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한국보다 길다.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 Javier)에 의해 시작된 가톨릭 선교는 1784년에 신앙공동체를 처음 형성한 한국 가톨릭에 비해 230여 년 앞선다. 개신교의 경우도 1846년 오키나와 선교를 시작한 영국 해군의 류큐전도단 소속 베틀하임(Bernard J. Bettelheim), 1859년 규슈와 혼슈 본도의 선교를 착수한 윌리엄즈(미국 성공회), 햅번(미 장로회) 등의 선교 역사는 한국보다 30-40여 년 앞선다. 이후 일본에는 한국에는 초기에 들어오지 않았던 개혁교회, 회중교회, 캐나다감리회, 루터교회 등 다양한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교파의 선교 활동이 이루어져 일본의 근대화 및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지원 속에서 수많은 교회와 미션스쿨, 의료복지 단체 등이 설립되었고 각 지역에서 신뢰받는 단체 및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 과정에서 개신교회에 속한 신앙인들은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관련 사료를 무엇보다 소중히 보존하고 관리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1% 미만의 소수(minority) 종교로서 분투 중인 일본의 기독교가 작지만 강한 영향력과 존재감을 유지하는 데는 그처럼 자신의 역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간직하고 배우는 일이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일본 기독교계의 각종 자료 및 사료 관리 현황을 소개함으로써, 이제 선교 140년을 맞이해 가는 한국 기독교계가 참고하고 배울 점, 협력할 점 등을 공유해보려 한다.
일본 가톨릭 역사가 연출한 독특한 풍경
일본의 가톨릭 성지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중요하게 관리되어 왔으며, 일본 각지에는 순교 기념 박물관이나 가쿠레 기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으로, 에도 시대 무렵 극도의 종교 탄압에 음지로 숨어들어 종교생활을 지속한 가톨릭 신자를 말한다.) 사료관 등이 산재해 있다. 우선 일본 기독교 박해의 시작점인 나가사키의 ‘니시자카(西坂) 26 성인 기념관’을 시작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나가사키 오우라 천주당 바로 옆의 ‘기리시탄 박물관’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히라도시 기리시탄 자료관(平戸市切支丹資料館), 미나미 시마바라시(南島原市)의 아리마 기리시탄 유산 기념관(有馬キリシタン遺産記念館), 구마모토 아마쿠사 기리시탄관(天草キリシタン館), 간사이 지역의 교우촌인 이바라키시에 세워진 기리시탄 유물 사료관(キリシタン遺物史料館) 등은 모두 교계가 아닌 해당 지역의 관청과 지역민이 힘을 모아 시립(市立) 형태로 세운 관립 자료관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의 역사와 흔적을 사회 전체가 소중히 여기며 함께 보존해가려 애쓰는 풍토이다.
그 밖에도 교토의 스기노 사카에(杉野榮) 목사는 자신이 평생 수집하고 연구한 기리시탄 자료를 라쿠사이침례교회(洛西パプテスト教會)를 통해 사회와 공유하고 있으며, 나고야에서도 다수 기리시탄이 처형된 자리에 세워진 정토종(浄土宗) 에이코쿠지(栄国寺)가 ‘기리시탄 박물관’을 경내에 세웠다. 그 결과 1986년부터 가톨릭 나고야 교구는 이 절터에서의 순교 역사를 추도하기 위해 ‘나고야 순교자제’(名古屋殉教者祭)라는 미사를 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가톨릭 역사와 기리시탄 박해의 역사와 자료 수집 및 보존에 대해서는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지자체(관청)와 지역민, 개신교 목사와 불교 사찰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쏟고 힘을 모으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함께 지키고 선양함으로써 교회와 국가, 종교와 종교, 교파와 교파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연합하고 조화해가는 모습은 일본 기독교계가 연출한 이채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교계 단체의 사료 관리의 현주소
도쿄 와세다(早稲田)에 있는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연합기관인 ‘일본기독교협의회’(NCCJ, 日本キリスト教協議会) 안에는 ‘기독교아시아자료센터’(キリスト教アジア資料センター)가 설치돼 있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 취지에 부응하고자 아시아 각국의 기독교 관련 자료들을 망라해 놓고 연구출판 활동도 병행하는 곳이다. 한편 NCCJ 교육부 내에는 ‘평화교육자료센터’(平和教育資料センター)가 설치되어 신학교나 미션스쿨 중고교 학생들의 견학 및 리서치 장소로도 개방되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NCCJ는 역사와 전통의 도시인 교토(京都)에 ‘NCC종교연구소’를 별도로 설치 운영 중이다. ‘불경연구회’를 비롯해 ‘조상숭배연구회’, ‘교회와 국가연구회’, ‘종교신학연구회’, ‘신종교운동연구회’ 등이 운영 중이고, 「만남」(出会い)과 Japanese Religions 등 일본어와 영어로 그 성과들을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 가톨릭 학교인 난잔대학(南山大学) 종교문화연구소와 조치대학(上智大学) 그리스도교문화연구소 등과도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자료 관리와 연구 분야에서도 에큐메니컬 정신을 충실히 실현해가고 있다.

도쿄의 ‘도미사카 기독교센터’(富坂キリスト教センター)는 메이지 시대에 독일인과 스위스인이 세운 동아전도회(東亜伝道会, Ostasien Mission, OAM)가 거점으로 삼았던 도미사카에 전후 세미나 하우스를 설립하면서 자료 수집과 연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복음주의 학제간 학술연구소’(FEST)의 활동이 그 모델이 되었고, 한국의 한국신학연구소 등과도 공동연구를 추진한 바 있다. 대표적 성과로는 『한일기독교관계사 자료』 1, 2, 3권 시리즈의 출간 등을 들 수 있다.
1922년에 재일동포의 중심지인 오사카 츠루하시(鶴橋)에 세워진 재일대한기독교회 오사카교회 옆에는 사회선교의 거점인 한국기독교회관(KCC)이 있다. 이곳은 민간비영리단체(NPO)의 활동센터로서 일제시대에 이주해온 재일동포들의 불평등한 사회적 처우와 빈곤 문제 등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1971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특히 이곳은 교회사 연구자라면 꼭 한 번쯤 방문할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 이 기관의 책임자였던 이청일 목사(현 명예관장)의 빙부이자 재일 교회사학자 고 오윤태 목사가 평생 수집한 교회사 자료들이 아카이브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세대에서 유학한 뒤 한일 기독교 관계를 위해 헌신하다 요절한 구라타 마사히코(蔵田雅彦) 교수가 소장하던 자료들도 ‘구라타 문고’로 정리되어 보관돼 있다.

가까운 고베에도 중요한 아카이브가 있다. 재일 기독교사학자 한석희(韓晳曦)이다. 그는 도시샤대학 신학부를 졸업했으나 목회 대신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이후 한일 간의 기독교 역사, 한일관계사 연구에 사명을 느끼고 사비를 들여 그 분야의 사료 3만여 권을 대거 수집해 ‘청구문고’(靑丘文庫)라는 자료실을 운영하며 매달 ‘한일그리스도교사연구회’를 열었다. 청구문고의 사료들은 현재 고베(神戸)시립중앙도서관에 보존, 열람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 가장 방대한 ‘코리아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청구’(靑丘)라는 명칭은 중국의 『속산동고고록』(續山東考古錄)에서 옛 한반도를 설명하며 등장하는 말 “청구국은 해동 300리에 있다”(靑丘國在海東三百里)에서 따온 것이다.

성서 관련 자료관
2017년에는 한국의 ‘대한성서공회’라 할 수 있는 ‘일본성서협회’(日本聖書協会)의 도서관(자료실)이 폐관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1875년 스코틀랜드성서공회(장로회), 1876년 미국성서공회, 영국성서공회(성공회)가 각각 요코하마에 지사를 설치한 이후 오랜 세월 성서 귀중본이 수집된 곳이 일본성서협회였다. 1980년에 요코하마의 자료들을 도쿄 긴자(銀座)의 성서관(聖書館) 내에 옮겨 와 성서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일본에서의 성서학 관련 자료와 귀중본 성서, 일본어 성서 번역사 관련 자료들이 보존, 열람되었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 535개 언어의 성서 5,400여 권을 비롯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어 성서인 1837년판 귀츨라프역 『약한(요한)복음지전』(約翰福音之傳) 등 수많은 번역본들을 간직하고 있다. 개관 이후 성서 연구와 언어, 번역 등에 활용되어 약 450여 건의 관련 연구회 및 강연회가 열리며 사랑받던 곳이 그만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 감리회가 설립한 대표적 미션스쿨인 아오야마가쿠인대학(青山学院大学)이 2020년 이후 새로운 도서관을 건립하면서 일본성서협회 성서도서관 소장자료들이 이관되어 향후의 관리 운영에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는 신학부가 없기 때문에 이 자료들에 대한 성서신학적 연구가 활성화될지는 미지수이다.(이 대학의 신학부는 1943년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강요로 폐과되었다가 1953년에 부활하였고, 1977년에 다시 문을 닫았다.)
도쿄 일본성서협회의 도서관이 폐관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2020년에는 도쿄 간다(神田)에 사단법인 ‘성서고고학자료관’(Tokyo Museum of Biblical Archaeology, TMBA)이 새롭게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성서 계시의 무대인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 대해 알아보고, 성서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책이라는 것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졌으며, 각종 사진과 도표, 지도, 연표, 유물, 사료 등을 전시하고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석학의 강연회 행사도 개최하며 기관지 「성서의 세계」(聖書の世界, 1994년 창간)도 연 2회 발행하고 있다.

도쿄의 침체에 비해 간사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더욱 열심이다. 1904년에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가 개항지 고베로 기지를 옮기면서 ‘고베 바이블 하우스’(Kobe Bible House, KBH)가 세워진 바 있다. 이후 이곳은 서일본 지역의 성서 관련 자료 수집의 거점이 되었다. 그곳의 자료들을 외부에 공개한 2001년의 ‘고베성서전’(神戸聖書展)을 계기로 그 관리 조직이 정비되어 초대 이사장으로 가톨릭 오사카교구 이케나가 쥰(池長潤) 주교가 취임, 이후 2대 이사장으로 성공회 고베교구 나카무라 유타카(中村豊) 주교가 맡았으며, 현재는 에큐메니컬 운동사 연구자인 간다 겐지(神田健次) 관세이가쿠인대학 명예교수(일본기독교단 목사)가 맡고 있다. 최근에는 복음파 교회들도 동참시키며 고베의 바이블 하우스는 간사이 지역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聖書図書館対話掲げ20周年,” 「神戸新聞」, 2023年 8月 16日, 1면.)

미션스쿨의 학교사 및 교파별 선교 자료관
일본의 개신교 교파로는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가 하나로 통합된 형태인 일본기독교단이 가장 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 개혁파, 침례회, 성결교회, 구세군, 성공회, 루터교회, 나사렛, 그 밖의 소위 복음파 교단들이 분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파의 선교 역사 등도 그 배경을 지닌 미션스쿨에서 학교사와 함께 관련 사료를 관리 운영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선 도쿄의 메이지가쿠인대학(明治學院大學)은 1859년부터 33년 동안 일본 북장로회 선교사로 활약한 햅번(James Curtis Hepburn)에 의해 창립되었는데, 이 햅번학원이 이후 미국 북장로회, 미국 화란개혁교회, 그리고 스코틀랜드 일치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Scotland)와 연합하여 1877년 ‘도쿄일치신학교’(東京一致神學校)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1886년 다시 여러 학교과 통합하여 메이지가쿠인대학을 발족시켰기 때문에 학교의 역사 사료는 물론 위의 교파 관련 사료들도 이곳에서 접할 수 있다.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시로가네다이 캠퍼스 정문에 들어서면, 학교의 상징물처럼 우뚝 선 메이지가쿠인기념관(구 신학부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학원사자료실로 사용되어 학교가 펼쳐온 오랜 교육 및 선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곳이다. 한편 신학부는 전시하에 ‘일본신학교’로 통폐합되어 현재 일본기독교단의 ‘도쿄신학대학’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므로 도쿄신학대학 도서관에도 관련 사료들이 분산 보관돼 있다.
미국 성공회 출신의 윌리엄스(Channing Moore Williams)가 1874년에 도쿄에 세운 릿쿄대학은 현재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 있는데, 담쟁이로 둘러싸인 본관 바로 옆의 구 도서관 건물 2층은 ‘릿쿄학원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일본의 성공회 전래 역사와 함께 릿쿄대학의 발전 역사를 한눈에 확인하도록 도와준다.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 직후 잠시 다녔던 인연을 소중히 여겨 한쪽에 윤동주 자료실을 마련해 두었다.
미 감리회가 1878년에 설립한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상징적 공간으로는 ‘가우처 기념 예배당’, 신학부 건물이었던 베리홀(Berry Hall, 1931), 그리고 중앙의 마지마기념관(間島記念館, 1929)이 있다. 마지마기념관에는 ‘아오야마학원 자료센터’(青山学院資料センター)라는 박물관을 겸한 역사자료실이 1977년에 설치되었다. 각종 전시와 더불어 일본감리교회 연회록과 총회록, 일본 주재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서, 일본에서 간행된 기독교 잡지인 「護敎」, 「六合雜誌」 등의 원본, 그리고 영문 선교 잡지 Japan Vanguard 등 140년에 걸친 이 학교의 교육과 선교 역사의 관련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

1875년에 니지마 조(新島襄)와 미국 회중교회가 협력해 설립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는 구 신학부 건물이었던 클락 기념관, 그리고 캠퍼스의 중심에 있는 ‘해리스 이화학관 도시샤 갤러리’(ハリス理化学館同志社ギャラリー)가 있다. 이곳은 주로 학교사와 회중교회(아메리칸보드) 선교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에 전시 자료를 공급하는 곳은 도시샤 사사 사료센터(同志社社史資料センター)라는 사료 보존 기관이다. 이곳은 창립자 니지마의 유품과 문헌은 물론, 미국 회중교회 선교사 관련 자료 등이 집대성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수정이 니지마에게 선물한 유명한 한시 병풍도 이 기관에서 관리하는 품목 중 하나이다.
고베 근처의 니시노미야(西宮)에 위치한 관세이가쿠인대학(關西學院大學)의 중앙에는 과거에 도서관으로 사용된 시계탑 건물이 있다. 현재 이곳은 학교의 역사는 물론 미남감리회와 캐나다감리회 선교부의 일본 선교 역사 관련 자료들을 보존, 관리하는 ‘학원사 편찬실’(1층)과 ‘박물관’(2층)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8년 학원사 자료실이라는 이름이었지만 2000년부터 학원사 편찬실로 개편하여 수집된 자료에 대한 연구와 그 성과에 대한 편찬 작업을 병행하며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인접한 대학도서관에는 희귀한 귀중본 성서가 다수 소장돼 있기도 하다.

1876년에 설립되어 우치무라 간조, 니토베 이나조 등이 공부한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學校)를 계승하는 홋카이도대학은 1871년에 영국 성공회 선교사이자 ‘아이누의 아버지’라고 불린 존 배철러(John Batchelor) 박사의 사택을 ‘농학부 박물관’으로 개편하여 다양한 유품과 문헌 등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그가 직접 사용한 가구와 유품, 문서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페리스여학원 역사자료실, 토호쿠가쿠인 학원사 자료센터(東北院院史資料センター), 미야기가쿠인 자료실(宮城学院資料室), 후쿠오카조가쿠인 자료실(福岡女学院資料室), 세이난가쿠인대학(西南学院大学) 박물관, 야마나시에이와역사자료실(山梨英和歴史資料室) 등 일본에 산재해 있는 기독교 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배경과 발자취를 소중히 하며 사료를 수집, 보존, 관리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기독교계 인물 자료관
일본 기독교는 소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지식인, 문호, 예술가 등이 다수 활약하며 일본의 근대화와 문화를 고양시켜 왔다는 강점이 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 다대한 공헌을 남긴 인물들을 기념한 사료관도 다수 존재한다.
우선 사상가이자 활동가들 가운데,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빈민운동가, 협동조합 운동가, 소설가였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목사의 기념관이 그의 첫 활동지였던 고베 신카, 고향 마을 도쿠시마, 그리고 마지막 활동지 도쿄 마츠자와 3곳에 설치돼 있다. 이곳들은 가가와의 저서와 문헌, 유품은 물론 일본 기독교의 사회운동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 보존, 선양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운동의 기수이자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요시노 사쿠조의 관련 자료들을 집대성한 요시노 사쿠조 기념관(吉野作造記念館)이 1995년 그의 고향 미야기현 오사키시(大崎市)에 세워졌다. 또 한 명의 그리스도인 민주주의 운동가 이시카와 산시로를 기념한 공간도 혼조시립도서관(本庄市立図書館)에 이 시카와 산시로 자료실(石川三四郞資料室)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돼 있다. 이러한 사업도 시민과 관청이 협력해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일본의 기독교 문인으로서 소설 『침묵』(沈黙)의 저자인 엔도 슈사쿠를 빼놓을 수 없다. 소설 속 무대가 되기도 한 큐슈 나가사키의 소토메쵸(外海町)에는 2000년에 엔도 슈사쿠 문학관(遠藤周作文学館)이 세워져 엔도의 유품과 문헌 등이 2만 5,000점 이상 보존되어 있다. 근처에는 드로신부 기념관과 기리시탄 공동묘역 등이 있으며, 바다를 뒤로하고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라는 소설 속 문구가 새겨진 ‘침묵의 비’(沈黙の碑)가 서 있다.
또 다른 대표적 기독교 문인인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고향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가와(旭川市)에는 그녀의 삶과 신앙, 문학 세계를 간직한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三浦綾子記念文学館)이 세워져 있다. 우거진 송림 안의 시 자료관은 소설 『빙점』(氷点)의 무대이기도 했는데, 미우라의 육필 원고나 방대한 취재 노트, 자료집, 프로필은 물론, 그녀의 검소한 서재 등이 보존, 전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 망우리 묘지에 묻혀 있는 일본 그리스도인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의 고향 야마나시현(山梨縣) 호쿠토시(北杜市)에는 다쿠미와 그의 형 노리타카를 기념하는 ‘아사카와 형제 자료관’이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은 백자와 소반 등 말살되어 가던 조선의 민예를 보존하고 계승하려 노력한 기독 예술가들이다. 특히 1920년대 조선총독부 청사 건설로 광화문이 철거될 위기 속에서 광화문 보존 운동을 펼쳐 결국 그 문을 보존시켰을 만큼 한국을 위해 삶을 바친 그리스도인 형제였다.

나가면서
일본의 기독교는 신도(神道)와 불교, 신종교 등 토착 종교들이 압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소수 종교로서 존재한다. 그만큼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재확인하고 새로운 선교의 동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기독교계는 자신의 역사는 물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 사회에 공헌한 인물들에 대한 기념사업을 통한 자료 수집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본 사회 내에서 규모는 작을지라도 사회로부터 품격과 권위를 잃지 않으며 존속해가는 기독교의 비결에는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이러한 노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문헌 및 유물, 유적 등 사료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히 여기며 간직하고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기독교 관련 자료 보존과 관리의 실태를 파악하고 장점을 배우는 작업은 선교와 교회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내적 성숙과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일본 기독교계의 자료관 실태는 일부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례를 파악해 가며 우리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배움과 협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홍이표|연세대학교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교회사, Ph.D.)를, 이후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일본종교사상사, Ph.D.)를 취득했다. 2009년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이후 일본기독교단 탄고미야즈교회(丹後宮津敎會) 주임목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야마나시에이와대학(山梨英和大學) 준교수 및 종교주임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