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탄소중립 사회를 위하여]
특집 (2021년 8월호)

 

  기후위기 시대의 회심
  

본문

 

멸망에 관한 성서의 예언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심을 통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기후위기로 인해 문명의 붕괴가 전망된다. 문명의 종말은 화석연료의 고갈 때문이 아니라, 화석 에너지를 연소시킨 결과로 일어나는 기후위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내달려온 세상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로 인한 멸망은 지금의 세상과 삶을 바꾸어야 해결할 수 있다.

위기의 본질

인류 역사는 쉼 없이 역동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그 발전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 자연조건 덕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약 1만 2,000년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지질시대인 홀로세(Holocene)의 안정한 기후이다. 홀로세는 현재 세계 인구 79억 명을 먹여 살리고 현대 사회를 지탱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후조건이다. 그런데 최근 급격히 발전한 문명은 기후에 영향을 주었고,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Anthropocene)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기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지구라는 ‘큰 행성’에서 인류가 이룬 ‘작은 세상’은 별 탈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구에 상처를 냈지만, 그 상처에 비해 지구는 아주 커서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큰 행성의 작은 세상’에서 ‘작은 행성의 큰 세상’에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 증가와 함께 사회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이른바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이 일어났다. 1만 2,000년 전에 약 400만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800년경에 10억 명으로, 그리고 현재 79억 명으로 증가했다.
1900년에는 지구상에 인간이 만든 물질이 지구 생물 총량의 3% 크기 정도였는데, 2000년에는 절반 크기로 증가하였다. 2020년에는 2000년에 비해 두 배가 되어 이제는 인간이 만든 물질이 생물 총량과 거의 같은 양을 차지한다. 현재 세계 경제는 매년 약 3%씩 성장한다. 이 추세로 23년이 지나면 경제 규모는 두 배가 된다. 이 모든 성장은 인간의 두뇌와 근육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성장은 그만큼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온실가스와 오염 물질을 내뿜고 쓰레기를 쌓아야 이룰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경제에서는 두 배로 커져도 지구에 별 영향이 없다. 하지만 큰 규모의 경제가 두 배로 커지고,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두 배로 커지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하면 지구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연못에 있는 수련 잎 하나가 매일 두 배로 늘어나 30일 뒤 연못이 수련 잎으로 가득 덮인다고 생각해보자.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뒤덮을 때까지는 29일이 걸리지만, 그다음 날에는 순식간에 전체 연못을 뒤덮게 된다. 성장을 미리 제한하지 않으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손을 쓸 시간이 없다. 성장이 빠를수록 한계에 부딪치는 시간도 그만큼 빠르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진다.
지속해서 성장하는 경제는 지속해서 팽창하는 풍선 같은 행성에서나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성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풍선처럼 언젠가는 터져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앞으로 기술혁신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면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물질적으로 유한한 지구에서 성장을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 가열의 위험

체온이 몸 상태를 나타내는 것처럼 지구 평균기온은 지구의 상태를 대표할 수 있다. 체온이 정상보다 1℃가 높으면 우리는 몸의 이상 상태를 감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평균기온은 이미 1℃ 상승했고, 이에 따라 지구는 우리 몸처럼 다양한 기후위기 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는 극단적인 날씨는 자연적인 요인으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흔적이 담겨 있다.
현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2030년대 초반에 지구 평균기온은 1.5℃ 높아진다. 이 정도의 기온 상승을 별 것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기온의 상승은 저기압이 지나가는 경로나 기단의 위치를 크게 바꾸어 어느 지역에 비가 내릴 것인지 안 내릴 것인지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기후 변동 폭이 커져 변덕스럽고 가혹한 재해성 날씨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온탕에 몸 전체를 담그는 경우와 상반신은 열탕에 하반신은 냉탕에 두는 경우, 물의 평균 온도는 비슷하지만 몸의 느낌은 전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1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역대급의 재해성 날씨가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만일 기온이 더 가파르게 올라 2℃ 이상 상승하면 지난 1만 2,000년 동안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홀로세의 안정한 기후에서 벗어나 파국에 이를 수 있다.
기온 상승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당뇨병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과 비슷하다. 당뇨병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없게 되면 심장질환, 뇌졸중, 신부전, 실명과 같은 수많은 합병증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기온 상승은 지구를 조절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려 기후를 변덕스럽고 가혹한 상태로 만든다. 물이 부족해지고, 가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진다. 해수면이 상승하여 연안의 도시와 농경지가 잠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수록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더 흡수하여 산성화되고, 해양 생태계는 붕괴된다. 급속한 기온 변화에 약한 생명체들은 멸종된다. 결국 마실 수 있는 물, 적절한 식량, 안락한 거주지가 불안정해진다. 이처럼 기온 상승은 인류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자연 재난, 미세먼지,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우리 사회가 경험한 여러 재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여러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눈앞에 일어나면 식량과 식수, 주거지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 불안정, 정치 갈등, 국경 분쟁, 난민 발생, 인종 청소 등 파괴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기후위기는 자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와 사회도 급속하고 심각한 변화와 불확실성에 내몰려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인류는 기후위기로 ‘통제 불가능한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구는 끝없는 인내심과 수용력을 가지고 있어 기후위기 충격에도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임계 수준을 넘게 되면 어느 순간에 전체 균형이 깨져버리는,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도달한다. 젖은 도로의 표면 온도가 영상에서 영하로 변하는 순간, 약간 미끄럽던 도로가 순식간에 치명적인 도로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에는 티핑 포인트 요소가 곳곳에 지뢰처럼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지구가 가열되면서 북극해에 떠 있는 해빙이 녹는 순간이 그 지점이다. 해빙에 반사되어 우주로 되돌아가던 태양에너지는 해빙이 녹은 자리에 드러난 검은 바다에 흡수된다. 그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여 해빙을 더 녹이고, 지구는 점점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인다. 결국 기온 상승은 고위도의 얼어붙은 땅인 영구동토층을 녹인다. 이로 인해 그곳에 저장된 막대한 양의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어 기온은 더욱 상승한다. 이 밖에도 여러 티핑 포인트 요소들이 있다.
이처럼 기온이 상승할수록 ‘되먹임’(결과가 원인이 되어 더 큰 결과를 낳는 순환) 현상은 증폭된다. 마이크를 스피커 앞에 가까이 대면 작은 소리가 증폭되어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현상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티핑 포인트를 넘으면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기후시스템이 자기 증폭 과정에 빠져버린다. 티핑 포인트는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빠뜨리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의미한다.

탄소중립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는 1990년부터 5-8년 간격으로 과학적 증거를 모아 분석한 평가 보고서를 발행한다. 2015년 IPCC 5차 평가 보고서에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제한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는 그동안 새로 관측된 현상들을 토대로 1.5℃ 상승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막으려면 2050년에는 탄소중립에 도달해야 한다는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탄소중립은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만,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탄소의 배출량만큼 흡수량도 늘려서 실질적인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앞으로 인류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200억 톤 이하로 제한할 수 있다면, 기온 상승이 1.5℃ 이내로 제한될 확률은 약 66%이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약 420억 톤이다. 그러니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불과 10년 후에는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이 완전히 소진된다. 이 값을 계산할 때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시작하는 시점이 2018년이었다. 아직 1.5℃ 상승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남아있는 기간은 10년이 아니라, 2018년에서 흘러간 기간만큼 빼야 한다.
IPCC는 1.5℃ 상승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절반 이상 줄이고 이후 20년에 걸쳐 나머지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초반에는 과잉으로 쓰는 화석연료가 많으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필수불가결하게 배출해야 하는 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은 달리기 시합 때보다도 더 빨리 뛸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이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러 국가에서 탄소배출이 적은 재생에너지에 대규모로 투자한 것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비용은 각각 89%와 70% 떨어졌다. 재생에너지에 기술혁신이 집중되고 이와 함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저렴한 전기 공급원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재생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나라는 정부 보조금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앴더라도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 신규 전력 중 태양광과 풍력이 72%를 차지하였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살펴보면 유럽의 주요 국가는 40%를 넘어가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20%를 넘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던 미국조차도 거의 20%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6%에 머물고 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 New Energy Finance, BNEF)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인구 3분의 2가 사는 지역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가장 싼 발전인 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세계 기준에서 비싼 석탄 발전이 가장 싸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뒤떨어진 에너지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여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 태양광 발전의 경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처럼 풍부하지는 않지만, 상공에 제트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작다고는 볼 수 없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다.
기존의 산업은 기후위기를 일으키도록 구축되었지 우리가 일으키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는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선진국들은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을 무너뜨리고 재생에너지 기반의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세상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화되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할 처지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기업들에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상품을 요구하려 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바이든 정부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상품에 탄소 국경세 부과를 준비 중이다. 선진국들은 앞선 재생에너지 기술력으로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은 핵과 석탄 발전을 붙들고 있다가 세계 시장에서 걷어차일지 모르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기후정의

오늘날 기후위기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에 일어난다. 생산된 식량의 3분의 1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10억 명의 사람은 배고픔에 시달리는데 15억 명의 사람은 비만으로 고통을 받는다. 쌓이는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어떻게 세상 문제가 성장하지 못해 일어난 결핍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성장이 지속되어도 빈부격차의 심화와 부의 세습으로 인해 이 세상은 언제나 결핍 상태다. 결핍은 성장이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아끼고 나누지 않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전 세계 상위 10% 안에 드는 부유층은 전체 온실가스의 52%를 배출하는 반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가난한 사람들은 7%만 배출한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G20이 배출하지만, 전체 기후 피해의 약 75%는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한다. 사회 밑바닥에 있는 모든 부와 자원을 흡수해서 꼭대기로 끌어 올리는 이런 불평등한 시스템은 자연도 사회도 함께 붕괴로 몰아갈 최적의 조건이다.
우리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공유하지만, 기후위기는 우리를 더욱더 나누고 차별을 심화시킨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을수록 기후 불평등은 더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나라와 부유한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왔다. 반면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기후위기에는 더 쉽게 노출되고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각 계층마다 다르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도 계층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 기후위기로 타격을 입었을 때 소득과 자산의 손실 비율은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훨씬 크다. 부유한 사람은 기후위기를 피해갈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피할 수 없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의 덫에 갇히게 된다.
기후위기는 세대 간에도 불평등한 영향을 미친다. 기후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 어린 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 달리 이산화탄소를 ‘사치스럽게’ 배출할 수가 없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허용 가능한 배출량이 이미 대부분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1997-2012년생)은 그들의 조부모(1946-64년생) 세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에 비해 단지 6분의 1 정도만을 배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온실가스는 배출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대기 중에 남아 누적되므로 기후위기는 계속 악화된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누가, 어디서, 언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에 상관없이 그 피해는 다른 지역에, 다음 세대에게 전가된다. 원인 유발자와 피해를 보고 위험을 극복해야만 하는 사후 처리자가 동일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가로질러 진행되는 전 지구적 문제이자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전 세대 문제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후위기 책임이 모두에게 똑같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공정하다. 기후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나기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맺는말

기후위기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지구 안정성은 흔들린다. 소득은 늘었지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어려서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나이가 들어서는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웃을 이기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불안이 우리 삶을 치열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 삶의 원동력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이 불행의 원동력이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하고,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환경을 파괴하고 생물을 멸종시키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기후위기는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다른 소중한 것들은 비용이나 낭비라고 여기며 살아온 결과이다. 하지만 그토록 맹렬하게 추구해온 성장이 생존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이제 지구 환경은 소수의 성장을 위하여 자원과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부차적’ 위치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공유해야 하는 ‘최우선적’ 위치에 놓여야 한다. 기후위기보다 인류에게 치명적인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모두가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이 개인이나 국가의 수준을 넘어서 드넓은 그물망으로 존재함을 일깨운다. 위기는 사람들을 각자도생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위기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며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기후위기는 연대와 각자도생의 갈림길에 우리를 세운다.
미래 기후와 세상은 미리 주어진 조건이 아니다. 미래 기후는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 기후가 이 세상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성서는 삶을 완전히 바꾸는 ‘회심’만이 예언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지금껏 내달려 온 세상과 삶을 완전히 바꾸어야 기후위기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천호 |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했다. 퇴임 후 기후변화 전문가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파란하늘 빨간지구』 등이 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delete from g5_login where lo_datetime < '2021-09-27 06:12:41'

:

error file : /bbs/boar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