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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8월호)

 

  한국 기독교의 현실정치 참여의 문제
  

본문

 

전광훈 목사의 시국선언과 개신교계 내부의 반응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복역한 신영복을 한국의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언급하였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올해 6월 6일 현충일 기념사에서 김원봉을 무장 독립투쟁론자로서 국군 창설에 이바지한 인물이었다고 칭송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현충일 하루 전날인 6월 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제25대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돌연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 최근 개신교계 안팎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 논란이 계속 증폭되고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문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하여 종북화, 공산화되어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이했다. 문재인 정권이 주체사상을 종교적 신념의 경지로 만들어 청와대를 점령하고 검찰, 경찰, 기무사, 국정원, 군대, 법원, 언론, 심지어 우파 시민단체까지 완전 점령해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기총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문 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하야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기간 중에 기독교(개신교)는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양적 성장을 이룩하였다. 세력이 커진 개신교가 1980년대 후반 이후 국내 현실정치에 참여한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것이 순수한 종교운동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정치운동인가 등 많은 논란과 문제를 야기했다. 현 시점에서 그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이번 한기총 전광훈 목사의 시국선언이다. 전 목사는 한기총에 ‘1200만 성도, 30만 목회자, 25만 장로’가 소속해 있다고 홍보하며 대표성과 정통성을 강조한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 2005년 대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언을 하였고, 그 결과 이른바 ‘빤스 목사’라는 오명에서 지금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설화(舌禍)가 많은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국민의 약 80%가 종교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기독자유당을 창당하는 등 현실정치에 잇달아 과도하게 참여한 행적으로 인해서 종종 ‘정치 목사’로 불린다. 그래서 ‘매체(medium)가 메시지’라는 말이 있듯이, 전광훈 목사가 아무리 옳은 내용을 강변하더라도 일반 대중은 일단 그 메시지 자체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전 목사의 이번 시국선언에 대해서 개신교 보수 진영에 속한 기독자유당, 한국교회언론회, 애국기독교연합 등은 바로 지지 성명을 내었고, 보수 우파 유튜버들(예: 조갑제, 성제준, 정규재, 정동수 목사, 이화영 목사 등)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SBS TV, 「중앙일보」, 「한겨레 21」, 「주간 경향」 등 일반 언론은 물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하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진보 좌파 기독교 단체들은 전 목사가 내놓은 시국선언의 ‘내용’을 논하기보다는 주로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의 대표성 유무 같은 ‘형식’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일제히 비판하고 공격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18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독교회 원로(서명자: 손봉호 장로, 홍정길 목사, 박종화 목사 등 31명) 기자회견(“크게 염려하고, 크게 통회합니다”)의 호소문 역시 시국선언문의 ‘내용’을 논하지 않고 현재 논란의 주인공인 전광훈 목사를 빗대어 “선지자인양 나서서 ‘정치적 이단 사설’을 주장하고 선전 선동하는 행태”라고 비판하면서 “이념과 신앙을 뒤섞는 행태는 반(反)성경적, 반(反)복음적”이기에 기독교회를 ‘정치화’, ‘정치정당화’, ‘이념집단화’ 하는 등의 세속주의적인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전광훈 목사의 시국선언문 발표에 이어 쏟아져 나온 개신교계 내부의 반응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유감스럽게도 객관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그 내용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라기보다, 최근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목사)의 “전광훈 목사 시국선언 논평”1이 잘 분석하였듯이, 각기 ‘진영 논리’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판단된다.

정교분리 원칙, 그리고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교(國敎)를 부정하며 ‘정교(政敎)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 원칙은 본래 국교의 탄압을 받은 청교도들이 건국한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것이다. 이 원칙의 핵심은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 식민지하에서 외국(주로 미국) 선교사들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 자신들의 개신교 선교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목사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인사들은 이 운동에 다수 참여하였으며, 해방 이후 정권을 잡은 자유당에도 개신교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영락교회를 창립한 한경직 목사는 남한에 와서는 보수화되었지만 해방 직후 북에서 공산당과 충돌한 기독교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만들어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4년에는 개신교 우파의 주류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김홍도 목사가 기독당을 만든 이래 2011년에는 한국기독당이 창당되는 등 ‘종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일부 헌법학자들(예: 성낙인 교수)의 주장처럼 실제로는 종교(특히 개신교)가 현실정치에 개입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2의 뛰어난 안목을 따라,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 지나치게 조심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가 정치에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으며 이것이 크리스천의 소명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에 깊숙이 참여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정치 참여의 한계 및 ‘복음의 정치화’(politicizing of the Gospel)가 내포하는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들의 소명의 경계를 밝혀주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주제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이 둘의 관계에 대하여는 합의보다는 불일치가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또한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는 현대 정치에서도 기독교 우파와 좌파 사이에 불일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기독교계에는 우파, 좌파, 그리고 무정부주의라는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세 진영은 성서의 특정 구절을 강조하면서 각각의 정치적 견해를 수립 혹은 정당화하고 있다. 주류 보수 신학자들과 기독교 우파는 로마서 13장 1-7절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주된 도구로 국가를 성화(聖化)시켰기 때문에 크리스천은 국가를 지지해야만 하고 또한 요청받게 되면 칼을 휘둘러야만 한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기독교 좌파는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특히 2장 44-45절)을 근거로 이상적 사회는 기독교 사회주의 혹은 기독교 공산주의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다음으로 기독교 무정부주의의 기초로서 가장 중요한 성서의 구절은 산상수훈(마 5장, 눅 6장)이다. 그로부터 기독교 무정부주의는 폭력과 저항을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한다.
이렇듯 기독교 내부에서 오늘날 정치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독교 관점에서 ‘좋은 정치’(good politics)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아무래도 해당 크리스천 개인의 주관적 편견이나 가치, 이념, 관점 등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종종 논쟁을 야기할 것이라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신학적 보수 진영은 인간의 ‘죄성’(罪性)을 강조하면서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갖는다. 그로부터 사회 변혁보다는 개인과 가족을 돌보는 것을 추구하며 자비심에 의한 자선적 행위로 대표되는 ‘사회봉사’(social service)에 치중한다. 반면 신학적 진보 진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이성’과 ‘잠재력’을 강조하면서 인간들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낙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봉사보다는 주로 ‘사회적 행위’(social action), 즉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행위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키고자 한다.
존 스토트는 예수를 따르는 순수한 크리스천의 사회적 관심은 ‘사회봉사’와 ‘사회적 행위’ 양자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적 가치라고 볼 수 있는 공공선(public good)과 정의를 향한 사회변혁을 이루어내기 위한 세 가지 정치적 선택으로서 권위주의, 무정부주의, 민주주의를 설명한 뒤, 서구에서 종교개혁 이후 구체화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두 측면 곧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이자 동시에 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관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

한국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대치적 갈등
한국 개신교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이 구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본래 보수적인 신학을 고수한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 지역이자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가 세워진 서북(평안도) 지역 출신들과 영남 출신의 교계 지도층 인사들의 결합으로 다수 집단인 ‘보수’ 진영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한 캐나다 장로교의 선교 지역인 함경도 출신과 전라도 출신 일부 지도층의 결합으로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으로 상징되는 소수 집단인 ‘진보’ 진영이 성립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사학자 이만열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 당시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흐름에 주목하면서 개신교에서 ‘보수’와 ‘진보’의 상호 수렴은 한국의 사회문제,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3
우리나라 최초의 문민정부로서 장로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1994년 당시 교계에서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간에 남북통일을 위한 연합운동이 잠시 펼쳐지기도 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현 시점에 와서도 양 진영이 양극화 현상을 노출하고 있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진보적 기독교와 보수적 기독교가 가까운 장래에 실질적으로 만날 가능성은 불행히도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체적 예로서, 진보적 견해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는 그동안 미디어법과 쌍용자동차 노조 문제, 용산 참사, 남북관계 등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반(反)성서적’이라고 규탄하였다. 반면에 지난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이 뒤따랐을 때 보수 개신교 세력은 개신교 장로 출신(소망교회) 대통령 이명박 정부의 구원자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세간에 알려졌다. 즉 당시 조용기, 정진경, 엄신형 등 기독교 원로 목사 33명은 “소수의 지식인이 발표한 편향된 입장이 사회 근간을 해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사이의 오랜 이념 논쟁과 나란히, 개신교 내부에서도 한기총이 대표하는 보수와 NCCK가 대표하는 진보 진영 간의 갈등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개신교의 진보 진영은 보수 개신교 세력 가운데 일부가 친일・친미・친군부・친재벌 세력과 맥을 함께한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보수 진영에서 3·1절, 광복절 등에 대규모 기도회를 열고, 반김대중, 반노무현, 반문재인, 반북 노선에 나서자고 선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보수 진영은 교회 안의 진보 세력의 움직임에 대해서 정교분리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비난하고 있다.
한편 필자는 한 논문을 통해서 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화적’ 갈등이 대체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 간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런 ‘문화전쟁’(culture war) 곧 ‘세계관의 차이’가 빚어내는 갈등은 특히 개신교 내부의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서 한층 뚜렷이 드러나고 있음을 논증한 바 있다.4 곧 한국 사회에서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성의 개방과 동성애, 간통제 폐지 논란 및 성평등 등을 둘러싸고 서로 상이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보수’와 ‘진보’ 진영 크리스천 간에 나타나는 대립과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 예로서, 현재 성소수자 문제를 대표하는 동성애에 대해 일부 젊은 세대와 개혁세력의 수용적 태도 및 이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종교계에서는 유독 개신교계 내에서만 보수 그룹과 개혁 그룹 간에 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어서 동성애에 대해 확연한 의견 차이를 나타내는 등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요약하면 한국교회 내부에서 보수와 진보는 본래 신학적 차이와 지역주의로 인해 발생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양 진영이 신학적, 지역적 차이는 물론 이에 더해 이념적, 정치적, 윤리적, 문화적, 경제적 입장에서도 뚜렷이 대조적인 관점을 보이며 서로 대치하고 있다.

결론: 한국 기독교의 올바른 정치 참여를 위한 제언
현 시점에서 한국 개신교는 보수와 진보 양자 모두 각기 크게 실추된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바탕 위에서 정치권력과 어떤 관계를 수립해야 바람직한지에 대해 깊이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이에 필자는 한국 개신교계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 다음과 같이 각각 제안한다.
첫째, 한국 사회에서 이미 종교 권력화된 집단으로 비추어지는 보수 진영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한 것과 최근 기독교 정당을 졸속으로 창당한 것 등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보수적인 초대형교회의 저명한 담임목사들은 국회의원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라고 자고자대(自高自大)할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개신교 간에 과연 바람직한 관계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특별한 책임감과 함께 한층 더 고민하면서 기도를 통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진보 측 개신교 진영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이 촉발한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그 과정에서 희생을 치르고 온갖 고통을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진보 진영은 김대중 정권 이후 노무현 정권까지 10년 동안 현실정치에 너무 깊게 참여한 결과 당시 체제에 대해서 신앙 양심상 필요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신(新) 독재’라는 비판을 받는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진보 측 개신교 진영은 예언자적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진보 진영은 그동안 스스로 민주화의 주체 세력이라는 자부심에 너무 깊게 경도된 나머지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여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겸손하게 반성하는 일이 요구된다.
존 스토트는 크리스천이 오늘날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책임으로서,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크리스천의 정신’(a Christian mind)을 개발해야 함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크리스천의 정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1) 쟁점을 분석하고, (2) 성서를 읽으며, (3) 타인들에게 귀 기울이며, (4) 기도하면서, (5) 마침내 행동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존 스토트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전체로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때로는 위험한 것이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해당 쟁점이나 정책에 대해서 요구되는 전문성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였다가 사태가 예상 밖으로 전개될 경우 교회의 공신력이 저하되거나 실추될 수 있다. 이번 한기총 전광훈 목사의 시국선언을 계기로 최근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 4대강 개발 사업, 제주 해군기지 사업, 미국과의 FTA, 그리고 사드 등에 대해서 일부 교회의 성직자들이 앞장서서 찬반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며 사회 운동을 주도한 것이 과연 적절하였는지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진지한 토론과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1 김현성, “샬롬나비, 전광훈 목사 시국선언 논평: 보다 품위 있고 절제된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했어야”, 「뉴스파워」 2019년 6월 20일.
2 John Stott, Issues Facing Christians Today, 4th edition(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2006).
3 이만열, “세계기독교사상의 한국 기독교”, 『한국사 시민강좌 제4집』(서울: 일조각, 1989).
4 김성건, “문화적 세계화와 한국사회의 문화전쟁”, 「담론201」(한국사회역사학회, 12권 2호, 2009): 27-52.



김성건 | 영국 헐대학교(The University of Hull)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저서로 『글로벌 사회와 종교』가 있다.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종교사회학 초빙교수이다.

 
 
 

2019년 10월호(통권 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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