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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2년 4월호)

 

  우리 시대 청년들의 목소리
  

본문

 

청년 정치가 떠오르고 있다. 30대 정치인이 한 정당의 대표로 선출되고, 26살의 대학생이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되는 등 청년 정치인들이 약진하고 있다. 정당들도 청년 리더십을 갈망하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청년 정치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2030세대의 표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
청년 정치가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현상에 대해서 여러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아마도 청년들의 의제를 정치권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컨대, 공정의 문제, 젠더 이슈,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청년세대의 절망감, 청년빈곤 문제, 가상화폐 등 청년세대가 피부로 느끼며 논쟁했던 이슈들을 기성 정치권이 다루면서,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던 청년세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냉소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우리 청년들의 상황이 안쓰럽기도 하다. 청년들의 삶은 고단하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생존하느냐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우리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동집필에 참여한 네 명의 청년이 각자의 삶과 관련된 청년 이슈를 글로 풀어냈다. 이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시대 청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퇴준생 인생… 우리도 퇴직하고 싶지 않다

최근 몇 년간 회자되는 말 중에 ‘퇴준생’이라는 말이 있다. 퇴준생은 ‘퇴사’와 ‘취업준비생’의 합성어로 취직과 동시에 이직(퇴사)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또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청년들은 퇴사를 가볍게 여긴다’거나 ‘끈기가 없다’, ‘월급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벌려고 욕심을 낸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왜 취직을 한 후에도 소속감을 갖거나 자신을 위한 여가시간을 갖지 못하고 또 다시 취업준비로 내몰리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졸업 후에 잘 알려진 기업의 공식적인 채용 과정을 통해 취직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처음 들어본 중소기업에 채용공고 한 장과 홈페이지의 정보를 보고 자세한 내부사정은 모른 채 회사에 들어간다. 이런 취직 과정을 통해서 직장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낮은 연봉에, 턱없이 빈약한 직원 복지, 듣던 것보다 심각한 조직문화, 채용공고에 없던 업무를 만나게 된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생각지 못한 회사생활에 더 나은 회사를 찾게 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은 퇴준생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청년들은 급한 마음에 일단 가능한 대로 취업을 하고, 다시 이직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만이 ‘퇴준생’의 이유는 아니다. 지금의 중소기업에 있는 직장 상사들 또한 이러한 어려움들은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연봉이 적고, 복지가 없고, 수직적 조직문화와 과도한 업무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경제성장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회사가 성장했고, 직급이 높아졌고, 연봉이 올랐다.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갈 수 있었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 상황뿐 아니라 청년들의 삶도 달라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천만 원의 학자금대출 빚이 생겼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오롯이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한 끼 식비도 만만치 않고, 통신비와 교통비도 상당하다. 앞으로 내가 결혼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데도 축의금 등 경조사비가 매달 수십만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 받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은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지 못한다. 여기에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의 효과도 미미하다. 이러한 청년빈곤의 현실은 청년들을 ‘퇴준생’으로 내몬다.
청년들에게도 퇴사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우리도 퇴사하고 싶지 않다.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고정적인 수입과 직장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네는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신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빈곤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퇴준생’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이 청년들의 생존전략이다.

출산의 이유와 책임에 대하여

“출산율 상승이 곧 경제 성장입니다.” “출산율 최저로 한국교회가 위기입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는 출산율 감소를 대단히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미 경제성장과 한국교회 부흥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청년들, 특히 여성 청년들에게 위와 같은 문구는 어떤 의미로 이해될까? 과연 20-30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지적하는 바대로 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세대일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연애, 결혼, 출산’은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포기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3포 세대’라는 말은 더 확장되어 ‘N포 세대’로 이어졌다. 그러다 ‘4B(4非)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비혼, 비연애, 비출산, 비섹스’를 추구하고 선언하는 세대라는 말이다. ‘N포 세대’가 어쩔 수 없이 이런 것들을 포기하는 세대라면. ‘4B 세대’는 ‘4B 운동’이 확산되고 있을 만큼 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주축은 20-30대 여성 청년들이다. 결혼, 연애, 출산, 섹스를 ‘정상 가족’의 필수조건으로 이해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현상일 수 있겠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교제 살인, 스토킹 살인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데도 제도적 대응은 미흡하고, 뿌리 깊은 편견이 여성을 계속해서 하위주체로 만드는 것을 볼 때, 이들의 거부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 나는 결혼은 했지만 출산 계획은 없는 30대 초반 여성 기독청년이다. 굳이 따지자면 비자발적 출산 포기와 자발적 비(非)출산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결혼은 했지만 출산 계획이 없는 주위 친구들과 종종 그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자면 (1) 자녀를 책임 있게 양육하기에는 부족한 경제적 형편, (2) 학벌주의, 자본주의가 계속 강하게 작동하는 불평등한 사회에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두려움, (3) 딸의 경우 성차별과 성폭력에 더욱 노출될 위험, (4) 기후위기 상황을 떠넘겨야 한다는 죄스러움, (5) 출산보다 입양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 (6)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7) 대부분 여성 혼자 육아를 도맡으면서 경험하게 될 우울증, (8) 육아 스트레스로 주위 사람을 돌아볼 여유 고갈, (9) 출산과 양육이 부모와 자녀에게 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의 부재, (10) 내 아이를 갖는 것보다 다른 아이들이 불행하지 않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와 교회에 더 필요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 등의 이유다.
너무 비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여, 출산을 선택할 이유들에 대해서 따져보기도 한다. (1) 부부의 모습을 닮은 자녀의 모습에 대한 기대, (2)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의 신비와 위대함, (3) 자녀가 불행하든 행복하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 (4) 가족 구성원이 늘어남에 따른 풍성한 분위기, (5) 양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 (6) 자기 자신만의 삶으로부터 자녀를 위한 삶으로 이행 등 출산을 선택할 긍정적인 이유도 찾아보려 한다.
그러나 이쯤에서 밝히고 싶은 것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라는 사회와 교회의 우려가 틀렸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을 보면 청년들이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동기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음에 있지 않다. 오히려 청년들은 자신의 생존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래의 아이들과 현재의 아이들이 조금 더 덜 불행할 수 있는 사회와 공동체를 진심으로 생각한다.
출산을 포함한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구조를 답습하는 외침, 과거를 향한 외침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와 미래 구조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는 외침, 미래를 향한 청년들의 외침을 귀 기울여 들어보자. 기독교적 핵심 가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에큐메니컬 가족공동체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가상화폐(코인) 열풍에 빠진 청년세대

10만 원. 처음에는 10만 원이었다. 그 정도는 호기심을 충족한다는 셈 치고 미련 없이 투자할 수 있었다. 가상화폐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계좌를 개설했다. 10만 원을 입금한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추천해준 코인을 바로 매수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매우 쉬운 과정에 놀랐다. 시세 변동에 따라 투자 수익금이 실시간으로 변한다. 100,100원, 100,200원, 100,100원, 100,000원, 99,900원, …. 등락을 반복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숫자에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다 갑자기 시세가 치솟는다. 이번에는 변동 폭의 수준이 다르다. 천 단위로 수익금이 오르기 시작한다. 101,000원, 102,000원, 104,000원, …. 한 번 탄력을 받은 시세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수익금이 만 원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슬슬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동시에 일종의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수익률 20%를 넘기고 전액 매도했다. 순식간에 치킨 한 마리 값을 벌었다. 흥분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짜릿했던 첫 경험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 치킨 한 마리 값 벌었다는 즐거움보다도 10만 원이 아닌 100만 원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탐욕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 늘려간 투자금액은 500만 원에 이르렀고, 소위 ‘떡상’ 코인에 탑승하는 운이 겹쳐, 투자금액의 두 배의 수익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곧바로 하락세로 접어든 시장에 맥을 못 추고, 거의 모든 수익금을 잃었다. 투자 원금이라도 남긴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한 달을 몰두했던 나의 가상화폐 투자 경험은 수익을 남긴 것도, 잃은 것도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로 더 이상 코인 투자를 하지 않았다. 수익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허무감, 삶의 질 저하, 불로소득으로 인한 죄의식, 끊임없이 자극되는 욕망, 인간다운 삶을 상실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내 경험을 일반화시켜 코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투기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상화폐 블록체인 기술 전망에 대한 투자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코인시장이 투기성, 도박성이 짙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 언론, 심지어 코인에 투자하는 당사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 내가 딴 돈은 누군가가 잃은 돈이다. 시세 변동 폭은 주식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대박의 가능성도, 쪽박의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누군가는 대박을, 누군가는 쪽박을 차는 혼돈의 세계가 지금 코인시장이다.
20-30대 청년들이 코인에 열광한다고 한다. 세대별 코인 이용자 비율을 보면, 청년이 절반을 넘어선다. 왜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직접 코인을 경험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코인은 전문지식 없이도 앱만 깔면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접근하기 쉽다. 그리고 시세 변동이 워낙 큰 탓에 소액으로도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다. 코인으로 수익을 본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권유로 어렵지 않게 코인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다. 또한 불로소득으로 얻는 수익은 여윳돈이 되어 계획 없는 충동소비를 부추기는데, 이것이 주는 해방감과 즐거움에 사로잡혀 좀처럼 코인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차원의 원인이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청년들을 코인에 열광하도록 만드는 사회시스템이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지금까지 청년들은 경제적 약자의 자리에 있었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가 그 예다. 코로나 팬데믹은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지난 2년간 노동시장은 불안정해지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노동으로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이 어렵다. 평범한 삶은 꿈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적당히 일해서, 적당히 살 수 없다. 죽어라 일해도, 적당히 살까 말까다. 이게 지금 청년들의 삶이다. 가난한 청년들에게 코인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로또보다도 코인 대박의 확률이 높다. 잘만 하면, 하루아침에 몇 배의 수익이 가능하다. 대박 난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인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든다. 청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이 한탕주의를 마냥 욕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 청년들이 느끼는 절박함, 불안감, 절망감에 공감하지 못하면, 코인과 영끌, 주식의 광풍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반값등록금 논쟁으로 본 청년세대의 공정과 평등

코로나19로 인해 대학등록금 문제가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에 먼저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이 청년들과 그 가족들에게 많은 경제적 부담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등록금 문제가 다시 드러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대학들이 부실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등록금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반값등록금을 포함하여 청년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YMCA전국연맹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반값등록금 운동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였고,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래는 운동 과정에서 있었던 대화이다.

A: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는 것도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운 사람들이 먼저 혜택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B: 반값등록금은 보편복지를 실현하자는 것인데, 기존 선별복지를 조금 확대하자는 것은 반값등록금 운동의 전제를 부정하는 것 아닌가?


반값등록금 운동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보편복지, 즉 모든 대학생이 반값등록금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의 입장이 강하다.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2021년 10월에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일반 시민 응답자 중 81.1%가 반값등록금 정책을 지지하였으며, 70.2%가 보편복지로서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1 따라서 반값등록금 운동과 일반 시민의 인식에는 선별복지 성격을 가진 기존의 국가장학금 제도에 저항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B의 의견이 반값등록금 운동의 기본 취지에 적합한 발언이다.
A와 같은 사람들은 기존의 선별적 등록금 지원 정책인 국가장학금의 지원 조건 중 하나가 소득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기존의 지원책에 해당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은 높으나 자녀수가 많은 가정과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자녀수가 1명인 가정이 등록금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조정을 통해 소득수준이라는 기준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의 논리이다.
여러 사회 현상들을 보면, 청년들은 평등의 문제보다 공정의 문제에 더 민감한 것처럼 보인다. 공정의 문제는 능력주의와도 이어지는데,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려면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리서치 기관 에스티아이(STI)가 전국 20대 청년 5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대 능력주의 리포트’에 따르면, ‘능력주의’가 주는 느낌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3.8%가 긍정적이라고 대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응답자의 경우에는 그 수치가 54.1%로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2
같은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본인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하면서 임금 차이가 많이 난다면 그 격차는 공정하다’라는 문장에 55.5%가 동의하였다. 정규직 시험이 비정규직 시험보다 조건이나 난이도가 더 높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쳐서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평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도 감내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 청년들은 게임의 내용이 불평등해도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이미 사회 불평등이 고착화, 고도화되었다는 반증이다.
한국은 IMF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가속화되었고, 현재 한국의 상위 10%와 하위 50% 사이의 1인당 소득 격차는 14배가 넘는다.3 이는 한국 경제가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 급격한 경제성장만 이룬 결과이다. 그리고 이 소득 격차는 세대 간이 아닌 계층 간의 문제라는 점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를 막론하고 불평등을 겪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반값등록금 문제만큼은 공정보다 평등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YMCA전국연맹의 설문조사에서 반값등록금 정책 지지도는 대학생이 90.6%로 일반 시민보다 9.5%p 더 높았고, 그 방향을 보편복지로 실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81.2%로 일반 시민보다 11%p 더 높았다. 즉,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 정책이 소득수준과 성적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더 강한 것이다. 이는 등록금 문제가 대다수의 대학생에게 힘든 문제라는 공통의 인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위 에스티아이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의 72%는 한국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이 잘 구현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84.3%가 지금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청년들이 처한 환경이나 어려움보다는 성과에 대한 보상에 차등이 있기를 바라는 청년들의 인식이 누군가에게는 먼저 보일 수 있고, 그것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뤄왔던 세대에게는 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통계들은 그 배경에 사회적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능력과 노력만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청년들의 처절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반값등록금 운동이 보여주듯 청년들이 그 속에서도 평등과 모두를 위한 사회 안전망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값등록금은 고등교육에서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동시에 척박한 청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서로 경쟁하고 한 발 먼저 나가더라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 힘든 사회에서 능력과 일한 시간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같은 것을 받아야 한다는 예수의 마음이 우리 청년들 속에 있음이 이미 귀하다. 이 귀한 마음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註)
1 한국YMCA전국연맹 반값등록금과 무상등록금에 대한 설문조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21.
2 “20대 능력주의 리포트”, 에스티아이(STI), 2021.
3 “불평등 보고서 2022”, 세계불평등연구소, 2022.


박찬영 간사, 박세론 간사, 하성웅 총무(이상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양다은 팀장(한국YMCA전국연맹 대학국제부)

 
 
 

2022년 10월호(통권 7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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