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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0년 9월호)

 

  온라인 시대와 기독교 예배
  

본문

 

2020년을 맞이하여 우리 삶은 예기치 않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갑작스럽게 강타한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 경제, 교육, 심지어는 종교의 영역까지 이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 암담한 현실은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한국교회들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예배 모임 장소를 가상의 온라인 공간으로 전환하였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예배 실황을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
출했으며, 성도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예배를 시청하면서 예배 참석을 대신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대체 상황이었다.
필자는 이 무렵 한국교회 내부에서 온라인 예배 방식에 대한 논쟁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에게도 여러 목회자들이 온라인 예배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예배학회에서도
예배학자들 간에 온라인 예배나 성찬에 대한 논의를 했다. 계속되는 질문과 논의 속에서 필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회자들은 온라인 예배 혹은 성찬을 집례해도 되는가에 관한 질문을 하는 반면, 예배학자들은 주로 온라인 예배의 신학적 근거에 관한 논의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목회 현장에서는 온라인 예배의 유효성에 관심이 많고, 학문의 현장에서는 신학적인 근거를 찾는 데 관심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현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에 대한 유/무효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온라인 예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온라인 예배가 기존의 정상적인 예배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임시방편의 예배일 뿐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이전의 예배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온라인 예배를 통해 가능한 예배의 요소들, 그리고 가능하지 않는 요소들을 예배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앞으로의 예배에 대한 전망을 논의하려 한다.

기독교 예배의 양방향성과 온라인 예배
기독교 예배는 전통에 따라 또는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정의되지만, 그 의미들을 정리하면 기독교 예배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양방향성을 띠고 있다.1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 응답하는 사건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예배자는 봉독된 성서의 말씀, 선포된 말씀인 설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인 성찬 예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 마음을 담아 드리는 봉헌, 그리고 한목소리로 부르는 찬송 등을 통해 감사를 표현하고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며 응답한다는 말이다. 기독교 예배는 지금까지 다양한 전통과 방식으로 내려오고 분화되었지만 이 모든 예배는 모두 계시와 응답이라는 구조를 분명하게 이루고 있다. 예전을 강조하는 동방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영국성공회 등의 고교회 예배뿐 아니라 예배의 순서가 자유롭고 비예전적인 구도자 형식의 현대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계시와 예배자들의 응답은 분명히 강조되었다. 그리고 양방향성을 가진 이 예배는 주로 예배당에서 이루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온라인 예배로의 전환은 양방향성을 추구하는 기독교 예배에 큰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추구해야겠지만, 온라인을 통한 예배가 계시와 응답을 온전하게 이루어낼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고민의 시작점이다. 이 시작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분화된다. 첫째, 온라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잘 전달되겠는가? 둘째,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예배가 어떻게 예배 공동체의 응답을 온전하게 모아 예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겠는가? 셋째, 온라인을 통해 거행되는 성례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신학적으로 숙고하면서 온라인 예배에서 예배의 핵심 요소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온라인 예배와 하나님의 현현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느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학자들과 목회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성도들은 이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개신교회 예배에서는 대개 목회자의 설교가 그 중심이다.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을 설교를 듣는 것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기독교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여러 교회의 예배 실황은 목회자의 설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위성 예배를 실행하는 대형 교회들도 초점을 설교에 두고 있다. 기독교 예배를 설교를 듣는 일로 간주한다면 영상에 비친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는 분명하게 전달될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이들이 이미 방송 설교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기에 이러한 전달 방식은 이미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
하다.
그렇지만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설교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비록 설교가 개신교 예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순서이자 계시된 말씀인 성서의 의미를 전달하고 성도들을 위한 선포와 권면을 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설교 역시 예배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많은 성도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예배에서 그들을 하나님께 이끄는 요소는 다양하다. 설교뿐 아니라 종종 기도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 찬송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경험한다. 또한 언어적인 요소뿐 아니라 예배에서 일어나는 비언어적 요소, 예를 들면 찬양과 같은 음악적 요소를 통해, 모든 이들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성찬 예전에서 쪼개지는 빵과 잔에 담긴 포도주를 통해,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공간의 미를 통해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그렇다면 예배에서 설교 외의 다른 요소들을 온라인 예배에서 세세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무리 현대의 방송 중계가 발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을 전체적으로 한번에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서 온라인 예배는 어느 정도 한계성을 지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규정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임재는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이고, 예배의 여러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예배의 방식을 기획하는 목회자나 그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예배자가 아닌 성령의 역사이다. 예일대학교 예배학 교수인 테레사 베르거는 그녀의 저서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에서 예배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온라인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베르거는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는 신학적 성찰을 제공하며 예전에서 여러 가지 기호 작용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듯 디지털 기호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임재하심을 주장한다.2
이에 대해 필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나님의 무소부재라는 신학적 이해를 생각해본다면 디지털 코드로 전달되는 온라인 랜선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하게 존재하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오프라인 예배의 전달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며 예배자가 느끼기에도 분명한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온라인 예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은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긴 하지만 오프라인 예배와 비교할 때 제한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와 예배자의 응답
온라인 예배에서 예배자의 응답은 온라인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어려운 문제이다. 일단 오프라인 예배와 온라인 예배에서의 예배자는 동일할 수 있으나 예배의 장소는 다르다. 오프라인 예배는 한곳에서 모임을 전제로 시작하며 서로가 예배 공동체임을 가시적으로 또한 접촉을 하면서 느낄 수 있다. 반면 온라인 예배의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주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지만 각각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기에 서로 공동체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응답의 문제가 예배에서 중요하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배는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의 의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물론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도 예배자 개인 혹은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고 온라인 뱅킹을 이용하여 봉헌을 하는 등 응답의 행위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응답은 공동체적이 아니라 개인적이라는 점이 온라인 예배가 가지는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예배에서 회중이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응답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응답이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드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는 있다. 또한 응답의 내용을 통해서 예배자들은 하나님과 예배자 개인, 예배 공동체와의 관계를 알아가게 된다.
“lex orandi, lex credendi.”(예배가 신앙을 형성시킨다.) 이는 5세기의 교부 아퀴테인의 프로스퍼가 제기한 아주 오래된 신학 명제이다. 예배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후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신에 대한 경험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예배의 반복적인 참여를 통해 예배자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인간과는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피조물로서 인간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게 된다. 특히 예배에서 응답의 순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자비하심,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현실에서 맞는 탄식들을 알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예배자 자신의 관계를 규정짓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예배자들이 드리는 응답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신앙이 형성되며 이는 공동체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러시아정교회의 신학자 알렉산더 쉬메만은 예배에서 공동체의 응답으로 형성되는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신학이 감사드림과 탄원 가운데서 갖게 되는 교회의 경험 가운데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 중심적인 위치와 역할을 회복할 수 없게 된다.”3 이 말은 예배 공동체가 예배 안에서 그들의 응답을 통해 형성된 신학이 교회 안에서 중심적 위치와 역할을 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교회는 각자의 신앙을 가진 개개인의 모임이 아닌 공동의 신앙을 가진 예배자들의 모임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배 안에서 같은 형식의 예배를 드리고, 한목소리로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찬송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를 서로 나누어 먹고 마시는 것이다.
만약 교회를 개별적 신앙인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를 통해 경험하는 공동의 신앙을 형성시키며 이를 통해 성도들을 서로 교통(communion)하게 하는 거룩한 모임이다. 이러한 공동의 신앙을 형성하는 응답과 교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온라인 예배는 이 점에서 분명히 한계를 갖는다. 그렇기에 필자는 온라인 예배의 경우 예배자의 응답을 통해 예배 공동체를 형성케 하는 일에는 분명히 어려움이 따르며, 그로 인하여 예배의 불균형도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온라인 예배와 하나님의 자기 주심의 행위로서의 성례전
성례전은 하나님의 자기 주심(self-giving)의 행위이다.4 성례전은 우리의 오감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성도들에게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이들에게 보이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늘나라의 신비를, 그리고 세례의 물을 통해 중생과 하나님의 자녀로 확인하는 증표를 주시는 자기 주심의 의례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예배는 성례전의 의미를 온전하게 성도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필자는 온라인을 통한 성례전의 거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온라인으로 거행되는 성찬은 성찬 제정의 근거가 되는 제정사와 성령 임재 기도와 같은 중심적인 순서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떡과 포도주는 미리 전달된 것을 먹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온라인 세례는 집례자와 세례자,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세례를 받는 장면을 송출하고 성도들은 그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체한다. 성례전을 이런 방식으로 거행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며 성찬의 사중행위[four-fold action, (떡을) 가지고(take), 축사하신 후(bless), 떼어(break), 나누어주심(share)]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을 기념하는 의례이다. 그런데 성찬기도를 통해 축성한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전달한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방식은 성례전이 가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셔서 자기를 주시는 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떡과 포도주를 받는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전달하는 방식은 성례전의 신학적 근거를 왜곡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자신의 몸과 피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를 전달하시려고 하는데 받는 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표만 받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하 같은 떡과 포도주를 받습니다.”라고 하면서 전달하는 격이다.
세례의 경우, 세례가 개인이 교회와 연합하는 의례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역시 온라인으로 구현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교회에서 거행되는 유아세례와 신자의 세례는 모두 개인에게 주어지는 입문 의례이지만, 공동체의 동의와 세례 후보자들을 위한 기도와 응원의 다짐을 포함한다. 이는 3세기에 기록된 사도전승에서부터 비롯된 오래된 기독교 입문 의례 전통이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중계되는 세례 예전에서는 하나님께서 집례자를 통해 수세자에게 부어주시는 은총의 전달은 가능하겠지만 수세자와 수세자를 받아들이는 공동체와의 관계를 위한 의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례는 교회 공동체를 형성시키는 핵심 의례이다. 그렇기에 새롭게 공동체에 입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공동체 일원에게 세례 예전을 통해 분명하게 부여해야 한다. 세례는 개인적인 의례라고 주장하며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개신교 전통도 있다. 그러나 중생의 증표이자, 그리스도/교회와 연합 또한 성령의 인치심의 증거이기도 한 세례를 개인적인 의례라고 여기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주심의 신비를 인간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성례전의 온라인 실행이 성례전이 가진 기본적 의미, 곧 ‘예배 공동체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자기 주심의 은총’이라는 의미를 축소・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필자는 온라인 성례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굳이 이러한 시기에 성례전을 거행한다면 엄격한 방역 속에서 전통
적인 방법으로 거행할 것을 제안한다.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온라인 예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기독교 예배가 가진 신학 체계에 근거하여 전개해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온라인 예배는 현 상황에서 교회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것을 전적으로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온라인 예배는 분명 코로나19의 감염 위협을 막고 예배를 지속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배 공동체로서 교회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에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현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정상적인 예배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 예배가 예배 공동체를 형성시키는 교회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방법이라 하겠다.


1 제임스 F. 화이트, 김상구・배영민 옮김, 『기독교 예배학 개론』(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30-36.
2 테레사 베르거, 안선희 옮김,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기독교문서선교회, 2020), 297-298.
3 Alexander Schmemann, “Liturgy and Theology”,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vol. 17. no. 1(Spring, 1972): 100.
4 제임스 F. 화이트, 김운용 옮김, 『성례전: 하나님의 자기 주심의 선물』(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06), 23.



김형락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에모리대학교와 드루대학교에서 예배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배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 논문으로 “탈식민주의 이론에서의 유아세례 논쟁: 아브젝시옹(abjection)과 혼종성(hybridity)에 근거해서”, “성찬신학의 기호학적 이해: 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학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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