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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동아시아 기독교의 신학적 기반
특집 (2019년 9월호)

 

  이벽의 <성교요지>(聖敎要旨)는 위조문헌인가
  

본문

 

들어가며
한국 천주교회 설립의 성조(聖祖) 광암(礦菴) 이벽(李檗)의 저작으로 알려진 <성교요지>(聖敎要旨)는 지난 1967년 고(故) 김양선 목사에 의해서 ‘발굴’된 이래 그 권위와 가치를 크게 인정받아 왔다. 이벽이 지었다고 알려진 한문본 <성교요지>는 정약종의 『주교요지』(主敎要旨)와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호교론(護敎論)이며 불후의 명저라는 것이다.

李檗(이벽)의 <聖敎要旨>(성교요지)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매우 귀중한 문헌이며 또 불후의 명저이다. 첫째, 한국 교회사적인 면에서 볼 때, 丁若鍾(아오스딩)의 <주교요지>(主敎要旨)와 더불어 한국 초기 교회에 나타난 최초의 護敎論(호교론)이며, 둘째, 국문학사적인 면에서 볼 때 단테의 <神曲>(신곡)이나 밀턴의 <失樂園>(실낙원)을 연상케 하는, 古詩經体(고시경체)의 장대한 史詩(사시)이며, 셋째, 反朱子學(반주자학)적인 기독교 사상을 완전히 수용·소화하여 동양적 관조의 세계로 深遠(심원)하게 연역 표출한 점으로 보아 커다란 사상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1

하지만 최근 한국 천주교회 내부에서는 <성교요지>와 <십계명가> 및 이들을 수록한 『만천유고』는 물론이고 『이벽전』, 『유한당언행실록』 등 고 김양선 목사가 수집하여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초기 천주교 관련 많은 문헌들이 위작(僞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3년 천주교 시복시성(諡福諡聖) 주교특위에서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을 추진하다가 <성교요지>, 『이벽전』, ‘영세명부’, ‘영세명장’(세례증서), ‘이벽과 그 부인의 영세명패’, ‘경신회 규범’, ‘경신회 서’ 등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한 천주교 관련 자료를 검토했으나 모두 위작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후에 편찬한 시복시성 주교특위 자료집에 어느 것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인 윤민구 신부는 2002년에 “이벽이 이토록 대단한 작품을 남겼다면 황사영의 백서나 그밖의 중요 교회 기록에 나와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이벽이 성교요지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성교요지란 말 자체가 안 나”온다고 주장하더니,2 2014년에는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 언행실록은 사기다』를 통해서 다시금 <성교요지>가 위작이며 사기극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는 여전히 <성교요지>의 ‘거룩한 전승’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 성당에서는 김동원 편저의 『영성의 길: 하느님의 종 광암 이벽의 <성교요지>를 일반 신자들의 영성교육의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는 「한국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다.

서종태 교수는 2016년 6월 16일, 수원교구에서 개최한 ‘만천유고’와 ‘성교요지’ 관련 심포지엄에서 ‘만천시고’에 수록된 70수 중 이승훈의 저작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가 단 한 편도 없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홍석기(洪錫箕, 1606-1680)의 ‘만주유집’(晩洲遺集)에 버젓이 실린 두 수의 시가 슬쩍 끼어든 것까지 찾아냈다. 게다가 여타 작품 속에는 20대 후반의 이승훈이 지은 것으로 볼 수 없는 노년의 심회를 표출한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
결론부터 말해 이 시집은 의도적으로 여러 사람의 시집을 짜깁기해서 엮은, 대단히 교활한 악마의 편집이다. 이승훈의 한시는 단 한 수도 없다. 필자가 확인해보니, 시고 70수 중 뒷부분에 수록된 ‘계상독좌’(溪上獨坐)부터 마지막 ‘양협노중’(楊峽路中)에 이르기까지 무려 21제 26수가 통째로 양헌수(梁憲洙, 1816-1888) 장군의 ‘하거집’(荷居集) 권4에서 가져왔다. 양헌수는 1866년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 수성장(守城將)으로 프랑스군을 패퇴시켰던 무장이다. 이승훈이 죽고 15년 뒤에 태어난 양헌수의 시가 통째로 이승훈의 작품으로 끼어들었다.3


그렇다면 <성교요지> 역시 누군가의 작품, 특히 후대의 개신교 학자 혹은 신자의 작품을 고스란히 필사한 다음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벽의 작품으로 둔갑시킨 사기극을 벌인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으며,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겨울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에서 『만국공법』(萬國公法)의 한역자(漢譯者)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마틴(William A. P. Martin, 丁韙良, 1827-1916)의 기독교 교리서인 『천도소원』(天道遡源)을 연구하던 김현우는 동일 저자의 『쌍천자문』(雙千字文)4이 <성교요지>의 본문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김석주는 그 책이 동일 저자의 The Analytical Reader: A Short Method for Learning to Read and Write Chinese(認字新法 常字雙千)의 별쇄본임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소위 이벽의 <성교요지>는 바로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5의 특정 부분인 ‘常字雙千’ 혹은 ‘雙千字文’의 본문과 주석을 ‘의도적’으로 필사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을 제15차 아시아기독교사학회 학술대회(2019년 5월 18일,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발표하였다.

이벽의 <성교요지>
현존하는 <성교요지>는 한문 필사본 두 편과 한글 필사본 한 편이 있으며, 1967년 교회사학자 고 김양선 목사는 이 모두를 숭실대학교에 기
증하였다. 2007년까지는 『만천유고』(蔓川遺稿,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유물번호 0415)의 “잡고”(雜稿) 편에 실린 한문본 <성교요지>와 별도로 존재하는 한글본 <성교요지>(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유물번호 5149)만이 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이승훈의 『만천유고』는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초기 천주교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저술한 시가와 산문을 수록한 “잡고”(雜稿) 편, 자신의 시를 모아놓은 “시고”(詩稿) 편, 그리고 갖가지 상식을 저술하여 남긴 “수의록”(隨意錄)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잡고” 편에는 “경술년에 마을의 농부가 농기에 써달라고 해서 썼다고 주를 달아놓은 국한문 혼용으로 된 <농부사>(農夫詞), 한문으로 된 <천주실의발>, 기해년(1779년) 12월에 주어사(走漁寺)에서 강론을 마치고 정약전(丁若銓), 권상학(勸相學), 이총억(李寵億) 등이 지은 국문 <십계명가>, 이벽이 지은 국문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 이벽이 『천학초함』(天學初函)을 읽은 뒤 자신의 서학관을 정리하고 주를 달아놓은(“讀天學初函 李曠奄作註記之”) 운문체 한문본 <성교요지>(聖敎要旨)가 수록되어 있다.”6
한글본 <성교요지>는 위의 한문본에서 주석을 제외한 본문만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단순 학습이나 암기를 위하여 두 번 베껴 쓴 것이다. 제목 다음에는 “이 셩교요지 옛 리벽 션옵셔 텬학쵸함 닐그신 후 작심이라.”(이 <성교요지>는 옛날 이벽 선생이 『천학초함』을 읽은 후 지은 것이다.)라는 부기가 있으며, 첫 번 베껴 쓰고 나서 그 말미에 “챠 셩교요지 옛 니벽 션 만드신 구결이라. 임신년 뎡아오스딩 등셔 우약현셔실이라.”(이 <성교요지> 책자는 옛날 이벽 선생이 만든 구결인데, 임신년 정아오스딩 등이 약현서실에서 쓴 것이다.)라고도 덧붙이고 있다.7
그런데 2007년 새롭게 드러난 또다른 한문본 <성교요지>는 『당시초선』(唐詩鈔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유물번호 0414)이라는 문헌 속에 들어 있었다. 한국기독교박물관 측에 의하면, 고 김양선 목사가 1967년 천주교 관련 자료들을 기증할 때 이것도 함께 기증했는데, 당시에 자료 정리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공개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초선』에는 <성교요지>, <수서록>(隨書錄), <성씨속해>(姓氏俗解), <김안덕리아자서록>(金安德利亞自書錄) 등 한문본 네 편이 실려 있다. <성교요지> 첫머리에 “朝鮮國人 李蘗 輯. 東方大建人 金安德利 述.”(조선 사람 이벽이 편집했고, 동방대건인 김안덕리가 필사하다.)라고 되어 있고, 말미에도 “某年 某月 某日 朝鮮國 金安德利亞 左手謹手書.”(모년 모월 모일 조선의 김안덕리아가 왼손으로 삼가 쓰다.)라고 첨부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마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에 있을 때 필사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8 무언가 억지로 꾸며낸 것만 같다.
『만천유고』에 있는 <성교요지>와 『당시초선』에 있는 <성교요지>는 본문 내용이 거의 같으며, 다만 후자는 본문만 있고 주석은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성교요지>의 저본, 윌리엄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
1) 저자

미국 장로회가 중국으로 파송한 선교사 윌리엄 마틴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 및 국제법 교육자로 일하였으며, 번역 및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많은 중문(中文) 번역서 및 저서를 출간해서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서양의 근대적인 중국 연구의 기초를 놓는 데도 일조하였다. 마틴은 선교사·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인디애나대학교와 뉴올버니(New Albany)의 장로회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850년에 중국에 파송되어 1867년까지 영파, 북경 등에서 선교 활동에 종사하였다. 또 1865년 북경의 동문관(同文官)에 영어 교사로 초빙된 후 1869년부터 1894년까지 국제법 교습(敎習) 및 총교습(總敎習)으로 근무하였다. 1898년에는 중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대학인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의 초대 총교습에 임명되었고, 그 후 설립 준비 중인 무창대학교에서 국제법을 가르쳤다.
윌리엄 마틴의 많은 번역서와 저서 중 기독교 전도서인 『천도소원』(天道遡源), 자연철학 소개서인 『격물입문』(格物入門), 국제법과 국제관계를 다룬 『만국공법』(萬國公法) 등은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조선에서도 읽혔다. 또 1870년대에 공동 발행한 『중서견문록』(中西見聞錄)은 서양의 과학, 기술 등을 소개하는 잡지로서 당시 중국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2) 저작 시기 및 목적
The Analytical Reader는 중국 상해에서 저작되어 미국장로회선교부출판사(The Presbyterian Mission Press)가 1863년 초판을 출간하였고, 그 후 1897년에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서양인들이 중국어와 한자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입문서 성격의 책으로, 특히 개정판에서는 발음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하여 현대어 중국어 발음(북경 발음)과 같은 병음과 성조를 표시하여 정확한 중국어와 한자 발음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3) 저작 형식 및 구성9
The Analytical Reader(1897)는 천자문과 같은 사언절구(四言絶句) 형식으로 총 2,016자의 한자로 기록되었다. 본문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고, 그 뒤에 부록이 붙어 있다. 그중 2부는 사언절구 본문과 본문에 대한 영문 해석이 있다. 그리고 3부는 사언절구 형식의 본문과 주석이 기록되어 있고 순한문으로만 기록되었다.

이벽의 <성교요지>와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 비교 연구
1) 두 판본의 ‘내용’과 ‘형식’은 동일하다

<성교요지>와 The Analytical Reader의 내용과 형식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하다. 『당시초선』의 <성교요지> 필사자는 The Analytical Reader(1897)의 2부 “TEXT AND TRANSLATION(常字雙千)”를, 『만천유고』의 <성교요지> 필사자는 같은 책 3부 “ANALYSIS OF CHA-RACTERS(常字雙千合釋)”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필사자가 저본의 본문을 잘못 판독해서 필사했거나 혹은 <성교요
지>를 현대어로 번역한 저자들이 필사본의 본문을 잘못 판독하여 오늘날의 역본에는 몇 군데 오자(誤字)가 있다. ‘하성래 역본’에는 28자의 오자와 2자의 이체자(異體字)가 있으며, ‘김동원 역본’에는 19자의 오자와 2자의 이체자가 있다.

2) <성교요지>에 개신교 성서 용어들이 등장하는 이유
윌리엄 마틴은 미국 장로회가 중국에 파견한 선교사이므로 그가 저술한 책 내용에 개신교 성서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The Analytical Reader를 필사한 <성교요지>에도 당연히 개신교 성서 용어가 등장한다. 또한 『만천유고』의 한문본 <성교요지>와 『당시초선』의 한문본 <성교요지>는 본문 내용이 거의 같다. 따라서 『당시초선』의 한문본 <성교요지>에도 동일한 개신교 성서 용어가 등장한다.

3) 『당시초선』의 <성교요지>와 <성씨속해>의 저본은 The Analytical Reader(1987) 1-2부이다
앞서 언급했듯 『당시초선』의 한문본 <성교요지>와 The Analytical Reader 2부 사언절구 본문을 대조한 결과 두 본문의 내용은 동일하다. 즉 『당시초선』의 한문본 <성교요지> 필사자는 The Analytical Reader의 2부를 필사한 것이다. 다만 저본에는 본문에 대한 영문 해석(English translation)이 있기 때문에, 필사본에는 본문만 있고 한문 주석이 없다. 『만천유고』의 한문본 <성교요지>와 다른 필사본을 만들기 위해서 한문 주석이 없는 또 다른 형태의 필사본을 만든 것은 아닐까?
『당시초선』에 <성씨속해>(姓氏俗解)라는 글이 있다. 이 글도 The Analytical Reader의 1부에 있는 “FAMILY NAMES ANALYZED”와 그 내용과 순서가 모두 동일하다. 이는 <성씨속해>도 표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성교요지>가 The Analytical Reader를 필사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만천유고』의 한문본 <성교요지>의 필사자는 저본인 The Analytical Reader 3부의 한문 본문 중 일부를 의도적으로 수정 및 탈루하였다. 즉 원문의 각 장과 주석의 절 ‘숫자’ 표시를 의도적으로 누락하였다. 또한 <성교요지>에서는 저본의 각 장 ‘제목’과 ‘소제목’들을 모두 누락하였다. 즉 The Analytical Reader 3부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는 제목이 있고, 총 47개의 소제목이 있는데, 이를 모두 누락한 것이다.10 이와 같은 사실은 마치 천주교 신자가 <성교요지>를 저술한 것으로 교묘하게 위장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나가며
임의의 서적 ‘A’와 ‘B’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동일하다면, 같은 저자가 두 책을 따로 출간하였거나, 아니면 둘 중 하나가 표절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벽(1745-85)이 자신보다 한 세기나 뒤늦게 태어난 윌리엄 마틴(1827-1916)의 저작물을 필사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반대로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로 활동한 윌리엄 마틴이 조선에 있는 이벽의 저작물을 입수하여 활자본으로 출간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윌리엄 마틴은 The Analytical Reader의 서문과 본문 1부에서 십삼경집자(十三經集字)와 사서오경(四書五經)에 나오는 글자 수의 통계를 바탕으로 사용빈도수를 분석하고 자신의 중국인 동역자이며 학자인 하사맹(何師孟)의 도움을 받아 천자문 형식을 빌려서 저작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소위 이벽의 <성교요지>와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의 비교 연구는 학문의 기본이 사료 검증의 엄밀성이며, 이와 더불어 연구 방법의 정직성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운다. 우리나라 학계와 교계에서는 이미 <성교요지>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성교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여 그 내용을 철학적 혹은 신학적으로 분석하려는 글들도 있었고, <성교요지>에서 유가적 사상과 기독교 사상의 접합점을 찾으려고 하는 등 실로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여 발표하였다.
그런데 윌리엄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의 1차 목적은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 윌리엄 마틴은 초판(1863) 및 개정판(1897) 서문에서 중국어를 배우려는 초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그 책을 집필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심오한 기독교 신학과 교리를 한문으로 표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서양인이 중국어를 학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함이 1차적 저술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성교요지>를 주제로 한 논문들에서는 원저자의 의도와 원문의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하여 엉뚱한 해석을 도출하거나 원문의 의미와 함의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한 사례가 많이 있다. 따라서 그간 발표된 논문 혹은 번역서들의 내용 중 신학적이며 교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원본에 실린 저자의 영문 해석을 참고하여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1 이벽, 하성래 역, 『성교요지』 제2판(성요셉출판사, 2007), 9.
2 윤민구,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국학자료원, 2002), 276.
3 정민, “초기 천주교 사료 ‘만천유고’, ‘성교요지’는 일제강점기 위작이다”, 『한국일보』 2018년 10월 11일.
4 『쌍천자문』(雙千字文)은 본래 서지사항 없이 간행되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과 저술을 서지학적으로 잘 소개하는 와일리(Alexander Wylie)에 의하면, 이 별쇄본은 1865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Alexander Wylie, Memorials of Protestant Missionaries to the Chinese: Giving a List of Their Publications and Obituary Notices of the Deceased with Copious Indexes(Shanghai: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s Press, 1867), 205을 보라.
5 1863년에 발행된 초판과 1897년에 발행된 개정판을 모두 참조하라. 이하 The Analytical Reader로 통일.
6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편,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기독교 자료해제』(숭실대학교, 2007), 375.
7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편, 위의 책, 385.
8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편, 위의 책, 385.
9 여기서는 <성교요지> 필사의 저본이 된 개정판(1897)을 기준으로 한다.
10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第一章 論古始”, “第二章 論敎化”, “第三章 論人事”, “第四章 論儔類”. 그리고 각 장에 있는 소제목의 숫자는 제1장 3개, 제2장 11개, 제3장 16개, 제4장 17개이다.



김현우 | 대구한의대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재 물댄동산교회 전도목사이며,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석주 | 서울대학교와 장신대 신대원, 컬럼비아 신대원을 졸업하고 베일러대학교(Baylor University)에서 “양발의 『권세양언』이 태평천국운동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 아시아 교회사에 관한 많은 논문과 저술이 있으며, 장신대 교수로 재직한 후 은퇴하여 현재 아시아기독교사학회 회장,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9월호(통권 7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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