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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한국교회의 선교 전망]
특집 (2023년 1월호)

 

  새로운 선교지, 메타버스 세계
  

본문

 

기술 발전과 선교

1980년대 승합차 ‘봉고’가 등장하여 교회 차량으로 많이 활용되면서, 교회에서는 전도사를 구인할 때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요구하였다. 1990년대에 전자 음악 기기가 보급되고 경배와 찬양 사역이 보편화되자, 교회는 찬양 인도가 가능한 전도사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기존의 대면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게 되자, 각 교회는 영상 제작 능력을 갖춘 사역자를 급하게 구하고 있다. 이렇듯 목회자 청빙 공고만 보아도 시대에 따라 어떤 기술이 발달했고 교회는 무엇이 필요했는지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교회 역사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15세기에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을 발명했다. 가톨릭교회의 면죄부를 찍어내던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16세기 종교개혁 때 독일어 성서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종교개혁의 불길은 유럽 전체로 확산하였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 때 발명된 증기기관은 원양 항해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 영향으로 윌리엄 캐리와 같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퍼져 식민지 해안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다. 2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전신·전기 통신을 이용한 원거리 소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선교사들은 항구 인근으로 제한되었던 선교지를 넘어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차 산업혁명으로 개인 컴퓨터 보급과 함께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개인과 교회는 먼 선교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정보를 좀 더 수월하게 얻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10/40 window’1와 ‘미전도 종족’ 개념이 지역 교회에서 일반화되었고, 장·단기 선교사 파송과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큰 틀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것처럼, 기술 발전은 새로운 선교지로 지경을 넓히는 도구가 되어왔다. 그렇다면 이미 일상으로 침투한 디지털 시대에도 사역 확장의 기회는 존재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그리고 클라우드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마주하는 한국교회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가?

가상화 혁명은 문명의 풍경을 바꾸며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찾기 어렵다. 오늘날 기술에 대한 담론은 철저히 산업의 언어로 조직된다.2

교회 밖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여러 기술적 발전과 사회적 변화가 연일 보도되지만, 교회는 메타버스를 IT 산업 기술과 경제 문제로 취급하며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시대마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or)가 있는가 하면, 저항하면서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회의론자도 있는 법이다. 교회는 보수주의나 회의론자의 입장에서 메타버스를 바라보는 듯하다. 때때로 교회 전통은 문화적 환경을 복음과 혼동하기도 한다. 더욱이 성공적인 교회 성장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추억은 새로운 형태의 교회와 선교에 관하여 더욱 주저하게 만든다. 새로운 기술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전통에 대한 익숙함에서 발생하는 무지와 선입견으로 인하여,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마치 복음을 위협하거나 왜곡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의 미온적 태도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에게 조언했던 당시 경험 많은 지도자의 태도와 유사하다. “앉게나 젊은이! 하나님께서 저 이교도들을 변화시키려면 자네나 우리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네.” 선교적 부르심에 둔감했던 당시 교회 지도자들처럼, 어쩌면 오늘 교회도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앞에서 같은 우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필자가 교회 지도자를 대상으로 선교지로서 메타버스에 대해 강연했을 때, 청중의 주된 질문은 “메타버스 세계에도 성령이 임하십니까?” 혹은 “가짜 세계인 메타버스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옳습니까?”였다. 여전히 우리는 메타버스가 우리의 경험 밖이라는 이유로 선교적 부르심에 주저하고 있다. 오늘날 메타버스를 마주하는 교회의 자기중심적 이해를 타자를 위한 관점으로 전환하여 선교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과 그로 인한 변화를 해석할 역량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에 대한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뜻한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상세계’(virtual reality)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서, 메타버스 세계는 다양한 합성 현실을 포함하며 광범위하게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메타버스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세계, 라이프-로깅(life-logging) 세계, 거울 세계(mirror world), 가상세계 이렇게 넷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일종인 라이프-로깅 세계, 그리고 내비게이션이나 온라인 쇼핑 같은 거울 세계는 이미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메타버스를 가상세계로 축소해서 인식하고, 동시에 ‘가상세계’에서 말하는 ‘가상’을 ‘가짜’로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메타버스를 잘못 이해할 우려가 있다. 가상세계를 포함한 메타버스는 현실과 단절되었다거나 거짓된 세상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 교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종교 활동을 연구하였다. 최초의 가상교회는 웹 출현 이전인 1985년에 만들어져, 문자 전용 인터페이스를 통해 함께 예배했다. 그러던 가상교회는 인터넷 보급으로 이미지와 영상 중심으로 전환하게 된다. 지속적 기술 발전으로, 아바타를 움직여 종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2003년에 시작되었다. 2004년에는 메타버스에 가상교회를 실험하기 위하여 영국 감리교가 주 후원자가 되어 ‘바보교회’(Church of Fools)를 시작하였는데, 이 교회는 현실교회 모습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고안되었으며, 가장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접속했을 때는 4만 1,000명에 이르기도 했다. 원래는 4개월간 임시로 실험하고 폐쇄하려던 이 교회는 참가자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인하여 이후에도 존속하였고, 2006년 ‘세인트 픽셀’(St. Pixel)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교회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해, 성공회도 Anglicans of Second Life(AoSL) 교회와 2009년에 선샤인 대성당(Sunshine Cathedral)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미국 오클라호마주 에드먼드에 있는 현실교회에 기반을 둔 가상교회 LifeChurch.tv는 참가자들에게 교회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회심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앞의 교회들과 차이가 있다. 이 교회는 세컨드라이프에 부동산(가상공간)을 매입하고, 개발업자를 고용하고, 교회 건물을 짓고 아바타가 매주 교회에 다닐 수 있는 좌석을 만들었다. LifeChurch.tv에 로그온한 IP주소의 수로 참석률을 측정한 결과, 2007년 어느 주일에는 이 교회의 인터넷 캠퍼스에 1,400명 이상이 참석했다. 이 가상교회는 메타버스 안에서만 모이지 않고, 2007년에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모여 세계 선교여행을 시작했다. 가상의 세계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합류한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매우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유명한 메타버스 플랫폼은 로블록스(Roblox), 제페토(Zepeto), 포트나이트(Fortnite), 샌드박스(Sandbox), 마인크래프트(Minecraft), 이프랜드(ifland), 모여봐요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New Horizon), 알트스페이스(Altvr.com), 게더타운(Gathertown) 등이 있다. 가상교회도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하여 더욱 정교한 3D 교회로 진화하고 있다.

메타버스와 한국교회의 반응

메타버스 세계에 대한 세속의 관심이 지속해서 증가한 것과 비교하여, 한국교회에는 가상교회에 대한 견해가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를 강요받는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대응하며 온라인 세계에 대한 접근을 주저하고 있다. 현실교회 참석자들이 온라인 교회에 대한 반응과 의견은 마치 아날로그 세대, 디지털 지체자, 디지털 세대가 나뉘는 것처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가 주 구성원인 기성 교회는 웹 기반의 온라인 체계에서 더욱 기술적으로 발전한 메타버스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부정적이며 극히 제한적이다. 기존 아날로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구적으로만 디지털을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교인들에게 임시방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현재 이러한 교회의 온라인화는 불신자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교회의 경우 온라인 사역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내부자를 위한 온라인 목회로 치우친 나머지 메타버스를 선교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아날로그 교회론을 고수한 채 디지털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기에, 디지털 세대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결실이 여전히 요원하다.
교회의 미래는 다음 세대에 달려 있다. 마치 봄에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추수를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교회가 메타버스와 그 사용자인 디지털 세대를 전통적 시각에 따른 아날로그 세계관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들과의 연결점이 상실되어 교회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다. MZ세대는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로서, 메타버스 세계에서 상주하면서 게임을 넘어 사회, 경제, 문화적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등 메타버스를 새로운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들 디지털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그저 온라인에 대한 숙련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까지도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관점의 한국교회는 마치 현실교회와 메타버스 생활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호 배격의 패러다임으로 여기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 세계, 증강세계로 현실에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교회는 자신들이 익숙한 아날로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가상과 현실의 충돌에 대한 문제를 먼 훗날의 문제로 미루고 있는 듯하다. 다음 세대 복음화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현재적 사안으로서, 긴급한 문제이다.

메타버스 교회와 다음 세대

역사적으로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제자로 초대하기 위해 편지, 인쇄매체, 텔레비전, 라디오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르러서는 월드 와이드 웹(www)의 등장으로 인터넷이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관계의 기초 플랫폼이 되었다. 많은 교회도 사이버 공간을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서 인터넷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예배와 기도 모임, 성찬을 실천하고 있다.
라디오나 TV 사역과 대조적으로, 메타버스 속 가상교회는 21세기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두 개의 무한한 격류, 즉 기술 성장의 기하급수적인 속도 변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이다. 이 두 거대한 흐름의 합류는 가상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삼각주를 만들고 있다. 이 교회들은 기록되고 팟캐스트 된 실제 교회의 그림자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교회이다. 교회 사역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비지능적 수단, 곧 단방향성을 가진 독백을 사용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전통교회의 수직적 관계나 일방향적 설교와 유사하여, 교회와 목회를 위해 엄청난 동력을 생산했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결코 교회를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설교와 혼동하지 않는다. 벽돌로 이루어진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TV나 라디오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목사의 설교를 더 자주 들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기독교인들은 현실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교회는 수평적 관계, 대화와 참여를 속성으로 하는 메타버스를 이해하기 어렵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음 세대 세계관으로 등장하면서, 교회 개념이 확대되고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다. 독백으로 이루어진 라디오나 TV와는 달리, 메타버스 경험은 상호작용하며 몰입한다. 메타버스 거주민은 단순히 방송이나 독백을 종교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협업을 통하여 성직자와 함께 예배하게 된다. 현재 현실교회 주 구성원인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MZ세대에게 메타버스의 상호작용은 실제 세계 관계보다 훨씬 더 진실하고 덜 어색한, 많은 젊은이의 사회적 관계망을 위하여 선호되는 방법이다.
메타버스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영적 요구 충족과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메타버스에 의지할 것이다. 이는 결코 메타버스 교회가 현실 세계 교회를 대체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상세계는 현실과 분리된 방식으로 운영되는 듯하지만, 메타버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세계와 연결되어 교회 활동을 더욱 확장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이렇게 다음 세대 관심을 받는 것은 그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연성, 투명성, 다양성 및 기타 선천적인 강점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실교회에 참가하기 어려워하던 불신자들 혹은 영적 구도자들은 메타버스에서 신앙에 대하여 소통할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교지로서 메타버스 현상은 현실 세계 교회에 영향을 줄 것이다.

선교지로서의 메타버스 세계

코로나로 인하여 대면 모임이 불가해진 상황에서 대다수 한국교회는 줌(Zoom), 구글 대화방(Google Chat), 카카오 라이브(Kakao Live) 등을 통해서 모임을 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러한 형태의 신앙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기술 발전은 아날로그 세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변화시켜 왔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카카오톡’으로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사람들이 이에 적응하자 선물을 주고받는 상품권 경제가 발생하였고, 그다음으로는 ‘카카오뱅크’ 등의 금융 서비스까지 확장되었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도 게임이라는 요소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히 게임 영역에 제한되는 온라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교회는 대면 예배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며, 임시방편으로 여겨온 온라인 예배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다. 이는 메타버스를 디지털 선교지로 인식하지 않는 시각에서 기인하며 메타버스에 대한 선교적 도전과 투자를 외면하게 만든다. 교회 미래학자인 에드 스테처(Ed Stetzer)는 “많은 사람은 교회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어떤 이는 큰 교회도 같은 운명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교회가 다시 예전과 같을까 봐 걱정이다”3라며 미래 교회에 대한 염려 섞인 기대를 드러냈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염려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미 1980년대 중반 교회학교의 감소를 인지했음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고,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교회의 청년 세대 감소로 이어졌으며, 밀레니엄 시대에는 교회 전체의 고령화와 교인 감소 그리고 가나안 교인의 출현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로 초기 대응의 실패가 증명되었다.
새로운 선교지인 메타버스는 아날로그 세대들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복음의 기회임을 주지해야 한다. 2020년 9월 한 달 동안 ‘로블록스’(ROBLOX)라는 메타버스 게임에 접속한 사람들의 총 접속 시간은 무려 221억 시간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인구의 1%도 훨씬 못 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것은 메타버스 세계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미전도 그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보교회의 설립자 중 하나인 사이먼 젠킨스는 “누군가가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그곳에 교회를 지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4 이러한 현상은 메타버스 세계의 상주인에 관한 선교학적 연구를 촉구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선교적 가능성을 모색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미디어와 종교의 관계를 연구한 캠벨은 종교를 깊게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반(反)기술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새로운 통신 기술의 출현에 종교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한 그녀는 ‘결정론적인’ 접근보다는 ‘건설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며, 종교 집단을 단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수동적 응답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던 이전의 모습을 반박한다. 캠벨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는 메타버스 세계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메타버스 거주자들에게 디지털 세계에 통용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메타버스에 대한 선교적 논의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두 세계가 서로 교환관계와 공유관계를 형성한다는 통전적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 발달로 출현한 MZ세대의 디지털 생활공간이 교회의 본질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를 선교의 장으로서 이해하여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서비스의 이름 ‘제페토’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에 생명을 불어넣은 목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메타버스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거짓말이라는 특성에 반응하는 존재였다.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심으로 말미암아 창조 세계의 청지기로 삼아 주셨다. 그렇다면 세상이 만든 메타버스 세계가 거짓 세계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청지기로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컨드라이프의 가상교회인 성공회 대성당 책임을 맡은 마크 브라운 사제의 대답은 의미가 있다. “나는 우리 교회에 대하여 약 3%만 알고 있다. 97%는 끊임없는 시행착오다. 우리는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매뉴얼이 없다.”5 디지털 선교지로서의 메타버스에 대하여 교회는 추수보다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회는 메타버스를 미리 판단하기보다 선교지에 보냄 받은 선교사처럼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지금까지 메타버스에 대한 선교적 접근을 시도해보았다. 시원한 대답보다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으나, 이러한 논의가 단순한 상황의 재진술이 아닌,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선교지에 관한 대화 시작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주(註)
1 ‘10/40 window’는 1990년 기독교 선교 전략가 루이스 부시(Luis Bush)가 만든 용어로, 북위 10도-40도 사이에 위치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의미한다.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2가 이 지역에 살고 있는데, 대다수가 비그리스도인들이다. 이 용어를 통해 미전도 종족이 어디에 거주하는지, 복음화가 가장 필요한 지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다.
2 주영민, 『가상은 현실이다』(어크로스, 2019), 15.
3 Ed Stetzer, “Time for a New Normal,” Outreach Magazine (July/August 2020): 14.
4 Douglas Estes, SimChurch(Zondervan, 2009), 39.
5 위의 책, 38.


남성혁|애즈베리신학대학원에서 전도선교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실천신학회 이사, 한국문화신학회 서기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월호(통권 7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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