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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동아시아 기독교의 신학적 기반
특집 (2019년 9월호)

 

  『천도소원』(天道溯原)과 동아시아 기독교
  

본문

 

명말청초 시대의 천주교 변증서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있다면, 청말 개신교의 변증서로는 윌리엄 마틴의 『천도소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천도소원』은 기독교 변증서로서 당시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기독교를 논증하는 책으로 소개되었다. 『천도소원』의 저자 마틴은 60여 년간 중국 선교를 하면서 동문관과 경사대학당의 총교습, 교장직을 수행할 정도로 중국 관료와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가졌다.
이런 배경의 영향 속에서 마틴의 선교 초기에 나온 『천도소원』은 중국 문화의 이해, 자연과학과 계시 등의 방법을 통해 중국 지식인들에게 기독교의 진리가 가장 진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에 『천도소원』의 저작 동기와 내용, 동아시아 문화적 요소, 그리고 동아시아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천도소원』의 저자 윌리엄 마틴
윌리엄 마틴(William A. P. Martin, 1827-1916, 중국명 丁韪良)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서 1850년에 중국에 들어온 뒤 1916년까지 무려 66년간 선교 사역에 종사했다. 그는 인디애나주의 한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순회전도자이며 경건한 목사로, 마틴뿐만 아니라 자녀들 모두가 선교사 또는 목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런 영향으로 마틴은 20세에 인디애나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뉴올버니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졸업논문으로 “선교사는 마땅히 자연과학을 이용해야 한다”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아래에서 언급하듯 훗날 그의 중국 선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마틴은 중국의 닝보(宁波), 상하이(上海), 그리고 베이징(北京)에서 주로 전도와 교육, 그리고 출판사업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864년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 그곳에 선교사와 의사, 엔지니어 등을 양성하는 학당을 세우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자연과학이나 철학 등에 관련된 서양서적을 번역해 교과서로 사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국제법에 관한 최고 권위자인 휘튼(Henry Wheaton)의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를 『만국공법』(萬國公法)으로 번역 출판해 중국 사회의 미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의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그는 동문관(同文館)1에서(1865-94), 그리고 베이징대학의 전신인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에서(1897-1902) 교사와 총교습, 즉 교장직을 맡게 되었으며, 중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선교사로 자리매김했다.

저술 동기와 판본
『천도소원』은 마틴이 닝보에서 처음 중국 선교를 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변호하기 위해 쓴 변증서이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는 문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했다. 또한 그는 자서전 『화갑억기』(花甲憶記)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심중에 이 책의 주제와 대강에 대해 고려하면서 다른 한편 이것들을 저녁 설교의 주제로 삼아 나의 관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청중과 함께 토론을 진행했다. 매일 아침 나는 전날 저녁 이미 열띤 토론을 거쳐 가공된 주제들을 정리해 형태를 갖추게 했다. 나는 어떤 권위도 따르지 않았고 어떤 교과서의 내용이나 강연에서조차도 매우 적게 언급된 교과서의 내용을 번역하지 않았다. 내용과 형식 모두 우발적인 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결과 또한 신선한 것이며 중국인의 흥미와 요구에 맞는 책이다.”2 『천도소원』이 마틴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천도소원』은 1854년에 초판이 간행되었으며, 1858년에 재판이, 그리고 이후 아홉 차례의 인쇄본이 나왔다. 또한 이 책은 교회학교 교과서로 널리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 관료와 문인들과의 교제에서도 환영받는 베스트셀러였다. 문어체로 기록된 초판은 전체가 3권으로, 상권은 여섯 장, 중권은 일곱 장, 그리고 하권은 아홉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편의 서문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명기진자(四明企眞子), 즉 범용태(范蓉埭)가 지은 것이다. 재판에서는 당전중(唐傳中)의 서문이 들어갔으며, 상권은 ‘오행(五行)으로 증명함’ 한 장이, 하권은 ‘삼위일체’ 한 장이 추가되어 초판의 77쪽에서 91쪽으로 늘어났다. 1860년 닝보에서 3판이, 1869년 상하이 미화서관(美華書館)에서 금속본 판본으로, 이후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마지막으로 1912년에 화북서회(華北書會)의 요청으로 출간되었다. 문어체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당시 정부 관료들의 수중에 이 책이 한 권씩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영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천도소원』은 관화(官話)로도 번역되었는데, 1864-65년에 버든(J. S. Burdon) 선교사가 이 책을 북경관화로 번역해 『천도소원직해』(天道溯原直解)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특히 관화본은 철저하게 도리에 맞으며 적절한 문장으로 깊은 감탄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비독서인들에게도 읽혀질 수 있는 판본으로 만들어졌다.
『천도소원』은 중국 외에 조선과 일본에도 보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일본 국회도서관과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正直)의 훈점(訓點) 『천도소원』(1875, 1877, 1880년본)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에 나카무라(1880) 판본이 있으며, 연세대 학술정보원에는 비교적 많은 판본이 있는데, 마이크로피시(microfiche)로 1872년 상하이 미화서관의 판본이, 그 외 단행본으로 1889, 1893, 1903, 1911년판 중국성교서회(中國聖敎書會) 판본과 1890년 화북서회 판본이 있다. 또한 숭실대학교 박물관에는 1893년 중국성교서회 판본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1899년 상하이 미화서관의 『천도소원관화』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천도소원』이 동북아 3국에 다양하게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도소원』의 내용
저자의 서문에 해당하는 ‘인’(引)에서, 마틴은 이 책의 중심 내용이 천도(天道)로서의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천도’가 동서 어디에도 적용 가능하며, 사해(四海)에 두루 존재하는 보편적이고도 최고의 진리이지만, 중국의 유(儒)・불(佛)・도(道)는 이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그는 ‘기독교’라는 도(道)와 중국 자연신학의 개념에 등장하는 천(天)을 결합한 천도(天道)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독교가 최고의 진리임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천도는 어디에서 왔는가? 마틴은 유가에서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비롯되었다.”(道之大原出于天)라는 주장을 들어, 여기에서 말하는 ‘천’은 자연적 하늘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God)에 해당하는 것으로 천도가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 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천은 진신(眞神), 상제(上帝), 천부(天父)라는 다른 명칭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 그는 기독교의 교리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내용을 논한다. 이어서 서양에서 동방에 전교하는 사람들이 일편단심으로 진리를 전하며, 절대로 사사로운 뜻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가장 으뜸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참된 신과 거짓된 신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논하고 있다.
위와 같은 기독교 핵심 진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고, 마틴은 이어서 이 책이 상, 중, 하 세 권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그 요지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상권은 하나님이 유일하시며 천지의 조화 주재자로서 물리를 깊이 통찰하는 데 확실한 증거가 있음을 논증한 것이고, 중권은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의 조서를 내려 만국이 따르게 한 서적을 통해, 인심을 헤아리는 증거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하권은 이 은혜의 조서 중 가장 큰 실마리에 해당하는 성서를 상세히 변론하고 정밀하게 관찰해 스스로 명확한 증험을 갖추도록 하는데 목표가 있다고 논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권은 자연신학 논증으로 별과 별자리, 오행, 생물, 사람, 영혼, 금수와 곤충을 통해 주재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만물이 모두 주재자의 덕을 드러낸다고 논했다. 중권은 계시신학에 속한 역사문헌 논증으로, 인류에게는 진리의 가르침이 필수적임을 논하고 이 가르침을 예언, 하나님의 기적, 도의 유행, 교화, 도의 오묘함을 통해 입증하고 의심의 단서를 풀어 참된 도를 밝히고 있다. 또한 중권에서는 서광계가 천주교의 전교를 허락해달라고 올린 ‘상국서광계주류천주교소’(相國徐光啓奏留天主敎疏)와 중국 기독교의 첫 전래인 네스토리우스 일파의 중국 전교를 입증하는 ‘경교비문’(景敎碑文)을 부록으로 수록하고 있다. 하권은 성서의 계시에 의한 논증으로, 성서의 원문과 번역문, 영혼의 영생과 육신의 부활 및 최후의 심판, 시조의 범죄로 인한 인간의 원죄, 예수의 대속 구원, 성령에 의한 인간 본성의 회복,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신자는 마땅히 성스러운 덕을 힘써 수양해야 함, 그리고 신자의 기도로 주기도문과 참회기도 및 아침저녁기도와 식사감사기도문을 예시로 제시했으며, 신자는 마땅히 성례를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삼위일체를 논했다.
이와 같이 『천도소원』은 자연신학적 논증뿐만 아니라 계시신학에 의한 논증을 통해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주재자 하나님의 존재와 덕, 그리고 참 진리로서 기독교 진리가 이 세상에 어떤 이로움을 가져왔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러면 『천도소원』을 당시 지식인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이 부분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 요소를 찾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천도소원』의 동아시아 문화 요소
마틴을 연구한 코벨(Ralph R. Covell)은 1854년 7월 17일과 1855년 9월에 마틴이 선교부로 보낸 편지에서 3권의 책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Evi-dences of Christianity(기독교 논증, 즉 『천도소원』),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이 그것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마틴은 『천도소원』이 순전히 자신의 작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마틴에게 영향을 준 신학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3 『자연신학』은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의 Natural Theology를 말하는 것으로, 실제 『천도소원』 상권의 첫 세 장은 이와 유사하다. 그 외에도 스튜어트(Dugald Stewart)의 Outlines of Moral Philosophy(1793)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인간의 지력, 즉 외부 지각과 기억, 상상, 판단 및 추리를 포함하는 개념은 『천도소원』에서 ‘영재’(靈才)로, 그리고 인간의 적극적이고 도덕적인 역량은 ‘심재’(心才)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천도소원』이 나오게 된 신학적 배경을 살펴보면, 마틴은 18세기 스코틀랜드와 19세기 미국 대학들에서 유행한 자연신학 또는 상식철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에서 전개된 논리는 상식과 도덕에 기초한 동아시아인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얻는 데 유리했다. 『천도소원』은 기독교의 내용을 당시 중국의 지배층 문화의 형식에 융합시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경감시켰다. 예를 들어 천과 도의 관계, 그리고 이를 결합해 천도라는 용어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천, 도, 그리고 천도는 모두 중국고대경전 속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용어이다. 주로 초자연적 역량을 지시하는 것으로 어떤 지고무상한 개념을 나타낸다. 마틴은 이를 응용해 지고무상한 천을 통해 지고무상한 기독교의 도(진리)의 지위를 확립했다. 또한 마틴은 천, 상제, 리(理) 등의 개념을 통해 기독교의 하나님 또는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어』(論語) 3장의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할 바가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라는 글귀를 통해 기독교의 기도를 설명하고 있다.
마틴은 기독교 진리를 중국 전통문화에 적용시키고자 했다. 중국의 술어(術語)나 개념체계를 이용하려고 한 것은 즉 중국 고대사상 중에서 기독교와 공유할 수 있는 자연신학을 사용해 기독교의 진리를 논증, 소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중국의 술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 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버리거나 보충하는 일종의 개조 방식을 통해 함께 고려하고자 했다. 또한 유・불・도 삼교 중 유교에 대해서는 주로 관용적인 태도에서 유교를 보충하거나(補儒) 유교를 뛰어넘는(超儒) 관점을 견지했으며,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자세를 견지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오륜(五倫)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기독교의 천륜을 보충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언급하거나 공자의 학설을 기독교의 선구자라고 여기며 유교 술어를 통해 기독교를 소개했다. 『천도소원』에 나타나는 이러한 동아시아적 문화 요소들은 당시 많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기독교가 유교에서 진일보한 완전체라는 시각을 심어주어 기독교를 수용하는 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천도소원』이 동아시아 기독교에 미친 영향
『천도소원』이 동아시아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은 저자 마틴이 처음 이 책을 쓰게 된 닝보의 기독교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재판 서문의 저자인 당전중은 무주[婺州, 지금의 절강성 금화(金華)]의 교인으로 후보교유(候補敎諭: 가르침을 기다리는 후보)인데, 1857년 5월에 마틴으로부터 『천도소원』을 받아 독서하며 기독교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천도의 까닭과 당위 모두 성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명(四明) 범용태는 서문에서 『중용』의 말씀은 예수의 가르침과 서로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잘 맞는다고 했다. 이런 가까운 곳의 기독교 문인과 지식인들은 대부분 『천도소원』을 읽고 난 후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으며, 『천도소원』은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와 중국전통문화의 결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 관료와 지식인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마틴은 미국 공사의 통역 일(1858-60)을 하였고, 동문관 교사와 총교습(1865-94)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관료, 문인 등과 교류하면서 이 서적을 유통시킬 수 있었다. 이홍장(李鴻章), 문상(文祥) 등 관료 대신들에게도 이 서적을 증정했다. 또한 이 책은 과거시험장에서도 무료로 배포되었는데, 예를 들어 화중서회(華中書會)의 중심지인 한커우(漢口)에서는 1885년까지만 해도 무려 만 권 가까이 인쇄・유통되었다고 한다. 이런 광범위한 유통의 영향으로 중국 선교 100주년을 기해 열린 1907년 선교대회에서 이 책은 중문 전도서적 중 가장 환영받는 단행본으로 평가되었다.
확실히 『천도소원』은 많은 지식인들을 기독교로 귀의하도록 공헌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성서공회가 출판한 『사생변도』(師生辨道, A Dialogue on Christianity)에서 한 중국 목사는 자신이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고백했는데, 한 친구가 편협한 유학자인 자신에게 『덕혜입문』을 주어 읽었는데 마치 지혜의 보고를 느끼는 것 같았다가 다음 『천도소원』을 받아 읽고 회심의 과정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존 다록(John Darroch, 중국명 竇樂安) 선교사는 이런 분명한 증거를 통해 『천도소원』이 젊은 중국 학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고 확신했다.4
또한 『천도소원』은 중국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의 언어 교재로도 활용되었다. 미국 북감리회는 이 책을 선교사 훈련학교 교재로 활용했는데, 특히 순회 설교자들을 위한 학습 과정의 승인시험(admission on trial)으로 이 책을 사용했으며, 그 외에도 주일학교 교재로 사용되었다.5 그리고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천도소원』의 윤색 작업에 참여해 도움을 주었기에 부자연스러운 번역 형식의 책과는 다르게 희곡보다 더 듣기 좋아서 지식인들에게 쉽게 수용되는 서적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1888년 7월 The Chinese Recorder는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중이라고 보고하였지만, 이후의 과정은 불투명하여 현재까지도 번역 결과물은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천도소원』과 『덕혜입문』이 각각 기독교 귀의에 공헌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천도소원』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시중에 유통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니라, 주로 한자에 익숙한 지식인들에게 원문 그대로 읽혔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성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구한말 지식인들은 감옥 안에 설치된 도서실에서 기독교 중문서적 중 『천도소원』을 대출해 독서했으며,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도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기독교인이 된 이수정도 이 책을 읽고 개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천도소원』은 기독교를 변증하는 형식이나 내용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지니면서, 지식인들의 기독교 귀의에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천도소원』은 동아시아 문화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수용되는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천도소원』은 이성과 도덕 위에 세워진 동아시아 문화에 기독교를 자연신학적 변증, 역사문헌적 변증, 그리고 성서 계시신학적 변증의 틀을 세워나가는 데 공헌했다. 이런 변증 과정에서 동아시아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용어와 개념을 빌려 기독교가 서양인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동아시아인의 종교임을 주장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천도가 곧 동과 서를 아우르는 기독교 진리이며, 이것은 성서의 계시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음을, 그리고 바로 이런 도(진리)를 믿을 때 모두가 함께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따라서 마틴의 『천도소원』은 동아시아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다시금 고찰할 가치가 있는 서적이라고 본다. 100여 년 전 한 선교사에 의한 결실이 지금 우리가 어떤 신학을 만들어가야 할지 그 길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1 동문관은 중국인들에게 서양 언어를 가르쳐 통역 일을 맡기려는 외교 활동의 목적으로 1862년에 세워진 기관이다. 이후에는 서양 지식의 수용과 보급을 맡는 곳이 되었다.
2 丁韪良,沈弘 译,『花甲憶記-一位美国传教士眼中的晚清帝国』(广西师范大学出版社,2005),41. 본래 이 책은 마틴의 A Cycle of Cathay, or China, South and North, with Personal Reminiscences(1896)를 중문으로 번역한 책이다.
3 Ralph R. Covell, W. A. P. Martin, Pioneer of Progress in China(Texas: Christian University Press, 1978), 126.
4 John Darroch, “Evangelistic Tracts and Literature”, The Chinese Recorder(June, 1911): 330.
5 M. C. Wilcox, “Courses of study for Chinese Preachers, etc: Recommended to the Board of the Bishops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by the Central Conference for China, held in Nanking, November, 1903”, The Chinese Recorder(July, 1904): 377.



설충수 |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숭실대학교, 베이징대학을 졸업하였으며, “토착화신학 입장에서 본 19세기 God 신명논쟁 연구”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과 중국 학생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

 
 
 

2019년 10월호(통권 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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