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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2년 10월호)

 

  촛불연합은 왜 지속되지 못했는가- 윤석열 정부 시기 시민사회운동과 정치개혁의 방향과 과제
  

본문

 

2016-17년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집권했으나, 5년 만에 다시 여야가 뒤바뀌었다. 박근혜 정권 탄핵에 책임이 있는 정당을 전신으로 하는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간에는 약 25만 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심상정 후보의 2.4%까지 합치면 ‘민주세력’의 득표율이 50.23%에 이르러 과반수를 넘어섰다고 자위하기에는 충격적인 결론이다.
대통령 탄핵을 가능하게 했던 일종의 촛불(정치)연합이 불과 5년 만에 해체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당시 박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정치적으로 탄핵당했던 구여당 주류와 연합했다는 점, 그리고 촛불에 함께했던 상당수의 시민들이 결과적으로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정권을 심판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여 그 구조적·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따져보고 시민사회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연합은 왜 어떻게 무너졌고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1) 2016-17 왜 촛불이 일어났나
촛불연합이 왜 무너졌는지 묻기 위해서 촛불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 보수 혹은 진보 같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국민의 대다수가 동의하고 그 상당수가 촛불집회에 동참했다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무언가 자신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된 위험을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시민행동의 표적은 국정농단, 특권의 행사와 남용 등이었다. 용인할 수 있는 권력남용의 한계선이 무너졌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기에 보수적인 시민, 언론, 정치인도 동참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위태롭고 불안한 삶에 대한 불만과 추락의 공포다. 예를 들어 경제적 양극화와 소득 자산 불평등의 심화, 비정규직으로의 전락과 실업, 치열한 입시경쟁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 남녀 간 임금격차 등 성차별 구조, 높아지는 가계부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자살률, 빠른 고령화와 사회적 노후대책의 부재 등의 구조적 조건이 거리의 촛불에 휘발유를 들이붓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눈여겨볼 만한 사건은 바로 세월호 참사다.1 2014년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탄핵 정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반정부운동으로 규정하고 국가공권력과 보수언론을 동원해 진영논리에 가두려고 했으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집회의 물음과 “국가는 없었다”라는 탄식은 시민들의 분노와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이들 구호는 우리 모두가 ‘우연한 생존자’라는 인식, 즉 공적 시스템에 의해 보호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인식, 그리고 국가는 과연 내게 무엇인가 하는 비판적 물음 혹은 자각을 표현한 것이다. 미투 운동이 ‘우리는 생존자’라는 인식과 정서를 바탕으로 촛불 이후 확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구였고 그들에게는 ‘뭣이 중했던가’
촛불연합 혹은 탄핵연합은 과거와는 달라진 시민들이 새로운 요구와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시적 연합이었다. 이들은 ‘국가와 나’, ‘사회와 나’에 대해 질문하고 행동했는데, 방점은 ‘국가’라기 보다는 ‘나’에 맞추어져 있었다. 시대의 화두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댔던 그 아버지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사적인 것을 버리고 공적인 것을 위해 힘써 일함)이 아니라 ‘자중자애’(自重自愛,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낌)였다.
촛불에 함께 한 ‘우리들’, 혹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다중들이었다. 이들이 보이는 행동의 특징, 그 강점과 약점은 ‘세계화, 기후위기, 탈산업화’라는 지구적 변동, 거기서 오는 불평등과 불안정의 심화 등 신자유주의의 말기적 현상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불안하고 삶이 위태로운 다중의 분노는 갈수록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와 정치체제, 혹은 공고화되어 가는 특권체제와 양극화를 향할 수도 있지만, 보다 손쉬운 상대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향할 수도 있다.
촛불 이후의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의 추구로 인한 퇴행의 악순환과 사회적 연대를 통한 건설적 전환 사이의 미묘한 경계 위에 있었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한국 사회가 퇴행의 늪에 빠질 위기를 비교적 슬기롭게 넘어섰지만, 우리 사회와 세계가 직면한 공통의 구조적인 위기와 위험들, 예컨대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대의제의 오작동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은 상태였다. 촛불개혁은 그래서 더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3) ‘특권 개혁’의 실패
결과적으로 촛불 이후 첫 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민생과는 상관없는 ‘국가권력기구의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에 과도하게 집중해서 국민들이 등을 돌린 걸까? 특권의 해체와 국가폭력을 바로잡는 일에 대해 동의 기반이 부족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했을 때 국민의 호응은 뜨거웠다. 문제는 특권과 권력남용을 개혁하고자 한 주체의 특권 행사 논란이 거듭되고 이에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한 데 있었다.
검찰개혁 주체가 연루된 부당한 특권 행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두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을 넘어, 검찰개혁 그 자체와 동일시하여 과잉대응하였고, 그 결과 검찰개혁의 동력은 약화되었고 개혁 저항세력에 명분을 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성평등을 강조했으나 주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잇따라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는 일이 발생했다. 부동산 폭등을 통제하지 못해 부동산 불평등이 심화되는 와중에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부동산 특혜 시비에 휘말리는 등의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특권 타파’의 주체에서 대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중심 슬로건을 ‘공정과 상식’으로 내걸고 ‘내로남불’을 공격하는 전략을 취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주류는 갈등 현안 대응에서 ‘노무현 트라우마’로 불리기도 하는 ‘피포위 의식’을 드러내곤 했다. 피포위 의식은 비판과 지적에 대한 격렬한 방어적 태도, 한정된 돌려막기 인사, 팬덤정치에 대한 의존, 생각이 다른 연대협력 파트너들에 대한 열성 지지자들의 공격 방조, 보여주기식 이벤트 외의 소극적 소통, 시민사회운동과의 거리두기 등으로 드러났다.

4) 정치개혁 지체와 승자독식 구조 안주
좀 더 근본적인 잘못은 촛불정치연합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정치적 기득권 구조에 안주하여 필수적인 정치개혁을 포기하고 심지어 가로막은 것에 있다.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사회통합과 전환의 길이 양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형성된 승자독식 구조를 타파하는 정치개혁임에도 미온적이거나 반개혁적인 태도를 취했다. 집권 초기 제기된 개헌과 선거법 개정 등은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민의의 다양성을 정치에 입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특히 분단체제 정치구조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양한 정치적 이념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상생하고 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개혁의 디딤돌을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는 시민 다수의 촛불저항으로 얻은 정치적 권력을 나누는 데 인색했다.
개헌이나 연동형비례제로의 선거법 개정이 불발되거나 도중에 퇴행한 것은 이에 반대한 야당(현 국민의힘)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도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나누려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소수정당이 민의에 합당한 의석을 확보하게 하는 권력구조-정치구조 개혁을 절실한 과제로 삼지 않았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으로 지지율 이상의 의석을 독점하고 소수정당들이 확보할 수 있는 제한적인 의석을 갈취한 것은 정치개혁의 동력과 협력 기반을 크게 약화시켰다. 뒤늦게 대선에서 정치교체를 주장하였지만 이미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후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기득권과 승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정치개혁 과제를 등한히 하고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데만 열중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2020년 총선 이후 정권교체 여론이 급등한 이유가 검찰개혁 과정의 혼선이나 부동산 가격 통제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치)권력 자원 독점과 기득권 안주에 대한 경계심이 작동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5) 전환의 한계
촛불 이후 첫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권 보장, 안전, 돌봄의 공공성 확대, 성평등, 차별금지, 기후위기 극복 등에서 이전 정부와 비교할 때 상대적인 진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근본적인 사회 전환 혹은 사회적 우선순위의 변경이 수반되는 의제와 관련하여 권리 당사자에게 힘을 부여하거나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여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크게 부족했다. 좌파정권이라는 보수 측의 비판을 받았으나 정작 개혁 정체성과 주도성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동안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위기,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은 도리어 악화되었다. K-방역을 성공적인 사례로 홍보했으나, 팬데믹 상황이 공공의료체계 확충의 적기임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은 확충되지 않았다. 기후위기 대응은 비교적 적극적이었으나 ‘정의로운 전환’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신성장동력 창출 중심 대응으로 제한되었다. “국민 대다수는 사상 최악의 빚더미에 눌려 고통받고 있는데 몇몇 대기업은 최고의 흑자를 누리고, 정부 재정은 OECD 중 가장 건전한데도 민생을 위한 지출에서는 ‘건전 재정’의 논리가 발목을 잡았다.”2 정부와 여당은 성평등이나 차별금지와 관련한 보수층의 반발과 백래시,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쟁점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창하고 세 차례의 정상회담과 합의 등 큰 진전을 이루었으나 군사비의 확대, 공격적 무기체계 도입, 팬데믹 상황에서도 강화되는 전방위 대북제재 동참 등을 이유로 후반기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다. 특히 후반기부터 북미협상 교착, 미일 전략경쟁과 신냉전적 국제질서의 강화, 한반도 문제의 주변화 등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6) 촛불연합의 해체와 혐오의 정치의 득세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개혁 정당성과 정체성의 약화, 촛불 성과의 정치적 독식과 기득권 안주,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정의 심화 등으로 인해 촛불개혁 연합과 연대는 크게 약화되었다. 반면 거대 양당 주도의 정치적 동원과 그로 인한 시민사회의 양극화가 가속화되었다. 촛불을 함께 들었던 일부 시민들은 정권교체 여론으로 응답했다. 도로 양극화된 정치구조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불안감은 마찬가지로 취약한 시민들 간의 갈등, 예컨대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립 등으로 나타났다.3
이번 대선에서 야당은 ‘한국판 트럼프’라 부를 만한 선거전략을 구사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민단체 부당이익 환수’를 앞세우는 선거 전략, ‘멸콩’ 퍼포먼스, 정치보복 공언 등 혐오의 정치를 조장하고 동원했다. 역설적이지만 혐오의 정치를 동원한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의 중심 슬로건은 ‘공정과 상식’이었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의 선거운동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언어가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주창되는가에 따라 어떻게 현실의 차별과 왜곡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혐오의 정치에 대한 책임이 윤석열 정부와 새 여당에게만 있다고 볼 수 없다. 촛불이 열어낸 공간에서 촛불연합을 유지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책임, 특히 다양성이 존중되고 정의로운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정치연합의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한 책임은 개혁진보진영에게도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과대평가된 팬덤, 그리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진보개혁 시민사회운동 역시 현실에서 혐오 정치와 진영 대립의 강화, 개혁과 전환을 향한 사회적 연대의 해체에 일익을 담당해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가능성 복원을 위하여

1)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보수연합의 위기
윤석열 정부는 집권의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에서 연승을 거두었지만, 그 후 급격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웠지만 첫 인사에서부터 자신의 주장에 배치되는 인사를 기용하고, 그 과정에서 대선 전후 제기되었던 김건희 여사 리스크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로 비난했기에 실망이 확산되는 속도와 폭도 빠르고 깊다. 검찰 출신 윤석열 정부에서 눈에 띄는 검찰 출신 편중 인사, 검찰권력 통제 정책의 완화 혹은 철회, 행안부를 통한 경찰 통제 시도, 야당 지도부와 전 정부 고위인사에 대한 전방위 수사와 감사 등은 ‘검찰공화국’에 관한 우려와 반발을 유발하고 있다. 게다가 대선 승리를 위해 혐오까지 동원하면서 가까스로 형성했던 일시적인 보수연합은 선거 직후 균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리더십의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2) 시험대에 오른 새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비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지속되는 세계적 수준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는 ‘규제 완화와 민간·기업·시장 주도의 경제 활성화 정책’도 우려와 갈등을 키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자산가와 기업에 대한 감세와 재정 긴축, 금융과 부동산 등에 관한 규제 완화,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인상 통제, 노사갈등 현장 공권력 투입 등의 정책은 친자본-반노동, 친부자-반서민 정책 경향을 뚜렷이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이 ‘경제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위기를 서민에게 전가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과 저항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수해 대응 과정, 코로나 감염병 재확산 대응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재난관리 의지와 능력에 대한 불신도 이미 커진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등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의 완화를 공언해왔는데, 혁신과 전환의 유예로 인해 장래에 치러야 할 장기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 산업 전환의 비용을 주로 노동에 전가할 가능성이 큰데,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저항이 예상된다.
‘힘에 기초한 평화’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실제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까지만 보면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 간 합의를 대부분 부정하고 ‘포괄적 글로벌 한미전략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시작부터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비핵 개방 3000’과 유사한 ‘담대한 (선북핵폐기) 제안’에 응답하는 대신 핵/미사일 능력 개선을 강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배타적인 미국 편승 정책도 중국의 반발을 부르는 등 ‘연루’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3) 사회적 연대에 관한 신뢰 복원과 정의로운 전환
윤석열 정부 내내 그가 집권을 위해 동원해낸 혐오와 차별, 그리고 실제로 더욱 위태로워지고 불안정해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정권과 정치의 위기가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위기가 자동으로 보다 나은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촛불 개혁의 실패와 ‘촛불정치연합’의 해체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연대를 통한 문제해결 가능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가 극도로 낮아졌다. 그 결과로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다시 특권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재난자본주의4적인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적·사회적 연대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구성원들의 동기와 동력이 다시 형성되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없다.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사회적·정치적 의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평등을 가리고 무한경쟁과 차별에 길을 터주는 혐오의 정치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보이지 않는 폭력과 드러나지 않는 차별에 대한 우리 스스로와 사회, 국가의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과 특권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 근본 원인을 타파하는 실천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경제적 위기의 수습 과정이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 차별과 폭력, 생태계와 기후의 위기를 더 악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존엄과 평등, 돌봄과 살림,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옹호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유보할 수 없는 당면 과제로 제시해야 한다.
다만, 진정한 변화는 비록 더딜지라도 사회 구성원의 공감과 합의, 작은 변화의 축적을 통해 달성되곤 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인 개혁의 지향과 목표를 잃지 않는 것과 진영논리에 휩싸인 배타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실천은 구분된다. 또한 단기적 성취를 위해 불필요한 공포와 불신을 조장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과도한 불안은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좀먹을 수 있다. 전환을 위해서는 대화도 필수적이다. 상대의 완전한 극복, 상대에 대한 완전한 승리라는 진영의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 agree to disagree), 다시 말해 당장 합의를 도출하지 않더라도 차이는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 규범과 지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4) 정치개혁과 연합정치의 실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대의제를 뜯어고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편협하고 획일화된 편가르기 속에 다양한 민의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구겨넣고 재단하는 과두 정치의 부작용이 너무 크다. 민의에 따라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고, 다양성과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연합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운동 후반기 ‘정치교체’라는 이름으로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등 일련의 정치개혁을 약속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성과 정치교체 약속이 기득권 논리에 의해 좌초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압박과 협력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집권한 직후부터 내홍과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정치개혁과 정치교체에 진지한 관심을 지닌 주체들이 세력화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압박과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대선 전후 여야 거대정당에 급격히 증가한 권리당원(책임당원)들은 정치교체를 앞당길 소중한 동력이다. 그러나 거대정당들이 시민정치참여의 플랫폼으로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때에만 그것이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개방적인 태도는 새로 유입되는 당원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협력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쓴소리를 배척하는 방어 장치로 열성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하지만 크나큰 독이 될 수 있다.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도 연합정치가 가능한 구조와 관행의 개혁을 위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임해야 한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지지율 동반 현상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반면 현 정치제도 아래서 독자적인 세력화가 제한되고 지지율 고착과 사표가 반복되면 진보정치 성장의 희망도 함께 침식될 수 있다. 진보정당과 한국 사회의 전환을 위해서는 진보적 정체성과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연합정치가 가능한 구조, 제도, 정치협약을 창출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전략적 결단과 집중이 필요하다.

주(註)
1 “광장 민심의 키워드, 박대통령·촛불·세월호 순 많았다,” 「중앙일보」 2016년 12월 12일; “2016년 뒤흔든 키워드 ‘박근혜·최순실·세월호’,” 「연합뉴스」 2016년 12월 19일.
2 “촛불광장에 함께 했던 모든 국민들에게 드리는 긴급호소문”(2022. 2. 25), 2016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에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대선 기간 중에 〈촛불정신계승과 실천을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발표한 호소문.
3 이에 관하여 정희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선거에서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젠더를 모르는 힘’ 때문이다. 사회 구조로서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성들 사이의 차이, 남성들 사이의 차이를 남녀 차이로 환원할 수 있었다. 즉 ‘극히 일부인 중상층 20대 여성의 과잉 재현’과 ‘현역 징병 대상인 흙수저 20대 남성’을 남녀 일반으로 대립시켜 착시 현상을 만든 것이다. 계급 문제를 성별 갈등으로 조작한 것이다. 기득권 양당에 묻는다. 왜 50대 가난한 여성과 50대 중산층 남성은 비교하지 않는가.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은 왜 비교하지 않는가? ‘서울 남성’과 ‘지역 여성’의 지위는 왜 비교하지 않는가. … 이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 있는가”-정희진, “여성을 덜 모욕하는 사회에 투표하자,” 「한겨레」 2022년 3월 8일.
4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나오미 클라인에 따르면, 쇼크 독트린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 지배세력을 위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재난자본주의’의 수법이다. “쇼크 독트린의 신봉자들이 보기에,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백지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구원의 순간은 홍수, 전쟁, 테러공격이 일어난 때다.”-나오미 클라인, 김소희 옮김, 『쇼크 독트린』(살림Biz, 2008).


이태호|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하였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미,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및 평화군척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부설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재)정의기억연대 이사도 겸하고 있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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