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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5월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선교신학과 실천의 변화
  

본문

 

지난 세기는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인한 변화가 극적으로 전개된 시기였다. 그동안의 변천을 요약한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사회주의 국가의 소규모 확산→사회주의 국가의 대폭적인 확산→사회주의 국가의 일부 붕괴→사회주의 국가의 다변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이하 ‘동구 공산권’으로 약함)의 몰락이라는 드라마가 연출되었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남았고 베트남과 북한 등 주로 아시아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동일한 노선을 걷고 있다. 따라서 동구 공산권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 국가는 후기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를 더 이상 국시로 삼지 않는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를 계속 국시로 고수하는 국가)로 양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1989년 동구 공산권의 변화에 대해 ‘공산권의 붕괴’라는 일반적인 표현보다 ‘동구 공산권의 붕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선교는 바로 이런 사회주의권(圈)의 거시적 변천사를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할 때 조심할 필요가 있다. 즉 해당 국가가 과거에 사회주의 국가였던 ‘후기 사회주의 국가’인지 혹은 현재에도 ‘사회주의 국가’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후기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는 불연속성과 더불어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공통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다루는 것도 가능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별 사회주의 국가의 미시적 변천사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배경, 특히 기독교 전통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사회주의 국가의 종교정책은 무신론이라는 우선적 요소와 인권에 포함되는 종교의 자유라는 부차적 요소가 서로 긴장 가운데 작동한다. 교회의 역사가 깊고 위상이 높은 나라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통제하에 놓인 채 불균형적인 역학 관계를 이루며 공존의 양상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종교 억압정책이 시행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와 선교
10월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은 교회에 새로운 신학적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사회주의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교회’(이하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로 약함)라는 개념이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 이전에도 사회주의는 교회와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당시는 이념 간의 관계였다.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화가 시작되었고, 기독교사회주의(종교사회주의 혹은 사회복음운동)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은 사회주의와 교회 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했다. 교회는 이제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상을 구축해야 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는 이제 단순한 교회의 대화 상대라는 임의적인 조건이 아니라, 교회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규정하는 절대조건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라는 개념은 교회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신학적으로 말해 교회론과 선교론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는 스스로의 교회상을 구축해야 했고, 외부 역시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라는 새로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저항형, 지하교회형(은둔형 혹은 잠복형), 지상교회형(생존형, 미묘한 공존형, 우호관계형)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러 가지 신학적 노력이 시도되었는데, 그중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선교에 전향적으로 유의미한 것들을 간추려 보기로 하자.

1)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화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는 사회주의와의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로마드카(Josef Luki Hromadka)와 그 뒤를 이은 로흐만(Jan Milic Lochman)이 있다.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관계는 예외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 이전에도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화는 있었지만, 이제 사회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이런 대화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의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하였다. 교회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존재하면서,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사회주의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일부가 되고자 한 것이다. 교회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하여 지도자적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로서 참여하여 공동선을 추구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서유럽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공공신학의 태도와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동구 공산권은 사회주의가, 서유럽은 세속주의가 각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고, 공통점이 있다면 교회가 두 지역에서 모두 소수자 내지 주변인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긍정적인 인간상과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인간상의 만남,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만남을 위하여 종교적인 입장 차이는 일단 내려놓거나 그 판단을 정지하고, 그 대신 인간적인 혹은 인본적인 공통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둘 때 오히려 양자 간의 새로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고이다. 즉 로마드카는 ‘무신론자를 위한 복음’을 설파했는데, 복음이 사회주의 국가의 무신론자에게도 적합성이 있다는 주장이다.1 이것은 복음의 새로운 해석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의 문화를 고려하여 복음을 전하듯이,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가 사회주의라는 문화를 고려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라고 비교해볼 수 있다.

2) 디아코니아 신학
동구 공산권의 교회 연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국가는 독일, 바로 동서독이다. 특히 동독은 동구 공산권 가운데 교회의 역사가 길고 그 위상이 비교적 높은 곳이고, 분단 기간에 서독과 관계를 맺었고 또한 동구 공산권의 붕괴 이후 통일로 나아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차원에서 시사점이 많은 사례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동서독에 공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디아코니아 신학이다. 이것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서독의 디아코니아 신학
디아코니아는 독일의 분단 이전부터 교회의 주요 개념으로 정착했고, 학문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또한 분단 이후 동서독 각각의 교회 및 양자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통독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계속해오고 있다. 디아코니아는 성서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교회의 직제로는 집사(deacon)라는 직분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초대교회 이후 감독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교회의 직제가 성직자로 수렴되면서 집사가 부제로 바뀌었지만, 종교개혁 특히 칼뱅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집사 직분이 회복되었고 장로와 더불어 평신도(안수 받지 않은 교인)의 양대 직분으로 정착되었다. 사실 동독의 중심은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작센주이며 오늘날 주목받는 디아코니아도 바로 이런 종교개혁의 맥락에서 부상하였다. 테어도르 스트롬(Theodor Strohm)은 디아코니아의 출현과 창시자로 간주되는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요한 힌리히 비헤른은 1848년 비텐베르크에서 열렸던 교회의 날 행사에서 독일 개신교회 디아코니아 사업단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는 1517년 종교개혁을 태동시킨 도시에서 두 번째 종교개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관련된 종교개혁에 관련하여 그는 다음의 사실들을 상기시킵니다. “개신교 교회는 다음의 사실을 총체적으로 승인해야 한다: 내적 선교(Innere Mission)의 디아코니아 사업은 교회의 사안이다! 내적 선교는 이러한 사역을 전체적으로 표현한 하나의 커다란 표식이다. 사랑은 교회에 있어 신앙에 속한다.” 비헤른은 교회로 하여금 그들의 임무, 즉 교회가 단지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섬기는 것임을 상기시킵니다.2

서독에서 디아코니아는 계속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결국 디아코니아학이 독자적으로 대두되었다. 분단 이후 서독교회는 동독과 동독교회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디아코니아 입장에서 접근하였다. 이런 태도는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기본적으로 내적 선교의 연장인 것이다.
그러나 동서독교회의 관계가 내적 선교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동서독교회의 관계가 돈독한 것은 좋지만, 분단 상황에서 서로의 독자성과 동독교회의 주도성을 인정하는 것도 선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교의 일방성과 의존성이라는 문제가 재현된다. 이런 문제는 동독교회 출신의 목회자가 서독교회의 선교적 노력에 대하여 고마워하면서도 지적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통독 후의 동독교회 재건도 양 교회의 주도성이 모두 발휘되기보다는 서독교회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노출했다.

동독의 디아코니아 신학
서독교회에서 디아코니아가 주로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되었다면, 동독교회에서는 교회와 선교 양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동독교회는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만남이라는 주어진 조건 가운데 무신론 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와의 관계를 위하여 신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 차원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했는데, 디아코니아가 적절한 신학 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동독교회의 선교는 사실상 디아코니아 형태로 가능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 스스로의 선교’나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를 향한 외부 교회나 선교기관의 선교’ 모두 디아코니아 선교 이외의 다른 형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령 한국교회를 생각해볼 때, 진영에 따라 북한선교에 관한 이론의 차이는 매우 크지만, 막상 사역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하겠다. 결국 동독교회의 디아코니아 신학은 디아코니아 교회론과 디아코니아 선교론 모두를 의미했다. 동구 공산권의 여타 국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신학과 선교가 등장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의 새로운 교회론과 선교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동구 공산권 붕괴 이후 헝가리 신학자인 휘스티 몰나르(Szilveszter Füsti-Molnár)는 헝가리 개혁교회가 “교회와 정부의 현실적인 관계에 부응하는 신학, 즉 ‘섬기는 교회의 신학’(The Theology of the Servant Church)을 구성했”는데, 이것은 ‘공식 신학’(Official Theology)으로 문제점이 있는 부적절한 신학이라고 평가했다.3 나아가 풍거르(Joseph Pungur)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나온 개혁교회의 봉사 신학(Theology of Service)과 루터교회의 디아코니아 신학(Theology of Diaconia)을 전반적으로 어용신학으로 비판”했다.4 다시 말해, 디아코니아 신학이 동구 공산권에서 새로운 교회론으로 등장하자,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간에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전후 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라는 주제하에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를 개최하면서, 기독교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될 수 없고 오히려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반세기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회론과 이데올로기의 상관성에 대한 신학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여, 교회론의 평가가 원칙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인 평가도, 긍정적인 평가도 있을 수 있지만 전체를 일률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동구 공산권의 붕괴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은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들이 민주화의 훈련이 가능한 최소 한도의 자율적 공간이었고, 따라서 민주화의 발상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교회가 성장, 발전하도록 돕는 일이 선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해당 교회에 대한 신뢰나 신뢰 구축 의지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통독 이전 동독의 사례는 오늘날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가 가진 교회론과 선교론을 이해하는 데 전거가 된다. 이런 사례는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와 관계를 맺거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선교를 하려는 외부 교회나 선교기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전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에큐메니컬 연대
김용복은 “사회주의권 사회에서의 기독교 선교정책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6가지를 제안한 바 있다. (1) 수난 받는 교회를 지원하는 선교, (2) 수난 받는 교회의 선교를 위하여 유대를 맺자, (3) 통전적인 선교적 유대, (4) 아시아교회와 세계교회의 선교적 유대망 속에서 선교적 유대를 맺자, (5) 한국교회의 신앙적 체험과 교회사적 경험 그리고 선교적 경험을 나누자, (6) 선교적 인적자원의 강화를 지원하자.5 이상의 내용은 ‘지원하자’, ‘유대를 맺자’, ‘현지교회의 선교적 역량을 강화하자’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현지교회의 선교적 주도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종식을 의미했기에, 자의반 타의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그늘에서 진행된 선교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에큐메니컬 선교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현지교회의 선교적 주도성을 인정하고, 현지교회와 선교적 동역 관계를 맺으며, 현지교회의 선교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선교는 현지교회가 하는 것이고, 외부의 역할은 현지교회의 선교를 지원하고 동역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에큐메니컬 선교의 개념이 충분히 인식되거나 실천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사회주의권 선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교회는 국가 분단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분열되지 않았다가 마침내 분열의 수순을 밟게 되었을 때, 보완책으로 동서독교회가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또한 사회주의의 특성상 국가 통제가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지하교회나 비밀선교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제한적인데, 이 분야에만 집중하느라 막상 선교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놓치거나 현지교회를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외부의 일방적인 선교는 장기적으로 현지교회의 의존성을 높이거나 심지어 현지교회의 선교를 방해 내지 위축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선교 역사상 자국민과 현지교회의 참여와 주도성 없이 선교가 완수된 적은 없다. 더구나 사회주의 국가의 선교는 가시적 결과가 단시일 내에 나타나기 어렵고 심지어 지리멸렬할 경우도 많으며 전망이 어렵다는 점에서,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사역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분명한 소신과 방향 제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외부 교회나 선교기관의 원조 피로감(donor fatigue)이 급증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디아코니아와 에큐메니컬 연대의 관계이다. 유럽의 경우, 디아코니아는 에큐메니컬 연대를 통해 실현되고 확산되었으며, 에큐메니컬 연대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디아코니아였다.6 특히 사회주의권 선교의 중심이 디아코니아이기에, 디아코니아가 에큐메니컬 연대를 통해서 구현되어야 함을 주목해야 한다. 가령 중국교회가 공산화 이후 세계교회와 단절되었다가 국제 무대로 다시 나온 것은 세계 에큐메니컬 교회들과 기구들의 중국 방문이 물꼬를 튼 셈인데, 이때 발견한 사실은 바로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중국교회를 방문한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이 수십 년 전 청년 시절에 에큐메니컬 운동을 함께한 동료였다는 점이다.7 이런 방문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아미티 재단(Amity Foundation)의 설립이 가능했다.

4) 사회주의권 맞춤형 상황화(contextualization) 선교 개발
한때 미개척 선교지가 고갈되었던 세계 선교계에 사회주의권 선교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바 있다. 사회주의권 선교는 동구 공산권 붕괴와 더불어 구(舊)공산권에서 시작하였다가 점차 사회주의 국가와의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사회주의권 선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권 선교 대박론이 대두되었고, 오늘날 북한선교도 대략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별도의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권 선교가 시작된 지 이미 한 세대가 지났으나 선교 대박은커녕 크게 내세울 만한 선교 결과가 많지 않은 형편이다. 물론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한아봉사회처럼 기존 선교 패러다임이 아닌 디아코니아 선교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실험적 선교는 NGO와의 차별성 같은 정체성 문제에 대해, 에큐메니컬 선교 특히 디아코니아 선교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선교신학적으로 해명하고 납득시켜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오늘날 사회주의권 선교 상황은 단적으로 말해, 선교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주의권 주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보다는 세속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사회주의권 선교가 보여온 기존의 선교신학과 방법론 등 전반적인 선교관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선교관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사회주의권 선교를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상황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국가 및 후기 사회주의 국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 그에 맞는 선교신학과 선교방법론 등 전반적인 선교관을 새롭게 마련하는 일, 새로운 선교관에 따라 외부가 아닌 현지교회의 선교 주도성을 인정하고 현지교회와 동역하거나 협조하는 일 등이 요청된다.

사회주의권 선교, 한국교회의 포기할 수 없는 과제
한국교회는 사회주의권 선교에 가장 적극적인 선교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교회가 지난 30년간의 노력을 통해 적지 않은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평가나 사실 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직까지 막연한 기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한선교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사회주의권 선교를 시작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과연 사회주의 국가와 후기 사회주의 국가를 망라한 사회주의권 선교의 선교신학과 선교방법론 등 선교관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립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순환논리이지만, 선교관이 정립되지 않아 기준이 없으니, 평가나 컨설팅도 쉽지 않다.
한국교회는 사회주의권 선교를 하면서 점차 사회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 사회주의 국가와 접촉하는 일에도 적극적이고, 사회주의 국가의 교회에 대해서도 흑백논리로 백안시하던 것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인 협력관계를 맺는 등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선교는 예외이다. 남북한 간의 골과 상처가 깊고, 통일 이전 단계인 평화담론도 부진하며, 북한선교도 답보상태인데, 새로운 세대는 통일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다. 사회주의권 선교는 기회인데,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더구나 이 기회는 한국교회 선교의 절대명제인 북한선교로 이어져야 하는데, 상승효과도 사라지고 있다. 올해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과 국가를 생각해야 하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분단과 통일도 함께 생각해야 할 때이다.

1 요세프 스몰리크 외, 이종실 역, 『요세프 흐로마드카: 체코의 에큐메니칼 신학자』(동연, 2018), 243-282.
2 독일개신교연합(EKD), 홍주민 역, 『디아코니아 신학과 실천: “가슴과 입, 행동 그리고 삶” 디아코니아의 근거, 과제 그리고 미래적 전망(개신교 백서)』(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06), 8-9.
3 안교성, “후기 북한 사회의 기독교 신학 구성에 대한 서설: 후기 공산주의 사회들의 기독교 신학의 변화를 중심으로”, 「신학연구」 68(2015): 201.
4 안교성, 위의 글, 204.
5 김용복, 『지구화시대 민중의 사회전기: 하나님의 정치경제와 디아코니아 선교』(한국신학연구소, 1998), 372-377.
6 독일개신교연합(EKD), 위의 책, 117-122.
7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Asian Christian Leaders in China: Impressions and Reflections of a Visit to China, June 1-14, 1983”(Pamphlet; Singapore: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1983), 34.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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