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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아프간의 혼란 속에서 본 이슬람과 우리]
특집 (2021년 11월호)

 

  이슬람 공포·무슬림 혐오, 근거는 있는가
  

본문

 

들어가며

Calvary Chino Hills의 Jack Hibbs 목사님이 보내신 메시지: “내일 오후 아프간 지역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사형집행이 확정된 229명의 선교사님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이 메시지를 최대한 빨리 기도의 동역자들에게 전하여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통치하에 넘어가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긴급하게 공유된 메시지였다. 이는 물론 가짜 정보였다. 2009년 이후 자주 등장하는 좀비 같은 거짓 기도제목이다. 이런 내용의 기도제목이 퍼질수록 누군가에게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이슬람에 대한 공포감, 적대감, 두려움이 강화된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혐오 대상에는 항상 이슬람과 무슬림이 있다. 한국의 이슬람 혐오는 인종 혐오와 종교 혐오가 결합한 상태로 드러난다. ‘이슬람’은 종교를, ‘무슬림’은 종교인을 뜻한다. ‘이슬람’이나 ‘무슬림’ 같은 말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사실 단순하지 않은 작업이다. 그런데 문제는 절대다수의 ‘무슬림’은 선택할 수 있는 종교적 정체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슬림은 날 때부터 가문과 집안의 내력으로 주어지는 강제된 정체성이다. 즉 ‘종교성이 있는가/없는가’, ‘종교성이 강한가/약한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혐오를 뜻하는 영어 표현은 ‘포비아’(phobia)이다. 이것은 어떤 존재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 증오, 적대감을 뜻하는 말이다. 먼저 한 사회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사람들은 그 토양 위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고, 결국 자신의 영역에서 상대방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혐오에 이른다. 더 나아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그렇게 하라고 권면하고 도전하며, 자극하거나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슬람포비아’가 그렇게 한국 사회에 작동하고 있다. 이슬람 혐오의 증상은 매우 심각하다. 담대하게도 이슬람과 17-18억의 무슬림을 한 문장으로 규정해버리는 담대함을 보이니 말이다.
미디어에 다루어지는 ‘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 ‘알라딘과 요술 램프’, ‘나는 양탄자’ 등을 접하면서 현실의 이슬람과 무슬림을 떠올리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한때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게임 ‘창세기전’에 등장하는 무슬림 캐릭터 ‘살라딘’을 떠올리면서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언제부터 이슬람은 ‘공포’와, 무슬림은 ‘혐오’와 연결되어 자리잡게 된 것일까? 1970년대 초반의 석유 파동과 중반 이후에 가속화된 중동 건설 경기 호황(건설 붐)을 겪었을 때, 어떤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이슬람 세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이슬람에 대한 혐오나 무슬림에 대한 배제니, 경계니 하는 것이 번지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어떤 연유였는지 모르지만, 이슬람포비아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과 실상을 논한다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무모한 행동이다. 분석할 수 없는 것, 규정지을 수 없거나 규격화할 수 없는 것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짧은 지면에 그 무모한 짓을 하려 한다. 이 글은 전 세계적인 이슬람포비아 전반이 아니라 한국 사회 속의 이슬람포비아에 국한하여 다룬다. 독자들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과연 그러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되짚어보기를 바란다.

한국의 이슬람포비아 확산의 바탕, 가짜뉴스

이슬람포비아 현상을 분석하는 틀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언론과 매체가 근거 없이, 혹은 부족하거나 과장된 근거를 바탕으로 무슬림에 대한 획일화된 시선을 강조해온 책임이 크다. 직간접적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것에 동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무슬림을 이웃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서조차도 가짜뉴스에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이렇게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슬람 공포, 무슬림 혐오에 근거가 있는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거짓 정보이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공유된 무슬림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 전반에 대해 다루기에는 그 사례가 너무 많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러한 일을 펼친 이들은 한국 보수 기독교일 것 같다. 대부분의 기독교 미디어와 적지 않은 선교학자들이 이슬람 혐오 주장에 동조하거나, 혐오를 주도하였다. 심지어 무슬림을 대상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선교한다는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이런 태도와 반응을 드러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주요 교단과 연합 조직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이슬람대책위원회 등을 만들어 적지 않은 허위 주장과 가짜뉴스를 발표하여 무슬림 혐오를 발산하고 이를 산하 교회에 퍼뜨리는 일에 공모하였다. 한국교회는 “이슬람은 경계하되 무슬림은 사랑하자”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의 이슬람포비아의 바탕에는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시각이 한몫하고 있다. ‘영적 이스라엘’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일부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현대 정치체제로서의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정부에 대하여 마치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채무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는 이슬람 세계를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드러나고, 결국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낳는다.
한국에 무슬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그 이유가 이슬람이 가져올 폐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이슬람권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면서도 국내 무슬림 이주자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이어가는 모순을 보인다.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기보다 성급한 일반화 또는 가짜뉴스에 바탕을 두면서, 무슬림을 사랑한다는 주장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2020 한국 이슬람화 전략? 누가, 어떻게 주장했나

2005년 이슬람의 한국 전래 50주년이 되었을 때, 한국 내 이슬람 진영의 대표 주자라 할 만한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 책자를 발간하였다. 그 책자는 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해 이슬람 진영이 추구하는 6가지 중요한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한국인들과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 이른바 ‘생물학적 이슬람화’를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이 실려 있었다. 한국이 이슬람화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았다. 이런 주장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2001년 이후의 일이다. 이런 일련의 꾸준한 활동의 결과는 현재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무슬림 혐오의 바탕과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후 2007년 「크리스천투데이」의 한 기사에서는 ‘이슬람 전문가’라는 모 박사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1

○○ 박사에 따르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미 중동 I 국가의 한 언론은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전략은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 지도자 선교대회에서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구체화했다.

이와 같은 주장들이 곳곳에서 꾸준한 목소리로 제기되어 왔지만, 그 주장과 근거는 모두 같았다. 출처가 하나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주어가 빠져 있었다. 한국이 이슬람화되고 있다? 어떻게? 한국을 이슬람화하고 있다? 누가? 한국이슬람중앙회인가, 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협력기구(OIC,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누가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일까? 전략을 구성하고 구현하려면 전략 구성 주체와 시행 주체가 있어야 한다. 누가 이 같은 계획을 짜고 추진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운영하는 것일까?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누군가 그런 계획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한국을 이슬람화하겠다는 그 전략은 실제로 있었던 것일까?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는 ‘이슬람화 선교 전략’ 주장은 일부 사실에 오해, 추론, 추정, 상상, 억지, 왜곡이 뒤엉켜있다.
정말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무슬림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만일 어떤 전략이 있다면, 이전과 비교해 무언가 눈에 띄는 흔적, 증거, 정황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전체의 인구 증가 추이보다도 (이른바 이슬람포비아를 주장하는 이들이 무슬림이라고 규정짓는) 이슬람협력기구(OIC) 가입 국가 출신 외국인들은 더 낮은 증가 추이를 보인다. 전체 외국인 가운데 OIC 국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과 그 추이를 보면, 2005년에는 전체 외국인 인구 74만 7,467명 가운데 OIC 출신 외국인은 7만 8,597명으로 10.5%였으나, 2017년에는 210만 8,498명 가운데 19만 9,441명인 9.45%로 낮아졌다. 증가율로 계산해 보면 OIC 출신 외국인은 약 2.5배가 된 것이고, 전체 외국인은 약 2.8배 증가한 것이다. 이 수치는 ‘한국이 이슬람화되고 있으니 무슬림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결국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는 전략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왔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미 2020년은 지나갔다. 이제까지 꾸준하게 ‘이슬람 경계론’을 펼치던 이들과 그 주장을 반복 재생하던 이들은 이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한국 사회에 무슬림 인구 비율이 폭증했는가? 한국은 이슬람화의 바람 앞에 놓인 등불 같은 운명에 처해 있었는가? 그런 증거가 있었는가? 아니다.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이슬람 금융이 한국 사회로 유입을 시도했다거나, 할랄 단지를 추진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었다. 용인, 인천, 의정부에 이슬람 대학을 설립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이슬람에 대해 뭐든지 주장하고, 그런 증거나 징후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기도하고 애를 써서 막아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지금도 한국이 이슬람화되고 있다는 주장과 경계론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한국 교회에 충만한 상황을 누리고 있다. 지금도 온라인에는 이슬람에 대한 정체 불명, 출처 불명의 가짜뉴스와 무슬림을 향한 혐오 주장이 넘쳐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로 중국인들의 이동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에 외국인이 유입되는 것은 무슬림만의 특이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한 무슬림의 조직적인 유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깝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전 세계를 한국화, 중국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무슬림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 사회 속 무슬림 이주자의 삶

실제 한국 내 무슬림 이주자의 삶의 현실은 어떠할까? 그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침투하여 이슬람을 확산시키고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자신들을 향하는 한국 사회의 혐오와 배제의 시선을 받고 있다. 한국 내 무슬림 인구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외국인 등록 카드는 물론, 출입국 기록 어디에도 개인의 종교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많은 나라 출신을 모두 무슬림으로 간주해도 15만-20만 명 사이로 본다. 해외 한인들이 교회를 세우는 열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 내 무슬림들은 120여 개에서 500여 개의 이슬람 사원과 예배 공동체를 세웠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지난 2015년 상반기까지 수 년 동안,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외국인 이주자 밀집(?) 지역과 무슬림 동아리 방, 이슬람 사원을 현장 답사하며 이슬람 사원 주변의 문화적 현황에 대한 1차 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있는 이슬람 사원 중 단독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임대 혹은 소유 포함) 이슬람 사원은 13곳(서울, 부산, 김해, 대구, 인천, 부평, 파주, 전주, 광주, 안양, 안산, 전라, 광주 등)을 조금 넘는다. 건물의 한 공간을 빌려서 동아리 방(숙소 겸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다 포함해도 50-60여 곳에 불과하다.
이 공동체의 절대다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다. 기도처로 간판을 단 경우도 있지만, 생활공간으로서의 숙소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동아리 방이다. ‘동아리 방’으로 부른 이유는, 대학의 동아리 공간이 종교 집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다목적 공간인 것을 떠올려 붙인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동아리 공간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의 동아리 방은 숙소의 기능이 더 크다.
무슬림의 예배일은 금요일인데, 이때 낮 예배에 참여하는 무슬림 예배자의 수는 전국적으로 2천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근무 환경 등의 이유로 금요일에 참여하지 못하고 토요일 저녁 기도 시간에 모이는 수가 다른 날의 기도 시간보다 더 많아 보인다. 굳이 국내 거주 무슬림의 수를 20만 명으로 추산한다면, 무슬림의 예배 출석률은 1%에 불과한 것이다.
이슬람 사원이 자리한 위치는 대부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무슬림 이주자가 모인 곳이다. 무슬림 동아리 방도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 동아리 방들은 지역이 축소되거나 쇠퇴한 곳 등에 이 동아리 방들이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이태원이나 광주, 안산 등의 이슬람 사원 주변에는 향락 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곳들은 이른바 ‘이슬람 선교 거점 지역’이 아니다. 무슬림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뿐이다.

가짜뉴스를 넘어 이해로, 거짓된 경계를 ‘함께 삶’으로

사람들은 ‘혐오’를 지적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혐오가 아니라 경계하자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무슬림을 경계하는 것에는 다 근거가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철저한 배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배제와 포용, 두 모습을 다 가지고 살아간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혐오주의자가 아니라고 착각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게다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이 그리고 사회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욱더 당당해진다. 그런 사례의 하나가 제주 예멘 난민 이슈, 아프간 난민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이다. 그즈음 제기된 반대 집회와 주장들, 청와대 청원들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만큼 외국인에게 온정적인 나라가 없다.”라든지,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퍼졌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도 같은 맥락의 시선이 투영되었다. 무슬림들이, 이슬람 세계 출신 난민들이 테러와 연관되어 있거나 성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외국인 강간범들에게 우리 딸들이 희생되고 있다.”라는 선동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의 중심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자신의 혐오적 실천을 높은 차원의 종교성, 영성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혐오의 근거는 엄연한 진실이고 진리라고 확신한다. 종교에 따라, 교리를 이유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차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리 속에서는 자신의 혐오적 실천이 곧 종교적 결단이며, 하늘의 목소리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까지 이끌린다.
이런 이유로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무슬림 혐오가 확산하는 것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과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배제와 혐오를 그만둬야 한다는 성경적, 윤리적, 종교적 관점은 무슬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무슬림 혐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무슬림에 대한 환대의 문화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배제가 아닌 포용, 혐오가 아닌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오는 글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탈레반 세력이나 추종자들은 분명 무슬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또 다른 세력들도 무슬림이며,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무슬림이고, 카불을 탈출하려 애쓴 사람들도 모두 무슬림이다.
이슬람과 무슬림에 연결된 고정된 생각이나 주장의 다수는 근거가 없거나 부풀려진 왜곡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슬림도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이슬람 혐오를 드러내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거나, 소극적으로 지지한 이들 가운데 이슬람에 대해, 중동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 적은 시간이라도 투자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시작은 조금 늦었지만 다른 이슬람 왕정국가 아랍에미리트가 발 빠르게 이스라엘과의 정치, 외교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지난해 8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고, 올해 1월 24일에는 수도 아부다비에 이스라엘 대사관을 맞이했다. 또 다른 이슬람 왕정국가 바레인도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이슬람의 대의, 무슬림 공동체나 아랍민족주의 같은 것이 들어설 자리는 이제 거의 없다. 우리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행동에 종교적 의도가 담긴 것처럼 봐왔지만, 그들의 현실 정치나 지역의 역학 관계는 정치권력의 이해득실이 우선이었다.
한국교회 안팎에 자리 잡은 다양하고 오래된, 그러나 근거 없는 반(反)아랍 감정과 이유 없는 친(親)이스라엘 정서로부터 거리를 두어야만 중동을 객관화할 수 있다. 그럴 때에야 이슬람포비아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슬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시민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들은 24시간 이슬람만 생각하는 이들이 아니다. 이슬람 역시 사원 건물은 늘어가지만, 교인 인구가 고령화되고, 다음 세대는 멀어지고, 전담 사역자는 줄어들고, 실질적인 교세도 약화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이슬람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물론 지구촌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과 배려,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과정에는 근거가 없거나 부실한 혐오와 배제는 극복하여야 한다.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막을 수는 없어도, 이슬람에 관한 뉴스가 그런 것만으로 채워지는 현실은 넘어설 수 있다. 이슬람에 관한 허황된 기도제목과 각종 주장에 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재빠른 공유만 줄어들어도 가능한 일이다. 한국 교회와 사회의 이슬람 혐오에 대한 객관화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갈등 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 글을 쓴 이유이다.

주(註)
1 “이슬람 ‘2020년까지 한국 이슬람화’… 기독교 대응은?”, 「크리스천투데이」, 2007년 3월 16일.>/font>

김동문|한국외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후 총신대학교 대학원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요르단 등 중동 지역 선교사로 10여 년간 활동하였다. 저서로 『이슬람 신화깨기 무슬림 바로보기』, 『기독교와 이슬람 그 만남이 빚어낸 공존과 갈등』 등이 있다.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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