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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새로운 혼례·장례문화]
특집 (2021년 1월호)

 

  기독교와 현대 죽음문화: 침묵에서 관심으로
  

본문

 

인간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례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래서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교훈을 준다.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죽음이 주는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적인 부분으로, 법과 제도적인 부분으로, 그리고 종교적인 부분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인간에게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그런데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죽음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건강관리의 실패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현대인들은 건강한 삶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죽음은 그만큼 더 불편한 대상이 되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죽음의 불가역적인 특성 때문이다. 일단 죽음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면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 이러한 단절은 죽음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이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불가지성이다. 만약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면 죽음이 더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중요하지 않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죽음 이전의 인간의 삶은 현재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기 위해 현재의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이들은 각각의 죽음관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동일하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독교와 불교의 죽음관은 다르다. 기독교와 유교의 죽음관도 다르다. 기독교와 무속의 죽음관 역시 다르다.
죽음관에 따라 죽음을 처리하는 죽음의례도 다르다. 죽음의례에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투영되어 의례라는 형식으로 재현되고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적인 사례가 장례이다. 한국의 장례문화와 일본의 장례문화는 다르다. 미국의 장례문화와도, 인도의 장례문화와도 다르다. 각 나라의 문화와 가치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죽음관이 다르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천국과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고, 저승이 있다는 관점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죽음 이후에도 인간이 사는 세상처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죽은 자들만을 위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죽음의례는 단순히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의례이며 종교행위라고 할 수 있다.
죽음관이 달라지면 죽음의례도 달라질 수 있다. 역으로 죽음의례의 변화를 통해 죽음관의 변화를 유추할 수도 있다. 한국에는 집 밖에서 죽으면, 즉 객사하면 원혼이 된다고 해서 시신을 집으로 들이지 않는 민간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죽음관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임종이 다가오면 집에 와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는 죽음이 임박하면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여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변화는 죽음관이 죽음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의 존재 이유

종교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죽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종교가 철학이나 윤리, 도덕이나 규범과 구별되는 분명한 이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종교가 죽음의 문제에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종교로서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종교가 제시하는 사후세계는 분명히 있지만, 그곳에 가기 위한 방법은 종교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종교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 가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불교인으로서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살아 있을 때 이러한 점이 부족했다면 죽음의례를 통해 만회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불교의 49재와 천도재, 무속의 굿, 천주교의 위령미사가 그것이다. 따라서 죽음의례 가운데 하나인 장례는 종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장례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종교에는 유교와 불교, 무속 등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전통 장례문화 형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전래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었으며, 조상제사 문제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는 근대를 거처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장례문화를 우상숭배 또는 미신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배척하려고 했다. 한국 장례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교식 장례에서 기독교인이 고인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되며, 제사에서도 이와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었다.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논의는 장례에서도 진행되었다. 한국 기독교가 제시한 경계선은 빈소에서 죽은 자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죽은 자에게 절을 하는 것을 예(禮)가 아닌 우상숭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의 준수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핵심적인 지표였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유교식 장례를 진행한다고 해도 목사가 주관하는 입관예배, 발인예배를 드리면 다른 형식들은 대체로 문제 삼지 않았다. 유교식 제사는 목사가 주관하고 음식은 장만하되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 추도예배 혹은 추도식으로 변형되어 진행하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삶과 죽음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목회자들은 교인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교인이 아니더라도 장례에서 염습, 발인, 운구, 매장/화장 등의 절차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목회자는 한편으로는 상주(喪主)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의례를 집례하는 성직자로서 장례 과정에 헌신적으로 임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죽음 앞에서 죽은 자와 유족,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는 공동체에게 종교적인 행위를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했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죽음의 문제 해결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다른 죽음문화: 종교의 역할 감소

한국의 장례문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였다. 첫 번째는 화장률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9년 전국의 화장률은 88.4%(1991년 17.8%)로, 10명 중 9명은 화장을 한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사회가 1990년대 중반 이후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묘지강산을 금수강산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화장문화운동을 펼친 영향으로 판단된다. 통계 수치만으로 본다면,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매장을 고수해온 한국인들의 죽음문화가 완전히 변했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화장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입장 변화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한국교회는 ‘몸의 부활신앙’으로 인해 화장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개신교는 화장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어 보인다. 화장이 부활신앙에 위배된다면 오히려 매장문화운동을 펼쳐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으니, 화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한편 오늘날 우리나라의 장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장례식장은 장례를 치르기 위한 공간과 장례서비스를 제공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체이다. 즉 장례식장은 상업화된 공간으로, 집에서 치르는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집에서 치르는 장례는 오직 한 사람의 장례를 치르지만, 장례식장은 그렇지 않다. 한 사람만 치르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빈소에서는 또 다른 장례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업화된 장례식장에서는 장례용품 판매, 장소 임대료, 염습 비용, 음식 비용 등으로 수입을 만든다. 장례식장에서는 장례지도사가 염습을 하는데, 만약 과거와 같이 목회자가 염습을 한다고 하면 그만큼 업체 측의 수입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염습 장소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보건위생과 전염병 질환 등에 대한 예방을 강조한다. 따라서 고인을 염습하기 위해서는 보건위생과 전염병 질환 등에 대한 준비가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가 상업적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염습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과거와는 다르게 목회자가 교인의 장례에 염습을 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뿐만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이나 목회자의 가족이 기피하는 행위일 수 있다.
집이 아닌 상업적인 장례식장으로 장례 공간이 변함에 따라 성직자의 장례 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장례식장에서는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를, 장례식장을 벗어나서는 매장인 경우에는 안장예배를, 화장인 경우에는 봉안당 안치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웰다잉(well-dying)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1997년 보라매 병원에서 발생한 사건과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국내 처음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실시된 존엄사, 그리고 2010년 법정 스님의 죽음은 웰다잉 담론의 확산을 이끌어냈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여 년간 학계뿐만 아니라 한국연구재단 지원과제 수행, 국민건강보험공단, 복지관, 서울시 등에서 웰다잉 문화 확산과 정착을 위한 연구와 강연, 프로그램, 책자 발간 등을 진행해왔다. 한국죽음학회에서는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도 발간
했다.
1998년에는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가 설립되어 화장문화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 한국은 매장이 아닌 화장문화 국가가 되었다. 또한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2018년에는 웰다잉 시민운동이 창립되었다. 2018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생전 장례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생전 장례식은 맞이하는 죽음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으로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직접 마무리하려는 웰다잉 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2018년 2월 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7세(2018년 기준)로 조사되었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불필요한 연명치료 또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웰다잉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제시되면서 이 문제를 법제화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 7월 기준으로 11만 2,239명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지만,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신도들에게나 대외적으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웰다잉과 연명의료결정 문제를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선택할 의료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기독교, 이제는 죽음을 말하자

기독교의 죽음관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으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선악과를 먹으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믿으면 인간은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음 이전에 이러한 일이 발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독교의 구원은 죽음 이전에만 가능하며 죽음 이후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죽음의례는 종교의례가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에서 행하는 장례의 하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장례에 의해서 죽은 자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전래 이후 제사 문제로 많은 탄압을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장례에서 절을 하지 않아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죽음을 극복하는 분명한 종교적인 교리를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임종부터 염습, 문상, 발인, 운구, 매장/화장 등 장례에서 목회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는 장례는 교인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서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구원 문제뿐만 아니라 그를 떠나보내는 사람에 대한 위로가 목회자와 교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회와 목회자가 장례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비중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장례는 집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며, 도시화 이전에 시골집에서 치르던 지역 공동체적인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핵가족화와 맞벌이의 증가, 개인주의의 확산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가 장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사회구조의 변화라는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장수 시대에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장수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웰에이징(well-aging)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등장했다. 한편 한국 사회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장례문화는 지난 20여 년간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으며, 향후에 또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생전 장례식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한국 기독교는 전래 이후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역할을 충분히 해왔으며, 그 결과 놀라운 양적 성장을 가져왔다. 이제는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죽음 그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의 입장과 의견을 제시하고, 시대에 맞는 죽음의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대 사회에서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가 죽음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전과 세속화에 대한 위기 속에서 결국에는 구원의 문제까지도 외면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송현동 |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대표 논문으로 “한국 죽음문화의 변화와 그 의미: 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가 있다. 건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7월호(통권 7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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