다. 또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가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왔다고까지 했으나 그는 능글맞을 정도로 닳고 닳은 말로 요리조리 뺀질거린다.
결국 발람은 대신들을 따라간다. 하나님이 반대하시고, 나귀가 계시를 주고,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말을 하는 등 세 번에 걸친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으나, 그는 제 욕심을 따라가 버린다. 정작 가서 그가 저주 대신 축복을 한 것은 엄밀히 말해 계약위반이고 사기이다. 복채를 받았으면 제대로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받을 것은 다 받고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파렴치한이었다.
이런 작자이니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 그의 축복은 그의 진심도 그의 본래 목적도 아니었다. 그가 미사여구로 축복의 말을 주구장창 늘어놓든, 악독한 저주의 말을 퍼붓든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그는 오직 돈에 눈이 먼 놈팡이였으니 말이다. 그런 작자의 말은 하등의 가치가 없다. 선지자라니…. 정말 지나가던 당나귀가 다 웃을 노릇이다.
딸을 향한 사랑의 방법
지금도 여성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조선시대에는 더 그랬다. 권위적이고 갑갑한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고 또 그들만의 카르텔 속에서 꼼짝도 못할 일이 부지기수였다. 인간 본연의 기본 감정에도 충실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 양반 여자들은 개가(改嫁)가 힘들었다. 조선 초에는 그래도 이런저런 틈이 있었지만 후기에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결혼해서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열녀(烈女)라며 장려하는 사회이다 보니 다시 결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색욕에 미친 년’ 아니면 ‘몸이 헤픈 천박한 년’이 되는 거였다. 평민이나 천민은 상관없었지만 양반 여성에게 개가는 절대 있을 수 없었다. 혹시 집에 화냥년 같은 딸이 있다는 말이 돈다면, 그 아비의 관직은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거였다. 이러니 아버지들이 딸들을 엄하게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행복이나 인간다움 같은 것보다 자신의 지위가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권위적인 양반들이 차고 넘친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청구야담(靑邱野談)』이란 야담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정승이 있었는데 그의 딸이 출가(出嫁)했다가 한 달도 안 되어 남편이 죽자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살았다. 어느 날 정승은 딸이 곱게 몸단장을 하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거울을 던져버리고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는 것을 본다. 측은한 마음에 괴로워진 정승은 자기 문하에 드나드는 젊은 무인(武人) 하나를 불러 은 한 덩이를 주며 말했다. “오늘 밤 튼튼한 말 한 필과 가마를 세내어 우리 집 후원 뒷문으로 오너라.” 정승의 말대로 한밤중에 뒷문으로 가서 기다리니 정승이 한 여자를 데리고 나와 가마에 태우고는 멀리 북쪽 함경도 북관에 가서 살라며 떠나보냈다.
다음 날 정승은 딸이 밤사이에 자결했다고 통곡을 하며, “평소 이 아이가 남에게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았으니 내가 손수 염습(殮襲)을 하겠다.”라고 하고는 이불을 시체 모양으로 싸서 입관(入棺)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수년이 흘렀다. 정승의 아들이 암행어사가 되어 함경도 지역을 탐방하고 다니다가, 어느 마을에서 얼굴이 맑고 또렷한 두 아이를 보게 되었다. 꼭 자신의 핏줄로 보이는 그 아이들을 따라 그 집을 찾아가서는, 죽었다고 생각한 누이를 만나게 된다. 누이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 조용한 틈을 타서 소리를 낮춰 괴이한 일이 있었다고 말을 꺼낸다. 그때 아버지 정승은 말없이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 시퍼런 서슬에 아들은 감히 말도 못하고 물러나서는 다시는 내색도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 정승이 아들을 노려본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조선시대 양반의 권위적이고 갑갑하게 불통하는 모습인가? “내가 한 일에 네가 뭔데 간섭이냐?”라는 권위적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 아버지 정승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정승은 아들을 노려봄으로써 아들의 입을 막았다. 그건 애초에 그런 일은 있지도 않다는 단단한 다짐이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마음이 찢어졌을 것이다. 딸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적어도 아들의 입을 통해 딸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문은 나게 마련이고, 입에서 나온 말은 돌고 돌게 마련이다. 가까운 자식부터 단속하지 않으면 결국은 벽에 있는 귀가 다 들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만 알자.’와 같은 말로 아들을 다독이며, 그토록 보고 싶은 딸의 안부와 사는 정황을 묻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찼을 테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다. 그건 늙은 정승이 제 벼슬에 연연해서가 아니었다. 만약 소문이 나면 사랑하는 딸의 삶이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딸을 멀리 보낸 것도, 잘 사는지 안부를 끝끝내 묻지 못한 것도 모두 다 딸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딸을 위하는 마음이 자기의 지위도, 신분도, 명예도 모두 다 뒤로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원초적 욕망까지도 억눌렀던 것이다. 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단순한 사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자는 고매한 생각에서 비롯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그 본질을 잊고 차츰 교조적인 자들이 되어버렸다. 본질을 잃고 형식에 집착하고 외형만 꾸미느라 속은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질을 잃고 부분에만 집착하면서 그 허황된 도식을 백성에게 강요했다. 회당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십일조를 낸다고 자랑하며, 금식을 한다며 광고를 해댔다. 까칠한 몰골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금식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그래서 예수가 그들을 향해 준엄하게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 11:46)라고 책망한 것이다.
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키는 본질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너무나 단순하고 중요한 진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의 본질보다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하고 지켜야 할 율법의 규칙이 더 우선이었기에, 조선시대 정승이 과부 딸을 멀리 떠나보내고 평생을 애끓는 마음으로 살았던 그 진정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거다.
“꼭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시면 안 되죠.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지금도 이런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옳다고, 분명하다고, 틀림없다고 확신을 가진 언설이 횡행한다. 과학만능주의자 교수의 갑갑함보다 더 괴로운 것은 과학은 그냥 모르면 그만이고 성적이 나쁜 것이 전부이지만, 우리 삶에 우리 신앙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 그렇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이다.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거창한 축복을 늘어놨지만 그건 진정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발람은 축복하려고 청빙에 응한 것도 아니고 저주하려고 청빙에 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욕심을 채울 생각으로 청빙에 응했을 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번지르르한 축복은 그저 탐욕과 욕망의 속내를 숨긴 미사여구였을 뿐이다. 바리새인의 회칠한 무덤 같은 말과 행동(마 23:27)의 원조인 것이다.
내가 지난번에 참석한 그 포럼에서 과학자인 교수는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많은 학생들, 머리를 싸매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던 것 같다. “전 아이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으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에 그들이 바보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란 본질 없이 그 어떤 형식도 위대할 수 없다. 그 어떤 담론도 따뜻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떤 가르침도 위안이 될 수 없다.
유광수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으며 현재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이다.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제1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왕의 군대』, 『윤동주 프로젝트 1, 2』, 『가족기담』, 『고전, 사랑을 그리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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