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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9월호)

 

  중국 기독교의 세대주의
  

본문

 

1807년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의 선교를 기점으로 중국 개신교의 역사를 계산해보면 벌써 200여 년이 되었다. 중국교회에는 한국교회와 같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루터교 등의 교파가 없으며, 오직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신흥 도시가정교회로 나뉘어 있다. 이는 교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형태를 말한다. 교파란 같은 신학과 신앙관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교회에 교파가 없다면 신도들이 다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국교회는 외관상으로 볼 때 교파가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오순절주의, 개혁주의 등 서구의 각종 신학사상이 존재한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전에 서구교회 선교사들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세대주의가 중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중국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대주의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가옥명(贾玉铭, 1879-1964)의 저서를 중심으로 중국 기독교의 세대주의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1 가옥명이 저술한 『성경요의』(圣经要义)는 중국교회에서 현재까지 사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세대주의가 어떻게 중국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살펴보고, 중국교회의 세대주의적 성서 해석, 그리고 세대주의의 영향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중국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세대주의의 기원과 중국 진입
세대주의는 19세기 말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기독교 교리 수호운동의 일환으로, 1820년대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소속인 존 다비(J. N. Darby, 1800-82)에 의해 시작되었다. 세대주의를 받아들인 스코필드(C. I. Scofield, 1843-1921)는 ‘킹 제임스 버전’(KJV) 성서를 주석한 『스코필드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1909년에 발행하였다. 이 성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 역사비평과 진화론에 대항하고 근본주의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미국 개혁주의 신학교들도 세대주의와 손을 잡았다.
세대주의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중국교회에 들어왔다. 첫째, 1900년대 초에 존 다비와 스코필드의 영향을 받은 영미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세대주의를 전했다. 대표적인 선교사로는 영국의 마가렛 바버(Margaret E. Barber, 1865-1930)와 미국의 루스 팩슨(Ruth Paxon, 1889-1949)을 들 수 있다. 1925년 봄에 상해에서 심령부흥회가 열렸을 때, 중국인 여전도사 여자도(余慈度, 1873-1931)는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7개의 세대’와 ‘전천년설’을 주제로 강의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세대주의가 중국 전역으로 점점 확산되었다.
두 번째 경로는 성기귀(成奇归, 1882-1940)의 순회 전도사역과 그가 중문으로 번역한 『스코필드 통신성경과정』(司可福函授圣经课程)이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그는 일찍이 미국 무디성경학원에서 주관한 『스코필드 통신성경과정』을 영어로 공부하였으며, 그 당시 그레이(James Martin Gray, 1851-1935) 교수로부터 세대주의 신학을 배웠다. 그는 졸업 후인 1928년에 이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보급하였다. 또한 테일러(Hudson Taylor,1832-1905)가 설립한 ‘중국내지회’는 1927년 남경에 통신 과정의 성경학교를 개설하였는데, 그때 사용한 교재가 바로 성기귀가 중문으로 번역한 『스코필드 통신성경과정』이었으며, 당시 그들이 사용한 사무실은 가옥명이 설립한 출판사인 영광보사(灵光报社)였다. 이 통신 과정은 중국 신도들에게 매우 큰 환영을 받았고, 1980년대 중반에 이 과정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중국 전 지역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이 과정을 공부했다. 우역공(于力工, 1920-2010)은 그의 책 『야진천명』(夜盡天明)에서 ‘화교 교회까지 포함하여 20세기 중반 중국교회의 근본주의 목회자들은 대다수가 세대주의자였다.’고 말하고 있다.2
세 번째 경로는 가옥명을 통해서이다. 비교적 일찍 세대주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 가옥명은 목사이자 신학자, 또한 교육자로서 30여 권의 신학 서적과 성서 해석서, 찬양집 등을 출판하였으며, 당대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1926년에 그가 쓴 『사도행전모범』(使徒行传模范) 서론에서는 세대주의의 주장대로 성서의 역사를 7개로 구분하고 있다. 무죄 시대, 양심 시대, 인간통치 시대, 약속 시대, 율법 시대, 은혜 시대, 왕국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3
그는 남경금릉신학원, 화북신학원, 자신이 설립한 영수원(灵修院)신학교에서 40여 년간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사용한 교재는 근본주의적 시각에서 조직신학을 다룬 『신도학』(神道学)과 세대주의 성서 해석법으로 신구약을 간략하게 강해한 『성경요의』(圣经要义)이다. 둘 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중국 세대주의 신학의 특징
중국 세대주의자들은 성서를 해석할 때, ‘문자적인 해석’(literal inter-pretation)을 추구하였다. 가옥명은 스코필드의 영향으로 성서의 예언서나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였으나,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예표적 해석법(구약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신약의 예비적 표시라고 보는 성서 해석)이나 우화적인 해석법(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떤 신비하고 깊은 영적 의미를 추구하는 알레고리적 성서 해석)을 따랐다. 가옥명은 다른 세대주의자들과 동일하게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였다. 구약에서는 교회를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합일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구별하면서 천국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인류 역사를 일곱 세대로 분류하면서, 하나님께서 각 세대마다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교회 시대’인데,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잠시 한쪽으로 제쳐 놓았다. 그러나 ‘왕국 시대’가 도래하면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므로, 교회 시대는 ‘괄호 속’에 임시로 주어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가옥명은 전 인류를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인과 교회로 나누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세 부류에 주신 말씀이 각각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성서의 내용을 구분하였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11장 9절까지는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창세기 11장 10절부터 마태복음 4장 16절까지는 간혹 이방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다른 복음서도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간혹 교회가 언급된다. 교회는 오순절 이후에 시작되었고, 사도행전 1장부터 요한계시록 3장까지는 교회에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4장부터 19장까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주신 말씀으로 교회와는 상관이 없고, 요한계시록 20장부터 22장까지는 천년왕국과 새 하늘 새 땅에 관한 말씀이라고 말한다.4
가옥명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면서, 예수의 이중재림설을 주장했다. 예수가 첫 번째로 공중에 재림할 때 교회는 휴거된다. 7년 대환난을 거친 이스라엘은 두 번째로 지상에 재림한 예수와 같이 천년왕국을 누린다. 이제 교회 시대는 끝나고, 잠시 멈추었던 이스라엘의 역사가 천년왕국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 왕국에서 다윗의 자손 예수가 왕이 되어 메시아 왕국을 통치한다. 이 천년왕국이 바로 천국이며, 마태복음 6장 10절의 “나라가 임하시오며”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구약에서의 모든 언약이 이 천국에서 이스라엘에게 남김없이 성취된다. 그는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국에서 지켜야 할 율법이 바로 산상수훈(마 5-7장)이라고 말한다.
가옥명이 위에서 주장한 것들은 결국 전천년설과 묘하게 얽혀 있다. 천년왕국이 곧 천국이고, 교회는 휴거되고, 이스라엘만 천국을 누리며, 구약의 모든 언약이 그곳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북장로회가 산동성에 세운 신학교에서 수학한 영향으로 성서의 주제가 ‘십자가와 구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성서를 해석할 때는 ‘천년왕국’이라는 종말론을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그가 쓴 『성경요의』에는 갈라디아서
3장 29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에 대한 해석이 없다. 그가 철저한 세대주의자로서 세대주의 교리를 중심으로 성서를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세대주의는 중국교회에서 ‘백 투 예루살렘 운동’(Back to Jerusalem Movement)이라는 선교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원래 1943년 서북성경학원의 부원장 마마가(马马可)와 그의 동역자들이 설립한 ‘편전복음단’(遍传福音团)과 1946년 화북신학교 출신인 장곡천(张谷泉, 1920-1956)이 설립한 ‘서북영공단’(西北灵工团)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1949년에 장곡천은 조시몬(赵西门,1918-2001)을 만나 신장에서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1951년 중국 당국에 붙잡혀 감옥에서 순교하였고, 조시몬은 1981년에 석방되었다.
1995년 조시몬이 하남성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비전을 나누었고, 1996년 그들이 ‘중국가정교회연합회’를 조직하면서 이 선교운동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의 중심 인물은 『하늘에 속한 사람』의 저자 윈 형제와 중국가정교회 지도자인 슈용저(徐永泽) 등이다. 당시 슈용저는 “우리가 연합회를 조직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복음이 시작된 예루살렘에 다시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사명을 완성하고,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자.”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보면, 이 선교운동이 세대주의 종말론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대주의가 중국교회에 미친 영향
세대주의의 문자적 성서 해석은 중국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가옥명이 1936년부터 자신이 설립한 영수원 신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1957년에 『성경요의』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판하였다. 이 책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발행되고 있고, 중국의 몇몇 근본주의 교회에서는 여전히 이 책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이 책 외에도 가옥명의 많은 책들이 인터넷상에 자료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세대주의 신학은 중국에 계속 전해지고 있다.
문자적 해석의 결과, 이제는 중국교회의 전통이 되어버린 한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신도들은 사도행전 15장 20절의 ‘피를 먹지 말라’는 구절로 인해 동물의 피가 섞인 순대나 선짓국, 오리 피가 들어간 국수 등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중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경우, 성서와 예수를 알기 전에 동물의 피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 것을 먼저 배우게 된다. 복음의 본질을 모른 채, 비본질적인 것에 묶여서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문제는 중국교회의 전통으로 남아 있고,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또한 중국 신도들은 세례를 받을 때, 머리에 물을 약간 적시는 ‘세례’보다는 온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를 더 선호한다. 그들은 예수가 침례를 받았으니 침례가 더 성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교회 역사에서도 세대주의자들에게 흔히 있어온 일이다. 영국 선교사였던 마가렛 바버도 성공회를 탈퇴하고 형제회 소속 선교사가 되면서 다시 침례를 받았다. 중국교회의 지도자였던 왕명도도 예수를 믿고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침례를 받았다. 이런 전통이 중국교회에 전해 내려오면서 현재 신도들도 침례를 선호하고, 침례를 받는 것이 더 효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자적 성경 해석이 낳은 또 다른 결과는 여자들이 예배드릴 때 머리에 너울을 쓰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11장 13절에서 바울은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중국의 ‘멍토우파’(蒙头派)라고 불리는 가정교회에서는 예배드릴 때 머리에 모자 혹은 너울을 쓴다. 이 교파는 워치만 니(Watchman Nee, 倪柝聲) 계열의 가정교회이다. 워치만 니의 조카 진종도(陈终道)의 글에 의하면, 워치만 니는 마가렛 바버의 영향으로 문자적 성서 해석을 받아들인 후 여자들은 예배드릴 때 머리에 너울을 쓰라고 줄곧 설교했고, 또 여자는 설교를 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5 현재 중국교회에서는 멍토우파를 이단적인 색채가 있는 교파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많은 중국교회가 세대주의 영향으로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교회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서에 그런 절기를 지키라고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은 사용하지만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떤 가정교회 지도자는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성탄절을 지키지 말라고 다른 교회에 권고하기도 한다.

중국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초기 선교사들 중에도 세대주의자들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견한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1878-1961)이다. 그는 1902년 24세에 조선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고 평양장로교신학교에서 33년간 실천신학을 가르쳤다.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성서문자무오설과 완전영감론을 믿었고,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또한 1931년 장로교의 평양신학교에서는 중국 신학자 가옥명이 쓴 『신도학』(神道學)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조직신학 교재로 사용하였다. 가옥명의 『신도학』은 원래 3권, 총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7편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6권으로 만들었다. 제1권은 이태영(李永泰)이 번역하였고, 2권에서 6권까지는 정재면(郑载冕)이 번역하였다. 우리말 서명은 『기독교증험론』(基督教证验论), 『신도론』(神道论), 『인죄론』(人罪论), 『구원론』(救援论), 『성령론』(圣灵论), 『말세론』(来世论)이며, 당시 평양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였던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레이놀드(William David Reynolds, 李訥瑞, 1867-1951)가 감수하였다. 그는 1892년 11월에 한국에 입국, 1917년부터 1937년까지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과 언어학을 가르쳤다. 그 역시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세대주의자였다. 가옥명의 『신도학』을 번역하여 만든 6권의 조직신학 책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의 세대주의 성향과 중국 가옥명의 조직신학이 담고 있는 세대주의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는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나라 장로교회 대부분과 다른 교파의 교회들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받아들였고, 부흥사들이 순회하면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르쳤다. 한국교회는 1970년대에 이르러 무천년설이 소개된 이후 조금씩 세대주의 신학사상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세대주의 신학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먼저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은 세대주의 종말론인 ‘전천년설’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한 구원파, 위트니스 계열의 지방교회, 말씀보존학회 등 이단 성향의 교회나 단체를 양산하는 일에도 일조하였다. 또한 한국교회는 1990년대 말에 세대주의에 기반을 둔 중국교회 선교운동인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현재 한국교회의 어떤 신학자들은 이 선교운동이 잘못된 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선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일부 지지자들은 여전히 이 선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세대주의에 대한 재고
세대주의와 오순절주의가 주류를 이루었던 중국교회는 1990년대부터 개혁주의 신앙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화교 탕총롱(唐崇荣, Stephen Tong,1940- )이 중국을 방문하여 개혁 신앙을 전파했으며, 한국 선교사와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이 중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향으로 중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근본주의로 대변되는 세대주의 신학이 중국 가정교회에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오래전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이거나 근본주의 신앙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또 최근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더라도 세대주의 신학 배경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자연히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세대주의 신학은 성서의 권위를 높이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잘 지켰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선교운동에 힘썼다는 점은 그 신학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문자적인 성서 해석으로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세대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이원론적 가르침으로 신자들의 사회적 참여를 부인하고, 미래에 이루어질 피안의 하나님 나라만을 동경하게 한다. 그래서 세대주의 신학에 빠진 신자들은 사회적 불의를 마주하면서도 이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다.
현재 중국교회에는 온갖 신학사상이 혼재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교회가 고난을 통과했기 때문에 순수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난 때문에 신도들은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고 신학의 발전은 멈추었다. 신학의 발전 없이 여러 신학이 혼재된 상태에서 순수한 신앙이 가능한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아직까지 중국교회에서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사상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중국 가정교회의 젊은 지식인 신자들이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록 그들에게 바른 신학을 가르쳐줄 영적 지도자가 부족하나, 중국교회의 올바른 복음화를 위해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학교육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교회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성서해석학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신학교의 커리큘럼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중국인을 신학교 교수 요원으로 양성하는 일에도 인력과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도 세대주의 신학을 받아들였으나 이를 상당히 극복했듯이, 중국교회가 세대주의 신학을 뛰어넘어서 개혁주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올바른 신학을 받아들이고, 성서가 바르게 해석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본다.


1 중국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세대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들이 남긴 문헌은 대다수 소멸되었다. 다만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목사 중 가옥명이 남긴 자료가 가장 많고, 그중 어떤 것은 지금도 중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2 于力工, 『夜尽天明: 于力工看中国福音震撼』(台北: 作家出版社,1998), 301. 우역공은 싱가폴신학원(新加坡神学院)의 초대 원장으로 일했으며, 또한 미국 북가주(北加州)에 기독교사역자신학원(基督工人神学院)을 세운 후 20년 동안 원장으로 일했다.
3 贾玉铭,『使徒行传模范』(南京: 灵光报社, 1926), 1.
4 贾玉铭,『圣经要义: 卷一 摩西五经』(上海: 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会 中国基督教协会出版,2010), 20.
5 陈终道,『我的舅父倪柝声』(台北: 中国信徒布道会, 1992), 11.



석귀희 | 상해 복단대학(復旦大學)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중국 선교사로 대만 까오슝에서 사역하고 있다.

 
 
 

2019년 9월호(통권 7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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