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극우세력 이해]
특집 (2021년 12월호)

 

  유럽 극우의 등장과 성장
  

본문

 

유럽의 극우는 유럽을 이루는 국가의 수만큼이나 특성도 다양하고 역사도 깊다. 물론 최근에 등장한 정당들도 많아서 기성 정당의 전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들의 역사적 기원은 20세기 파시즘이나 19세기 정치적 혁명의 시기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극우정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주요국의 극우정당들, 즉 프랑스의 국민연합, 영국의 브렉시트당, 이탈리아의 동맹당 등이 1위를 차지했으며, 이외에도 많은 국가들에서 주류 정당들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
극우정당에 대한 이러한 지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파시즘의 패배와 그에 대한 반성으로 극우에 대한 언급조차 터부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많은 극우정당들이 등장하더니 2000년을 전후해 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대에는 기성 정당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그동안 유럽의회 선거는 국내 정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집권당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했다. 즉, 여당에 대한 반발로 극우정당에게 표가 많이 몰리기도 했지만, 최근의 성적은 그러한 수준을 넘어 이제는 당당하게 정당 정치 체제의 일원으로 편입됐음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극우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을 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미 ‘극’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느 정도 부정적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극우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그만큼 유권자들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하다. 극우의 목소리 역시 정책적 정반합을 이끄는 기능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극우를 좌우 스펙트럼에서 우파의 극단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극우는 때로 좌파적인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단선적 개념의 좌우를 확장시켜 우측 끝단에 위치시키면 극우를 이해하는 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하나의 축을 추가하여 사분면에서 그 정치적 위치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극우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등장했으며, 그것이 향후 ‘통합’이라는 이슈 앞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해본다. 한정된 지면상 극우세력에 대한 세부적인 언급보다는 동시대의 다른 사상 또는 세력들과 함께 거시적, 통사적 차원의 설명을 통해 극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서 그것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해본다.

극우의 등장과 성장

유럽 극우의 성장 과정은 그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여기서는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즉, 진로를 놓는 단계, 그리고 팽창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운용하는 단계이다.2 이는 극우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세력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며, 따라서 통사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현재의 당면한 이슈들 중심의 한정된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정된 시야는 곧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극우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거대한 정치적 전환점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19세기부터 100년 단위로 각 단계를 살펴본다. 선행하는 단계는 후행하는 단계가 발현하는 전제가 되며, 이러한 통사적 과정을 통해 극우세력은 반민주적 척결 대상으로부터 민주 의회 내 정상적 정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1) 진로기(19세기)‐왕정에서 공화정으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시대적 대전환기를 열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 특히 정치적으로 왕정 체제가 종식되고 공화정 체제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가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왕정 체제에서 나라의 주권을 행사하던 군주가 참수되자, 제3신분이었던 평민들은 새로운 정치 체제의 정립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대안은 민(民)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 체제였으나, 그 이념적 지향점에 따라 여러 세력들이 주도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게 된다. 이들은 지지기반과 이념에 따라 사분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반이 상층부인가 하층부인가에 따라 상하로 나뉘고, 이념이 평등(전체)을 지향하는가 자유(개인)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좌우로 나뉜다.3
여기서 우리는 사회 구조가 계서적(階序的) 질서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뉘며, 이는 사람이 사람의 위 또는 아래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가 기능하기 위한 역할 분담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상층부의 핵심이었던 왕이 사라지거나 입헌군주가 세워지는 상황에서 누가 상층부의 중심으로서 체제를 이끄느냐가 헤게모니 싸움의 근본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상층부에는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가 존재해왔다. 이들은 권력 또는 부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파의 가치를 공유한다. 그런데 새로운 공화정 체제 아래서 정치엘리트는 국가를, 경제엘리트는 시장을 중시하면서 누가 주도세력이 되느냐에 따라 공화정의 성격도 전체를 지향하느냐, 아니면 자유를 지향하느냐 하는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혁명을 주도했던 부르주아는 부를 가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층부로 진입하여 경제엘리트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이 큰 국가들은 자유경쟁,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이전 절대왕정 체제의 근간이었던 군인과 관료들은 정치엘리트들로서 공화정 또는 입헌군주정이 도입되자 자연스럽게 그 충성의 대상을 왕에서 국가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라는 울타리 안의 ‘우리’와 바깥의 ‘타자’를 구분 지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속성상 극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즉, 국가에 대한 강조가 ‘극’으로 향할 때 그것이 극우로 발현하기 쉽고, 이러한 이유로 군사적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 군국주의가 많이 나타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력에는 대(對)를 이루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상층부에 대하여 하층부에 기반을 둔 세력들도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고자 경쟁하는데, 예를 들어 부르주아의 반대편에서 자유 경쟁에 취약했던 프롤레타리아는 평등을 중시하며 전체주의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국가주의자들과 달리 국가를 기득권 세력의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주의적 전체가 아닌 당 중심의 전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국가주의자들의 반대편에는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을 거부하는 그 성격 자체가 하나의 정치 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을 제한하였고, 따라서 통일성 있는 조직의 모습보다는 편린적인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상 19세기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놓고 경쟁한 서로 다른 주체들을 사분면으로 정리하면 [그림]과 같다. 여기서 극우는 그 근본이 2사분면, 즉 국가주의자(또는 내셔널리스트) 자리에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isang2112_04.jpg

2) 팽창기(20세기)‐세계대전
앞서 19세기 여러 정치세력들의 경쟁은 한 국가 안에서도 일어났지만, 국가의 환경에 따라 하나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제는 그 경쟁이 국가 단위로 상승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의 영국은 자본주의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를 대표하고, 철혈정책의 강한 국가를 표상했던 독일은 내셔널리즘, 나아가 나치즘으로까지 이어진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국가주의자들은 1800년대 공화정으로의 전환이라는 혼란기를 거치며 1900년대에 들어서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국가 체제를 발전시킨다. 모두 민주공화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실현 모습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들의 체제 경쟁은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대격돌을 통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승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체제를 국제 사회에 투사하여 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다. 즉, 전쟁 중에는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힘을 합쳐 파시스트와 전쟁을 벌였지만, 전후에는 다시 양 진영으로 갈라져 냉전이라는 국제질서를 형성한 것이다. 어찌 보면 국가를 우선시하던 파시스트는 왕정 몰락 이후 잔존한 군벌인 양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평민들의 공동의 적이었던 것이다.
세계대전은 주로 유럽 강대국들의 힘의 역학관계 차원에서 분석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왕정 시대를 마무리하고 공화정 시대를 여는 전쟁이었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많은 국가들이 왕정이었으나, 2차 대전을 거치며 공화정으로 재탄생한 것만 보아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들도 모두 신생 독립국이 되면서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전 지구촌을 공화정이라는 국가 단위로 경계짓는 큰 전환기적 전쟁이었다.4
그 과정에서 내셔널리스트들은 파시즘, 나치즘 또는 극우 등으로 불리며 몰락하고,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 방식의 공화정 체제와 국제질서를 완성시킨다. 유엔(UN)의 결성은 그러한 질서의 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로써 이전 국제정치에서 주인공들이었던 왕가의 역할은 민주공화정으로 옮겨지고, 국가는 더 이상 왕가의 상속에 따라 주인이 바뀐다거나, 무력을 통해 함부로 타국의 영토를 빼앗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19세기에 지지기반과 이념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각 사분면의 세력들이 일어나고, 20세기 들어 그 힘들이 팽창하며 종국적으로 부딪친 것이 세계대전이다. 다시 말해 전쟁을 통해 19세기부터 몰락하던 왕정이 마무리되고, 그 근간이었던 군과 관료 중심의 국가주의 세력들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민(民) 중심의 세력들에게 패배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우가 병리적 현상으로 인식되는 데에는 주지하다시피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의 영향이 크다. 191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결성한 이후 그것은 나치즘을 포함하여 극우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었다. 즉, 군국주의, 반공주의, 인종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2사분면의 내셔널리스트들과 경쟁했던 1, 3, 4분면 세력들과 대치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극우에 대한 시각이 어느 진영의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의 폐해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시각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면 뒤의 3단계에서 다룰 융합 내지 통합의 과정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3) 운용기(21세기)‐분열에서 융합으로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이 패배한 이후 유럽에서 극우세력이 발붙일 곳은 없었다. 그런데 1990년을 전후하여 많은 극우정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21세기 들어서는 선거에서 거대 정당을 이기거나 극우정당의 당수가 대통령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등(프랑스 2002/2017년)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선거에서 가십거리로 취급받던 극우정당이 이렇게 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사회 기저에는 전후부터 상당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산업구조의 변화, 교육수준의 향상, 탈물질주의화, 기성 정치에 대한 신뢰 하락 등으로 전통적 좌우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구조의 변화로 전문직, 기술직 등 직업군이 다양해지면서 노동자 내에서도 우파 성향이 나타나고,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전통적 우파 직업군에 속하더라도 정치성향은 좌파적인, 그러나 전통 좌파와는 거리를 두고자 하는 유권자들이 증가하였다. 한편 중도 수렴한 좌우 정당은 정책적 차이가 사라지고 잇따른 스캔들로 유권자들의 충성도를 잃게 되면서 극우정당을 포함한 신생 정당들에 지지공간을 개방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고 정의한 이스턴(David Easton)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20세기에는 분배 문제가 정치의 중심이었고, 21세기에는 위와 같은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분배보다는 그것을 행할 자격, 즉 권위 그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그림]에서 보면 1, 3분면의 대립 구도에서 2, 4분면의 대립구도로 유권자들의 정치성향 분포가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1, 3분면의 전통적 좌우를 ‘경제적 좌우’, 그리고 2, 4분면의 새로운 좌우를 ‘사회적 좌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주요 이슈가 경제적 좌우와 달리 국가와 시민 간 또는 세대 간의 갈등, 인권, 페미니즘, 낙태, 동성애, 정체성, 환경, 핵, 전통, 질서 등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외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93년에 유럽연합(EU)이 창설되면서 각 국가의 시민들은 유럽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고, 국가가 가진 주권의 부분적 양도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물자, 서비스, 자본,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함으로써 국경선의 의미도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주권이나 국경선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기존 거대 정당들은 유럽연합의 통합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에 당내 내분은 있어도 통합 자체를 반대하진 않았다. 따라서 강성 유럽회의주의자(euroscepticist)들은 극우정당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냈으나, 통합이라는 시대적 대세 앞에서 큰 힘을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재정위기 등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등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이 증가하면서 유럽회의주의자들은 자국의 금융정책과 국경을 스스로 결정 또는 통제하지 못하는 데 대해 비판하면서 반유럽, 반난민을 주장하였다. 특히 2015년 난민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테러도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극우정당의 주장은 더욱 힘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극우정당의 의회 진입이 이제는 상수가 된 것이다.
한편 극우정당의 정치성향은 [그림]에서 2사분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들이 성장하는 것에 대(對)하여 4사분면의 정치세력들도 함께 성장한다. 리버테리언(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자/해방주의자)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은 자유를 강조하고 권위적 조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5
리버테리언은 주체적 시민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자유를 강조하는 속성상 통일된 목소리보다는 다양한 분야와 주제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하나의 정당으로 성장하기 어려웠다. 그중에서 환경문제라는 어젠다를 가지고 20세기 후반부터 극우정당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녹색당이 꾸준한 성장과 활동으로 자발적 시민활동의 대표적 정당이 된다. 그리고 이 녹색당이 극우정당과 더불어 선거에서 약진하며 사회적 좌우의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극우정당과 녹색당의 성장은 통사적으로 봤을 때 순리적이다. 일차적으로 경제와 그것을 보호할 수 있는 안보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그 위에 사회(또는 정치) 문제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좌우가 국가 발전과 함께 먼저 중심 역할을 하고, 그것이 중도 수렴할 즈음 이제는 공동체의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적 좌우의 수렴을 어떻게 이루어내느냐가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앞서 소제목을 ‘운용기’라고 정했지만 사회적 좌우가 수렴하지 못한 현 상태에서 그것은 희망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진로를 놓고 팽창기를 거쳐 이제는 운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시점인데 아직도 좌우 갈등이 최대로 팽창된 상태에서 갈등관계를 지속하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것이 융합 운용되는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면 결국 역사는 퇴행하고 공멸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가며: 극우에 대한 전망

본문에서 극우의 등장과 시대적 의미를 여러 정치성향들과의 관계 속에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19세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전하면서 그 방향성에 대한 여러 이념들이 생겨나고, 각 이념들에 따라 [그림]과 같은 정치적 스탠스가 정립된다.
그러나 19세기는 크게 보아 왕정파와 공화파의 대립 양상이었고, 이는 기득권 세력(상층)과 신진 세력(하층)의 주도권 싸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극우가 등장할 수 있는 2사분면은 왕정파 또는 공화파라 하더라도 국가를 중시하는 강경파, 군인 등의 정치인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공화정 체제로의 이전이 완료되고, 왕정파가 사라지자 극우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나치즘, 파시즘이 국가주의가 극에 달한 모습으로 극우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 극우세력은 유럽에서 퇴출되다시피 하고, 1, 3분면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냉전체제가 형성된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 변화해 이전 경제적 분배 문제에 치중했던 좌우 갈등은 중도 수렴되고, 대신 모든 권위에 대한 의구심을 중심으로 사회적 좌우 갈등은 더욱 양극화된다.6
그런데 앞서 경제적 좌우 갈등이 중도 수렴했듯이, 사회적 좌우 갈등도 중도 수렴하는 것이 역사의 정반합 발전과정에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에 들어서도 극우를 포함하여 여전히 갈등과 대립 속에 살고 있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문화적 좌우이다. 매슬로우(Maslow)의 개인 욕구 5단계설(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애정과 소속의 욕구-존경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을 사회에 적용해본다면, 사회 역시 경제적 단계에서 사회적(정치적) 단계로, 그리고 마지막에 문화적 단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본문에서 운용기 단계로 구분했던 21세기가 바로 문화적 단계인 것이다. 결국 경제적, 사회적 좌우의 갈등은 종국적으로 문화적 가치관의 공유를 통해 통합, 운용해 나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경제적, 사회적 대립이 사라지기는 어렵다.8
따라서 극우를 포함하여 모든 좌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화에 대한 문제는 곧 종교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것으로 거기에는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우리의 가치관, 생활양식, 습관, 전통 등 문화를 정의하는 요소 대부분이 교육을 통해 후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는 그 교육적 위상이 최상의 권위를 갖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최종 지향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우문제의 해결은 정치적 차원 혹은 경제적 차원으로만 해결할 수 없으며, 문화적 차원에서 어떻게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주(註)
1 “2019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본 향후 주요 쟁점과 EU 체제 변화 전망”, 「오늘의 세계경제」 Vol.19 No.13(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9. 6. 4).
2 천공, 『통찰과 역설: 본질을 알면 모순이 보인다』(마음서재, 2020).
3 여기서 좌우는 좌파와 우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4분면의 도식상 위치일 뿐이다. 또한 상하 역시 개인의 신분상 위치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수직적 관계를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대한 정치성향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4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던 1914년 사라예보 사건에서 암살당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유럽 왕가의 대표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계자였다. 이는 왕정의 몰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우리의 구한말 상황에 비유한다면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으나, 왕정이 종식되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5 4사분면을 리버테리안으로 표현할 경우 2사분면은 권위주의자(authoritarian)로 대응해서 주로 표기한다. Herbert Kitschelt,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Social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6 우리나라의 경우 촛불부대와 태극기부대의 갈등도 예로 들 수 있겠다.
7 A. H. Maslow,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1943).
8 문화에 대한 스탠스도 좌우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는데, 다원주의와 동화주의가 그것이다. 전자는 여러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주된 문화로 소수 문화가 흡수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문화의 유럽 국가들에서 이슬람 히잡을 허용하느냐에 대한 찬반 대립을 들 수 있다.


박기성|충남대학교에서 유럽 극우정당이 어떻게 등장하고 성장했는지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극우정당, 균열구조 등에 관한 논문을 썼고, 대전 지역살리기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