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성지순례]
특집 (2023년 2월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교회
  

본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제 한국인들에게 결코 낯선 땅이 아니다. 한국관광 데이터랩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이스라엘 방문은 2005년에 2만 명을 넘어섰다. 그후 2017년에 4만 300명, 2018년에 4만 5,600명, 2019년에는 6만 400명으로 급증하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1만 6,800명으로 크게 감소하였지만,1 코로나19가 완화되면 다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 이스라엘 방문자들은 대부분이 성지순례자들이며, 이들은 이스라엘의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영토에 속하는 동예루살렘(예루살렘 구시가지), 베들레헴, 예리코(여리고), 헤브론 등도 방문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팔레스타인 영토는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으므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성지와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관계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한국교회가 그 두 나라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점령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국과 프랑스 등은 국제연맹의 위임에 따라 독일과 오스만제국의 옛 식민지를 통치하였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팔레스타인 지역은 1919년 이후 영국이 통치했다. 위임통치는 국제연맹의 규약에 따른 국가 통치의 한 형식인데, 우리에게 아주 낯선 말은 아니다. 1919년 이승만, 정한경 등은 국제연맹에서 한국을 위임 통치해 달라는 청원서를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바 있다. 이 문제로 1925년 3월, 상해 임시정부는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연합(UN) 총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넘겼다. 유엔 총회는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국(State of Israel) 수립이 선포되고 영국 관리들은 철수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우자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 5개국(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1948)이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유엔 할당 지역을 훨씬 상회하는 팔레스타인의 80%를 정복했다. 이때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팔레스타인 영토는 요르단이 점령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이집트가 점령한 가자지구뿐이었다. 예루살렘은, 서쪽은 이스라엘군이 동쪽은 요르단군이 점령했다. 1967년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6일 전쟁’ 이후에는 요르단이 점령한 지역마저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협상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측 단체는 아랍연맹의 지지를 받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였다.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오슬로에서 협정을 맺었다. 오슬로 협정의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 지역은 A, B, C 지역으로 나뉘었다. A는 전체에서 단 2%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 및 보안을 관할하는 지역이다. B는 26%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권은 가지고 있지만 보안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지역이고, C는 72%로 이스라엘이 행정, 보안을 관할하는 지역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치 영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적 지위를 ‘국가’로 격상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국가, 즉 ‘비회원 참관 국가’(non-member observer state)가 되었다. 유엔에서 옵서버 국가는 표결권만 없을 뿐, 주권을 가진 엄연한 국가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오슬로 협정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영토로 삼았으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행정수도로 정했다. 2022년 현재 팔레스타인 인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315만 명, 가자지구 212만 명으로 총 527만 명이다.
현재 팔레스타인 정부는 온건파인 파타(Fatah)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와 이슬람 강경파 정당 하마스(Hamas)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로 양분되어 있다. 파타는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으로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우익 정당인 리쿠드가 집권하면서부터 팔레스타인에 초강경 정책을 펴기 시작하자 2006년 1월 총선에서 급진주의, 무장 투쟁, 이슬람주의 정당인 하마스에 패배했다. 하마스는 PLO의 산하기관이었으나 노선의 차이로 별개의 정치단체가 되었고 2006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마스는 파타가 투표 결과를 인정하기를 거부하자 파타를 가자지구에서 쫓아냈다. 2007년부터 하마스와 파타는 각각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통치해왔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정치는 이스라엘과의 싸움에다 내부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서안지구 소재)와 하마스(가자지구 소재)의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
파타는 서방세계나 이스라엘에 대해 온건한 편이다. 그래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파타를 팔레스타인 합법 정부로 인정해준다. 파타는 YMCA, YWCA 등 팔레스타인의 토착 기독교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하마스는 좀 더 급진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중시하며 반이스라엘과 반서방 성향이 강한 편이다. 2022년 10월 파타와 하마스 지도자들이 알제리 알제에 모여 대선과 총선을 2023년에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대통령 한 명이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반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서안지구에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물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700개 이상의 이스라엘 검문소가 있다. 때로는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소가 아닌 곳에서 길을 막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2 이스라엘은 검문소를 활용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안의 명목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으로 몰아넣고, 그 외 지역으로의 진입을 저지한다. 이러한 지역에서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건설하고 확장한다.
2020년 이스라엘은 서안에 총 1만 2,000채 이상의 국제법상 불법인 유대인 정착촌 주택 건설을 다시 추진함으로써 최근 10년 동안 최대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이스라엘 주민은 유대인 80%, 아랍계 비유대인 20%인데 정착촌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는 2022년 현재 132개의 정착촌에 67만 명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7.6%에 해당한다.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지배하에 있다가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군대와 정착민을 철수했지만, 2007년 하마스가 집권하자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했으며 그해 6월에는 육지, 바다, 공중 봉쇄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긴급한 의료 같은 인도적 사례에서만 검문소를 개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8년, 2012년, 2014년 및 2021년에 4차례 가자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은 가자의 심각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으며 수만 개의 집, 학교 및 사무실 건물이 파괴되었다. 파이프라인과 하수 처리 기반시설도 손상되었다. 팔레스타인 중앙 통계국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약 56%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은 63%에 달한다.

한국교회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정식 국호는 이스라엘국(State of Israel)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4월 9일 이스라엘과 수교하였으며,3 1964년 8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한국이 중동지역에 진출하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1978년 2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폐쇄되고 주일 이스라엘 대사가 겸임을 했다. 1992년 1월 다시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주한 이스라엘 공관이, 1993년 12월에는 주이스라엘 한국 공관이 설치됐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교류는 주로 문화적 교류인데, 특히 2015년 이후 한국인들의 성지순례가 크게 증가해 왔으며, 한국 사회의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는 매우 우호적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히브리 성서를 통해 유대 민족의 해방을 가르치던 한국교회의 영향, 1960-70년대에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새마을운동의 모델로서 이스라엘의 키부츠운동 등을 소개한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이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교회의 친이스라엘주의는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2017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국기가 성조기, 태극기와 함께 시위 집회에 등장하는 일이다. 이스라엘 국기가 처음 등장한 집회는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미스바 대각성 구국기도회 및 애국집회’였다. 이런 과도한 이스라엘 사랑은 현재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4
친이스라엘 입장은 한국 정부에서도 나타난다. 2012년 11월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제출한 국가 지위 승격 결의안이 상정되어 전체 193개 회원국 중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 옵서버 국가는 유엔 총회에서 표결권은 없지만 실질적 국가로 인정된다. 한국은 팔레스타인의 옵서버 국가 지위 투표에서 기권했다.5
이스라엘에 지극히 우호적인 한국 사회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는 팔레스타인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 우리 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험에 관해 다룬 책으로 가장 먼저 출판된 책은 『피를 나눈 형제』(1995)일 것이다.6 이 책에는 팔레스타인 출신 저자 엘리야스 샤쿠르의 개인적인 비탄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단적 수난이 들어 있다. 역자에 의하면, 외국 유학 중 신학수업 시간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1990년대가 되어서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상이 한국인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문인들도 팔레스타인 상황을 소개했다.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팔레스타인 문인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2007년경까지 10여 명의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자국의 점령지 상황에 대해 알렸다. 이 시기에 시민단체들도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졌다. 시민단체 인권실천시민연대는 2004년부터 “팔레스타인에 평화와 인권을! 이스라엘은 학살을 중단하라!”라는 캠페인을 매주 한 차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진행했다.
한국교회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9년 1월, 한국YMCA전국연맹은 가자YMCA로부터 가자지구의 참담한 피폭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마침 그때 모인 YMCA 간사들은 간사회 명의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2차 침공을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가자지구 복구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후 2009년 9월에는 7명, 2013년 8월에는 6명의 활동가가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 주관으로 팔레스타인을 방문,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호소하던 팔레스타인 내 기독교 단체 지도자들과 성지순례를 비롯한 어린이 수감자 사업,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청년교류 프로그램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신학자로는 김용복 박사가 1차와 2차 여행에 참가하였다. 1차 여행 이후인 2010년 3월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는 팔레스타인의 정교회, 침례교, 루터교, 가톨릭교회 등 13개 교단과 기독교 단체 대표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문서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2009년 12월)을 번역하여 소책자로 펴냈다.7 2011년에는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네트워크’가 조직되었다.8
2012년에서 2013년은 팔레스타인 평화운동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2012년 11월 14일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여 1천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11월 2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2차 침공에 대한 규탄 성명을 채택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총회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성명을 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1월 29일에는 서울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 예배실에서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을 맞아 기도회가 열렸는데, 이 기도회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및 무력공격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이 발표되었다.9 2013년 11월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에서는 한국교회 대표들과 팔레스타인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평화공존과 세계평화를 다짐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2018년 4월에는 이홍정 총무를 포함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대표단이 팔레스타인을 방문, 팔레스타인 기독교단체연합(National Coalition of Christian Organizations in Palestine) 소속 지도자들과 회담하고 팔레스타인 강제 철거 집터,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영토 분리장벽, 체크포인트(검문소) 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현장, 세계교회협의회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에큐메니컬 동반자 프로그램 현장, 예루살렘 인터처치 센터 등을 방문했다.10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YMCA,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그리고 공정무역 종사자들이 팔레스타인의 농민단체, 인권단체, 평화운동 단체들과 연대해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고양YMCA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올리브나무심기 평화네트워크이다. 이 단체는 2020년부터 동예루살렘YMCA와 팔레스타인YWCA가 공동으로 설립한 JAI(공동 옹호 이니셔티브)와 연대해서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토지에 올리브나무를 심고 있다. 올리브나무 프로젝트는 올리브나무를 통해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땅과 생존을 지켜주는 국제적 평화운동이다. 2022년 11월에는 남북평화재단이 산하에 팔레스타인위원회를 조직하고 첫 사업으로 팔레스타인 올리브나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맺음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수난은 전 세계 교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세계 교회들의 최근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은 국제법 위반이며 중단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2022년 7월의 세계YMCA 총회와 2022년 9월의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볼 수 있다. 우리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성지 방문 시 세계 교회들처럼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럴 때 성지 방문은 평화순례의 성격도 지니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와 교회는 YMCA와 몇몇 시민단체들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수수방관해 왔다. 다행히 2013년 이후 지금까지 몇몇 한국교회 활동가들이 세계교회협의회의 프로그램이나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의 현장에서 활동했다. 2020년부터는 ‘올리브나무 심기 평화네트워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토지에 올리브나무를 심는 일도 하고 있다. 이 일에는 청소년들도 참여하고 있다. 올리브나무를 심는 일은 자기들의 땅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평화운동이요, 수난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친구로, 형제자매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편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이 일을 위한 것이다.

주(註)
1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관광 빅데이터 플랫폼.(datalab.visitkorea.or.kr)
2 필자는 지난해 9월 팔레스타인 영토인 나블루스(옛 세겜) 방문 중에 그러한 일을 경험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유 없이 도처에서 차량의 통행을 막았으며, 이에 화가 난 팔레스타인 운전자들이 경적을 눌러 항의하다가 가던 길을 포기하는 광경을 보았다. 필자 일행이 탄 차를 운전하던 팔레스타인 동료는 큰소리로 “이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이요!”(This is Palestinian life!) 하고 외쳤다.
3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22년 4월 7일 여의도 페어몬트앰배서더호텔에서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 조찬기도회’를 함께 개최했다.
4 최창모, “한국사회의 유대인 이미지 변천사 소고,”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18권 1호 (2008): 118; 배덕만,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독교사상」 669호 (2014. 9); 안교성, “한국교회의 이스라엘 이해,” 「기독교사상」 716호 (2018. 8).
5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국과 외교적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5년부터 행정수도인 라말라에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2022년 9월 현재 라말라에 3명의 직원이 일하는 사무소를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 KOICA 사무소에 의하면, 1996년 이래로 프로젝트와 연수 비용으로 2021년까지 약 5,50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6 엘리야스 샤쿠르·데이비드 해자드, 류대영·지철미 옮김, 『피를 나눈 형제』(예영커뮤니케이션, 1995).
7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 전문은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YMCA 평화운동』(한국YMCA생명평화센터, 2015)에 들어 있다.
8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의 활동에 관해서는 이윤희가 한국YMCA전국연맹에 제출한 간사 자격 논문 “평화 담지체로서 제3기 한국YMCA 생명평화운동론 연구: 생명평화센터의 생명전기(生命傳記)”(2016)에 상세히 언급된다.
9 이 기도회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성서한국, 촛불교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등이 참가했다.
10 정주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의 팔레스타인 방문,” 「기독교사상」 715호 (2018. 7). 대표단은 NCCK 2명, 감리교회 3명, 정교회 1명, YWCA 2명, YMCA 2명, 기타 1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되었다.


김흥수|목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기독교사상」 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4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대표단과 함께, 2022년 9월에는 경기도의 해외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고양YMCA 조사단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2023년 2월호(통권 770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