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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2010년 이후 교단 총회의 흐름]
특집 (2020년 8월호)

 

  ‘무신불립’(無信不立)의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10년
  

본문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회)는 몇 년간 총회를 열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태를 맞은 적이 있다. 2008년 10월 30일, 제28회 총회가 폭력적 대립 끝에 무기한 연기된 후 4년 동안 몇 차례 개회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아예 차수를 바꾸어 제29회 총회가 열린 것은 2012년 6월 26일의 일로, 이로써 4년 만에 겨우 행정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총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한 2012년 6월부터 2020년 현재까지의 시간은 감리회를 재정비하는 시기였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정상화를 위해 무던히 애썼으나, 감리회 공동체의 평온을 온전히 회복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섣부르다. 제30회 임시총회(2013. 7. 25.)에서 5년 만에 새 감독회장이 취임하고, 이어 제32회 총회(2016. 10. 27.)에서 한 번 더 감독회장이 취임함으로써 감리회는 안정을 되찾는 듯하였다.
그럼에도 총회와 감리회 본부가 권위를 인정받고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직접 선거에서 선출된 두 감독회장은 모두 예외 없이 4년 임기 중 절반을 유고 상태로 지냈고,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타 교단과는 질적으로 다른 중앙집중적 권력을 지닌 4년제 감독회장을 선출했음에도 최고지도자는 취임 이후에 그 대표성을 유지하는 일조차 버겁기만 하였다. 그만큼 총회의 권위와 기능이 무너져 제구실을 못해온 결과이다. 여전히 난무하는 소송전과 사법적 판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총회와 지도력이 권위를 잃게 된 난맥상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처지이다.
감리회 총회는 2년 주기로 해마다 다른 형식으로 열린다. 한 해는 행정총회로서 감독회장과 감독 취임 등 감리회를 대표할 최고지도자를 세우고, 또 한 해는 입법의회로서 장정을 개정한다. 역사적으로 총회와 입법의회에서 드러난 쟁점을 살펴보면 감리회의 정책 방향과 시대적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이 목적한 바, 지난 10년에 국한한다면 기대할 만한 쟁점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예 총회가 무산되거나 열리지 못한 2010년과 2011년은 예외로 하더라도, 2012년에 세 차례(제29회 총회, 임시입법의회, 제30회 총회), 2013년에 두 차례(제30회 임시총회, 제30회 입법의회) 총회가 열린 것을 보면 정상화를 위해 급급했던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2014년에 이르러서야 총회가 정상적으로 열렸으니,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어진 셈이다. 게다가 매번 총회 기간은 겨우 단 하루(제29, 30회) 혹은 이틀(제31, 32, 33회)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배경 탓에 총회가 두드러진 쟁점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역사적 문서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상화라는 고리를 통해 10년 동안 총회의 발자취를 살핌으로써 제한적인 평가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눈앞의 일마저 캄캄한 오늘의 상황에서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예 무리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열린 총회와 입법의회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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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모색
2008년 9월 25일에 열린 28대 총회 감독회장 선거가 불화의 불씨였다. 이미 제27회 총회 장정유권해석위원회는 후보가 제출해야 할 범죄경력조회확인서에 대해 질의를 받고 “<교리와 장정>(1024단 제13조 6항)에 의거 교회재판법이나 사회재판법에 의하여 처벌받은 사실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범죄경력조회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라고 해석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법원은 투표 이틀 전에 한 후보자의 후보등록을 무효화하였다. 그러나 코앞에 닥친 투표는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무리하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무자격 후보자로 판결난 이가 최다 득표를 했으나 선거는 무효가 되었다. 지난한 진통 끝에 2010년에 법원이 선임한 임시감독회장을 통해 새 후보자들로 감독회장 선거를 다시 실시했으나, 선거관리 업무의 미비로 또다시 선거는 무효 판결을 받았다.
파행의 기간은 너무 길었다. 타 교단 장로가 직무대행을 맡는 지경에 이르렀고, 2011년에 정상화를 위해 총회를 열고자 법원에 청원했으나 이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감리회 총회의 표류는 오래 지속되었고, 감리교회 전체가 입은 상처와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합법이나 합리적인 조정 기능을 상실한 채 불법과 폭력이 앞섰다.
불가능했던 총회는 2012년 6월 법원이 선임한 임시감독회장 주재로 가까스로 열려 4년 만에 행정을 복원하였고, 그해 9월 임시입법의회에서 선거법을 정비한 후에 새 감독회장을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5년 만에 뽑힌 대표자였다. 두 차례 총회에서 거듭 확인한 감리회에 대한 정상화 결의문과 선언문을 보면 그 목마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흐트러진 우리의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제29회 총회를 개최하여, 올해 10월에는 감리교회의 수장인 감독회장 선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 <제29회 총회 정상화 결의문>(2012. 6. 26.) 중에서

6. 우리는 잘못된 선거문화가 정화되어야 하며 감리교회의 문제가 사회 법정에서 논단되는 것을 배격하며 교회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7. 우리는 불합리한 <교리와 장정> 및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여 새 시대에 걸맞는 감리교회를 세우는 데 힘쓴다.
― <제30회 임시총회 정상화 선언문>(2013. 7. 25.) 실천사항 중에서


따라서 정상화 모색은 자연스럽게 감독회장과 감독에 대한 헌법 조항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1 그럼에도 강력한 권한을 견지한 4년제 감독회장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데, 대안으로 제시된 2년 겸임제 감독회장 안이 입법의회에서 번번이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선거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제비뽑기를 도입하자는 안이나, 금권선거를 예방하기 위해 선거권자를 확대하자는 안 또한 부결되었다. 감독에 대한 욕망을 견제하기 위한 대안으로 1년 임기의 의회의장 역할로 제한된 연회장 제도를 제안하기도 하였고, 피선거권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개선책을 찾기도 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가장 감리회다운 특징으로 손꼽히는 감독 제도가 감리교회의 화목과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은 세대를 이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다움의 강화
2012년 총회(제29회)가 4년 만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잇달아 열린 임시입법의회에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킨 일은 감리회가 지닌 개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아직 정상적으로 감독회장을 선출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압도적 표차로 한국교회 최초로 세습금지법안을 결의한 것은 뒤늦으나마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결과였다. 임시입법의회는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연속해서 동일 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와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라는 내용을 ‘담임자의 파송’ 조항에 나란히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법 세습이 이어지자, 2015년 제31회 총회 입법의회에서는 세습방지법을 더 염격하게 보완했다. 자녀에게 곧바로 목회지를 물려주지 않고 다른 목회자를 임시로 세우고 얼마 후에 다시 자녀가 물려받게 하는 소위 ‘징검다리 세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였다.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10년 동안 동일 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 이는 장로의 자녀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제32회 총회 입법의회에서는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다른 교회와 통합, 분립을 하였을 경우에도 동일한 적용을 받는다.”라고 세습금지를 더욱 강화하였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다수는 여성이지만, 그에 걸맞는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측면을 개선하였다. 과거 감리회는 여성목사 안수는 물론 여성장로 안수 문제에 대하여 선구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그에 비하면 때늦은 일이었다. 2014년 제31회 총회는 ‘감리교 개혁에 대한 입장’을 결의하면서 여성에 대한 조항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감리회 개혁을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축적된 경험은 물론 젊은 세대의 신선한 발상 그리고 21세기는 여성의 섬세함과 따뜻함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세기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섬세함과 따뜻한 감성이 반영되어야 하고, 어떤 사상과 이념도 복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야 합니다. 따라서 감리회 개혁은 세대와 성 그리고 이념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2
이어 2016년 제31회 총회 임시입법의회에서는 총회 조직과 대표의 선출에서 선출직 대표로 “(각 의회 및 위원회의 구성 원칙)에 의거하여 15%는 여성 대표로 한다.”라는 의무조항을 맞추기 위해, 반드시 장로여야 한다는 총회대표 자격 조항을 삭제하였다. 여성장로의 전체 수가 부족한 까닭에 장로 의무 규정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총회 위원장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총회실행부 위원에도 당연직인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을 제외하면 여성 대표가 없는 실정이다. 교회다움을 더욱 강화하는 일은 계속 추진해야 할 숙제이다.

교회를 위협하는 불안요소에 대한 대응
2014년 제31회 총회는 이단 문제를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단 규정을 결의하였다. “신천지,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몰몬교, 안산홍증인회, 구원파, JMS, 안식교, 전능신교 등 9개 종파에 대한 ‘이단결의’와 김기동 베뢰아아카데미(서울성락교회), 큰믿음교회(변승우), 만민중앙교회(이재록), 평강제일교회(박윤식) 등 4개 종파에 대한 ‘예의주시’(이단대책위) 결의의 건 등에 대해 만장일치로 결의하다.”
또 다른 위협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등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하여 2016년 제32회 총회에서는 동성애방지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7년 제32회 총회 입법의회에서는 일반재판법 중범과의 종류에서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를 중범과로 개정하였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정직, 면직, 출교에 처하는 것으로 명문화하였다. 범과의 다른 항목에서는 “부적절한 성관계(동성 간의 성관계 외 결혼을 포함)”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이 이슈와 관련하여 최근 경기연회 심사위원회는 2019년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연회 소속 정회원 목사를 기소함으로써 2017년에 개정된 중범과에 따른 첫 재판이 진행 중이다.3
이와 함께 2017년 제32회 총회 입법의회는 “교인은 사회신경을 준수하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정의 신성함을 존중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사회신경’(Social Creed)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제정된 사회생활의 표준을 담은 신조인데,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여성, 노동, 인권 문제에 대한 매우 진보적인 태도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제33회 총회에서는 성폭력 소문으로 얼룩진 J 목사가 서울남연회 감독 선거에 단독으로 입후보한 후 무투표로 당선된 일에 대한 거센 반발이 있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불거진 일로 애초에 후보등록 과정에서 차단했어야 할 일인데,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였다. 그만큼 성인지감수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대다수 회원들은 크게 성토하며 반대하였다.
여성들의 반발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든 예수의 향기를 드러내야 하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여성문제를 일으킨다. 둘째, 감독은 모든 목회자의 모델인데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셋째, 감독으로서 모든 예배집례, 성만찬, 안수례 등을 행할 텐데 우리 후배 여성 목회자가 성추행한 감독으로부터 안수받는 것을 볼 수가 없다.”4 결국 이임 감독 전원과 취임 감독 전원이 반대하여 총회의 절정인 연회 감독 이·취임식은 열리지 못하였다. 반발은 지속되었고 결국 J 목사는 스스로 물러났다.
2019년 제33회 총회 입법의회는 성폭력대책위원회를 감리회 본부의 특별위원회로 신설하는 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교역자와 장로의 진급 시 양성평등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필수과목으로 정하였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태도
2014년 제31회 총회에서 3・1운동 100주년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감리교회가 자랑해온 초기 항일역사의 전통을 드러내고자 준비했다면, 2018년 제33회 총회에서는 신사참배 80년을 맞아 총회가 이를 회개하고 죄책을 고백하는 <신사참배 80년 회개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꼭 80년 전 1938년 제3회 총회에서는 3일째 되던 10월 8일 애국일 행사를 실행하였고, 총대들은 총독부를 방문하고 남산신궁을 방문하여 참배하였다. 당시 양주삼 총리사는 신사참배가 종교행위가 아닌 국가의식이라는 점을 들어 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권유하였다. 제3회 총회는 감리회가 일제의 압력에 완전히 굴복한 부끄러운 총회였다.5
총회와 입법의회는 시대상황에서 민감한 이슈가 있는 경우 이를 받아들여 입장을 밝혔는데, 대표적 사례가 2014년 제31회 총회가 채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입장’이다. 총회 입장문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2012년 제30회 총회에서는 당시 제주 강정마을에서 일어난 항의시위에서 구속된 J 목사 대책위원회 구성 건을 부결시켰다. 이후 우리 사회는 촛불시위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핵 위기와 판문점 선언 등 정치적 격랑과 역사적 굴곡을 겪었지만, 총회는 그때마다 적절한 메시지로 응답하지 못하였다.

감리회의 회복을 고대하며
지난 10년간 감리회 총회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4년이라는 긴 시간, 총회의 부재는 초유의 사태였다. 불행한 시기를 거친 이후 비록 불상사 없이 총회가 몇 차례 더 열렸다고 해서 과연 정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2016년 10월에 취임한 감독회장은 선거무효 소송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으며, 대신 2019년 총회실행위원회에서 선출된 감독회장 직무대행이 현재 감리회를 대표하고 있다.
지금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임시성은 계속되고 있으며, 지속가능은커녕 난형난제의 모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총회 소집이 아예 불가능했던 10년 전과 비교한다면 과연 지금은 나아진 것일까? 그동안 감리회가 주력해온 정치제도의 개선을 통한 정상화 시도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독제와 선거법 개정보다 더 근본적인 감리회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감독 권력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감리회는 국내의 여느 교파와도 차별화된 ‘하나의 감리회’ 전통을 이어왔다. 1930년 제1회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 이래 해묵은 대결과 반목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한 몸, 하나의 공동체성을 유지해온 것이다. 이것은 한국감리교회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 첫 총회는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한국적 교회’를 선언하였다. 지금까지 이어온 교리적 선언과 사회신경을 보더라도 감리교회의 초석을 놓은 존 웨슬리의 신학과 실천은 오늘날에도 보수작업과 갱신과정이 의미 있을 만큼 현대적이고 또한 시대정신과 소통한다.
존 웨슬리는 유언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하나님께서 메도디스트들을 불러일으키신 목적은 새로운 교단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요, 민족을 개혁하고 특별히 교회를 개혁하여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다.”(1744년, 총회 회의록) 새로운 총회를 앞두고 다시 부르심 앞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1 역사적으로 보면 제3회 총회(1938년) 이후에 있었던 대부분의 갈등은 감독을 둘러싼 권력다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회자 파송의 권한을 지닌 감독의 책임은 매우 강력하였다. 1966년 제10회 총회 이후 감독의 권한이 축소되기 시작되어 결국 1인 중심의 막강한 파송제가 폐지되었으며, 감독제도의 다원화 및 분권화를 지향하였다. 현재의 감독제도는 1980년 총회(제13회)에서 그 골격이 세워졌으며, 몇 차례의 개정 끝에 2001년 제24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오늘의 4년 임기 감독회장제에 이르고 있다.
2 제31회 총회(2014년) 결의문에는 감리교 개혁에 대한 내용보다는 개혁의 추진 주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몇몇 소수의 그룹이 아닌 목회자와 평신도 등 감리교인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방식, 여성의 감성을 비롯해 세대와 성의 균형에 대한 배려, 미래 세대에 대한 준비 등이 골자이다.
3 감리회 경기연회 정회원인 L 목사는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두 명의 타 교단 목회자와 함께 ‘성소수자 축복식’에 참여하였다. 연회 자격심사위원회는 축복식을 집례한 L 목사를 조사한 후 연회 심사위원회에 고발하였고, 연회 심사위원회는 연회 재판위원회에 기소하였다.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은 2015년 제31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동성애 지지자를 최대 출교에 처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고, 제32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개정하였다. 입법 과정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논의가 없던 까닭에 이후 논란이 계속되었다.
4 제33회 총회 중 J 목사의 감독 자격 여부에 대한 토론에서 나온 전국여교역자회 회장의 발언(2018. 10. 31)이다.
5 김진형, “총회와 장정 개정의 역사(6)”, 「기독교세계」(2013. 6).



송병구 |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한 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전공하였다. 독일 NRW한인교회연합회 담임목사, 감리회 본부 기획부장으로 일했다. 저서로 『색동스톨』, 『십자가 168개 상징 찾아가기』, 『십자가 순례』 등이 있다. 현재 색동교회 담임목사이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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