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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5월호)

 

  사회주의 국가와 디아코니아: 애덕기금회의 경험
  

본문

 

* 이 글은 “치유와 화해사역을 향하여: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세미나(2019. 3. 4-5, 서울 종로 아트리움 호텔)에서 발표된 발제문이다. 이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남북교류 협력단’은 남북교류와 협력사업을 위하여 2018년 8월 30일에 출범한 조직이다. - 편집자 주

뜻깊은 자리에 초대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북측의 디아코니아 선교 협력에 대해 논하는 역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애덕기금회(愛德基金會)가 걸어온 30여 년간의 역사를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하여 발표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북측의 에큐메니컬 디아코니아 활동에 관해 애덕재단의 사회적 선교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까?” 나는 이 에큐메니컬 공동체가 그동안 평화를 위한 일에 헌신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지속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1995년 애덕기금회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팅띠앙슝(鄭光訓) 주교가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그는 애덕기금회의 선교활동을 지탱하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1.신앙과 증거의 표현으로서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 증가
2. 중국 인민 및 교회와 자원을 나누려는 해외 그리스도인들의 지속적인 의지
3. 중국 정부의 종교정책 자유화 지속

이 부분에서 애덕기금회의 활동을 돌아보면, 애덕기금회는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중국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평화와 화해를 일구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는 플랫폼 혹은 채널을 제공해왔다.

비정부기구와 종교기관으로서 애덕기금회의 이중적인 역할
비정부기구임과 동시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기관인 애덕기금회는 중국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애덕기금회는 1985년 비정부기구로 창설된 후 다음과 같은 일을 해왔다.

◆ 성서 인쇄 시작–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와 합작 투자로 1987년에 애덕출판사를 설립하였다. 이 기관은 해외로부터 수입된 출판 시설과 종이를 취급하는 기업체로 등록되었으며 그런 역할을 수행하였다. 초기 생산품은 대부분 국내 소비용이었으며 현재 애덕성경인쇄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인쇄된 성서의 절반 이상을 아프리카로 전달하고 있다.
◆ 중국 외딴 지역의 영어 교사를 훈련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많은 수의 영어 교사 유입–교사 프로그램(Amity Teacher Program)이 가장 성행할 당시 200명에 가까운 외국인 교사를 데려오기도 하였다. 이 일은 모두 해외 교회들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교사 대다수는 개인 선교 차원에서 온 유럽과 북미 사람이었다.
◆ 개발이 시급한 지역에서 1993년 통합개발 시작–홍콩 연락사무실을 제외한 애덕기금회의 모든 직원은 중국인이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교육, 전문지식 또는 전문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현재는 직원의 약 12%만이 그리스도인이다. 대상 지역은 늘 매우 빈곤했으며,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며 커다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었다. 활동은 애덕기금회가 처음 설립된 장쑤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교육, 의료, 고아원 수용력 증대와 같은 초기 프로젝트들은 주로 정부기관과 협력하여 진행하였다.

정부기관과의 파트너십: 협력과 변화
애덕기금회가 정부기관과 협력관계를 맺는 일은 중요했다. 당시 사회복지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복지 서비스는 정부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사회적 서비스와 전문적인 사회복지 업무는 1990년대에 사회복지사업이 시민사회로 이전되면서 주류개념이 되었다. 사실 애덕기금회의 초기 사업은 대부분 지방정부, 의료와 교육기관 등이 역량을 키우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아래와 같은 개척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다.
1993년에 매우 가난한 서부와 북서부 지역으로 사업의 방향이 이동하여 이 지역의 빈곤 완화 활동에 집중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에이즈 예방과 통합개발 사업을 포함하여 식수 및 관개 시스템, 환경 보전, 태양 및 바이오가스와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소액 대출, ‘마을 의사’ 양성, 고아원과 같은 복지시설 개선, 실명 예방, 장애를 가진 이들과 협력하는 일,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 법률지원,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돌보는 학교에 대한 지원 등이 포함된다. 21세기에 이르러 애덕기금회는 자폐아동, 노인 간호 서비스 및 치매 연구, ‘아미티 베이커리’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위해 도시에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단순히 서비스 제공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옹호활동으로, 중국의 방식을 따라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즉 이것은 바로 모방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이 같은 종류의 디아코니아 활동이 사람들과 정부 공직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자원의 나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여타 비정부기구들에 비해 애덕기금회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에큐메니컬 파트너들의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즉 소수의 아시아 및 대다수의 서양 협력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중국과 해외에서의 팅 주교의 위상과 영향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제네바에서 상대적으로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조국의 재건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와 당시 당 지도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또한 그의 에큐메니컬 지도력의 역량은 의심의 여지없이 중국의 국제외교에서 매우 유용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중국이 1987년 4대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중국의 개혁파 지도자들은 팅 주교의 에큐메니컬 지위와 네트워크를 매우 중시했다.
설립 초기부터 팅 주교는, 애덕기금회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중국 조직이며, 해외 파트너들은 중국교회의 삼자(三自) 원칙, 즉 자치(自治), 자전(自傳), 자양(自養)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애덕기금회의 형성 초기에 해외 파트너들이 참가하였고, 오래된 식민지 모델을 탈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상호 존중과 연대, 그리고 상호 협력이 있었다. 에큐메니컬 자원 나눔은 모든 파트너가 그들이 기부한 자금이나 전문기술 노동이나 서비스가 무엇이든 동등한 파트너십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애덕기금회를 통해 중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개종을 권유치 않을 것을 명시적으로 권고받았다. 그들은 지역 교회에 참석할 것을 권장받은 적은 있으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중국 그리스도인들 스스로의 과제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애덕기금회 내에서는 참여발전과 성평등, 환경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해외 파트너들이 가진 가치와 우선성에 의해 프로젝트 작업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농촌 지역의 통합개발 프로젝트 중 많은 부분이 처음에는 도로, 식수 및 관개 시스템과 같은 인프라 개발에 힘을 쏟다가 이후에는 기술자들, 농민과 여성의 역량 구축에 중점을 두었다. 필리핀과의 남남교류(S-S exchange)는, 여성과 청년이 사회정치적 주요 분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시민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또한 본 재단의 필리핀교회협의회(NCCP) 네트워크를 통한 침술훈련 및 바이오가스 프로젝트 등이 필리핀 외곽지역에 도움을 주기 시작하였다.
‘세계를 위한 빵’(Bread for the World)과 같은 국제 NGO와의 네트워크는 중국 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전문기술과 외화를 들여올 때 매우 유용했다. 국제 협력관계를 통한 재정지원으로 애덕기금회는 프로젝트의 범위와 대상, 파트너를 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은 애덕기금회와 중국 정부와의 관계성에서 많은 영향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애덕기금회는 지역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중국 사회에서도 기독교의 지위를 높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 부분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의 모든 협력 파트너들은 애덕기금회가 가진 기독교적 정체성과 연계성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저자세 처신, 전문성, 투명성 및 직원들의 헌신은 여러 지역의 협력 파트너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장기간의 파트너십을 갖게 했다. 애덕기금회와 함께 일하는 지방 공무원 중 일부는 개발에 대한 하향식 접근보다는 상향식 접근 방식을 사용하며 NGO처럼 사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애덕기금회는 정부기관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이것은 바로 애덕기금회가 그동안 열심히 활동함으로써 확보해 온 사회적, 정치적 자본이다.

종교에 관한 자유화 정책
중국은 종교에 대한 정책을 자유화하는 데 있어 여전히 진보와 퇴보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종교 정책은 주, 지역, 도시별로 다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 발전의 3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1. 문화혁명 이후 교회가 복원된 1978–80년대 말
삼자(三自)애국운동은 교회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교회를 잘 운영한 1982–2003년(중국기독교협의회 창립)
교회가 급격하게 성장한 시기이다. 주로 농촌 지역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15년 동안 도시로 확산되었다. 초기에는 교회를 짓고 급성장하는 개교회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일에 초점을 두었다.
3. 교회가 디아코니아에 참여한 2003년 이후
1) 2003년 중국기독교협의회의 사회복지부 창설은 여러 종교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장려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것은 정부가 사회복지를 선택적으로 이양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2) 2008년 쓰촨성 지진에 따른 교회 구호활동의 의의–엄청난 규모의 지진에 따른 피해는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중국기독교협의회와 삼자애국운동본부는 지진 구호활동을 위해 교회들로부터 1억 위엔 이상을 매우 신속하게 모금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역량과 재정적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에 자발적으로 응답한 결과였다. 교회가 행한 봉사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공헌으로 인정받았고, 이로 인해 교회는 사회문제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3) 교회는 이제 디아코니아 활동에, 특히 노인보호소, 유치원, 진료소 및 고아원을 운영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쓰촨성의 어느 여성 목회자는 지난 20년 동안 병원 건립에 힘써왔으며, 현재 세 번째 병원을 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디아코니아 실천을 통해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관점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선교의 일환인 디아코니아의 중요성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통합이 필요한 디아코니아와 신학적 성찰
애덕기금회의 디아코니아 사회사업에서 부족했던 것 중 하나는 교회로 피드백할 수 있는 신학적 성찰이었다. 디아코니아 실천은 이러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 디아코니아를 교회 선교의 큰 틀로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중국 인민과 공감하고 그들의 문화에 뿌리를 둔 상황신학이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애덕기금회가 목회자와 기독교 사회선교 실무자들을 위해 디아코니아 훈련을 수행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조직이 자신의 비전과 사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에큐메니컬 디아코니아’의 개념을 정교하게 만들어온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특별히 아이디어 초안자 중 한 명인 퀴엘 노르드스토케(Kjell Nordstokke)가 작년에 난징에서 열린 ‘아미티 여름 아카데미’에 기여한 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디아코니아에 대한 그의 성서적 성찰뿐 아니라 2030년까지 이행될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에 대한 소개는 아카데미 참가자들에게 매우 잘 전달되었다.

중국의 종교기관에 대한 정책과 입장
정부정책은 종교기관보다 시민사회와 학계에 훨씬 더 개방적인 편이다. 학자들은 인권을 포함한 혁신적인 개념과 가치에 대해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이징에 어린이 권리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기관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정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독립적으로 8,000명 이상의 변호사들에게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을 훈련시켰다. 2년 전, 여성과 어린이를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이를 통해 이제는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NGO들이 생겨났다. 내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진보이다.
종교계는 각자 내부의 규율 및 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기관이 시민사회와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2년 이후부터 종교기관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규정이 교회 참여의 폭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가톨릭 기관 및 애덕기금회와 같은 개신교 기관은 더 많은 일을 할 기회를 잡았다.
2016년 애덕기금회는 “종교, 가치 그리고 윤리: 지속적인 개발에 대한 디아코니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15개국에서 온,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모임은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보편적으로는 독재에서 능력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지속되었지만, 여전히 개혁주의자들과 강경한 민족주의자들 사이, 기술관료와 이념주의자 사이에는 긴장과 모순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책들은 진보와 변화, 혹은 변화와 그에 대한 반작용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한다. 현재 좌로 향하는 시계추의 진동은 문화혁명 이후 가장 멀리 갔다고 정세분석가들은 말한다.
언급해야 할 또 다른 경향은 부의 폭발적 증가와 중산층의 확대로 인하여 중국 내에서 자선사업이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지난 5년 동안 NGO계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인터넷 관련 기업이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생성된 온라인 기부금을 통해 새로운 기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기금을 모금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소규모 NGO와 종교기관의 사업을 돕는 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오늘날 중국 사회에 존재하는 일련의 문제와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중적 의식을 제고시키고 더 많은 이들의 응답을 얻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시며, 지난 30년 동안 중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제를 마치려 한다. 팅 주교가 언급한, 애덕기금회를 발전시키고 확장하게 하는 세 가지 조건이 여전히 현재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019년 5월호(통권 7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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