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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새로운 형태의 교회, 새로운 방식의 선교
특집 (2020년 1월호)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교회의 꿈
  

본문

 

* 이 글은 필자가 쓴 『재편: 홀로 빛나는 대형교회에서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교회로』(비아토르, 2017)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한 것이다. 한국교회를 건강한 작은교회로 재편해야 한다는 필자의 구체적인 주장, 관련 사례 등은 위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 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리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헬버슨(Richard Halverson)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한국교회 부패와 타락을 고발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이 말에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신학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의 그림자는 너무나 깊고 넓게 퍼져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설립자인 손봉호 교수는 현재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이후에 가장 부패한 교회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하고 부패한 이유는 딱 하나, ‘교회성장’에 있다. 교회만 성장시키면 무엇이든 용인되고 교단 내에서는 각종 권력과 명예를 획득한다. 대형교회와 이를 성장시킨 목사는 우상이 되었고, 작은교회 목사들은 줄을 서고 동원되며 타락과 부패의 카르텔에 편입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탐욕을 향해 가는 욕망의 기차로 변질되어 대형화라는 거대한 바벨탑을 쌓고 있는 형국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보수적 교회들은 대형화 경쟁을 했다. 영락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금란교회, 충현교회 등 더 크고 화려한 교회를 추구하던 교회들은 해당 지역에 머물지 않고 지교회를 만들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을 비판하며 등장한 교회가 있었다. 소위 복음주의 4인방이라고 일컬어지는 홍정길, 옥한흠, 이동원, 하용조로 대표되는 목사와 교회들이다. 이들은 제자훈련이나 기독교 세계관을 도입하고, 교회 갱신을 내세우며 지성적 교회, 문화적 교회를 지향하며 교회 성장을 이루어갔다. 기존의 보수적 교회들의 대형화가 가난한 지역의 서민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대형화였다면, 개혁적이고 지성적 교회의 대형화는 강남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적 대형화였다. 교회는 브랜드화되었고, ‘지교회 설립’이라는 이름으로 ‘프랜차이즈화’는 확산되었다. 이들은 대형화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지향점이 동일하다.

교회의 대형화는 어떤 폐해를 만들고 있는가
첫째, 공교회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가 대표적이다. 무슨 일을 해도 치리할 수 없는 것은 대형화에서 나오는 돈과 권력 때문이다. 교회법에서 한 교회는 노회/지방회에 속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개별 교회가 지교회를 개척하고 소유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공교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소위 ‘가나안 신자’를 양산한다. 대형화 과정에서 신자 개인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약화되고, 신자는 섬김을 받을 영혼이 아니라 하나의 숫자로 인식되고 관리된다. 또 대형화 과정에서 목사에 대한 성직주의는 강화되고, 교회의 계급화 등 세속주의는 확산된다. 신학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에 실망한 신자들은 교회를 떠나 ‘가나안 신자’로 방황한다.
셋째,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적이 없으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된 존재가 아니라,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고 익명으로 주변화된 신자들을 뜻한다. 교회의 대형화는 다양한 시간대에 예배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여 신자들이 관람하고 쇼핑하듯 교회를 참관할 수 있게 한다. 예배 공동체의 필수라 할 수 있는 인격적 관계성은 사라졌다. 이런 신자의 양산은 성서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장기적으로는 그들을 교회를 떠난 신자가 되게 하거나 비신자로 돌아서게 할 위험을 키우고 있다.
넷째, 신자의 성숙을 방해한다. 신자의 성숙은 교회 안에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가정, 직장, 사회 등 일상의 삶에서 얼마만큼 제자로 살아가는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교회의 대형화는 모든 은사와 재능, 시간과 물질을 교회 성장에 집중하고 동원하도록 부추긴다. 교회 중심의 삶은 오히려 신자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방해하고 망가뜨린다.
다섯째, 민주적 운영을 방해한다. 교회의 민주적 운영은 모든 교단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민주적 운영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 견제와 균형, 의사소통의 효율성, 다수 의견에 대한 승복과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의 대형화는 집중된 권력을 견제하기 어렵게 하며,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방해한다. 담임목사나 당회의 부패에 대한 견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민주적 운영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공공성을 방해한다. 한 지역에 세워진 교회는 그 지역사회에 보내신 하나님의 교두보이다. 그 교회에는 복음 전파라는 보편적 사명과 더불어 시대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도 주어져 있다. 그런데 대형교회는 대형 건물을 유지하고, 수많은 신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소요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필요에 둔감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정치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이게 되니 교회는 정의, 평화, 인권 등 공공적 사명을 등한시하게 된다.

건강한 작은교회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운영 방향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80%는 신자 수 200명 이하의 교회이다. 2,000명 이상 모이는 교회는 5%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를 차지하는 대형교회 및 중형교회가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해도, 나머지 80%의 교회가 건강하면 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20%에 채 미치지 못하는 중대형교회에 한국교회 신자의 60% 이상이 출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형교회는 대형교회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고, 작은교회들은 중형교회가 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일어나야 할 제2의 종교개혁은 ‘크기의 혁명’이다. 교회 타락과 부패의 원인은 교회 성장, 즉 대형화에 있다. 따라서 개혁의 방향은 소형화로의 전환이다. 물론 교회가 작다고 무조건 성서적 교회, 건강한 교회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통계와 같이 한국교회는 이미 충분히 작다. 문제는 그 교회들이 성서적 교회,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기 위해 작은교회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크고 싶으나 크지 못한 교회라는 것이다. 규모는 작으나 가치와 방향은 모두 큰 교회를 닮아 있고, 목적과 목표도 큰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건강한 작은교회’라는 말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는 ‘건강함’이고, 다른 하나는 ‘작음’이다. 무엇이 건강한 것인가? 또 작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필자가 섬기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1에서 추구하는 핵심 가치 5가지와 이에 대한 실제적 운영 방향을 소개해본다.
첫째, ‘성서적 공동체’이다. 성서적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진실한 예배, 모든 사람이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는 예배를 지향한다. 성서는 목회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석되고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스스로 읽고 해석하며 실천하도록 한다. 서로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의사소통이 성숙한 유기적 공동체를 이룬다.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바른 성례가 행해지며, 바른 권징을 시행한다. 또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실천해나갈 것을 지향한다.
둘째, ‘민주적 운영’이다. 신자는 신본주의 즉 하나님 중심을 지향하며,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의사가 잘 소통되고 반영되는 민주적 제도와 절차를 통해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 정관을 통한 민주적 운영과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직분자는 자율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하며, 목회자와 항존직에 대해서는 재신임제나 평가제를 시행한다. 재정이 투명해야 함은 물론이고, 비전과 소명을 따라 적절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일상의 제자도’이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자리 곧 가정, 직장, 사회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제자이다. 이를 위해 신자의 성숙한 믿음과 자율적 실천을 지향한다. 또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도록 격려한다. 일상에서의 정직과 나눔, 공평과 정의를 지향한다. 신자는 교회에서는 교인이지만, 일상에서는 시민이다. 성숙한 기독 시민이 되도록 지향하며 격려한다.
넷째, ‘공의의 공공성’이다. ‘공의’는 ‘공평과 정의’의 약자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보냄 받은 하나님 나라의 교두보와 같다. 따라서 교회는 공공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목사를 포함한 교회 전임자들은 국민의 기본적 의무인 소득세 신고와 4대 보험 등 사회적 의무에 책임을 다한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마을목회를 지향한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교회의 책임을 수행하며, 정의, 평화, 통일, 인권, 환경 등 시대적 책임에 함께한다.
다섯째, ‘거룩한 공교회성’이다. 지교회 또는 지역교회는,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듯 공교회의 일원으로 주님의 몸이다. 내 교회만 옳고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우상에서 벗어나서 거룩한 공교회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장년 300명 이내에서 독립적인 교회로 분립하는 것을 지향한다. 우리 시대의 교회 개혁에 동참하고 지원하며 협력한다. 교파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가치 중심의 연합을 지향한다.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역교회 연합을 지향한다.

작음, 50명에서 200명
‘건강한 작은교회’에서 두 번째 전제는 ‘작음’이다. 동네에 있는 평범한 교회는 외형적으로 전임사역자 한 명의 생활비를 지급하며 예배 처소가 마련된 곳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건에 따라 목회자가 사례비를 받지 않고 이중직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가정교회 등 별도의 모임 공간이 없는 교회도 있지만, 이 또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작은교회는 동네의 일반적인 교회를 말한다. 전임자 한 명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교회 공간을 유지하려면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최소한 청장년 40-50명 규모는 되어야 할 것이다.
최대 수치는 신자들 간에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공동체이고,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은 교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수치에 차이가 있고, 조직의 형태나 교제 목적에 따른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연구되고 통용되는 수치가 있다.
첫째, ‘던바 수’(Dunbar’s number)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인류학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의 사회성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한 사람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수는 15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를 넘어가면 형식적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류학에서 볼 때 씨족 집단은 대략 150명 정도였다. 이는 부부가 결혼해 4대까지 이르는 대략적 숫자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5,000년 전 근동 지방에 살던 농가 인구도 대략 150명가량이었다고 한다.
셋째, ‘고어’(Gore)사의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고어사는 등산복 소재인 ‘고어텍스’를 만드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경영 철학은 다양한 면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한 회사나 공장이 200명을 넘지 않도록 운영한다는 것이다. 200명이 넘으면 서로의 관계가 약화되고, 창의력이 상실되며, 협력과 선의의 경쟁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회사는 적절한 숫자를 유지하는 분립 경영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넷째, 군부대 중대 단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군대 조직에서 ‘중대’는 최종적인 전투 지휘 단위로, 대개 120-15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숫자가 원활한 소통과 일관성 유지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교회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뉴욕의 세이비어교회, 데이브 브라우닝의 저서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에서 소개된 CTK(Christ the King Community)교회 등은 150-200명을 넘지 않는 작은교회들의 연합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토대로, 필자는 한 지역교회의 최대 수치가 청장년 200명이라 생각한다. 이 인원 이내가 인격적 교제, 비전의 공유, 사역의 집중성 등의 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이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전에 준비하여 이 규모가 넘기 전에 분립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분립할 때는 담임목사가 나가는 것이 기존 교회에도, 분립한 교회에도 유익하다. 물론 후임 목사는 미리 동역하며 준비하고 훈련되어야 한다.

재편, 건강한 작은교회의 꿈!
현재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교단, 신학교, 출판사, 언론사, 기독교 단체까지 대형교회와 성공 신화를 이룬 목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교회 생태계가 이렇게 형성되는 동안 한국교회는 타락과 부패에 빠져들었고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신학적 일치나 목회적 단일성을 추구하는 교단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 지향적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이해를 돕는 실질적인 예가 있다. 동네 슈퍼마켓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동네 가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나들가게’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에서는 슈퍼마켓 인테리어를 개선해주고, 상품의 공동구매로 가격을 낮추고, 상인들에게 경영과 서비스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꾸준히 제공한다. 간판에는 가게의 원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각 가게별 특징과 장점은 살리되, ‘나들가게’ 협동조합 소속이라는 공동 브랜드만 표시했다. 공간이 쾌적해지고, 상품 가격이 낮아지고, 서비스 질이 좋아진데다가, 동네 슈퍼마켓이 가진 사랑방의 장점까지 더해지니 작은 가게들이 살아났다.
필자는 작은교회들이 이렇게 공동이 지향하는 최소한의 가치와 목회 방향을 공유하고, 그에 필요한 교육과 방법론을 교육하고 발전시키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워진 건강한 작은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신학교, 언론, 기독교 단체 등 다양한 곳들과 협력하고 지원하며 건강한 작은교회 생태계를 새롭게 세워가는 것이 희망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작은교회는 크지 못한 교회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치 지향적 작은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이제 교회는 ‘더 크게’, ‘더 호화롭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더 바르게’ 성장해야 한다. 건강한 작은교회의 가치가 옳으며, 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상당 부분 확산되었다.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홀로 빛나는 대형교회에서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교회로 한국교회가 변화하는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1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는 건강한 작은교회에 대한 연구, 지원, 동역을 위해 2018년 6월 설립되었다. 초교파적으로 모인 7명의 목사가 운영위원으로 섬기며, 현재 매월 정기포럼과 수도권 4개 지역의 지역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www.facebook.com/groups/fssck)


이진오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M.Div.)하였다. 저서로는 『재편: 홀로 빛나는 대형교회에서 건강한 작은교회로』, 『신앙의 기본기』가 있다. 인천 세나무교회 담임목사이며,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월호(통권 7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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