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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한국 기독교와 현실정치 사이
특집 (2019년 8월호)

 

  한기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본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문재인 대통령 하야운동으로, 한기총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했다. 한기총이 출범한 이래, 지금처럼 이 단체의 존재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뇌리에 각인된 적은 없을 것이다. 지난 30년간 한기총은 “한국 기독교회를 대표하는 하는 기관”이자 “한국 사회 내 극우 보수세력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그간 한기총은 분명히 수적인 측면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했으며, 질적인 측면에서 보수세력을 대변했다. 하지만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기총은 안팎에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과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그 변화와 전광훈 목사 사태 간에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제 한기총의 역사를 검토함으로써,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탄생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제37차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참석 회원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선언은 (1)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선교적 전통, (2) 민족분단의 현실, (3)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4) 민족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기본 원칙, (5) 남북한 정부에 대한 한국교회의 건의, (6)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과제로 정리되었으며,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개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했다. 또한 남북한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위하여,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상호간에 신뢰회복이 확인되며,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하며 주한 유엔군 사령부도 해체되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1
이 선언은 3년 동안 연인원 350명이 넘는 지도자들의 5차례 협의과정을 거치고, 다양한 교단과 정당, 학자들의 자문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리고 “분단 반세기 동안에 남한 사회에서 민간 부분에 의해 제기된 최초의 본격적인 통일선언으로 획기적인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교회협의 핵심 교단인 예장 통합 총회가 이 선언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어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지키려고”2 1989년 1월 한국교회 원로 10명이 한경직 목사가 거처하는 남한산성에 모였다. 이들 중 9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이들은 교회협이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고 판단한 후,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3
후속 초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월 9일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후, 4월 28일 준비위원회 창립총회를 열고 대표회장에 한경직 목사를 선출했다. 그리고 12월 28일 강남중앙침례교회(당회장 김충기)에 36개 교단과 6개 기관 대표 121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로써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탄생한 것이다. 이날 발표된 창립취지문에서 한기총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본 연합회는 정관이 말하듯이 신구약 성경으로 신앙고백을 같이하는 한국의 개신교 여러 교단과 연합기관, 그리고 건전한 교계 지도자들의 협력기관으로서 각 교단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저 본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간 일부에서는 지나치리만큼 현실 정치에 참여함과 동시에 일부에서는 방관하는 부패한 정권과의 야합 등 교회 본연의 궤도에서 좌우가 이탈했던 것을 우리 모두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서 국내의 문제와 교회 안팎의 상황에 현연히 대처하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며,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진력할 것을 다짐합니다.4

초창기 한기총의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교계의 실질적 대표자들이 아닌 원로들 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되었고, 회원단체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며, 주목할 만한 사업과 활동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기총은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북한 쌀 보내기 운동, 세계 도처의 난민들에게 쌀 보내기 운동, 탈북자 및 북한에 양식과 의류 보내기 운동에 주력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한기총이 특별한 정치색을 드러내거나, 정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이 참여하면서, 한기총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통해 자금과 인원이 충원되면서, 활동의 동력과 영역이 크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교회의 분열을 통해 발생한 수많은 군소교단들이 자신들의 법적・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기총에 대거 가입하기 시작했다. 규모와 영향력을 확장할 필요성을 절감하던 한기총도 이들을 적극 수용했다. 그 결과 2001년에는 50개 교단과 16개 단체, 2010년에는 66개 교단과 19개 단체를 거느린 대형조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변화
주로 구호사업에 치중하면서 세력 확장에 집중하던 한기총은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극우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한기총에게 진보정권의 출현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야기했다. 그동안 독점적으로 향유하던 정부의 특혜가 종식되고, 분단 이후 최초로 정부와 이념적 갈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김대중 대통령의 일관된 햇볕정책,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29선언(2000년)은 이런 위기감을 극대화시켰다. 이때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가 자신의 홈페이지(조갑제 닷컴)에 개신교를 군대와 함께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 보루”로 언급했다.5
이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2001년 1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단체들 협의회’의 발족으로 보수 시민단체들이 결합할 때, 한기총은 ‘과소비추방국민운동’의 핵심 단체로 참여했다. 드디어 한기총이 극우 보수세력로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한국교회는 2000년부터 광림교회 세습문제로 홍역을 앓기 시작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총동문회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등이 강력하게 반대했음에도, 광림교회는 세습을 밀어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기총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광림교회를 지지했다. 이미 대형교회와 밀월관계를 형성한 한기총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한기총은 대형교회의 대변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그리고 2002년이 시작되었다. 김성일에 따르면, 우익 진영이 2000년대에 “관 주도의 수동적 참여라는 관변단체 성격을 벗어나 사회운동의 일반 성격을 갖춘 대중운동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고, 그 결정적 전환점이 바로 2002년이었던 것이다.

2002년 일어난 일련의 사건(김동성 선수 금메달 박탈로 야기된 오노 사건과 그 진상을 파헤친 네티즌들의 활약, 노사모 신드롬과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양태는 이전의 사회운동 혹은 대중 결집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계급, 계층, 성별, 나이, 지역 등의 사회적 구별을 초월한 폭발적 대중 참여, 정보 소통을 통한 집단지성의 발현, 운동단체로부터 일반 시민으로 행동 주체 이동, 다종다양하면서도 재치 있는 자기표현 양식, 모두가 하나 된 광장문화의 창출, 정치와 놀이가 결합된 정치 집회의 출현 등은 새로운 대중의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 김성일, “한국 우익진영의 대응사회운동 전개와 정치과정”, 「문화과학」 91호(2017): 137.

이런 배경에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했고, 한기총은 광장으로 진출했다. 3월 1일 정오 서울시청 앞에서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가 열렸고, 주최측 추산 10만 명이 참석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가 한기총 주최로 개최되어 역시 10만 명이 운집했다. 이후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규명을 추진하자, “국난으로 돌입한 안보체제의 붕괴와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와 고통받는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념문제들로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라며 맹렬히 비판했고, “친북, 좌익세력을 제거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비상구국기도회 선언문”(2004. 10. 4)]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자살을 미화하고 민생을 혼란하게 하는 선동을 즉시 중단하라. 자기 생명을 죽이는 자살은 말 그대로 살인이며 죄악이다.”라고 정죄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시국성명서”(2009. 6. 12)] 진보정권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사무친 것이다. 백종국의 표현처럼, “군사독재 시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며, 한기총이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희생적으로 추구한 민주화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셈이다.”6
하지만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정부에 대한 한기총의 태도는 완전히 돌변했다. 장형철의 지적처럼, “2000년대 이후 한기총의 정치 담론은 구체적으로 개신교 보수 진영의 기득권 사수와 유지, 그리고 타종교와 비교하여 차이가 나는 정치적 이득(규제완화와 특혜)을 얻을 수 있느냐 또는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졌다.”[장형철, “한국 개신교 보수 진영의 정치 담론 분석”, 「사회이론」 53호(2018): 115.] 자신과 이념적 지향이 달랐던 지난 정부들을 향해서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과 반대로 일관했던 한기총이 서울시장 시절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했던 이명박 장로의 선거운동에 전력투구했으며, 그가 당선된 이후에는 최대의 정치적 후원세력으로 협력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각계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을 때, 한기총이 “오염되고 파괴된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친환경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 사업을 적극 지지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입장”(2010. 5. 25)]
이런 친정부적 태도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한층 강화되었다. “온 국민은 박근혜 정부의 시작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함께하는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 그리고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자 하는 도전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일년도 안 된 과정에 수많은 외교 정상들을 만나 역대 대통령 중에 국가신임도를 가장 높인 평가받을 만한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각인되었다.”7 21세기 용비어천가의 전형이다.

위기
김동춘은 「황해문화」(82호, 2014)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우익이 극단적 반북 반공, 그리고 친미주의에 함몰된 모습을 “제국주의가 되어보지 못한 한국 우익들의 일그러진 모습”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김지방은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2010. 4. 13.)에서 발표한 글에서 한기총이 “교회에 대한 비판–목회세습, 대형화, 안티기독교 등–에 맞서 교회의 이익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면서 한국교회 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과시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로써 한기총은 창립 시에 천명한 것과 달리 특정 이념과 정권, 그리고 부패한 교회에 대한 배타적 지지세력으로 경도되고 말았다.
이런 한기총의 일탈행위에 대해 교계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비판이 터져 나왔다. 2009년 12월 결성된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드리는 공개서한”을 채택했다. 이들이 지적한 한기총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한기총 성명 및 핵심 목사들의 설교와 활동을 분석해 보면 십자가, 고난, 하나님나라는 말뿐이고, 힘, 성공, 번영, 돈, 시장, 자본, 경제만 찬양하는 행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한국교회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역사의식도 없고, 시대정신도 모르는 종교 기득권자들처럼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드리는 공개서한”(2009. 12. 28)

이런 외침에 한기총은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파국을 향해 돌진했다. 2010년 이광선 목사가 대표회장에 취임한 후, 이단 연구가 4명을 제명하고 오히려 그동안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장재형(「크리스천투데이」 설립자)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다락방(류광수)과 평강제일교회(박윤식), 인터콥(최바울), 그리고 사기 전과가 있는 신현옥(시온세계선교교회)도 이때 한기총에 가입했다. 2011년에는 사무총장이 성락교회 김기동 측으로부터 1억 7000만 원을 받아서 큰 논란이 일어났다. 이때 전국 신학대 교수 110명이 한기총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같은 해 대표회장 금권선거 논란도 시작되었다. 일부 목사들이 당시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의 금권선거를 폭로한 것이다. 직전 대표회장이었던 이광선 목사도 “돈을 안 썼을 때는 대표회장에 떨어졌는데, 돈을 쓰니까 대표회장에 당선되더라.”라고 고백했다.(「크리스천투데이」 2011년 2월 9일)
결국 대표회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법원이 파견한 직무대행체제에서 개혁안(7.7 개혁정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길 목사의 측근 홍재철 목사가 실행위원회를 열어 이것을 폐기하고, 얼마 후 단독 입후보하여 대표회장에 당선되었다.
이 같은 일련의 파행은 결국 한기총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손봉호 교수는 2011년 2월 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기총은 개혁이 불가능하다.”라고 진단한 후 “해체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가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로 이름을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한기총 해체운동을 시작했다. 이들 역시 “한기총이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확인했다.”라며 “한기총이 역사적 수명을 다하였음을 인정하고 해체하기를 촉구”했다.(「크리스천투데이」 2011년 3월 16일)
이런 비판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반성이나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 결국 한기총 내부에서 별도의 비대위를 조직했던 예장 통합, 백석, 대신, 합신, 예성, 기하성 등이 탈퇴하여 2012년 3월 29일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창립했다. 2013년에는 한기총의 최대 교단이었던 예장 합동과 고신마저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한기총은 군소교단들의 연합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2016년부터 이단 교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도 한기총 해체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전국에서 “CBS 폐쇄, 한기총 해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한기총의 과거 금권선거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일반인들에게 배포했다. 이들은 “과거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이 지금도 신천지를 매도하고 있다.”라면서 한기총에게 분풀이를 시작한 것이다.(「뉴스앤조이」 2016년 4월 12일)

종말(?)
파국으로 치닫던 한기총은 한교연과의 재결합을 통해 세력을 만회하려 했다. 하지만 통합 직전에 이단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거듭 좌절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촛불혁명으로 하야하고, 진보적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극복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분투하였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으로 인해 수구세력은 해방 이후 최대의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것은 반공, 친미, 재벌을 매개로 박근혜 정권과 유착관계를 유지해온 한기총에게도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1월 29일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청교도영성훈련원)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되었다. 대표적 극우주의자 전 목사는 예상대로 취임과 함께 파격적 행보를 이어갔다.
전 목사는 3월 9일 이단대책위원회를 소집하여 한국의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변승우(사랑하는교회)를 이단에서 해제했고, 변 목사가 세운 예장부흥총회의 한기총 가입도 허락했다. 그리고 4월 8일에는 긴급임원회를 열어 그를 공동회장에 임명했다. 이로써 변 목사는 한 달 사이에 주요 이단에서 한기총 공동회장으로 신분이 세탁되었다. 이후 전 목사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만나 자유한국당의 총선 승리를 공공연히 지지했고, 5월의 한 설교시간에는 황교안 대표가 자신에게 장관직을 제안했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빨갱이 국회의원들을 다 쳐내버려야 한다.”라고 발언했다.(「고발뉴스닷컴」 2019년 5월 21일) 그리고 6월 3일, 한기총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임원 및 회원교단장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5명에 대한 자격정지를 결정하면서 내부의 반대세력을 정리했다. 6월 5일, 마침내 그와 한기총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연말까지 하야하라고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문재인 정권은 그들이 추구하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신념의 경지로 만들어 청와대를 점령했다. 검찰, 경찰, 기무사, 국정원, 군대, 법원, 언론 심지어 우파 시민단체까지 완전 점령해, 그들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국선언은 즉각 정부와 정당, 교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다음 날인 6월 6일, 여야 4당은 전 목사에게 “망언을 중단하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6월 7일에는 기윤실에서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여 한기총의 한국교회 대표성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정치 이념 단체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0일),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를 포함한 개신교계 원로들(18일), 건강한작은교회연합 등 8개 단체(21일)가 연속적으로 전 목사와 한기총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가 행정보류를 결의했으며, CCC(한국대학생선교회)가 한기총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전 목사와 한기총은 더욱 강경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하고, 문재인 정부와 비판세력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분석에 의하면, 2019년 1월 현재 한기총에 77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지만 행정 및 가입 보류된 교단을 제외하면 소속 교단은 63개다. 하지만 예장 합동, 통합, 기성, 예성, 기하성 같은 한국의 대표적 교단들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에, “작게 잡아도 한국교회 70% 이상은 한기총과 관련이 없다.”(「뉴스앤조이」 2019년 5월 20일) 따라서 한기총은 어떤 의미에서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며, 장래의 운명은 더욱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극단적인 극우적 행보와 무분별한 이단 해제가 한기총의 종말을 촉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가며
한기총은 태생적으로 극우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그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정권 및 대형교회와 밀월관계를 유지한 반면, 진보적 정권 및 교회와는 적대관계를 유지한 결과, 그런 성향이 꾸준히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효과적 대중운동과 적극적 확장 노력을 통해 세력과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한기총은 한국교회와 사회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권력과 부에 집착하고, 도덕적 감수성이 부족하며, 특정 이념과 정권을 배타적으로 추종한 결과, 한기총은 종교로서 너무 쉽게 본질을 상실하고 빠르게 부패했다. 결국 잠시 성공에 취해 있던 동안 내부의 부패와 분열로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특정 이념 및 정권과 유착관계를 유지한 결과, 정치적 환경이 돌변하자 이성과 판단력을 상실하면서 급격하게 수구세력으로 퇴화했다. 정교분리 사회에서 종교의 적절한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고, 종교로서 예언자적 기능과 제사장적 기능도 균형 있게 수행하지 못했다. 또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으로서 자신의 공적 책임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전광훈 목사가 한기총을 장악했으니, 장차 한기총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 목사는 한기총과 이 나라 모두에 불행이라는 사실이다.


1 이 선언의 전문은 교회협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kncc.or.kr/sub03/sub00.php?ptype=view&idx=9087&page=41&code=old_pds)
2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의 반기독교언론 MBC 종교탄압, 선전 선동에 대한 성명서”(2019. 5. 28). (http://www.cck.or.kr/chnet2/board/view.php?id=722&code=news_2011&cate=)
3 김수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10년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10년사 발간위원회, 2002) 머리말 중.
4 김수진, 위의 책, 88.
5 구둘래, “기독교의 나라”, 「한겨레21」 1036호(2014).
6 백종국,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새로운 버전”(제1차 한기총 진담포럼 “한기총의 신학적 역사적 실체를 묻다”에서 발표한 글, 2009. 12. 28).
7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미동맹 60주년을 넘어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2015. 5. 14), “제97주년 3.1절을 맞이하여”(2016. 2. 23),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입장”(2013. 11. 26).



배덕만 | 미국교회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교회사의 숲』 등이 있다. 현재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이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8월호(통권 7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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