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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한국 기독교, 힘을 잃다]
특집 (2020년 12월호)

 

  한국교회의 공신력 추락 요인과 대안
  

본문

 

한국교회 공신력의 현주소

한국교회는 1980년대까지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성장세가 주춤했다. 성장이 멈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한 것이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사회와 같은 다종교 상황에서 특정 종교를 선택할 때에는 그 종교가 가진 사회적인 평판이나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개신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가장 호감도가 떨어진 상태이며, 그 이유 중에는 공신력 하락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20%를 밑돌고 있다. 201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개신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9.7%이므로, 거의 개신교 신자 수만큼만 교회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 만족도나 선호도를 묻는 대부분의 조사에서 ‘보통’이라는 응답이 통상 50% 이상을 차지하고 많게는 80%까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호불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경향을 감안하면, 이 조사 결과는 매우 이례적이다.
5점 척도의 평균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60점을 넘어야 낙제 수준을 면한다고 할 때 5점 만점으로는 3점이 넘어야 하지만, 10년 동안 평균 점수는 한 번도 3점을 넘지 못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50-55점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다. 올해는 4점 척도로 조사를 했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신뢰한다는 응답(31.8%)에 비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63.9%)이 두 배 이상 많이 나와서 전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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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종교별 호감도에서 개신교는 불교(40.6%), 천주교(37.6%)에 비해 훨씬 낮은 9.5%에 불과하였고, 유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2 현재 신자는 거의 없고 전통 종교로 여겨지고 있는 유교와 개신교의 호감도가 비슷하다는 것은 개신교의 사회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교회에 대한 비개신교인의 신뢰도는 이전보다 더 낮아졌다는 응답이 47.9%로 5년 전 조사 결과(19.7%)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한 목회자들의 신뢰도 역시 2012년 63.2%에서 2017년 35.5%로 5년 사이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신력 하락 이유

이렇게 공신력이 하락한 이유는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신뢰도 제고를 위해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기윤실에서 조사한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조사 결과, ‘불투명한 재정 사용’이 2017년에 이어 올해에도 가장 많이 나왔고, 다음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삶’, ‘타종교에 대한 태도’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조사에서 나타나듯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는 항상 ‘지나친 헌금 강조’가 포함된다. 이뿐만 아니라 교단이나 교계 단체 할 것 없이 ‘돈 선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단지 특정 단체나 특정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교단 규모와 상관없이 금권 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재정 운용을 둘러싼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 재정 문제는 한국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교인 수가 수천 명에 이르고 1년 재정 사용액이 수십 억 원이 넘어가면서 크고 작은 재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모범적인 유명 대형 교회나 존경받던 목회자가 돈 문제로 하루아침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청렴하고 정직해야 할 종교인들이 비종교인 이상으로 비도덕적으로 금권을 사용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신성한 교회 재정을 운용하는 데 비리 의혹이 있다는 것은 비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같은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들조차도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불투명한 재정 운용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특정 집단의 재정 구조는 그 집단의 특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재정은 집단의 설립 목적이나 추구하는 방향에 입각해서 지출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재정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정을 더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교회 재정을 성서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단체 못지않게 투명하게 운용함으로써 교회 구성원인 신도들에게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공신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반드시 교회 전체 앞에 재정 보고를 철저하게 한다. 그리고 재정 보고 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 통일된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며, 자금의 흐름이 투명하게 나타나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교회 재정 사용에도 공공성이 요구된다. 목회자의 세금 납부만으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띠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들만을 위한 공동체로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대명제에 동의한다면 교회 재정의 얼마간은 우리의 이웃을 위해, 다시 말하면 사회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각 교회에서 사회봉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재정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재정적으로 자립 상태에 있는 교회의 경우 내부를 위한 재정을 과감하게 줄이고 최소한 20% 이상의 예산을 선교 및 사회봉사비로 사용하도록 원칙을 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교회의 공신력을 추락시키는 요인으로 교회 세습을 들 수 있다. 최근 한국교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 주제가 바로 교회 세습이다. 교회 세습은 교계에서 교회의 참모습과 관련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한국 개신교의 가치 지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교회 세습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고 2000년대 들어서 심화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담임목사직을 부자지간에 세습하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당시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회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해방 이후 교회의 재정 자립도는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를 맡는다는 것이 고난의 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매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출되는 목사후보생은 종교 영역에서도 경쟁 원리를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종교 인구와 교회 수는 정체되는 데 반해 목사 수는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회는 경제 영역과 달리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임 목사의 카리스마에 기초한 지도력이 은퇴 후에도 남아 있기 때문에 공급에 비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담임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며 교회에서 일하지 못하는 무임목사의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 세습은 제한된 재화를 두고 벌이는 경쟁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부하는 재벌 세습과 다를 바 없다. 담임목사직을 대물림하는 것, 곧 교회를 물려준다는 말은 교회의 모든 자본을 넘겨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교회 세습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교회 재산에 대한 이해이다. 교회의 재산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신앙 공동체의 것이지만, 세습이 이루어지는 교회에서는 사실상 목회자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엄청난 액수의 교회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습 문제는 경제 정의와도 관련된다.
이렇게 볼 때 교회 세습은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에서 근대 정신을 꽃필 수 있게 했던 공정한 경쟁 원칙이 전도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대형 교회의 자본은 단순히 건물과 토지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목사의 카리스마를 통해 형성된 상징 자본과 대형 교회가 누리고 있는 풍부한 문화 자본, 그리고 무엇보다 넘쳐나는 수많은 신도를 통해 형성된 연결망, 곧 사회 자본이 있다. 이렇게 교회의 유무형의 자산을 목사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교회 세습을 방지하려면 신학적인 점검과 함께 교회 구성원 모두가 교회 공동체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 역사에서 단순히 의례의 기능만 수행하던 곳이 아니다. 시민 사회의 전통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가족주의라는 편협함을 넘어선 공동체였다. 교회의 구성원인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은 이러한 역사 전통에 기반하여 교회에 대한 이해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교회 세습을 넘어서는 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고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는 시발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교회 재정 구조와 세습에 관한 문제는 교회 제도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개인 윤리도 교회 공신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중에서도 성 윤리가 특히 그렇다. 요즘 목회자의 성 범죄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다. 목회자의 성 범죄 역시 한국교회가 대형화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교회에 대한 관심이 주로 재정 규모와 교인 수에 집중되는 성장주의 사고에 따라 교회의 양적 성장이 우선시되어 목회자의 능력 또한 이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목회자의 인격이나 성품 등의 자질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에 대한 의존이 강하고, 목회자에게 교회 안의 많은 권한과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심한 경우 거의 모든 일을 목회자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심지어 부당한 일조차도 주변에서 견제하거나 제동을 걸기 어려운 실정이다. 성 범죄는 많은 경우 권력과 결부되는데, 약자의 위치에 있는 평신도 여성이 목사의 권력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대부분 남성이고, 성에 관한 문제는 힘을 가진 남성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다거나, 상대방과의 관계를 복종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는 남성주의적 경향 또한 교회 안에서 성 범죄가 끊이지 않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교회 안의 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개인의 노력과 함께 교회 안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회자가 잘못할 경우에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노력 없이 한국교회의 공신력 회복은 매우 어렵다. 앞에서 살펴본 기윤실의 사회신뢰도 조사에는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전에는 ‘봉사 및 구제 활동’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2013년 이후에는 세 번 연속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이 가장 높게 나오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도 윤리와 도덕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성 범죄가 퇴출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교회 밖의 요인으로는 이단의 득세가 개신교 공신력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이단 교인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대부분의 이단 교회들은 교세를 크게 부풀리거나 아예 신자 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단 연구자들은 적어도 100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지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100만 명이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 신천지는 올해 코로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신자 수가 21만 명으로 나타났다. 교육생을 포함해도 30만 명은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의교회는 200개 교회, 2-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구원파의 경우, 세월호 사태에서 파악된 유병언의 구원파는 1만 명 미만으로 추산되며, 나머지 구원파가 3만 명이 채 안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밖에 통계상으로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 이단을 포함해도 전체 수는 1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된다.3
최근에는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 교인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단의 발생이나 증가 요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개 이단 종파의 경우 정통 교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여 신자들을 확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존 교단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는데 여기에 현혹되는 신자들이 많다. 게다가 교회의 기존 모임이 제도화, 형식화되면서 신자들의 실제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단 교회들은 이 부분에 집중하면서 교인들을 공략한다. 여러 사회학 연구는 이단 교회로의 유입이 교리의 차이보다는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의 친밀성을 신자 유입의 전략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단 교인들이 정통 교회에서 유입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단 교회들은 기존 교회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기존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적인 필요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통 교회들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신천지 교회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때 그들의 전략을 정통 교회들이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이다. 따라서 이단 교회들의 문제와 함께 신자들을 이단 교회에 빼앗기고 있는 정통 교회들의 문제에 대한 개선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지 못하는 비개신교인들을 감안하면 이단 교회들을 비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단 교회들과는 다른 정통 교회들의 탁월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한국 개신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이다. ‘개독교’나 ‘단무지’로 표현될 정도로 한국 개신교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같은 기독교인 가톨릭이 포용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해 개신교는 매우 배타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언젠가 있었던 가톨릭 신자의 교리 호감도 조사에서는 개신교 교리에 대한 호의도가긍정적인 반응이 10.3%인 데 반해 부정적인 반응은 51%로 나타났는데 이는 불교나 유교보다도 낮은 것이었다. 교리상으로는 같은 기독교인 개신교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호의도는 훨씬 낮게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회와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진리를 선포하고, 상대방을 단순히 전도 대상자로 여겨왔다. 절대 진리를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전도의 대상자와 타협하기 어려우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낮잡아 보기 쉽다. 이렇게 자신의 집단 안에 매몰된 사람은 더 넓은 사회의 지평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단의 개신교인들과 개신교 지도자들은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으나,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는 더 나빠지고 우리 사회와 소통이 되지 않는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형국이 벌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생활에 열심일수록 사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더 떨어지는 기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의 개신교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지나치게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해왔다.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생활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여 기독교인들을 분리주의자 또는 배타주의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이 사회는 비록 죄악이 넘쳐난다고 해도 포기하고 방치되어야 할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구현되어야 할 공간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의 삶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모든 기독교인의 사회생활에도 확대하여 적용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나친 이원론적 신앙을 극복하고 균형 있는 사회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신력을 회복하려면

선교 초기에 한국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되었다. 자원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수평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교회에 속한 교인은 공공의 공간에 참여하는 자를 뜻하였고, 초월의 가치에 자신을 이어 기존의 관행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새로운 삶에 헌신하겠다며 공중 앞에서 선서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은 이와 같은 기독교 시민으로서의 직분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신앙과 삶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자신의 신앙이 삶의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공간에서는 그 자체의 논리와 기제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독교 신앙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갖는다고 해서 공공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교분리를 주장하던 한국교회에서 최근 10여 년 사이에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오히려 공공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공정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교회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공평성과 공공선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공동체에 대한 관점으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공동체라는 관점에서는 특정인이 우월한 위치를 점하지 않고, 주종의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다른 구성원들을 존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만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4 그럴 때에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되고 사회로부터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주(註)

1 「2020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 세미나 자료집」(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20년 2월 7일), 10.
2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 분석리포트』(URD, 2018), 197.
3 변상욱, “개신교 증가의 이면 상황을 직시하자: 교계 상황과 이단 문제”(‘개신교는 과연 약진했는가’ 세미나 자료집, 2017년 1월 5일), 23-24.
4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 운동에 관한 내용은 다음 책을 참조할 것. 정재영, 『함께 살아나는 마을과 교회』(SFC, 2018).



정재영 |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로 종교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21세기교회연구소 소장과 한국종교사회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함께 살아나는 마을과 교회』, 『강요된 청빈』 등이 있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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