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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제11차 WCC 총회]
특집 (2022년 8월호)

 

  대담: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의 관계
  

본문

 

김종훈 전 WCC 부산총회 감리교 준비위원장, 월곡교회 원로목사
박종화 전 WCC 중앙위원, 경동교회 원로목사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서울교회 담임목사
김흥수 본지 주간, 목원대학교 명예교수(사회)
일시 및 장소 2022년 7월 5일, 대한기독교서회

김흥수 8월 말 WCC 총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WCC가 1948년에 조직되어 이제 74년이 됐습니다. 이번이 열한 번째 총회니까 거의 7년에 한 번씩 총회가 열리는 거죠.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013년 부산총회 이후 9년 만에 열리는 총회라서 많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담의 주제는 WCC와 한국교회의 관계이지만, WCC 총회가 임박했으니까 그 이야기부터 조금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총회는 독일에서 열리는데, 개최 장소인 카를스루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주시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과 경합을 벌였는데, 결국 독일 카를스루에가 선정이 되었지요.
박종화 아시다시피 WCC는 서양에서 태동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 번은 북반구에서 하고, 또 한 번은 남반부에서 하는 전통이 있어요. 지난번 총회는 한국에서 열렸잖아요. 그때는 시리아 다마스쿠스하고 경쟁했어요. 결국 우리가 이겼잖아요. 그래서 그때 나온 얘기가 뭐냐면 그러면 다음 총회는 다른 쪽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 지역을 바꿔가면서 총회를 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총회가 열린 장소들을 종합해보면, 이번 대회를 포함해서 유럽에서는 세 번, 북미에서 두 번, 남미에서 한 번, 그다음에 아프리카에서 두 번, 아시아에서 두 번, 그리고 호주에서 한 번, 이런 식이지요. 지난번에 한국에서 했으니까, 이번에는 유럽에서 하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에 WCC 신임 총무가 제리 필레이 목사로 확정되었잖아요.
김종훈 그것이 언제 결정되었나요? WCC 중앙위원회가 열렸나요? 대면으로요?
박종화 네. 두 주 전쯤에 중앙위원회가 열렸어요. 대면이 가능한 상황이잖아요. 그 신임 총무가 지난번에 부산과 경쟁했던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에요. 아마도 독일이 개최지로 결정되고 나서, 그다음에 총무는 다른 지역 출신을 선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역을 안배해가며 일을 진행하는 그런 문화가 있어요.

총회의 조직과 구성, 참여

김흥수 WCC 총회에는 누가 참석하고 또 총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을 해주시지요.
박종화 WCC 총회는 우선 회원교단 대표가 참석을 해요. 회원교단이 약 350개 있어요. 현재 한국에서는 예장 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 이렇게 네 교단이 회원으로 참석하고 있는데, 대표단으로 한 교단에서 한 명 이상은 꼭 가지요. 예장 통합이 두 명 들어가지요?
손달익 네. 맞습니다. 두 명이에요.
박종화 통합 둘, 기장 둘, 감리교 둘, 성공회 하나 이렇게 들어갑니다. 그렇게 전 세계 350개 교회의 대의원들이 모이면 대략 천 명 이내예요. 7-8년에 한 번 정도 천 명이 모여서 총회를 열고 회의를 하지요. 거기서 중앙위원을 뽑습니다. 중앙위원회 숫자가 150명이 조금 넘어요. 천주교 추기경 숫자가 대략 150명 정도라서 그 숫자에 맞추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배정된 중앙위원은 2명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배정된 숫자상 모든 회원교단에서 중앙위원을 맡을 수 없으니까 감리교가 하다가 예장이 하다가 기장이 하다가 이렇게 바꾸는 거지요.
김종훈 WCC 총회에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골고루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박종화 네. 평신도가 절반, 안수받은 목회자가 절반, 이렇게 50대 50으로 참여합니다. 중앙위원도 마찬가지로 반반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규칙이 또 있어요. 전체 총대 중에서 25%는 예외 없이 정교회 대표로 이루어져 있어요. 정교회가 WCC에 가입할 때 조건이 있었거든요. 정교회는 숫자는 적지만 종교의 구조적 특성상 가톨릭과 같으니까 항상 4분의 1을 배분해달라는 요구였어요. 중앙위원회 숫자의 4분의 1도 정교회 몫입니다. 그러니까 정교회 몫을 제외한 나머지 75%를 가지고 나머지 교회가 나누는 거지요. 그래서 교단의 수에 따라 3명이나 4명 정도가 참여하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 평신도와 목회자를 반반으로 한다는 원칙을 말했는데, 또 하나는 여성이 30%는 차지해야 한다는 원칙도 있어요. 그리고 청년은 좀 다릅니다만 10-15% 정도, 물론 여성 청년이 겸할 수도 있고요.
김종훈 장애인은 안 들어갑니까?
박종화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하지는 않고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뽑는데, 아무래도 장애인을 우선하여 선발하지요.
손달익 대표를 뽑을 때, 여성에, 비성직자에, 장애인이면 우선순위가 가장 높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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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지난 10차 부산총회 때 감리회에서는 제가 원칙을 지키며 제대로 선발했어요. 장애가 있는 유흥주 목사를 선발해서 그때 굉장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장애인 관련해서 활동을 많이 했고 마포에서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예요. 제가 감독을 할 때 주위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목사 안수를 줬는데, 마포에서 개척교회를 하는데 얼마나 목회를 잘하는지 몰라요. 그분이 대표로 참석을 했었죠.
김흥수 네. 지금 중앙위원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WCC 총회 거버넌스에 대해 얘기를 해보죠. 우리가 WCC에 대해 주로 알고 있는 게, 중앙위원회를 우리가 많이 들었고 또 WCC 총무, 실행위원회, 국제위원회, 또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정도인데 WCC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조직을 좀 설명해주시지요.
박종화 전체 구조는 이렇습니다. 일단 최고 의결 기구로는 총회가 있고, 총회가 위임한 중앙위원회가 있습니다. 총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들은 다음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활동합니다. 중앙위원회는 보통 1년 반이나 2년에 한 번 소집하니까 임기 동안 세 번 정도 모이게 되지요. 재정적인 문제로 3년마다 모일 때도 있고, 반대로 긴급히 논의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더 자주 모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중앙위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도 쉽지 않으니, 중앙위원 중에서 25명 정도의 실행위원을 또 뽑아요. 실행위원은 중앙위원을 겸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 25명이 자주 모여요. 실행위원회에서는 중앙위원회에서 위임한 사항만 처리하고, 모든 결정은 중앙위원회에서 이루어지니까 중앙위원회가 핵심이지요.
실제로 WCC 행정을 총체적으로 맡고 있는 책임자 네 사람을 ‘officer’라고 부릅니다. 중앙위원회 의장, 부의장 둘, WCC 총무, 이렇게 네 명이 모든 사항을 관여하는 행정의 핵심이고, 이 사람들 아래에 각 부서와 위원회가 돌아가지요. 60-70년대에는 위원회가 30개 정도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지금은 절반쯤으로 줄어들었죠. 재정에 따라 바뀌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나라에 익숙한 위원회는 국제위원회,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디아코니아 위원회 등 몇 개가 있습니다.

제11차 WCC 총회 주제

김흥수 이번 총회를 보니까 주제가 부산총회하고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보이는데 부산에서는 정의와 평화를 얘기했는데, 이번 총회는 사랑과 화해예요. 이것은 세계의 상황을 반영한 것일 텐데, 총회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박종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총회 주제는 그냥 아무렇게나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정하면 그 주제가 다음 총회까지 7-8년 동안 세계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시간들을 염두에 두고 주제를 정하는 것이에요. 미래를 염두에 둔다는 말은 예측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지난 과거의 상황을 고려하고, 앞으로의 시대를 가늠해서, 오늘날의 시점에서 이렇게 살자는 결단을 담고 있다는 뜻이에요.
손달익 아시다시피 총회의 주제는 세 가지 테마 내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테마지요. 1차 총회 때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을 주제로 내세웠는데,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표현이었어요. 2차, 3차, 5차, 6차는 전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주제를 정했어요. 7차 캔버라 총회는 성령을 주제로 삼은 유일한 경우였어요. 그리고 그 이후 8차부터 10차까지는 전부 하나님을 주제로 했어요.
박종화 지난번 부산총회는 좀 특별했어요. 제가 당시 총회 준비위원이었는데, 한국에서 총회를 열기로 결정한 다음에 무엇을 주제로 내세울 것인지를 논의했어요. 한반도와 아시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 한반도의 상황을 담아낼 가치가 평화와 정의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배경이 있어요. 1983년 제6차 벤쿠버 총회에서 JPIC가 총회의 큰 흐름이 되었잖아요. 이후 1990년에 서울에서 JPIC 세계대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열렸어요. 한국으로 다시 가서 한반도 상황과 JPIC의 현장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정의와 평화를 확인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지요. 주최국인 한국을 고려한 이 주제에 아프리카 교회들이 동의했고, 전 세계가 현재의 흐름이라며 동의했지요. 이 주제를 정할 때 한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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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에서는 사랑과 화해를 내세웠어요. 표현은 ‘사랑’이라고 했지만, 다시 교회의 본모습을 돌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교회가 사회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지가 과거에 정의와 평화로 표현되었다면, 이번에는 다시 교회의 원론으로 돌아왔고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세계 상황의 흐름과 관련이 있고, 아마도 모두들 거기에 동의해서 이런 주제가 정해졌을 겁니다.
김종훈 지금 사이비 이단들과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WCC는 비성경적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WCC 주제만 놓고 보아도 WCC가 성경에 입각해서 활동하는 기구라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조금 전에 정리해주신 대로 1차부터 10차 총회까지 성부, 성자, 성령이 주제였단 말이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된 상태를 하나로 일치시켜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는 비전을 WCC가 내세우는 것 아니겠어요?
WCC가 내세우는 표현 중에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보수적인 교계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혼동한 것 같아요. 삼위일체 하나님과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본질을 공유하고 있으면, 각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꽃피는 여러 형태의 신앙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되는데, 비본질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질까지 매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WCC의 주제와 활동이 복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흥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와 WCC의 관계로 넘어가고 있는데요. 이번 총회를 준비하면서 한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는데, 부산총회 때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이 굉장했는데, 이번에는 한국교회가 조용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손달익 부산총회 때는 우리가 손님을 모시는 입장이었으니, 아무래도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지요. 물론 총회 자체의 기획과 진행은 WCC 본부에서 하지만, 주최 측의 입장에서 행사 전반에 관여하고, 사소하게는 손님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고 각국에서 오시는 귀빈들 의전도 잘해야 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아무래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많은 교회가 참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절한 대표를 선정해서 파송하는 일, 총대는 아니지만 참관할 분들을 모집하고 보내는 일 등을 하는 정도로 보여요. 부산총회 때 모든 준비를 책임졌을 때와 이번은 본질적으로 많이 다르지 않을까요?
김흥수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행사가 아니니 당연히 그런 차이가 있겠지만, 그때는 WCC 반대운동이 굉장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손달익 그때는 우리 마당에 와서 하니까 반대 움직임이 극렬했던 것 같고요.
김종훈 사실 지금도 반대가 없는 것은 아니고, 무언의 압력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봅니다. 2주 전쯤에 감리교 준비위원회 조찬 모임을 했어요. 이번 대회 관련 지도자들과 전·현직 감독 등이 초대되었는데, 제가 가서 보니까 많이 안 왔더라고요. 실무자의 얘기가, 가고는 싶은데 거기 가면, 그래서 언론에서 언급이 되면 내 목회에 지장이 있다, 또 감독 선거에 나오려는 후보자들 역시 선거에 지장이 있다 등등 뭐 이런 분위기라서 정말 소신 있는 사람들만 나오는 게 현실이에요. 무언의 압력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일이 진행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손달익 저희 예장 통합 교단 역시 그런 기류와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죠. 가급적 WCC 관련하여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엮이지 않으려고 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쓰지요. WCC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WCC의 태동과 한국교회

김종훈 WCC가 태동하게 된 과정, WCC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과 신학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박종화 WCC는 교회일치, 선교, 봉사라는 세 기둥의 삼각형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보수, 진보와 상관없이 이 세 가지를 안 하면 에큐메니컬 운동이 아니에요. 이는 곧 교회 사명이잖아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1910년 에든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려요. 선교사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국제선교협의회(IMC)로 발전합니다. 그 후 에큐메니컬 운동은 전통과 신학을 달리하는 교회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예컨대 전쟁 같은 문제에 어떻게 협력하며 행동할 것인지 모색하는데, 그것이 192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작한 삶과 봉사(Life and Work)라는 세계대회예요. 그리고 어떻게 공통된 신앙을 고백할 것인지 하는 영역으로 확대되는데, 그것이 1927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대회예요. 바로 이것이 WCC의 모체입니다.
김흥수 말씀하신 선교, 삶과 봉사, 신앙과 직제, 이 세 운동을 하나의 세계기구로 만들려는 운동이 시작되어, 1937년 삶과 봉사, 신앙과 직제 이 두 운동의 대표들은 WCC의 창립을 결의하고, 1938년 기초강령을 만들었습니다. 사회 참여, 신앙 문제, 전도 영역이 따로따로 모이지 말고 함께 모여서 논의하기 위해 협의회(Council)를 만들기로 한 거죠. 그리고 이름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로 정했죠. WCC 준비위원회를 세우고 WCC를 만들려는 그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미뤄졌다가 1948년에 WCC가 조직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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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 이야기로 돌아가죠. 공식적으로는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첫 총회가 열리지만, 그 이전인 1947년부터 우리나라의 변홍규 박사가 WCC 준비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이미 1938년에 WCC 준비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장로교와 감리교에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이것은 일제가 가로챈 것 같아요. WCC에서는 보냈다고 하는데, 우리 쪽에는 그런 문서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한국교회는 WCC 창립에 관여한 거예요.
1948년 창립 총회에 감리교와 장로교가 참석했어요. 장로교는 갈라지기 전이라 문제가 없었고, 감리교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감리교의 재건파와 복흥파 두 군데에서 다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그랬어요. WCC는 타협해서 한 사람만 보내라고 했지만, 타협이 안 되었어요. 결국 재건파에서 한 사람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변홍규 박사죠. 그러나 WCC 문서를 보면 공식 참가자로 인정을 안 해줍니다. 어쨌든 이렇게 WCC와 관계가 맺어졌는데, 1950년대 이르러서 WCC 가입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WCC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등장하는 삶과 봉사(Life and Work),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같은 것은 제대로 소개가 안 되고, 정현경 교수의 주제강연과 같은 특정한 사안에 대한 논란만 생긴 거죠.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전이해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WCC에 대한 오해, 반성과 성찰

손달익 저는 지금 WCC를 두고 생긴 오해와 논란을 양비론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앞장서 온 분들과 기관들이 비판에 맞서서 알기 쉬운 용어로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너무도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몇몇 대표 선수의 그라운드가 될 뿐 일반 교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소홀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지요. 게다가 정치공학적 차원의 여러 공격에 대해 제대로 방어하고 설명하면서 이해시키는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꾸만 상승 작용을 일으켰고, 또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 전체의 보수화되는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WCC라고 해서 100% 다 옳은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혹 과오가 있었으면 있는 것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으면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진중한 대화의 장이 새롭게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훈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면, 저는 보수 세력이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봅니다. 한국에 진보 정권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외국의 비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가 점점 쇠락하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결집할 어떤 이슈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런 배경에서 WCC와 NCC가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폭발시킬 계기가 부산총회였던 것 같아요. 외국에서 할 때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돈과 조직과 정치 세력이 교계 내의 정치 세력과 결합해서 사건을 크게 벌였다고 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 문제를 이슈화하기에는 계기가 적절하지 않아 조용한 것 같은데, 언젠가 또 필요할 때 폭발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전선은 WCC보다 NCC 쪽으로, 눈앞에 보이는 조직을 향해 좀 더 구체화된다고 생각해요.
손 목사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WCC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하면서 어젠다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했지요. 그게 한국교회에도 NCC라는 채널을 통해서, 꼭 NCC에 있지 않더라도 에큐메니컬 리더들이 여론과 담론을 만들고 진행되어온 거죠. 그러나 정말로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고 많은 교회를 움직이는 언어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정의를 말했는데 어느 날 어른들의 어젠다가 평화로 바뀌었어요. 세계의 언어가 바뀌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었어요. 이렇게 간극이 벌어지면서 반대하는 세력이 공격할 여지가 생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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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달익 사실 NCC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참 많은 일을 했어요. 물론 그 반대파는 늘 있게 마련이고요. 그런데 지금 NCC가 가진 구조, 인적 역량, 쓰는 언어가 교회랑 너무 멀어졌어요. 일선에 있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문제가 뭐냐면 WCC든 NCC든지 간에 에큐메니컬 운동에 앞장선 분들이나 지도자, 교단 행정가 같은 분들이 한국의 보통 교회의 의견과 생각,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부족했다는 거죠. 보통 교회와의 괴리가 너무 심해졌어요. 도무지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 다른 구조 속에서 활동을 하니까 이 운동이 일반 교회들과는 관계가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에큐메니컬 운동이 좀 더 보통 교회들을 대변하고 일반 교회와 성도들의 정서를 감안한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데 일반인들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박종화 제가 독일에서 목회할 때의 경험이에요. WCC 총회를 하면, 총회 문서를 다 교회에 내려보냅니다. 그러면 여신도회, 남신도회 등이 모여 자기들이 원하는 테마를 가지고 토론을 해요. 사전 준비 모임도 하고, 총회가 끝난 다음에도 하고요. WCC 총회에서 다루는 어떤 사안에 대해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그것이 교회에서 공유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은 WCC 총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냥 큰 총회를 했다는 사실만 알지 내용을 몰라요. 그만큼 우리가 내용에 대해서 부실해요.
김종훈 총대들이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다시 뿔뿔이 흩어지기보다는, 가기 전부터 위원들이 모여서 총회의 각 영역에 골고루 참석하고, 총회가 끝난 뒤에는 워크숍을 열어서 총회의 성과와 결과물을 알리는 작업이 있다면 좋겠네요. 한국준비위원회에서 이 부분도 신경써야 할 것입니다.
김흥수 말씀하신 대로 WCC에서 무엇을 토론하고 결정했는지가 한국교회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측면이 있는데, 이게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1948년 WCC 암스테르담 총회에 장로교 대표 겸 NCC 총무 자격으로 김관식 목사가 참석했는데, 이분이 총회에 다녀와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귀국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손달익 그런 상징적인 일이 있었네요. 그리고 WCC 문서나 결과물들을 한국교회에 보급한다고 할 때, 일반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용어들로 재해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문서들이 목회자들이 읽기에도 너무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딱 부러진 결론을 내주면 좋겠지만, 그게 회의 한두 번 한다고 해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성격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느낌으로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재해석하는 작업을 거쳐서 보급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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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네. 맞아요. NCC가 구심점이 되어서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부산총회 때 감리교 준비위원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있어요. 공문을 각 교회에 다 보냈는데 전혀 응답이 없길래, 알아보니까 교역자들이 전부 쓰레기통에 넣어버려서 보질 않아요. 제가 67년도에 학교 다닐 때 윤성범 박사님, 김용옥 박사님께 에큐메닉스라는 과목을 배웠어요.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그때 배운 바가 있어서 조금은 아는데, 신학교에 지금 그 과목이 없어요. 그게 한 원인이지 싶습니다.
손달익 맞습니다. 요새는 신학교에서 에큐메닉스 과목을 가르치지 않아요. 교회사 가르치는 분들이 20세기 교회사를 다루면서 잠깐 한두 시간 정도 에큐메니즘이나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대해서 교회사의 일부분으로만 다루고 있습니다.
김종훈 결국 ‘신학 교육의 문제구나’라는 생각으로 교단 총회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했어요. 신학교 교육과정에 에큐메닉스 과목을 필수로 넣어야 한다고 제가 주장해서 첫 번째 총회에서는 통과가 안 되었고, 두 번째 총회에서는 통과가 되었어요. 그래서 감리교 산하 신학대학 세 곳의 총장, 이사장, 교무처장 총 9명을 불러서, 총회에서 결의가 되었으니 에큐메닉스를 필수 과목으로 넣으라고 이야기했단 말이죠. 그런데 알아보니까 나중에 다시 선택 과목으로 바뀌어 버렸더라고요. 신학 교육에서부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왜냐하면 목사들이 몰라요. 목사들이 에큐메닉스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부흥이나 성장 같은 분야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으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부산총회 때 감리교 서울연회에서는 평신도들이 NCC 탈퇴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탈퇴를 추진하는 측의 주요 인물들을 불러모아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대화를 하며 설득 작업을 했어요. 그랬더니 “왜 이런 걸 안 가르쳐줬습니까.”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NCC 활동을 하면서 보니, 기장은 평신도들을 잘 참여시켜서 실질적으로 필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평신도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감리교는 점점 목사 중심으로, 엘리트 중심으로 가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후로 평신도 두 명을 NCC 실행위원회에 넣어서 그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했지요.
박종화 우리는 주기도문을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 제대로 모르고 외웁니다. 그냥 자기 것처럼요. 주기도문은 사실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나왔습니다. 니케아 신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니케아 신조를 사용하지 않지만 세계 교회에서는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데, 이건 381년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나왔어요.
교회는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초대교회부터 이어진 전통을 다 없애고 종교개혁부터 계보를 시작합니다. 에큐메니컬 운동도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에 대한 역사 또한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WCC에 참석해 보면 서구 교회는 좋든 싫든, 존경하든 아니든 옛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종교개혁을 겪지 않고 선교에 의해 탄생한 제3세계 교회들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루터와 칼뱅, 웨슬리 이후만 알아요. 그러니까 대화하기가 어렵고 신학적인 문제를 토론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심지어 최근에 와서 신앙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정치, 이념, 체제, 사회에만 관심을 가지고 토론을 합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김종훈 유엔 총회에 비유해보자면, 가톨릭에서 유엔 총회와 같은 기구는 바로 바티칸이죠. 그런데 개신교에는 유엔 총회 같은 기구가 여럿이에요. WCC는 개신교의 유엔 총회 비슷한 국제기구이고, 복음주의자들에게는 WEF(World Evangelical Fellowship) 등 몇 가지 기구가 있는데, 중요한 건 이게 없으면 세계적 차원의 연합운동을 하거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한국교회 또한 세계 교회를 무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소통 창구가 필요한데,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채널로서 국제적인 기구인 WCC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주장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도구라는 측면에서 WCC를 바라보고 활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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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한국적인 이념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판단을 하거든요. 유엔을 한국적 이념으로 판단하면 유엔에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들도 있으니 유엔 총회에 가지 말아야죠. WCC가 무조건 옳다는 말이 아니라, WCC는 유엔과 같은 기구, 세계 공동체라는 거죠. 그에 대한 비판과 토론은 일단 참석한 뒤에 해도 돼요. 가기도 전에 그냥 문을 닫아버리니까 문제가 되죠.
박종화 WCC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WCC에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교회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일화가 동유럽 교회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정교회와 동유럽 교회들이 WCC에 가입했잖아요.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 이들 교회가 WCC에 고맙다는 표시를 했어요. WCC가 아니었으면 냉전 시절에 러시아정교회, 루마니아정교회는 다 죽었을 거다 그런 말이죠.
김종훈 사회주의 아래서, 공산주의 아래서 다 죽었을 거라는 말이죠?
박종화 네. 그래서 WCC가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공산주의권 교회들이 하는 겁니다. 물론 사회주의 정권에서 세워진 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쟁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가 유일하게 자기 생명을 지켜준 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손달익 헝가리 교회나 체코 형제교회나 같은 입장인 것 같네요.
박종화 그리고 WCC가 국제기구로서 역할을 보여준 또 다른 일화가 있습니다. 1998년 WCC 하라레 총회 때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왔어요. 그가 연설을 하는데, WCC에 대해 “Thank you very much, World Council of Churches. You saved us.”라고 하는 거예요. 당시 WCC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만델라의 감사 인사에 총회 회의장이 난리가 난 거예요. WCC가 PCR(Programme to Combat Racism)을 운영하며 테러단체를 지원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용공이니 좌파니 그런 오해도 받았는데, 세계적인 지도자 만델라가 자기 입으로 WCC가 아니었으면 넬슨 만델라도 없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도 없고, 흑인 해방도 없었다고 말한 겁니다. 마치 동유럽 교회가 WCC 아니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다고 한 것처럼요.
아마 보통 신도들은 이런 에큐메니컬 운동이 왜 필요한지, 왜 WCC 같은 국제기구가 필요한지 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맞아요. 개인 구원을 위해서는 국제기구가 필요 없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유지하면 돼요. 하지만 개인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공적인 고백을 위해서는 국내의 연합과 국제적인 연합이 꼭 필요해요. 그 플랫폼이 바로 NCC이고 WCC라는 말이에요.
손달익 결국은 동유럽 교회가 용공 시비에 휘말렸지만,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핵심 세력이죠.
박종화 맞아요. 공산주의를 무너뜨렸잖아요.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어요.

반WCC의 현실

손달익 WCC 문제를 거론할 때, 일부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WCC를 악마화하는 공격에 대해 방어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동시에 WCC를 마치 천국에 있는 기구처럼 미화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인 사실에 따라서 냉정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어요.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평가를 가지고 한국교회를 설득하고 한국 사회 앞에 제대로 알리고 협력을 구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WCC든지 NCC 운동이든지 한국교회 현장 안에서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적개심마저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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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너무 공중에서 시작하면 또 현장 교회와 괴리감을 가지게 될 것 같고요. 일부 보수적인 성도들의 반응 또한 무서운 거니까요. 실제로 지난번 부산 WCC 총회를 하고 난 뒤 우리 교단의 유력한 평신도들이 보수적 교단의 교회로 옮긴 경우들이 많고 헌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부산 지역 목회자들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적인 특성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일선 목회자들의 두려움과 염려도 우리가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종훈 제가 목회하던 교회도 부산총회 이후 대학생들 다섯 명이 교회를 떠났어요. “목사가 표리부동하다. 강단에서는 국가를 외치고 민족을 외치다가, 용공 단체(NCC)에 가서 수장 노릇했다.”라고 항의 편지를 남기고 떠났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정말 목회 현장에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에요.
박종화 그러니까 저는 WCC를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사실관계를 좀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한국전쟁 직후 NCC 총무와 한경직 목사가 공동으로 국제선교협의회와 WCC 국제문제교회위원회에 전쟁 발발 전보를 보냈고, WCC가 한국을 도와준 사실 같은 거죠.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김흥수 1948년 8월에 WCC 창립 총회를 열기 위해 몇 년간 계속 준비가 이루어졌죠. 미국의 보수적인 근본주의자인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가 이것을 알고, 그보다 열흘 전에 같은 암스테르담에서 국제기독교협의회(ICCC,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라는 걸 만듭니다.
손달익 ICCC는 반WCC 성격의 단체죠?
김흥수 그 단체가 WCC는 용공단체라고 한국교회를 부추겼어요. 일부 공산권 교회들이 가담했다는 이유였죠. 또 1951년에는 역시 보수적인 단체인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으로 명칭이 변경되는데 그게 만들어집니다. 한국교회의 박형룡이나 박윤선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반응했고요. 이렇게 장로교가 1959년에 WCC 가입 문제로 통합과 합동으로 갈라지기 이전에 이미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상황에서 미국 보수 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이 구호금을 주며 WCC를 탈퇴하라고 권했죠. 그래서 한국교회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거기에 이승만이 가담했고요. 이런 배경에서 WCC에 대한 오해가 초기부터 한국교회에 뿌리 깊게 생겼습니다.
손달익 장로교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할 무렵에는 완전히 독립된 민족 교회를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WCC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분열 과정에 매킨타이어의 영향이 컸고, 그를 통해 많은 정체불명의 자금이 사용되었으며, 또 후속적인 지원도 약속했다는 설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건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면 아마 모두 아실 겁니다.
박종화 제가 매킨타이어를 만난 일이 두 번 있습니다. WCC 캔버라 총회 때 매킨타이어가 왔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피켓 들고 WCC 행사장 주위를 하루종일 돌더군요. 하라레 총회 때도 와서 같은 팻말을 들었어요. 인자한 할아버지가 “KGB=WCC”, “사탄아 물러가라” 그런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온 아무개라고 저를 소개하며, 이걸 왜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이 시킨다고 답하더라고요. 이 사람은 평생 사명을 가지고 WCC를 반대했어요.
김흥수 전쟁 중에 한국교회가 구호품을 얻기 위해서 한경직, 류형기 두 분을 미국으로 보냈잖아요. 그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경직은 장로교회에, 류형기는 감리교회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감리교 정동교회에서 목회했던 김광우 목사의 전기에 보면 유학 시절 류형기 목사가 호텔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갔대요. 그런데 거기에 매킨타이어가 오더라는 거예요. 와서 하는 말이 ‘WCC를 탈퇴해라. 내가 돈 다 마련해 줄 테니까 고생스럽게 돌아다니지 말고 탈퇴만 해라.’ 하고 설득했다는 거예요. 집요한 사람이죠.

WCC에 대한 오해-용공,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김흥수 WCC를 접한 한국교회의 한쪽은 신학적인 접근을 했고 한쪽은 이념적인 접근을 했는데, 지금도 똑같습니다. WCC를 이해할 때 한쪽에서는 용공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죠.
손달익 대체로 한국교회 목회 현장에서 접하는 WCC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면 첫째가 지금 말씀하신 용공성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종교다원주의를 옹호한다는 오해고요, 셋째로는 최근에 많이 부상한 동성애 관련 이슈입니다. 한국교회는 대체적으로 간결하고 분명한 답을 원하는데, WCC의 설명은 복잡해서 그대로 성도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WCC 용공 시비는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인 동유럽의 교회들이 WCC 회원교회로 있는데, 그 교회들이 정상적인 교회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정권과 야합하는 교회들이 아닌지, 소위 용공적인 교회들이 아니냐며 소련교회와의 연관성 및 6·25 남침 등과 관련해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첫째이죠.
둘째는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로 넘어가면서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그 투쟁의 대상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었고 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한 것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비동맹 운동이었죠. 이때 WCC는 아프리카 약소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어요. 그 결과 WCC는 서방 교회들보다는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비동맹운동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심이 60년대에 특히 불거졌지요.
그래서 이런 오해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과 이해, 설득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덤터기를 우리에게 씌우냐’라는 방식으로만 임했고, 반대하시는 분들은 ‘봐라. 이게 증거 아니냐’라고만 말했던 거예요. 지금까지도 성실하고 지속적인 대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박종화 지금 말씀하신 것에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네요. 먼저 한국전쟁 때문에 완전히 망했던 독일이 다시 군수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일본 역시 한국전쟁으로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McCarthyism)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매킨타이어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제가 어떤 기록을 봤더니 매킨타이어가 한국에 10만 달러를 가져와서 한국교회를 다 갈라놨다고 써 있어요. 당시 10만 달러는 정말 큰돈입니다.
당시 매킨타이어는 공화당 상원의원인 매카시와 단짝이었어요. 매카시는 1948년부터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매카시는 “미국에 현재 205명의 공산당 첩자가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 57명이 국무부에 있다. 색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지요. 나중에 무슨 말까지 나왔냐면, “노조와 국회에도 공산주의자가 있고 심지어 트루먼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다.”라고 했어요. 트루먼 다음으로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민주당이 대통령으로 세우려고 했다가 공화당에서 채간 사람이에요. 공화당의 매카시는 전쟁 영웅인 아이젠하워까지 공산주의자로 몰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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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매킨타이어가 매카시와 가깝게 지냈고, 매카시가 일으킨 광풍의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거죠. 1954년 에반스톤 총회에서 미국교회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동유럽 공산권과 대화하여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라고 건의했어요. 그래서 미국교회가 모스크바에 찾아갑니다. 모스크바정교회, 루마니아정교회, 불가리아정교회, 폴란드정교회와 만나 합의를 했어요. WCC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거예요. 공산당 때문에 난리가 난 판에 WCC 총회에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지요. 또 미국 NCC가 중국 마오쩌둥과 평화협정을 맺자고 미국 정부에 건의한 일도 있었습니다. 매킨타이어가 이런 일들을 놓치지 않고 꼬투리를 잡아서 WCC를 용공으로 몰았던 거죠.
이로 인해 러시아정교회는 1961년 총회에서 WCC에 가입합니다. 1972년에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화해를 하고요. 그러니까 WCC는 대화의 시작을 열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매카시즘의 여파로 한국에서는 NCC, WCC가 모두 공산주의 단체인 것처럼 잘못된 이야기가 퍼진 것이죠. 당시 이승만 정부의 반공 정책도 이런 흐름에 힘을 실었습니다.
손달익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어요. WCC와 NCC의 용공성 시비가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6·25 전쟁이라는 경험,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피해, 또 북한에서 월남한 많은 성도들이 겪은 공산 치하에서의 핍박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이 사안에 대응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이러한 한국교회의 정서를 감안하지 않고 용공성 시비에 대해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조금 면밀하게 우리 사회의 상처를 살피고, 원인을 깊이 헤아려 설득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종화 한국전쟁 때 전 세계 NGO 중 처음으로 한국교회에 편지를 보낸 기구가 WCC입니다. 전쟁 위로 편지를 보내고 협조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때부터 중국은 ‘WCC는 완전히 친자본주의’라며 참전 16개국을 거세게 비난했어요. 그리고 중국교회는 우리를 도운 WCC를 반대하여 탈퇴했어요. 그로부터 1992년에 재가입할 때까지 중국교회는 WCC를 떠나 있었습니다. 이념 논쟁은 다른 차원이지만, WCC는 분명히 한국을 도왔어요. 특히 유엔의 16개 참전국은 모두 WCC 회원교회를 두고 있었어요.
김종훈 WCC가 한국전쟁 소식을 UN에 알려서 도와주었는데요. 그런데 1948년에 WCC가 창립했고 1950년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한국의 감리교와 장로교가 초창기부터 WCC에 참석해서 전쟁 소식을 알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요? 아니면 WCC에서 먼저 알고 한 것인가요?
김흥수 이게 좀 복잡한데요. 전쟁이 일어나고 2주 뒤에 1950년 7월 9일부터 15일까지 토론토에서 WCC 중앙위원회가 열렸어요. 그때 북한의 남침 사실을 인정한 토론토 성명서(Toronto Statement)가 채택되었습니다.
김종훈 그건 총회는 아니죠?
김흥수 네. 중앙위원회였습니다. 총회는 한참 뒤 1954년이죠. 당시 중앙위원회 의제에는 한국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회 2주 전에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 거죠. 그래서 국제문제교회위원회가 먼저 7월 초 토론토에 모여서 한국전쟁에 관한 얘기를 했고, 며칠 뒤 열린 중앙위원회로 의제를 넘겼지요.
김종훈 그럼 우리 한국 대표 위원이 있었나요?
김흥수 당시 한국은 중앙위원회 선임이 안 됐죠.
김종훈 그런데 어떻게 전쟁 소식을 알렸죠?
김흥수 NCC가 소식을 알린 겁니다. 1950년 6월 26일, NCC가 두 군데에 전보를 칩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국제문제교회위원회에 보냈어요. 당시 국제문제위원회는 WCC 산하기구가 아니라 WCC와 IMC(국제선교협의회)가 공동으로 설립한 위원회였어요. NCC가 IMC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전보를 친 거예요. 다른 한 전보는 IMC에 같은 내용으로 보낸 것입니다. 핵심은 딱 두 줄입니다. “대규모 침략군이 서울을 압박하고 있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한국을 도와달라.” 그 전보를 제가 WCC 아카이브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전보는 한경직과 남궁혁의 이름으로 보냈습니다. 남궁혁은 당시 NCC 총무였고, 한경직은 외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죠. 전보를 받고 IMC, 미국 NCC, 국제문제위원회가 당시 뉴욕시에 모여서 회의를 했죠. 열흘쯤 뒤에 말씀드렸듯 토론토에서 국제문제위원회와 중앙위원회의 토론을 거쳐서 성명서를 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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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명서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이 전쟁의 성격을 ‘북이 남쪽을 침략한 것’이라고 규정한 거예요. 당시에 소련이나 중국은 아직 증거가 없다며 그 사실을 거부했거든요. 그런데 WCC는 분명하게 ‘첫째, 북쪽이 침략한 것이다. 둘째, 유엔군을 파견하기로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하고 말했어요. 당시 WCC에 가입해있던 중국, 동유럽에서 굉장히 항의가 많았습니다. 아직 분명한 근거도 없는데 미국 쪽을 편든다는 거였어요. 그런 논쟁이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 동안 계속됩니다. WCC가 이 성명서 때문에 굉장히 시달렸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WCC는 남쪽 편을 든 거죠.
그런데 문제는 1951년에 이승만이 WCC가 용공이라는 얘기를 했고요. 그리고 25명의 국회의원이 한국교회가 WCC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거예요. WCC가 그렇게 도와줬고, 구호 활동도 해왔는데 말이지요. 1951년부터 휴전 얘기가 나오는데 WCC나 미국의 모든 교회가 휴전을 지지했거든요. 그런데 이승만은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주장했으니까 WCC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매킨타이어의 말을 인용하여, WCC가 용공이라는 얘기를 국회의원들에게 했던 거죠.
김종훈 그래서 국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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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국회가 아니고 25명의 국회의원이 그걸 발표한 거예요. 그게 1951년인데, 이 휴전 얘기가 1953년 봄이 되면 본격화됩니다. 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잖아요. 그 당시에 국제문제교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오토 프레데릭 놀데가 우리나라에 입국해서 한국교회의 의견을 청취합니다. 이승만도 만났습니다. 그 회담 일지가 이번 「기독교사상」 7월호에 게재됐는데요, ‘세계 교회는 지금 휴전을 원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휴전을 반대하고 있는데, 세계 교회의 의견은 이렇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WCC, 미국 NCC, 국제선교협의회 등과 협의한 의견이다.’ 하는 내용을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달했어요. 그리고 7월 3일에 이승만을 접견해서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에 이승만은 ‘휴전을 얘기하는 거 보니, WCC는 용공이다.’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된 거죠. 그게 배경이 되겠네요.
김종훈 관련 문서가 있습니까?
김흥수 물론입니다. 제가 WCC 아카이브에서 찾아서 출판이 됐지요.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1954년에 에반스톤 총회가 있었어요. 이승만 정부가 비자를 안 내줘서 감리교는 포기했고요. 장로교도 한경직이 가기로 했는데 하도 비자가 안 나오니까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보내게 되는 거죠. 교단에서 보낸 대표들이 54년 총회에 가서 WCC가 정말 용공인지 면밀하게 관찰합니다. 유호준 목사와 김현정 목사는 ‘WCC는 교회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수퍼 처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조직’이라고 보고했고요, 반면 명신홍 목사는 ‘WCC가 용공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총회가 55년부터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 59년에 완전히 갈라진 거죠. 물론 기장과 고신파는 그 전에 이미 떨어져 나갔었고요. 그렇게 통합과 합동이 갈라지게 된 거죠.
박종화 1948년 암스테르담 총회 때 체코의 신학자 로마드카와 나중에 미국의 국무장관이 된 존 포스터 덜레스가 대논쟁을 시작해요.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물론 덜레스가 나중에 국무장관을 했지만, 당시 덜레스가 밝힌 WCC 입장은 특정한 이념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비판한다는 거였어요. 그러나 실제로 자유세계를 대변한 게 덜레스였어요. 이 덜레스가 미국 NCC 국제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덜레스가 사실 한국 문제 때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데, 덜레스가 반드시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손달익 그때 기록을 보면 덜레스 이름이 자주 나와요. 구체적으로 뭘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요.
박종화 용공 문제에 관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 이 두 가지도 꼭 짚어야 해요. 동성애 문제는, 예를 들어 유엔 총회가 동성애에 대한 결의를 할 수가 없겠죠. 미국의 연합감리교회(UMC) 같은 교단에서는 이런 결의를 할 수 있지만 WCC 같은 국제기구는 못 해요.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이 모인 국제회의는 어느 한 테마를 정치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WCC는 한 번도 그런 결의를 한 일이 없어요.
종교다원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WCC 안에 인도 사람, 아프리카 사람, 서양 사람 등등 종교적 배경이 다른 여러 사람이 오잖아요. 그래서 종교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을 돕는 일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지만, 어떤 종교를 지지한다 하든가 찬성한다든가 하는 발언은 국제기구에서 의제로 다룰 수가 없어요. WCC는 한 번도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일이 없습니다.
WCC 안의 여러 그룹들은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어요. 하나는 배타주의(exclusivism), 종교 간의 대화를 반대하는 입장이고요. 두 번째는 혼합주의(syncretism)이고요. 세 번째는 포용주의(inclusivism), 즉 비판적 연대예요. WCC는 종교다원주의에 관해서는 일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불교를 종교로 인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공존한다.’ 정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WCC에 속한 개인이나 개교회는 각자의 의견을 말합니다. WCC의 공식문서를 보면,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논의는 ‘보고서’에만 존재해요. 그 보고서는 토론의 내용을 담은 것이지, WCC의 공식 입장이 아니거든요. 종교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가 다 그래요. 국제기구의 성격이 그런 것이거든요. WCC를 종교다원주의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종교다원주의적인 주장은 WCC에 속한 몇 사람들만이 하는 얘기예요. 공식적으로는 이 문제를 다루어 어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 각자 입장이 다른 회원교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안건이 통과가 되겠어요?
성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감리교는 성소수자 문제를 결의할 수 있지만, WCC는 못 합니다. 그걸 결의하는 순간 WCC는 깨져요. WCC는 단지 토론의 광장, 열린 광장일 뿐 그 문제를 결의할 수는 없어요. 국제기구인 WCC는 그런 결의를 한 적이 없고 할 수도 없다는 거죠.
손달익 국제기구로서의 성격과 한계 때문에 의견이 엇갈리는 첨예한 사항을 WCC가 의제로 다룰 수도 없고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반대로 WCC 반대론자들은 교파주의적으로 생각해서 ‘왜 그 문제에 대해 명백히 결정하지 못하느냐’는 말로 공격하지요. 확실하게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거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인데, WCC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김흥수 이야기를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WCC 반대론자들은 ‘용공, 종교다원주의, 성소수자 문제’ 세 가지로 WCC를 공격하지만 WCC는 한국전쟁이 나자마자 유엔군 파병을 지지했으며, 종교다원주의와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서도 공식적으로 그것들을 인정하고 채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쉬운 언어로 오늘날의 교회에 다가가 그간의 벌어진 간격을 좁히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좋은 말씀을 오늘 나누었습니다. 장시간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2022년 9월호(통권 7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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