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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2월호)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과 한국 여성신학의 미래
  

본문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지난해 10월 24일 소천하신 박순경 선생(原草, 1923-2020)의 신학은 참으로 통전적이다. 그녀는 1949년 해방 정국의 와중에서 크신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했는데, 이를 통해 이 세상의 만물 중 하나님의 간섭 아래 있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는 그녀 신학의 출발점이며 단초가 되었다. 그러한 하나님의 간섭 아래 있는 것 중에서 그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이 바로 ‘민족’, 한민족의 처지였다. 20세기를 이웃 나라 식민지로 시작했고 가까스로 해방을 이루었지만, 국토는 남북으로 나뉘어 다시 강대국들의 억압과 간섭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박순경 선생은 이 문제를 풀어내고자 일생 고투하셨고, 그녀의 모든 신학적 성찰과 전개는 바로 이 문제 주위를 맴돌면서 점점 더 웅대한 세계신학으로 발돋움한다.
필자는 이러한 박순경 통일신학을 하나의 ‘토착화’ 신학으로 보고자 한다. 물론 박 선생은 살아생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윤성범, 변선환 방식의 토착화신학이 민족의 분단된 현실을 외면하고 민족의 문화적 시원을 찾는 등의 추상화로 빠진다고 심하게 비판했다. 또한 박순경 신학에서 하나님의 편재성과 더불어 절대성으로 여기는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강조하다 보니, 한민족 고유의 신앙과 문화적 전통과 대화하려는 당시의 토착화신학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필자에게 토착화신학의 진정한 의미란 바로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을 오늘 우리 현실의 가장 절실한 문제와 더불어 씨름하는 것에 있는바, 지금 한반도의 현실에서 참으로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분단된 남북의 화해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공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가 말하는 토착화신학은 박순경 선생의 통일신학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통일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지평이라는 한 가지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단의 더 깊은 뿌리를 정신사적으로, 종교문화적 근본에서 찾는 것이 긴요하므로 오늘의 토착화신학은 과거 좁은 의미의 토착화신학과 통일신 학의 융합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박순경 선생이 지난 2014년 92세의 노령으로 출간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구약편)』이 바로 그러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선생 스스로가 그렇게 뚜렷이 의지하고 의식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읽힌다. 거기서 선생은 시간과 우주 생명역사의 전개를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후기 유대교 묵시록에서 마무리되는 구약의 언어로 일관되게 살폈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그러한 구약적 하나님 아래에서의 인류 역사를 동아시아 동이족 환국(桓國)의 역사와 연결하면서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지역이 수메르 문명권에 속하고, 그 수메르 문명이 동이족 환국으로부터 발단된 것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주창이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개된 어떤 토착화신학보다 더 급진적이고 전복적으로 전통 신학을 뒤집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지금까지 한국의 일반적인 토착화신학에서는 한국의 삼신(三神) 개념이나 하나님 개념이 유대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했지만, 박순경 선생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학에서의 주객의 전복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선생은 그러한 고찰 끝에 다시 그와 같은 고대 문명의 신(神) 의식과 이스라엘 출애굽 하나님의 구원 의식이 서로 “반립”(反立)한다고 말하며, 동이족의 환국과 수메르 문명, 바빌론 문명 등이 “범신론”과 “다신들”을 대두시키면서 초월성과 타자성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멸망했다고 결론짓는다.1 그래도 이러한 모든 성찰과 고찰은 박순경 통일신학이 하나의 토착화신학이라는 것을 드러내준다.

한국신학으로서의 박순경 여성신학

이상에서 살핀 대로 박순경 통일신학의 출발점은 만인과 만물을 위한 야훼 하나님의 전적인 타자성과 초월성이다. 비록 그 시원이 동이족의 환인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해도, 이후 이스라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역사신앙’이야말로 하나님의 실재성에 대한 참된 의식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 역사신앙이 신약시대에 와서 2,000년 전 유대인 남성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에 의해서 결정적이고 궁극적으로 확증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순경 신학은 다른 여느 현대 신학자의 그것보다 더욱 뼛속까지 바르트 부류의 신정통주의 신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고, 민족(한민족)과 민중(여성)에 대한 뛰어난 사랑과 염려로 정통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떻게든 한민족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민중 중의 민중인 여성을 위한 신학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필자는 이것을 박순경 신학의 성령론적 전개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가, 여성신학이 일반적으로 꺼리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이나 ‘주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성에 대한 이름을 성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일회적인 역사성”의 언어라고 보면서 여전히 고수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왜냐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한민족신학이나 통일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과 같은 주제들이 “신학의 세계성 문제들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의 차원에 직결되어야” 한다고2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 따르면 하나님의 부성이나 아들 예수의 그리스도성은 그 역사적 유일회성으로 인해서 결코 포기될 수 없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령의 차원에서, 새 피조물의 탄생의 어머니 표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 ‘어머니’ 이미지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괄하는 더 큰 총체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어머니’라는 칭호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녀의 성령론적 여성신학의 전거가 되는 로마서 8장 18-27절 에서 신음하고 진통하는 피조물들이 “몸의 고난”(23절)을 겪고 있고, 거기서의 고통이 여성의 “해산의 고통”으로 비유되었다는 점에서, 여성이 그 몸들의 구원을 위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표시하는 “더 적합한 표징”이 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남성도 그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힘입어 여성 인간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3
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여성신학적 주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는 개신교 신학자이지만 가톨릭의 마리아 상징을 교회의 어머니와 성령의 표징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이러한 급진적인 여성신학적 사고는 하나의 한국적 신학으로서 민족의 잘됨과 하나됨을 위한 역할로 연결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래서 한국 여성신학은 미국 등의 서구 여성신학과는 달리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합된 한민족”을 주제로 삼아야 하고, “한민족의 핵심문제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피억압 민족의 여성은 남성 대 여성의 권리 주장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민족이 바로 민중이 되고, 민중의 문제가 곧 민족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한국 여성신학은 민중 신학이기도 하고, “한국신학은 한국 여성신학이고, 한국 여성신학은 한국신학”이 되는 것이다. “한민족이 한국신학의 주체”라고 보는 그녀에게 여성은 한민족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어서(예를 들어 유교 선 비 집안을 배경으로 하는 자신의 어머니는 비록 교회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었지만) 민족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어머니로 되살아났다고 감격하였다.

한국 여성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이렇게 심지어 교회를 배척하기까지 했다는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민족’(민중)을 매개로 ‘교회’의 어머니로 받아들인 박순경의 토착화는4 북측의 사회주의와 주체사상과 관계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니 오히려 여기에서야말로 그녀의 성령론적 개방성이 뛰어난 역할을 해서 그녀는 어떻게든 기독교와 북의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을 연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한반도의 해방과 통일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시달리는 제3세계 민중들을 위해서 새로운 “중립의 길”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박순경에 따르면 한민족은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 먼저 20세기에 들어서 3·1항일 민족운동을 통해서 ‘민족·민중·여성’의 삼차원적 민족 주체성을 세계사에 드러냈다. 하지만 이후 그 실현에 실패해서 결국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세계는 더욱더 미국 등의 서구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에 경도되어 오늘 세계 민중의 고통이 심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해이다.
그녀는 세계사가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데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고 파악한다. 그래서 특히 한국 기독교의 반공주의 극복을 절실한 문제로 보았다. 그녀에 의하면, 물질과 정신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론”이었고, 거기서 “기독교 전통에 내포된 추상적인 영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박순경은 북측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단순한 추종이나 반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오랜 한민족적 자주의식, 특히 일제하에서의 항일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전쟁의 잿더미를 딛고서 이후 미국 자본주의 중심의 국제 사회에서 혹독한 고립과 고통을 겪으면서 제안된 민족사적 배경을 가진 의식이라고 밝힌다.
이에 더해 한민족의 온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구원사로 이해하며 기독교와 민족, 좌익과 우익의 구분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을 밝히고자 하는 그녀는 북측의 주체사상, 특별히 ‘인간개조’ 사상이 기독교의 예언자적 선포와 예수의 새하늘과 새땅, 새사람의 하나님 나라 이상과 “접근” 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단지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으로 환원해버리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구체적인 역사에서부터의 인간개조 사상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녀에게 부활은 특히 “정신과 물질의 통합”이기 때문이다.5
또한 이와 더불어 만약 지금까지의 한국 보수 기독교처럼 흡수통일을 주장하며 북측의 사회주의 운동과 주체사상의 전개를 모두 탈각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세계 민중운동사에도 큰 손실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남미의 해방운동이나 제3세계 어느 곳에서의 민족·민중운동보다도 한반도 북측에서의 실험과 그 “역사적 수행의 의미”가 서구 기독교와 미국 등의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인류 문명의 세계사적 방향과 관련해 독창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순경은 이러한 강한 신념과 신앙으로 어떻게든 남북과 좌우 화합 과 통합을 위해서 여성신학자로서의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운동에도 참여하였고, 이러한 신학적 사상을 토대로 한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어서 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도 했다.

박순경 이후 한국 여성신학의 미래-聖·性·誠의 여성신학과 ‘부활의 평범 성’의 확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매우 정치한 논리와 더불어 인간 주체성을 이루는 신분(민족)과 계급(민중), 성(여성)의 세 요소를 매우 통전적으로 아울러서 그 미래적 통합을 지향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는 삼위일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여전히 너무 서구적이고, 좁은 의미에서의 선교신학적이며, 가부장 중심주의적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연유를 그녀 신학에서의 기독론의 한계로 보고자 한다. 그녀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어떻게든 한민족의 전(全) 역사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개와 연결시키려 했고, 그래서 그 둘 사이의 역사적 고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최종적으로는 그 둘 사이의 “반립”을 말하고, 결국 서구 기독교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의해서 한민족의 미래 사회가 세례를 받아야 함을 역설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그녀가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의 예수 사건을 야훼 하나님의 유일한 궁극적인 구원 사건으로 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가 아무리 하나님 나라 비전의 세계사적 성령론적 확산을 말해도, 종국에는 야훼 하나님의 아들 예수 사건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부활’을 유일회적인 “역사적인 사건”(das objective Faktum)으로 보면서 그녀의 신학에서도 그것이 모든 가치의 종말론적 전거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박순경 이후 한국 여성신학의 미래가 바로 이 지점을 넘어서는 일에 달려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 부활의 유일회성에 대한 고착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아무리 여성친화적인 신론과 성령론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결국 여성의 구원은 남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부활의 실제’(resurrection reality)를 2,000년 전 역사적 예수의 한 점에 고정시킨다면-이미 『예수에게 솔직히』의 로버트 펑크 같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나 류터나 피오렌자 등의 고전 여성신학자들도 밝힌 대로-이후 모든 신앙인의 신앙 실천은 일종의 “우상숭배”처럼 그 역동성과 긴장성,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책임성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6
더군다나 박순경 통일신학은 한민족의 주체성 확립을 신학의 제일 관건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활 담론으로 오직 예수에서만의 부활 실제를 주창한다면, 그것은 인류 역사상 다른 문명에서의 몸의 죽음 이후에 관한 이야기, 즉 기독론적으로 말하면 부활 실제의 이야기를 부 정하는 것이 되므로 그러한 부활의 독점과 독단은 오늘날 중층적으로 드러나는 세계 다원화의 시대에서는 더 견지될 수 없다. 그것은 비서구 문명의 이스라엘 유대 기독교 문명에 대한 궁극적인 종속성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특히 그 비서구 문명권인 한국 여성신학자로서 그러한 관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박순경 신학의 중대한 내적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찍부터 진정한 ‘한국적 여성신학’을 강조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고전 유교, 불교, 도교의 세 전통이 서로 응대하는 가운데 탄생한 신유교(新儒敎) 전통과 대화하며 “복수(複數)의 그리스도”를 주창했고, “거룩(聖)의 평범성의 확대”를 말하면서 그와 더불어 “부활의 평범성”과 “부활의 보편성”, 그리고 “명멸하는 부활”을 강조하며 서구신학과 남성신학과 소위 전통 신학의 부활의 독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면서 여러 차원에서, 여러 시간과 공간의 중층적 현실에서 드러나는 부활의 실재를 한국 여성신학적으로 밝히는 일에 주력해왔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聖·性·誠의 여성신학’이다.7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부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주장하며 21세기 오늘까지도 거의 모든 신학에서 아킬레스건이 되는 이 지점을 넘어서는 일은 결코 여성신학 혼자만의 주제가 아니고, 한국신학이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더 나아가서 ‘신학’ 혼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획기적으로 변화된 삶의 정황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담당해야만 하는 과제인데, 그렇지 않으면 여성과 남성 모두의 삶이 서로를 소외시키면서 결코 편안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퀴어신학의 정당성이 가장 확실하게 확보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이 전통 신학의 부활 독점을 깨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은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좌지우지해 온 서구 기독교적 제국주의와 우월주의가 더는 잘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제국주의와 우월주의가 궁극적으로는 서구 기독교 문명의 부활 독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여성신학과 한국신학이 진정으로 세계 문명을 위한 제3의 신학으로서 또 다른 믿음과 신앙의 학[‘信學’]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필자는 이러한 독점을 깨드리는 일을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8 그러면서 또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이 부활의 문제, 물질과 몸의 마지막에 대한 질문, 정신 또는 영과 몸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더 이상 신학이나 인문학 홀로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부분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3차원적 우주 밖의 물음이며,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정신과 물질, 신과 인간, 학문과 신앙, 사실과 진실(상상과 해석)의 불이적(不二的)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만큼 한국 여성신학은 더욱 정치하고 치밀하게 하나의 포괄적인 ‘믿음을 위한 통합 학문’(Korean Feminist Integral Studies for Faith)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한국信연구소’는 그러한 일을 지향한다.

짧은 마무리-한반도 통일을 위한 비전

한국 여성 통일신학자 박순경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절실하고 진지하게 다른 어떤 ‘남성’ 신학자나 ‘서구’ 신학자보다도 시대의 통합 학문으로서의 한국 여성 통일신학을 기도했다. 그 가운데서 그녀는 민족과 민중, 여성의 세 요소를 세계문명사적 전망 안에서 어우르며 자신의 한국 여성신학, 한국 통일신학을 구상한 것이기 떄문에 그녀의 신학적 비전과 외침은 웅대하고 진실하다. 필자는 앞에서 짧게 박순경 통일신학의 모순점과 불철저성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순은 결코 박순경 신학의 역동성과 파급력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이 글의 마지막을 그녀의 웅변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필자 또한 다음 세대 한국 여성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이러한 외침이 하루속히 이 한반도 땅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남은 자’들의 긴긴 역사적 존속은 남·북, 남조선·북조선 민족의식에 현재 살아있음에 틀림없으며, 그 과거역사가 우리의 항일 선열들과 현재의 우리의 통일의지의 동력이다. 통일은 우리 역사의 필연이고 운명이다.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가 ‘삼한일통’(三韓一統) 을 외치면서 중원 북방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는 줄기찬 민족의식은 동이 족의 역사의식의 명맥이다. 우리 민족의 그러한 역사의식 때문에 항일 민 족 독립운동의 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했으며, 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장기수들이 20-40여 년 동안 남한의 감방에서 혹독한 시련 끝에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나가기도 했으니, 온 청춘을 민족제단에 바친 것이다. 그러 한 민족은 궁극적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되살아날 것이다.9



주(註)

1 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신앙과지성사, 2014), 682 이하, 702.
2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한울, 1992), 76-77.
3 박순경, “제3세계 여성과 신학”, 위의 책, 269.
4 이은선,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동연, 2020), 185.
5 박순경, 『과거를 되살려 내는 사람들과 더불어-原草(본디풀) 박순경 박사 팔순 기념 문집』(사계절, 2003), 298.
6 이은선, “페미니즘 몸담론과 역사적 예수 그리고 다원주의적 여성 그리스도론”,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대한기독교서회, 2004), 118 이하.
7 이은선, “부활은 명멸(明滅)한다-4.16 세월호 2주기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동연, 2018), 147 이하.
8 이은선, “책을 내며”,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모시는사람들, 2020), 8 이하.
9 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705-706.


이은선 | 한국여성신학회 회장과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세종대학교를 명예 퇴직하고 지금은 현장(顯藏) 아카데미 ‘한국信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등이 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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