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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우리 시대의 청년]
특집 (2022년 4월호)

 

  한국교회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본문

 

교회에서 비는 청년들의 자리

교회에서 청년이 줄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 집회 때 청년들이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도 더 이상 흔한 모습이 아니다. 열린 예배를 표방하는 찬양 집회들이 곳곳에서 열리며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 때에는 이런 날이 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통기타를 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 얼마 전이었는데 어느새인가 전자 기타에 드럼 세트가 강대상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정도로 찬양 집회는 강력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풍경은 시골 교회에서도 흔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청년들이 더 이상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 청년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15년에 조사한 인구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20대 개신교인 인구는 전체의 17.6%였고, 30대는 18.6%로 10년 전에 비하면 미세하지만 증가하였다. 10% 안팎의 불교 청년과 7% 안팎의 가톨릭 청년 인구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문제는 소위 ‘가나안 성도’이다. 가나안 성도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 학원복음화협의회가 2017년에 조사한 ‘대학생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중 가나안 성도는 28.3%에 이르렀다. 이것은 같은 해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결과에서 전체 개신교인 중 가나안 성도 비율이 23.3%인 것보다 더 높게 나온 것으로, 특히 청년층에서 교회 이탈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2016년에 필자가 맡고 있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의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평신도의 교회 선택과 만족도 조사’에서는 전체 연령층 중에서 20대의 교회 및 목회자 만족도가 가장 낮았고, 이에 따라 현재 다니는 교회를 떠날 의향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 그리고 두 기관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공동으로 작년 초에 발표한 ‘코로나 시대, 기독 청년들의 신앙생활 탐구’에서는 자신들의 10년 후 신앙 전망에 대해서, 절반 정도인 53.3%만 10년 후에도 “기독교 신앙도 유지하고 교회도 잘 나갈 것 같다”고 응답했고, 39.9%는 “기독교 신앙은 유지하지만 교회는 잘 안 나갈 것 같다”고 응답했다. 교회에서 이탈한 기존의 신자들 외에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청년 중에서도 30%는 가나안 성도가 될 것 같다고 전망하였다.3 청년들의 신앙 상태가 총체적으로 난국에 처한 형국이다.
이제 교회에서도 청년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청년들을 예단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전 세대가 경험한 사회와 오늘날의 사회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신자유주의의 기조 아래 청년들의 경제 상황도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청년들의 취업 상황은 최악의 수준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제한된 경험을 기준으로 오늘날의 청년들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교회에서 청년 세대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말로는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서 있지 않고 예산 배정도 충분하지 않다.
다음 세대는 언제나 다음 순위로 밀리고 있다. 한때는 ‘N포 세대’니 ‘헬조선’이니 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담론이 이렇게 저렇게 형성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너도나도 힘든 지금은 청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교회의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은 매우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절망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상황과 형편을 이해하고 교회와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며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청년들의 신앙과 삶

앞에서 말한 기독 청년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에서 모태신앙인 청년이 절반을 넘었고, 유치원 이전에 교회를 다닌 비율이 65% 정도 되어서 기독교가 가족 종교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비율은 13%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기독 청년들의 77.4%는 ‘가족(부모)의 영향/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응답하였고 신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부모가 가장 컸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 청소년 의식조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모태신앙 50.8%를 포함하여 초등학교 이전에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70%에 이른다는 결과는 중고등학생 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는 뜻이다. 특히 교회에 출석한 계기는 70% 정도가 부모를 따라서 왔다고 응답하여 비기독교인 가정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서 잘 정착하여 가정 안에서 기독교 신앙이 전수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과 청년 등 젊은 층에서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새로운 신자가 유입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확장성이 매우 부족하여 10-20년 후에는 개신교의 교세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가족 종교화 경향이 점차 심해지면서 자칫 끼리끼리의 종교로 전락할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기독 청년들의 3분의 1은 우리 사회에 대해서 희망이 없다고 말했고,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 경제 양극화, 부동산 등 주로 경제 문제를 크게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성공만을 추구하지는 않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소위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일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는 워라밸의 욕구만큼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신앙생활에 지장을 주는 직장이라면 다니고 싶지 않다”라는 항목에 60%만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청년들의 40%가 “성경 말씀대로 살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응답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별로 없다”라는 항목에는 61.7%가 동의하여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주변에서 좋은 본이나 멘토를 찾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34%에 불과하였고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38%로 더 많았다. 그리고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절반에 가까운 47.0%의 기독 청년이 ‘무기력’을 느끼고 있었고,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다”는 응답도 27.1%로 나와서 ‘코로나 블루’ 증상을 심하게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경제 수준이 낮은 청년들이다.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삶의 만족도도 더 낮고 우리 사회에 대해서 더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미래 전망도 더 비관적이었다. 이들은 결혼 의향도 더 낮았는데, 경제 수준이 높은 경우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응답이 많은 데 반해서 경제 수준이 낮은 청년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더 많이 응답하였다. 그리고 경제 수준이 낮은 청년들은 성경대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응답하였다.
청년들의 경제 문제는 단순히 청년들의 빈곤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회 문제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실업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범죄나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최근 10여 년 가까이 우리나라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기독 청년들도 자살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작년에는 전체 자살률이 소폭 감소했지만 20대 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년 실업 문제는 청년들의 사회 활동을 위축시키고 이것은 사회 자본의 쇠퇴를 가져온다.4 사회학자 퍼트넘은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저소득층은 잘사는 사람들에 비해 모든 형태의 사회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훨씬 덜 참여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회 자본의 쇠퇴는 청년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까지도 위축시킴으로써 악순환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청년들과 소통하지 않는 교회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코로나 사태 초기에 한국교회의 대응에 관하여 조사했는데, 교회 예배/모임 자제, 교회 방역과 감염예방 수칙 준수, 감염자 및 의료진, 사회적 약자, 자영업 피해자 등에 대한 기도와 물질적 후원 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60% 수준으로 높지 않았다. 그런데 20대와 30대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여러 항목들에서 40-60대 이상의 연령층의 60% 이상이 긍정 평가를 하고 있는 데 반해 젊은 층에서는 대부분 60% 미만이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대응에 대해서도 20대 50%, 30대 53%가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기독 청년 의식조사에서도 교회와 관련된 여러 항목에 대하여 청년들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평가 9개 항목에 대부분 50-60% 정도만 긍정적으로 응답했는데, 그중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한다.”(45.0%), “사회문제 해결이나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48.4%)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가 가장 적었다. 그리고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잘 따르고 있다”에는 대해서도 2명 가운데 1명인 51.6%만 동의했고, “코로나19 확산에 있어 기독교의 책임이 크다”에는 대체로 동의(70.6%)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독 청년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가 행한 대처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청년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지에 대해서, 16.5%만 청년 대표가 참석해서 의사를 표현한다고 응답하였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청취한다는 응답이 19.4%였다.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만 적극적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들으려 한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청년들의 참여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MZ세대로 표현되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작은 참여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에 의미를 갖는다.5 SNS를 비롯해서 작은 참여를 돕는 플랫폼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은 이를 통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며 자라왔다. 작년에 제1야당의 당 대표로 30대의 이준석 후보가 선출된 것이 청년들의 참여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표 사례이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면서 청년들이 온라인 디지털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청년들이 디지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과 참여 가능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무리 다양하고 감각적인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한 종교 생활이 일방적으로 설교를 들어야 했던 이전의 신앙생활과 다를 바 없다면 청년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6
이제는 교회도 청년들을 교회 운영과 사역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단순히 교회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기독 청년의 절반 정도가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다. 아주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신앙 수준이 높을수록 강한 참여 의지를 나타내 신앙 단계가 4단계로 분류된 청년들은 77%가 그럴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외국 교회에서는 청년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장로의 자격이나 장로회 구성 등에서 청년의 역할은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청년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려면

기독교 전문 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의 대표 데이비드 키네먼은 왜 미국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You Lost Me)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키네먼은 십 대에 교회에 간 미국 젊은이들의 60% 가까이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신앙에 대해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 교회에서 무시당하고, 예술이나 과학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기독교인들의 소명이 될 수 없다며 사기를 꺾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한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나 다른 어른들로부터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기독 청년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관심과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지침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키네먼은 교회를 떠난 많은 미국 청년들이 여전히 신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젊은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심까지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이제는 대량생산하듯이 청년 신앙인들을 양산하려고 하기를 그만두고, 이들과 일대일의 관계를 갖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들의 멘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교회의 가나안 성도에 대해 연구한 필자도 똑같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청년들을 ‘교회 일꾼’이라고 말하며 부속품처럼 가져다 쓰고 소모하기 이전에 이들의 현실 문제에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며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교회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에 민감해져야 한다. 기성세대의 생각을 주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성세대가 마치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듯 청년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현실 문제가 언뜻 기성세대가 젊은 시절은 겪은 것과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정서나 처지는 20-30년 전의 그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윽박지르려 하지 말고, 이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조사 결과에서 젊은 층 활성화 방안에 대해 ‘젊은 층에 맞는 문화적 선교 전략 마련’이 26.9%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 ‘젊은 층과의 소통의 장 마련’(21.4%), ‘권위주의 타파’(21.1%)의 순으로 나타났다. 권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꼰대’스럽지 않게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이들에게 맞는 사역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교회에서는 청년들의 신앙에 관심이 있지만, 신앙은 삶의 조건과 무관하게 형성될 수 없다. 척박한 생활환경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창업이나 일자리 사업과 협동조합, 공유주택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교회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의 출발은 기독교 사상과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교회와 기독교 단체도 이미 이와 같은 일에 참여하고 있다.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청년들의 신앙이 바로 서고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
청년들의 문제에 교회와 기성세대가 함께 노력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천에 있는 한 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마을공동체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송구영신 예배 때 한 청년이 오랜만에 교회에 다시 나왔는데, 지방 대학을 나온 이후 번번히 취업에 실패하면서 절망감에 빠져 있다가 어렸을 때 자신을 돌봐준 교회가 생각나 돌아온 것이었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교회 목사님은 일반 기업에만 취업하려고 하지 말고 이 마을에서 할 일을 찾아보자고 하였다. 청년이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동네 방송국에서 전공을 살려 일해보라고 하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는 교회에서 마련해보겠다고 하였다. 이 청년이 활동을 하면서 마을 활동에 동참하는 청년들도 늘었다. 목사님이나 어른들 말에는 반응을 하지 않던 동네 청년들이 친구가 이야기하니까 선뜻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 교회 목사님은 교회가 작아서 ‘화폐 자본’은 별로 없지만 ‘사회 자본’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도 이 사회 자본을 갖추게 해주면 자신들의 힘으로 앞길을 헤쳐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교회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일 것이다.

주(註)
1 이에 대하여는 정재영,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IVP, 2015)을 볼 것.
2 21세기교회연구소·한국교회탐구센터, 「평신도의 교회선택과 만족도 조사 세미나 자료집」(2016. 11. 25), 51.
3 21세기교회연구소·한국교회탐구센터·목회데이터연구소 엮음, 「코로나 시대, 기독 청년들의 신앙의식 탐구 세미나 자료집」(2021. 1. 27), 24.
4 ‘사회 자본’이란 협력 행위를 촉진해 사회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 조직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회학자 퍼트넘은 사회 자본은 생산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로버트 퍼트넘, 안청시 외 옮김,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박영사, 2000), 281.
5 대학내일20대연구소,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0』(위즈덤하우스, 2019). 48.
6 이민형,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한국 개신교 신앙 지형 연구”, 정재영 외, 『코로나19 뉴노멀시대, 교회의 변화와 대응』(스토리zip, 2021), 55.


정재영|종교사회학을 전공하였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1세기교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한국교회의 미래 10년』, 『강요된 청빈』 등이 있다.

 
 
 

2022년 4월호(통권 7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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