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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8월호)

 

  동북아를 사는 지혜- 오늘의 한일 문제를 보면서
  

본문

 

최근에 일본 아베 정권이 경제적인 보복을 가한다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다소 당황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 대중은 이에 비하여 다소 태연한 자세로 사태를 바라볼 뿐,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운명
이 짧은 글에서 나는 한일관계에 오랫동안 종사해야 했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제언이라고 할까, 가정이라고 할까,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언하고 싶다. 최근에 내가 쓴 『한국사에서 본 일본사-동북아시아 시민의 연대를 위하여』(韓国史からみた日本史-北東アジア市民の連帯のために)라는 책이 있다. 일본어로 책이 나왔고, 한국어로는 한림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저널에 번역 발표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한국인에 일본의 대한 적의, 그 차별과 경멸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더듬어 보았다. 나는 그것을 일본의 고대사에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의 최대, 최고의 고전이라고 하는 『고지키』(古事記, 712년), 『니혼쇼키』(日本書紀, 720년)를 살펴 보았던 것이다. 이 고대사 책은 일본이 제국주의를 지상의 과제처럼 추구해가던 근대사에서 마치 성전(聖典)이나 되는 것처럼 떠받들고 있던 책이다.
우리나라 『삼국사기』에도 신라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기록돼 있지만, 일본의 『고지키』나 『니혼쇼키』에는 그야말로 그것이 매우 확대되어 기록돼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이것에 대한 신라의 공포란 이미 8세기 역사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며, 거기에서 기원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것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일본은 자신을 신의 나라라고 했고 신라를 번국(蕃國)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적의 또는 차별의식, 나아가서 지배욕이란 일본의 천여 년의 역사를 통하여 흘러 내려온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비하여 신라는 강한 무력으로 대항하려 하기보다는 문(文)의 나라로서, 설혹 국내 지배와 치안을 위한 무(武)는 있어야 해도 대외적으로는 무를 행사하는 것을 거의 포기한 나라였다. 이것은 삼국통일 이후 신라가 중국의 당나라를 옆에 두고 내걸었던 일종의 국시이기도 했다. 조선 반도는 문을 앞세우고 모화사상을 택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을 지향했다고 하겠다. 그것이 후세에 이르러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대하여 많은 역사적 자료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자세한 것은 후학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조선왕조 초에 들어가서 성립된 『고려사』를 보면 일본의 조선 침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전국을 휩쓸다시피 한 것 아닌가. 긴 이야기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지만, 특히 오늘 이것을 제기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한다면 한일관계란 단순히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천년이 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것, 일반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친 임진왜란만 말하지만, 사실은 천년 이상의 무거운 역사를 지닌 것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을 가진 무사의 나라’와 ‘글을 숭상하는 문인의 나라’라는 오랜 전통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일본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백제가 신라에게 밀려서 일본에 건너간 한이 서리고 서렸다는 상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에 말한 『고지키』에도, 『니혼쇼키』에도 나타나듯, 백제 유민이 깊이 관여한 역사도 우리는 주목해야 할는지 모른다.
이러한 역사를 망각한 채 오늘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탈역사적인 자세를 우리는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을 나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오는 지정학적인 운명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후유증을 한일 양국의 역사에 남겨놓았을까. 거기에서 비롯하여 훗날 근대에 이르러는 드디어 일본의 한반도 지배라는 역사가 이어진 것인데….

평화로 가는 길
지난날의 내셔널리즘의 충돌 같은, 이 시대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갈등이 요즘 한일 사이에 나타나자, 이제는 내 호소를 들어줄 저널리즘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는 내게 명함이 남아 있는 이름들을 찾아서 다음과 같은 호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한일관계를 보면 퍽 염려가 됩니다. 그렇게 강경책을 쓰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저항하는 매스컴도, 지식인도 없는 세상입니다. 저는 이제는 세상 문제를 모른다고 물러나 있었으나,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란 유치한 정치 싸움이나 하는 것인가요. 시민과 지식인만이 역사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모두 잠들어버린 세상입니까.
이제는 내셔널리즘으로 대립하는 시대가 아니고 문제가 있으면 화해와 협력의 입장에서 찬찬히 해결해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엄청난 경제적 손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북아의 평화라는 오늘의 이념을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동북아의 정치에는 어른이 없는 것 같군요. 세계 정치가 그렇게 이념도, 인물도 없는 것 같지만요. 한번 우리 모두가 좀 쉬면서 조용히 호흡을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에서 언급했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일 간에는 평화를 찾는 움직임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겠다. 그런 슬픈 역사를 일본은 무사 사회의 전통에서 도리어 자랑으로 생각하고 견디어내려고 했는지, 그래서 저 무서운 ‘하라기리’(割腹, 할복)라는 무사의 자결을 미화하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한국은 그 무서운 무력을 바라보고 전율하면서 유가의 윤리에 한층 더 몸을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늘 일본이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보복을 일삼으려는 모습에서 반평화적인 정치사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게 된다. 한일 정치란 오늘도 이처럼 진보도, 변혁도, 평화도 거부하려는 복고주의이며 반동이라는 것일까. 한일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이란 이렇게 멀고도 먼 길인가 묻고 싶다. 이런 정치적 후진성이 아직 동북아의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동북아에서는 민주주의가 아득한 이념인가?’를 되묻게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내실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투표함을 내다놓고 국민이 그 앞에 줄지어 서서 귀중한 한 표를 던진다는 것은 하나의 하잘것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몇 사람이 정치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과두(寡頭) 정치가 있고, 거리에서 반동적인 무리를 동원하려는 가두(街頭) 정치 등 민주주의로 포장한 폭력 정치가 있지 않는가. 그것을 넘어 양식 있는 시민이 오손도손 상의할 줄 알고 거기에서 서로 양보하면서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민적인 정치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오늘 민주주의라는 구실 밑에서 한일의 정치는 어디에 서 있기에 때아닌 경제적・정치적 보복을 내걸고 이 시대를 떠들석하게 하려는 것일까. 주어진 지면이 다했기에 끝으로 성경말씀 한 구절만 인용해보고 싶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돤 것이 아니니라(히 11:3)

인간의 어리석은 역사 밑바닥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그 흑암의 역사 속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 교회는 이런 역사관에서,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떠나 역사를 보고 평화를 추구하는 무리가 아니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2019년 8월호(통권 7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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