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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2년 8월호)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에서 카를스루에로
  

본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창립 정신

WCC는 인류의 신음과 고통 속에서 탄생했다. 20세기는 인류의 광기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발현된 세기이다. 1938년에 WCC 창립 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출범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실제 소통이 불가능했던 전쟁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과연 마음과 힘을 모아 WCC를 창설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광기와 인간의 야수성을 목도한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교단과 국경을 넘어서 일치와 연대를 이루고, 파괴적인 폭력과 죄악의 세력에 함께 맞서야 할 필요를 스스로 절감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준비위원회는 1946년에 첫 번째 모임을 갖고 제네바의 성 베드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장기간 투옥되었던 세 사람의 설교자가 강단에 섰다. 먼저 고백교회의 지도자였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갈 때 자신의 연로하신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회상하였다. “내 아들아, 기운을 내라. 그린란드로부터 태평양 섬에 이르기까지 너를 위해 기도할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니묄러 목사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에, 장기간의 감옥 생활에도 또렷한 정신을 잃지 않고 심지어 기쁨을 누리기까지 했다고 증언하였다. 그다음에는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상해에 감금되었던 중국인이 증언하였다. 일본인 간수가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종종 감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노르웨이 교회의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베르그라프 주교가 증언하였다. 숲속 오두막에 가택연금을 당했던 시절, 식량을 가져다 준 사람이 창문을 통해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어젯밤 우리 아내와 함께 BBC를 듣고 있었는데 캔터베리 대주교님이 주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노르웨이 주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 결론을 맺었다. “하나님은 전쟁 기간 동안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의 그리스도인들아, 너희는 하나다. 이 사실이 현실이 되도록, 이제 그렇게 행동하여라.’” 1946년 제네바의 성 베드로 교회에서 개최된 준비위원회 예배를 회상하며 글을 남긴 올리버 톰킨스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WCC는 탄생하였다.”1
드디어 1948년 WCC 제1차 총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었다. 세계교회 총대들은 문화, 언어, 교단, 진영 그리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우리는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We intend to stay together”, 요 17:11, 21, 22, 엡 4:3 등) 세계 각처에 흩어져 존재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후 이천 년의 세월 동안 분열의 역사를 밟아왔다. 참혹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세계교회는 이제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이루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인류 구원을 위한 소망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담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서적 교회론을 현대적 상황 안에서 추진하게 한 원동력은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기독교 신앙운동의 열정이다. WCC 헌장 제3조는 WCC의 ‘목적과 기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WCC는 하나의 에큐메니컬 운동(the one ecumenical movement)에 힘쓰는 교회들로 구성된다. WCC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삶과 봉사(Life and Work), 국제선교협의회(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세계기독교교육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ristian Education)와 같은 세계운동의 과업을 통합한다.” 모든 기독교 신앙운동이 그 초점과 기구적 표현은 달라도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헌장 제3조에는 ‘하나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표현이 네 번이나 등장한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WCC 제5대 총무(1993-2003) 콘라드 라이저는 전통적인 WCC 회원교회들과 NCC 네트워크 외부에 있는 오순절과 복음주의 진영 등 세계 기독교의 다양한 그룹들과 대화하는 장인 ‘글로벌 크리스천 포럼’을 마련하였다. 헌장 제3조에 잘 나타나 있듯이 WCC를 낳은 신앙운동의 역사적 모체는 주로 서양교회이다. 세계 기독교가 남반구로 이양되는 21세기에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발흥시킨 탁월한 신앙정신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탈식민주의 상황과 접목시켜 나아가는 주체적 노력이 에큐메니컬 운동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다.
WCC의 전설적인 인물인 초대 총무 비서트 후프트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존재하게 된 것은 자신과 동료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모으는 데 성공해서가 아니라고 겸허하게 인정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고 우리는 응답할 수밖에 없었기에 에큐메니컬 운동이 일어났다.”라고 증언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리의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연합하시는 주님의 운동이기 때문에 그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성공할 때도 있을 것이고, 정체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인기가 있을 때도 있을 것이고, 오로지 진정한 확신을 지닌 사람들만이 헌신할 때도 있을 것이다. 윌리엄 템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대의가 사방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충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 증거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한 봉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가심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직도 이 운동은 계속된다.”2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중앙위원회가 연기된 상황에서 그해 6월 실행위원회를 통해 총무대행 인준을 받고 일하기 시작한 루마니아 정교회 신학자 요안 사우카는 ‘대행’ 직함의 한계 속에서도 국제사회에서 WCC를 대표하며 비상시국 상황에 희생적으로 대처해왔다. 이번 중앙위원회에서 그는 자신이 국제 네트워크에서 총무대행으로 일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동시에 에큐메니컬 운동은 하나님이 이끌어가신다고 증언하였다.
WCC 아시아 국장으로 일했던 박경서 박사(대한민국 초대 인권대사, 전 적십자 총재)는 1948년 이후 지금까지 개최된 열 번의 WCC 총회에서 예외적으로 다섯 번을 참석한 평신도 에큐메니컬 리더이다. 그는 부산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18년간의 나의 WCC 제네바 생활은 장로교의 테두리만 맴돌았던 나의 좁은 신앙영역을 넓혀주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된 삶이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가 그들의 무궁무진한 신앙의 전통과 고백을 계속 쏟아내기에 차마 따라갈 수 없는 나의 신앙을 매일 채찍질하며 회개하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WCC 회원교회 전부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신앙고백이다.
스위스 750만의 인구는 한결같이 제네바에 위치한 WCC를 자랑하면서 영의 양식을 주는 원천이요 국민 모두의 영적 생활의 어머니로 여긴다. 초등학생들은 교과서에서 스위스에 위치한 대표적인 5개의 국제기구를 유엔(UN),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노동기구(ILO),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라고 배운다. 순진한 어린애들까지 자랑으로 여기는 WCC이다.3


WCC는 세계 기구들에 정신적 방향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제시하는 기구이다. 뉴욕의 유엔 본부 앞에는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라는 문구를 새긴 ‘이사야의 벽’이 서 있다. WCC 유엔 사무실이 있는 ‘교회 센터’에서 가까운 곳이다. WCC는 지금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인 유엔 체제의 한계 때문에 유엔 개혁을 주창하는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WCC가 유엔 네트워크에서 공신력과 소집력이 있는 대표적인 기독교 기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책임적 발언이다.

2022년 6월 제네바 중앙위원회와 총무 선출

지난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가 제네바의 에큐메니컬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WCC 70주년을 기리는 2018년 중앙위원회 이후 4년 만에 처음 모인 대면 회의였다. 이번 중앙위원회에서는 남아공 연합장로교회 소속이자 프레토리아대학 신학부 학장인 제리 필레이 박사를 총무로 선출하였다. 2019년 11월 인선위원회는 필레이 박사와 함께 인도의 말란카라 시리아 정교회 소속으로 영국의 ‘함께하는 교회’(Churches Together) 국장인 엘리자베스 조이 박사를 총무 후보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총무 선거는 대면회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선거는 2년 반이나 연기되었고, 후보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만약 두 사람을 총무 후보로 추천한 실행위원회의 보고를 받지 않기로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했다면, 이번 제11차 총회에서는 인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서 총무 선출을 재개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선거가 연기된 기간에 후보들의 나이, 소속 교회의 추천 문제, 절차의 정당성 등에 관하여 소문이 무성하였고, 이로 인해 누적된 질문들이 중앙위원회에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인선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의장의 진지한 응답 과정이 진행되었고, WCC가 교회 공동체의 의사결정 문화로서 정착시키고자 노력하는 ‘컨센서스’ 과정과 세 단계의 투표를 거쳐 총무 선출이 이루어졌다. ‘컨센서스’는 만장일치를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성령의 분별을 간구하고, 소수의 반대 의견도 기억하고 존중하는 공동체성을 지향하고자 한다. 구성원들은 회의에서 제시되는 안건과 제안에 대하여 일일이 발언하지 않더라도 오렌지색과 푸른색 카드를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여 ‘컨센서스’ 문화를 세워나간다. 이번 선거 과정은 WCC 총무 선거가 ‘대면’ 중앙위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이 제정된 이유를 직접 경험하는 계기도 되었다. 한편 지구촌의 비상사태 재발 가능성을 감안하여 디지털 선거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일치(Unity) 문서의 중요성

세계교회의 기도와 성찰을 요하는 주요 문서들이 그간의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다루어졌고 이번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제시될 예정이다. WCC 총회는 오랜 연구 혹은 대화 과정을 거친 각종 범주에 속한 다양한 문서 중에서도 교회 일치의 의미에 대한 성서적이고도 시대적인 이해를 담은 ‘일치 문서’를 가장 중시한다.
제10차 부산총회의 일치 문서에 의하면, 교회의 일치는 단순히 교단 연합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일치와 만물의 일치를 예시한다. 제11차 총회의 일치 문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라는 이번 주제에 부합하도록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가 팬데믹, 기아, 기후위기, 다양한 폭력과 고난에 시달리고 있다. 일치 문서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을 통해 세상에 소망을 전하고자 하는 목회적 배려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 안에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다. 이 거룩한 사랑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성적 토대요 자원이다. 교회는 분열과 차별의 세상 속에서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일치, 정의와 평화라는 복음적 가치를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이번 총회의 일치 문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교회들이 함께 일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도를 다시 확인하도록 요청한다.
WCC 제11차 총회 주제는 최초로 ‘사랑’을 언급하는데, 이는 ‘마음의 에큐메니즘’(an ecumenism of the heart)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일치는 획일성과 집단주의를 넘어서는 역동적 신앙 과정이다. 일치를 향한 노력에는 불가피한 차이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존중하는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과 마음에 대한 관심은 양적 성장과 형식주의를 넘어서서 신앙의 질적 성숙, 상처의 치유, 삶의 심오한 신비와 깊이에 대한 추구를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요한 자원으로 복귀시킨다. “양은 경쟁하고 질은 보완한다.”(본회퍼)
이러한 맥락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정의 운동’이라는 기본 출발점을 재확인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본래 친구들의 운동(a movement of friends)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운동들의 운동(a movement of movements)이 되었다. 후에는 교회들의 운동(a movement of the churches)이 되었다. 그러자 마지막 운동이 돌아서서 앞의 두 운동들을 없애 버렸다.” WCC 중앙위원회 의장까지 역임한 M. M. 토마스(1968-1975)가 이렇게까지 신랄하게 교회 운동을 비판하게 된 이유는 에큐메니컬 신앙운동의 본질을 망각한 교회의 현실 정치에 실망해서였으리라.
그러나 WCC 헌장 1조는 WCC가 교회들의 교제 기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WCC라는 세계교회 신앙운동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도구로서 지속되려면, 그 우주 안에 친구들과 신앙 동지들의 따뜻하고 정의로운 코이노니아, 그리고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JPIC)을 향한 적극적 개방성과 실천적 관계성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WCC의 교회 일치에 대한 비전은 교단 연합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초대교회 세례고백문인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에는 인종, 계층, 성, 장애, 나이 등을 뛰어넘어 인류의 일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WCC 일치 비전의 성서적 뿌리가 놓여 있다. 부산총회의 총대 구성의 기본 목표는 여성 50%, 청년 25%, 평신도 50%, 정교회 25%였다. 총회의 사전대회들은 불완전하나마 여성, 청년, 장애인, 원주민의 음성과 관점을 존중하는 장치이다.

인간의 성(性)에 관한 참고문서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는 인간의 성에 관한 교회 사이의 다양한 입장 충돌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또한 여성과 아동 성폭력을 비롯하여 장애인, 이주민, 난민, 인신매매 희생자, 상이한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 등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성폭력 및 젠더 기반 폭력(Sexual and Gender Based Violence)을 교회가 무시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부산총회는 연구 그룹을 형성하도록 하였고, 정교회와 개신교 모두를 포함한 이 연구 그룹은 부산에서 카를스루에로 이르는 순례의 결실로서 “순례의 길에서 나누는 대화: 인간의 성 문제에 관한 동행 초청”이라는 문서를 작성하였다.4 성실하고 풍성한 연구를 담은 이 문서는 교회의 윤리적 분별에 관한 주요 지표로서 성서, 전통, 이성, 경험 등을 제시한다. 또한 인간의 성을 이해하는 공동의 신학적 원칙으로 첫째, 관계성(관계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 둘째, 인격성(개인의 존엄성), 셋째, 육체성(인간 신체성의 선함에 대한 확증), 넷째, 코이노니아(더욱 깊은 교제를 향해 성장해 나아가는 포용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다섯째, 케노시스(주변부의 음성 경청) 등을 제시한다.
동방정교회를 비롯하여 이 주제에 관하여 아직 논의의 준비가 되지 않은 회원 교회들도 많기 때문에, 이 문서는 구속력을 가지는 ‘정책문서’가 아니다. 단지 WCC 차원의 연구를 요청하는 회원 교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문서’이다. 이 문서는 인간의 성 문제를 일찌감치 먼저 씨름했던 회원 교회들, 에큐메니컬 기구들, 신학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 입장들도 소개한다. 이 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입장이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하여 교회가 어떤 결론에 이르기 이전에 먼저 ‘인내심’을 갖고 ‘안전한 공간’(safe space)을 형성하는 영성적 과정의 중요성이다. 안전한 공간의 형성이란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방적 ‘독백’이 아니라 ‘경청과 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지난 5월 실행위원회에서는 WCC가 교회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론에 대한 안내를 제공하도록 요청하였다. 또한 ‘가정’의 의미에 대한 성서적·신학적 연구와 함께, 가부장주의 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성·남성성을 성육하신 예수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 성서적·신학적 연구를 심화하도록 요청하였다. 가정과 성(性)의 의미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교인들은 교회의 유의미한 신학적·목회적 안내를 기다리고 있다.

공공의제(Public Issues) 성명서들

이번 총회에서는 지구촌이 당면한 가장 절박한 혹은 새로운 사태들에 대하여 세계교회의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들이 채택될 것이다. 지난 6월 중앙위원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성명서”, “기후비상사태의 효과적 대응에 관한 성명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본 에티오피아 상황에 관한 성명서”, “성의 착취, 남용, 희롱에 관한 성명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정의로운 평화와 성지에서의 기독교 존속에 관한 성명서” 등이 채택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에 관한 성명서”와 “‘킬러 로봇’에 관한 성명서”는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이양되었다.
카를스루에 총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이다. 일부 서방 교회에서는 러시아정교회의 WCC 회원자격 정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WCC가 ‘교회들의 유엔’ 역할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강세이다. 요안 사우카 총무대행은 냉전 시대나 남아공의 아파타이트 갈등이 격심했을 시절에도 WCC는 교회 간의 대화와 민간외교의 장을 유지한 전통이 있다며 현재도 이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단호히 밝혔다. 한편 러시아정교회에서 분리되어 최근에 독립교회를 형성한 우크라이나정교회는 WCC 회원 자격을 신청하였고, 따라서 카를스루에 총회에 옵저버로 초청되었다.

부산에서 카를스루에로5

2013년에 개최된 WCC 제10차 부산총회 이후 지난 9년간 WCC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1984년 출범한 도잔소 프로세스 이후의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정의와 평화의 순례(Pilgrimage of Justice and Peace)는 ‘분단과 핵으로부터의 엑소더스’임이 분명하다.6 그러나 이제 카를스루에 총회를 맞이하면서 ‘그린 엑소더스’에 초점을 맞추는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공동운명에 처한 한반도와 지구촌이 함께 기후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공생공락을 지향하는 녹색 패러다임 안에서 인간 안보와 정의로운 전환을 지향하는 생명·평화·참여 민주주의 운동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환경 학살’이다. 지구촌의 기후위기는 이미 자연에 맞선 제3차 세계대전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지구촌의 ‘죽음에 대한 사랑’(네크로필리아)과 자기모순적 나르시시즘을 가속화하는 셈이다. “선진 산업국의 기독교인들은 자연에 대항하는 이 전쟁의 최전방에 서 있다.”(프란츠 알트) 한국의 교회와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군사작전과 전쟁이 환경파괴 및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일반적인 연구 결과들도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 더욱이 핵전쟁은 직접적 폭력과 대량살상에 그치지 않고 핵겨울을 초래하여 식량안보에 큰 위기를 초래하기에 오존층 파괴, 기후온난화와 함께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위협 요인이다. ‘그린 엑소더스’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운동에 신선한 에너지와 리더십을 제공할 청년들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WCC는 제11차 총회를 통해서 청년 리더십의 상호 만남과 대화, 그리고 에큐메니컬 네트워킹을 강화하고자 한다.
고령의 신학자 존 캅(John B. Cobb)은 이미 1970년대에 “집단적으로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진단하였다. 현대문명이 무한한 경제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결국 파국에 이를 것임을 경고한 발언이다. WCC 6월 중앙위원회의 기후비상사태 성명서는 최근 본(Bonn)에서 개최된 기후변화 컨퍼런스 결과에 실망을 표현하며 교회와 에큐메니컬 기구들이 기후비상사태에 최우선의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하고 있다. 교회는 인간의 탐욕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경제를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2030년까지 결정적 변화의 실체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현실이다. WCC 제11차 총회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마지막’ 총회이다.
절박한 시대적 표징 앞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봄이 다시 도래하기를 고대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단단한 음식’이다.(고전 3:2) 값비싼 제자직을 요청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이 있을 때 봄의 상서로운 기운이 새롭게 움틀 수 있을 것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19)
이제 한국교회는 부산에서 카를스루에로 가는 순례의 길에 합류한다. 종교개혁의 모체인 독일에서 개최되는 제11차 총회를 전후로 한국교회에서 공교회성과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21세기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전개되기를 기원한다.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매사에는 사랑.” 잘 알려진 이 에큐메니컬 모토는 여전히 유효하다.

주(註)
1 Oliver Tomkins, “A Personal Retrospect and Assessment,” The Ecumenical Review, vol.40 Issue 3-4 (1988).
2 W. A. Visser’t Hooft, Memoirs (London: SCM Press, 1973; Geneva: WCC Publications, 1987), 368.
3 박경서, “네 번의 WCC 총회에 참석한 나의 체험”,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 간담회 강연문.
4 “Conversations on the Pilgrim Way: Invitation to Journey Together on Matters of Human Sexuality; A Resource for Reflection and Action.” 이 문서는 WCC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채택한 ‘정책문서’가 아니라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회원교회들의 연구와 성찰, 토론을 위해 마련된 ‘자료문서’이다.
5 WCC와의 인터뷰, 2022년 5월 30일.(https://bit.ly/3nNJFQm)
6 Hyunju Bae, “A Pilgrimage of Justice and Peace in Korea: Exodus from division and nuclear threats,” 2015년 7월 28일 WCC 블로그 기사.(https://bit.ly/3AAtSMv)


배현주|부산장신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 WCC 실행위원 및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9월호(통권 7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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