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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구약성서 연구의 새로운 경향
특집 (2019년 7월호)

 

  신명기 연구의 어제와 오늘
  

본문

 

신명기 연구의 전환점은 오경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805년 드 베테(de Wette)의 그 유명한 신명기 연구가 없었다면, 19-20세기까지 약 100여 년 이상 오경 연구에서 거의 정설로 여겨졌던 문서 비평의 자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원신명기라는 가설을 만들었고, 한동안 그 신명기의 배경이 요시야의 언약책 발견 사건(왕하 22-23장)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잠깐이지만, 바움가르트너(W. Baumgartner)가 말했듯이 ‘신명기와의 전투’가 횔셔(Hölscher, 1922)의 연구로 시작되었다. 횔셔는 신명기를 포로기 이후 유토피아적인 관점으로 연구하면서 신명기 연대에 대하여 조정을 요구했으나, 바움가르트너는 오히려 포로기 이전 시대로 대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 베테의 가설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 전환점을 이끈 연구자가 바로 마틴 노트(M. Noth)이다. 그의 전승사적 비평은 성서를 사경뿐만 아니라 육경으로 읽도록 요청했고, 이에 따라 전기예언서의 서론적 역할을 하는 신명기의 의미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고무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노트의 연구는 전기예언서를 포로기 시대에 한 명의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글로 읽도록 제안했고, 각각 포로기 이전과 포로기에 기록된 글로 읽는 하버드 학파(프랭크 무어 크로스와 주로 아메리카 연구자들)와 괴팅엔 학파(루돌프 스멘트, 발터 디트리히 등 주로 유럽인들)로 나뉘어 그 연구의 폭은 점점 더 넓어져갔다.
이러한 흐름은 신명기를 더 세부적으로 연구하도록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신명기 연구가 단순히 신명기 그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신명기 역사가’라는 더 넓은 본문층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전제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공시적 연구에 반하는 통시적 연구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명기 연구에서 이 모든 관점은 소위 ‘원신명기’라는 포기할 수 없는 논제에 따라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신명기는 내부의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신명기 연구의 전환점
20세기 후반부까지 신명기 연구는 오경 연구에 많은 빚을 지면서 침체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는 오경뿐만 아니라 신명기 연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의 시대였다. 노트의 개념을 이어받은 괴팅엔 학파는 신명기 역사서의 단계를 신명기계 역사저술(DtrG)로 인정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다양한 편집 단계들이 있음을 제안하게 되었다. 먼저 신명기계 역사적 편집(DtrH)을 중심으로 1971년 루돌프 스멘트(R. Smend)는 신명기 사가의 율법적 편집층(DtrN)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어 1972년에 발터 디트리히(W. Dietrich)는 신명기 사가의 예언자적 편집층(DtrP)을 발견하였다. 또한 신명기 연구는 문헌가설과 그 흐름을 같이했다. 소위 문서비평가들은 ‘야휘스트’ 본문을 신명기 문헌의 사고와 매우 유사하다고 이해했다. 이른바 오경 연구가들은 제사장계 본문들을 포로기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했다. 이 개념을 기준으로 문서비평가들은 ‘야휘스트’ 본문의 기록 시기를 포로기 이전인지 또는 이후인지를 논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이 20세기 말까지 연구자들의 주요 흐름을 이어가게 했다.

신명기 연구의 오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티모 바이욜라(T. Veijola)는 새로운 관점으로 신명기 16장 17절까지를 연구한 신명기 주석서 제1권을 제시했다.(Das 5. Buch Mose. Deuteronomium Kapitel 1,1-16,17, 2004) 그의 주된 연구는 신명기 사가의 계약적 편집층(DtrB) 분석에 있다. 이 논문에서 바이욜라는 이 계약적 편집층 본문을 포로기 이후 시대로 이해하면서, 세부적으로 더 다양한 신명기 사가의 층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신명기 4장에 대한 그의 연구는 결정적이다. 그는 신명기 1-3장을 포로기 시대의 신명기계 역사가(DtrG)의 몫으로 돌리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4장의 내용을 5장의 관점과 다른 층으로 보면서, 괴팅엔 모델을 5장에 적용한다. 그는 신명기 5장의 형식을 포로기 시대의 예언자적 편집(DtrP)으로 해석하면서, 5장의 모세가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이와 달리, 그는 신명기 4장을 율법의 다른 편집층 기록으로 보면서 더 세분화된 결론을 제시한다. 그는 4장 1a, 10-12a, 13f, 22절에서 신명기 사가의 계약적 편집층을 구분하는데, 그 핵심 내용으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 언약의 우선시되는 의무 규정으로서 소개되고 있음을 제안한다. 이에 그는 10절의 ‘여호와 경외를 배우게 하는 것’이 율법적 규정에 속하여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의무들은 직접적으로 계약 요소인 축복과 저주로 귀결되고 있음을 밝힌다.
바이욜라는 이런 방식이 신명기 전체에 넓게 퍼져 있다고 보았다. 그 한 예로, 비록 15장에서 ‘계약’이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아도, 언약의 주제인 축복, 땅, 그리고 언약의 충성과 같은 내용이 계약적 편집의 흔적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그는 신명기를 계약 본문으로 이해했고, 특히 신명기 4장을 신명기에서 마지막으로 기록된 본문이며, 그 본문의 중심 개념을 신명기 사가의 계약 개념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용어적인 면이나 주제적인 관점들에 있어서 하나의 위험성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예로, 그는 신명기 13장의 세 가지 본문을 계약적 편집된(DtrB) 본문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그 본문은 문학적으로 통일된 본문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나타나는 수신자의 수 변화(단수와 복수)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을 바이욜라는 통상적인 실수로 취급해버리는데, 이것이 그의 연구의 아킬레스건으로 보여진다.1
이에 에카르트 오토(Eckart Otto)는 그의 세 번째 신명기와 관련된 저서에서 신명기의 계약적 편집층을 후대로 돌리는 연구사적인 이유들을 밝히고 있다.(Gottes Recht als Menschenrecht, 2002) 그러나 오토는 신명기 13장을 에사르핫돈의 봉신조약(VTE)2에 근거한 신명기의 원본문으로 이해하면서, 에사르핫돈의 서부 팽창 정책(기원전 681-669년)에 따라 진행된 역사적 배경으로 두 본문을 서로 대조한다. 왜냐하면 그는 에사르핫돈의 아들인 아슈르바니팔(기원전 669-631년)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앗수르의 봉신조약 본문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토는 신명기 13장과 28장이 문학적으로 매우 유사하게 이 조약 본문을 번역했다고 증명했다. 그 결과 그는 신명기 13장과 28장을 신명기의 가장 오래된 본문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토는 바이욜라의 계약적 편집층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신명기를 신명기계 역사 저술로 귀속시키려는 관점을 부인한다. 즉, 오토는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오경 연구가 지난 200년 이상 지속된 연구 경향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오경 연구가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신명기를 사경의 관점과 연결했고, 결국 신명기를 오경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사장적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오경의 최종 형성을 바벨론 포로기로 이해했다. 이에 오토는 오경 형성 시대가 포로기 시대에서 자유로워질 때, 오경 연구가들이 비소로 오경의 문학사를 해결하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오경이 육경의 제사장적인 무게와 함께 놓여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오토는 신명기의 원초적인 본문으로 13장과 28장을 언급했고, 이를 중심으로 12-26장이 포로기 이전에 삽입되었다고 보았다. 이후로 신명기 사가적 신명기 편집(DtrD) 활동은 십계명을 추가했고, 이후 본문은 모세의 말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이 흐름 속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신명기 사가의 땅 수취 이야기(DtrL)가 제사장계 본문들과 함께 육경의 관점 속으로 끼어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이 오경을 신명기로 결론짓게 하는 주된 경향이라고 제안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노트의 연구를 이어받은 괴팅엔 학파의 연구는 바이욜라에게서 더 다양한 분석으로 제안되었다. 특히 바이욜라가 주장한 계약적 편집층은 포로기 이후의 시기에 속하였고, 그 결과 신명기의 형성 시기는 자연스럽게 포로기 이후 시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오토는 신명기 안에 원신명기가 포로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보았고, 오경 안에서 점차 포로기와 그 이전까지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는 신명기 역사가의 본문들이 매우 다양한 문서층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들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대다수 연구가들은 신명기를 형성하는 매우 많은 편집자들과 그에 따른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편집층들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어떻게 신명기가 각각의 편집층을 극복하면서 하나의 단편으로, 또는 하나의 주제로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공시적 연구는 중요한 관점을 제안할 수 있다.

통시적 관점에서 공시적 관점으로
통시적 접근의 한계가 인정되면서 어느덧 공시적 접근으로의 전환이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서 제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전환점이 핀스터부쉬(K. Finsterbusch)의 연구를 통하여 소개되고 있다.(Weisung für Israel, 2005) 그의 연구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잠언과 신명기 주요 부분에서 나타나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배움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신명기가 이 주제를 ‘이야기식 채널’ 관점에서 전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작업은 계속해서 신명기의 틀에 해당되는 부분에서 공시적이면서 어문학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는 1장 5절의 ‘바아르’(ראב, 설명하다) 의미를 분석하고자 집중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신명기 4장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단락에서 강조하는 것은 ‘왜 토라가 존재하는가’, ‘왜 모세가 그것을 정확한 장소와 정확한 시간에 선포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는 토라의 실행을 결정적인 해석의 열쇠로 보았기 때문에, 신명기 4장은 영속적인 이유를 제공한다고 이해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은 야훼가 호렙에서 준 기준과 일치한다. 물론 용어를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독창적인 용어로 호렙의 내용을 중재하듯이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명기를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내적인 인간’(den inneren Menschen)이라는 운동을 요청해야 하며, 그 운동의 방향은 야훼께 연합되어 있는 인간의 내적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표현은 토라를 배우는 것과 야훼를 경외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중요한 관점이 바로 토라를 이해하는데 있다. 토라는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토라를 실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사고는 신명기의 통시적 방법을 공시적 접근으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다른 공시적 주석의 입장으로 노베르트 로핑크(N. Lohfink)의 예를 들 수 있다.(Studien zum Deuteronomium und zur deuteronomistischen Literatur V, 2005) 이 연구의 중심은 민수기 36장 13절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법 수여의 마지막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마지막 절은 신명기와 함께 그 법이 계속해서 주어지게 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로핑크는 하나님이 신명기에서 법을 선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맹세하도록 한다는 것이 중요한 관점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표현이 동사 ‘바아르’이다. 로핑크는 핀스터부쉬의 의견과 달리 아카디아어 동사 ‘바루’(baru)에서 그 중요성을 발견하고 있다. 즉 이 동사는 어떤 사건에 의미가 있고, 그 사건은 법적인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라마드’(דמל, 배우다)와 ‘짜바’(הוצ, 명령하다)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라마드’는 법적인 함축을 지니고 있고, ‘짜바’는 헌법 선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민수기의 마지막 절은 신명기와 계속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접합점이 된다고 보았다.
또한 공시적 접근의 발전된 형태인 정경 비평의 관점으로 보려는 새로운 연구가 나탄 맥도널드(N. MacDonald)에 의해서 시도되었다.(Deuteonomy and the Meaning of Monotheism, 2003) 신명기의 유일신 사상에 관한 그의 연구는 소위 ‘비평 이후의 해석’(post-critical interpretation)의 상황 속에서 진행된다. 이 연구는 소위 ‘정경적 접근 방법’(canonical approach)의 관점으로 접근하지만, 최종 본문의 해석을 신명기의 독자 성향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본문을 주석할 때, 나머지 본문의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의 핵심은 ‘쉐마 본문’인 신명기 6장 4절에 있다. 이 본문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그는 이 부분을 아가서 6장 8-9절과 관련하여 “유일한, 동료가 없는”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신명기에서는 야훼가 다른 신들과 싸우는 논쟁적인 본문이 없다. 여기서 신명기 4장과 32장에 대한 단어 연구들은 그의 연구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본문으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공시적 입장의 연구들은 고대 근동의 법 개념들을 비교하면서 더 풍성한 연구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연구가 안셀름 하게돈(A. C. Hagedorn)의 연구로 나타났다.(Between Moses and Plato, 2004) 그는 그리스의 법을 신명기와 비교 연구했고, 신명기가 전통사적 연구 비평보다 문화적인 배경에 근접한 지중해 동부 지역과 비교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상 문학비평이나 편집사적 비평으로는 더 이상 신명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떤 문화가 황폐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문화 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는 소위 ‘공직자법’(신 16:18-18:22)에 집중되고 있다. 제사장계의 소멸은 왕국과 사법기구로 대체되었다. 그는 왕의 권한을 호머의 왕에 대한 묘사와 비교했는데, 호머가 소개하는 왕은 법 수여자도 재판관도 아니며, 군사적인 일에서도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 또한 재판장을 세우는 것은 신명기 16장 18절처럼 완전히 자국 시민이어야 한다. 문제는 그 재판관이 전문인인지 아니면 평민 재판장인지에 대한 판단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언에 대한 회의도 신명기 18장 9-14절에 소개하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한다. 전쟁에 대한 관점도 신명기 20장의 전쟁법과 비교될 수 있지만, 그의 연구는 유토피아적인 특징으로 끝나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고대 법문화와 신명기법의 비교는 확실히 의미 있는 비교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만테(U. Manthe)가 소개하는 다양한 고대법들은 의미가 있다. 특히 알렘(S. Allam)은 이집트의 파라오 법을, 노이만(H. Neumann)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법을, 하세(R. Haase)는 히타이트 왕국의 법을, 오토(E. Otto)는 고대 이스라엘의 법을, 튀어(G. Thür)는 고대 그리스 법을, 그리고 야콥(E. Jakob)과 만테는 고대 로마법을 다루고 있다. 지금껏 신명기 연구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이집트 법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의미 있고도 새로운 접근이다. 분명히 초기 그리스 문화권과의 비교 연구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튀어의 ‘그리스 법’ 언급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는데, 그 중심에 호머의 글이 있다. 특히 법 소송과 고든(Gortyn) 법의 제도적인 요소가 조약이라는 틀 안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은 신명기의 공시적 연구를 새롭게 바라보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명기 연구의 미래
지금까지 신명기 연구에 있어서 통시적-공시적 연구의 한계점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우도 뤼터스베어덴(Udo Rüterswörden)의 연구에 의해서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Das Buch Deuteronomium, 2006)3 그는 위에서 언급한 사법적 개념에 속한 조약의 개념과 종교적 가르침에 속한 ‘내적 인간’의 강조점을 신명기의 주요 골격으로 보았다. 이러한 근거는 조약의 개념을 오토가 제시한 앗수르의 에사르핫돈의 조약 개념보다, 오히려 시리아에서 발견된 아람어로 된 스피르 조약 개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4
이러한 개념을 통해서 그는 신명기의 문학적 구성을 조약의 틀로서 내적 장치(6-11장)와 외적 장치(27-28, 32장)로 조직한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신학적 입장이다. 내적 장치는 내적 인간의 의미를 표현하는 ‘마음에 이르기를’(신 7:17, 8:17, 9:4)이라는 언급을 주요한 개념으로, 외적 장치는 처벌 규정(축복과 저주)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내적 장치의 핵심은 신명기 6장 4절로 보았고, 이 본문은 ‘신명기의 교육적 시스템’ 안에서 12, 13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신명기의 배경이 ‘악’을 통제하도록 교육하는 ‘학교 신학’의 입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제안한다. 특히 그는 ‘객관적으로 본문 읽기 방법’(Sachlichkeitskritik)을 적용하면서, 일반적인 통시적 입장을 지향한다. 동시에 문학적 개념을 공시적 입장으로 정리하면서 본문의 문맥을 주요한 흐름으로 연결한다.
지금까지 신명기의 주요한 연구 흐름을 몇몇 연구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전의 연구가 신명기 본문의 층을 나누는 데 집중했다면, 21세기 이후부터는 본문의 상호 문맥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문제에 집중한다. 이러한 연구 방향은 고대 근동의 법 자료와 계약 자료, 그리고 다양한 문학적 자료들을 통해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권과의 계속적인 문학사적-인류사적 교류로 인해 자료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된다는 면에서 그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다.


1 이 관점과 이어지는 학자들의 연구 경향은 다음의 글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U. Rüterswörden, “Alte und Neue Wege in der Deuteronomiumforschung,” ThL 132(2007): 878(877-889).
2 ‘VTE’는 에사르핫돈의 봉신 조약(The Vassal-Treaty of Esarhaddon)의 약어이다.
3 최근 그는 Biblischer Kommentar Altes Testament: Deuteronomium 12-34 부분 중 신명기 12장에 대한 주석을 2011년 발행하면서, 신명기 연구의 가장 중심에 선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새로운 신명기 연구의 한 축이 되고 있다.
4 스피르 조약 개념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최종원, “북서 셈어에 나타난 계약본문 안에서의 ‘쉐바’”, Canon&Culture 11(2012): 123-152.



최종원 | 신명기 계약신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Zur Bedeutung der Zahl Sieben 등이 있다. 언덕교회 공동목회자이며,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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