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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부활절, 부활신앙
특집 (2019년 4월호)

 

  한국 민중시에 나타난 부활 주체의 변화
  

본문

 

한국 소설에서 부활 사건만을 소재로 하거나 제목으로 한 작품은 거의 없는 편이다. 대부분 예수의 생애와 고난, 그리고 부활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부활은 말미에 사족처럼 붙는다. 소설은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부활은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결말 혹은 결과가 된다. 즉 부활 이후에 관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는 간략하게 부활신앙을 고백할 수 있고, 다른 해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부활 소재가 소설에 비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에서는 ‘한국 시에 나타난 부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활을 다룬 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시인들의 시이다. 그들은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고 자신도 그리스도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다. 둘째는 상징으로서의 부활시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양하게 해석한다. 지면의 한계로 기독교 시인들의 부활시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상징으로서의 부활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 민중시의 부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민중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 기간에 창작된 특수한 장르이다. 민중시에는 저항의식을 가진 사람이 쓴 시, 저항의식을 품고 있는 시, 민중의 삶을 소재로 한 시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넓게는 저항시로 불러도 될 듯하다. 민중시 가운데 기독교와 연관된 시들은 예수의 생애나 사상이 배경이나 주제로 표출되기 때문에 부활과 연관되는데,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모한다.

이 어둡고 추운 땅에 다시 오시옵소서

신학을 전공한 고정희(1948-91)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를 비판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아래에 소개할 시는 고정희의 등단작이다. 시작(詩作) 활동 초기부터 부활의 의미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신하는 더 더 밀폐된 숲으로 들어가… 피로 물드는 제국을 가꾸는가 싶더니… 네 부정의 손가락 사이마다… 떨고 있는 혼의 무리 / 침범된 입술의 가장자리에 / 우리들의 신하는 죽은 신의 부활을 / 묻고 또 묻으면서 억울한 슬픔으로 죽어간 / 진리를 바람에 휘 휘 날린다… 어두운 그늘과 추운 거리를 배회하며 /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 충만한 배부름을 나누던 그 흰 손은 / 어디로 갔느냐 - 고정희, <부활 그 이후>(1975), 부분

위 시의 제목은 <부활 그 이후>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이다. 1970년대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그리스도를 사회의 모순을 깨트린 자, 세속화된 종교를 비판한 자,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허식을 비판한 자, 심리적・육체적으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민중을 사랑한 자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시가 쓰인 1975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극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제국은 더 밀폐되었고 피로 물들어갔다. 민중은 독재자의 손짓 하나에 떨어야 했고, 입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정권의 하수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다시 묻어버렸고 진리를 바람에 날려버렸다. 백성들은 어두운 그늘과 추운 거리를 배회한다. 위 시는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불신앙으로 해석한다. 통치자들에게 부활신앙이 있다면 민중의 삶이 이렇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 정호승(1950- )의 시집 『서울의 예수』(1982)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예수의 상을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아래 시에서 정호승은 부활절을 보내며 현실과 신앙의 관계를 생각한다. 암흑의 시대, 야근하는 청년은 결핵을 앓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집배원은 쓰러지고, 사람들은 이혼하고, 처녀들은 인간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목사는 교회 건축 공사장에서 죽고, 임신한 처녀는 자살하고, 구두 닦는 소년은 공안원에게 끌려가 매를 맞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하고 죽어간다. 세상이 왜 이럴까? 정호승은 그 이유를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지 않았다 / 자기의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하여 누구나 /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지 않았다 질경이 꽃들이 시들고 / 물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다시 물에 빠졌다 - 정호승, <부활절>
(1982), 부분


그리스도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용서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 않는다. 좀처럼 시들지 않는 민중의 상징인 질경이이지만 사랑 없는 세상에서는 시들어버린다. 베드로는 예수를 보고 물 위를 걸었지만 다시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으며, 그가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의미를 깨달았다면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활절의 의미를 생각하는 정호승은 그의 시 <봄밤>에서 “부활절 날 밤 / 겸손히 무릎을 꿇고 / 사람의 발보다 / 개미의 발을 씻긴다”라며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함을 말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사랑의 실천이었다. 이 의미를 아는 사람은 더 낮은 자리에서 개미 같은 이들을 섬겨야 할 것이다.
시 <겨울공화국> 낭독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른 양성우(1943- )
는 <부활절 속가>라는 시를 썼다. ‘속가’(俗歌)란 양반들의 음풍농월적이며 정형적인 노래가 아닌, 서민의 심정과 상황을 자유로운 형식에 실어 부른 노래를 이른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을 풀어쓰면 ‘부활절에 부르는 민중의 노래’라는 의미일 것이다.

평생을 목마르고 창 끝에 / 찔리고 / 천만번 나무끝에 / 매달린 사람아. // 그대의 죽음을 아무도 /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 그대의 무덤을 아무도 / 무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아, 그대가 지른 마지막 / 비명을 / 아무도 결코 비명이라고 / 말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그대는 순간에 죽고 / 그렇지만 영원히 / 살아났기 때문이라.… 이렇게 되면 또다시 그대여 / 흰 옷자락 날리며 / 목소리보다 더 뜨거운 / 몸으로 오라. - 양성우, <부활절 속가>(1980), 부분
생략된 시의 앞부분에서 민중은 쫓기고 있으며 슬픔에 잠겨 있다.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은 봄을 기다리지만 겨울이 너무 길다. 그들은 이 땅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길 바란다. 그는 자신들처럼 창에 찔렸고, 사람들이 고난받을 때마다 다시 오셔서 천만 번을 나무 끝에 매달렸다. 그는 영원히 살아났기 때문에 지금 당하는 죽음과 무덤과 비명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오신다면 우리들의 슬픔과 아픔도 사라질 것이다. 그는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떨고 있는 이들을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줄 것이다.


너의 죽음과 나의 부활

4・19 이후 싸움의 앞에 섰던 사람들은 죽음으로 맞섰다. 세상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자신의 죽음이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문익환(1918-94)은 부활절 아침 마리아의 슬픔을 묵상하다가 전태일의 죽음으로 나아간다.

빛은 / 무덤에서 / 새어 나온다… 생명은 / 무덤에서 / 돋아난다 // ‘평화시장’에서 시들어가는 / 아까운 꽃송이들을 / 사랑하다가… 한 줌 재가 된… ‘전태일’의 꽃 같은 마음에 / 풀씨들은 울먹이며 / 더듬더듬 / 새 봄을 마련하는 / 곳 - 문익환, <부활절 아침에>(1974), 부분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빛을 막지 못하듯 전태일의 죽음에서 생명이 나온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노동법을 공부하고, 노동청을 방문하고, 대통령에게 편지도 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분신하였다. 전태일의 죽음은 재야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태일의 꽃 같은 마음에 꽃씨들이 울먹이며 새 봄을 마련하듯, 학생들은 노동 현장으로 나아가 야학 등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고민하였고,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많은 이들이 자신을 불태우고, 뛰어내리고, 자결한다. 민중시는 이들의 죽음이 대중을 ‘각성’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넋이 부활한 것’이라 해석한다. 양성우는 <그대들의 부활>(1982)에서 “칠흑의 무덤 열고 지금쯤 동트는 산마루 넘어 넋만 살아오는가 밀물처럼 오는가”라며 죽음으로 항거한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정신과 넋은 부활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익환은 시 <전태일>(1978)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전태일이라고 한다. 전태일의 사랑과 개조의 정신이 온 세상의 사람과 행동, 동물과 식물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보편적으로 수용된다. 그리고 그들의 넋이 ‘나’를 일어서게 하고, 이것은 나의 부활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민주화운동 시기에 죽어간 학생들의 추모시를 전담한 김정환(1954- )은 시집 『황색예수전』(1983)을 ‘성년식’, ‘행전’, ‘부활’로 구성하였다.

외마디 비명처럼 네가 치솟고 / 마침내 네가 쓰러지던, 그 기나긴 단식의 복도. // 너는 너 아닌 것들을 한 치도 구원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 그러나 난 다시 일어서려 한다… 난 다시 일어서려 한다 // 네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 쓰러져 단지 거름으로 썩는 / 바로 그 자리에서 - 김정환,
<부활제>(1983), 부분


『황색예수전』 3부에 속한 위의 시는 마가복음 16장 말씀을 인용하고 있지만, 성경구절을 빼고 읽으면 구속되어 고문당하고 단식하고 분신으로 항거하는 투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이 시는 1975년 유신철폐를 주장하며 할복 자결한 김상진을 추도하기 위해 김정환이 쓴 <다시 쓰는 추도시-김상진 열사에게>와 같은 시이다. 투사를 추모한 시를 그리스도의 부활에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는 열사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수의 죽음에도 세상은 한 치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예수는 살아나지 않는다. “단지” 거름으로 썩을 뿐이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이 가진 의미이다. 예수가 죽은 그 자리에서 예수의 사상을 행동으로 보여줄 내가 일어선다. 나는 결코 억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넋의 부활이고 나의 부활이다.

우리의 부활과 부활하는 땅

앞에서 살펴 본 양성우의 1980년 시 <부활절 속가>는 오시기를 바라는 그대가 ‘그리스도’였지만, 1986년의 다음 시에서는 부활의 주체가 ‘우리’로 바뀐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죽고 죽었다가 남몰래 살아난다… 우리는 떳떳하게 죽기 위하여 살아왔다 죽음은 곧 삶이다… 우리는 우리의 밥상을 지키기 위하여… 모조리 무덤에서 일어서고, 껍질 앞에 알몸으로 맞선다… 우리는 날마다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거름이 되리라 - 양성우, <부활의 땅>(1986)

우리는 밥상을 지키기 위해 알몸으로 맞선다. 모순과 억압과 핍박이 사라진 세계가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우리의 죽음은 사회를 변혁시킬 것이다. ‘부활의 땅’이란 우리의 죽음으로 부활하게 될 새로운 세상이다.
독일을 동과 서로 나누던 장벽이 무너지자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았다. 1980년대 말 한국은 통일운동이 한창이었고, 공식・비공식적인 북한 방문이 빈번하던 시기였다. 고정희는 부활절을 보내며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고요히 엎드려 죽으신 채…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라… 혁명을 이루라… // 약속의 땅에 죽어계신 그리스도 / 군몰장병 묘지… 휴전선 철조망… 사일구 묘역… 망월동 묘지… 이웃의 신음 속에 죽어가는 그리스도는… 침묵의 세월, 복종의 세월을 끝장내라… 분단… 지역 갈등… 차별… 분당 파당의 벽을 허물라… 통일의 꽃씨… 해방의 꽃을 예비하라 하십니다… 거짓말 홍수 속에 익사하신 그리스도는 / 죽어도 죽지 않으신 채… 죽음을 살림으로 바꿔달라… 교회의 첨탑 속에 매장당한 그리스도는 / 부활절에도 부활하지 않으신 채… 미사일을 비둘기로 살려내라… 외치십니다 - 고정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부활절에>(1990), 부분

그리스도는 허술한 밥그릇과 빈약한 월급봉투와 투쟁의 행진 속에 엎드려 죽어 계신다. 군몰장병 묘지, 4・19 묘역, 망월동 같이 민주화와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들이 묻힌 곳에 함께 계신다. 권세 잡은 자들의 거짓말이 그리스도를 익사시켰고, 부자들만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매장시켰다. 그들이 예수를 못 박았다. 그래서 예수는 죽어도 죽지 않으신 채, 부활절에도 부활하지 않으시고 부활시켜야 할 것들을 말씀하신다. 죽음을 생명으로, 총칼을 꽃으로 바꾸고, 분단의 벽, 지역갈등과 차별, 분당과 파당의 벽을 허물고, 통일과 해방의 꽃씨를 심고, 싸움을 평화로 부활시키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면 희년과 같은 세상이 부활처럼 올 것이다.
도종환(1955- )은 다음 시에서 ‘아직까지 오시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부활절 예배보다는 싸움터로 발을 돌린다.

오늘은 햇빛 맑은 부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싸움터로 갔습니다… 오지 않는 그분을 기다리며… 눈물 없는 곳이 없는 이 땅에… 최루탄 터지는 소리 / 끊이지 않을 이 땅에 부활은 정녕 언제 오는 것입니까 / 언제나 외롭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 계시어 / 그들의 편에 서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시던 당신을 따라 / 오늘도 많은 이들이 죽음의 언덕을 피눈물로 넘습니다 / 이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 도와주시리라 약속했던 당신의 말씀을 따라 / 오늘도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있습니다 / 그러나 언제쯤 우리 모두의 부활은 이 땅에 새로이 오는 것입니까 - 도종환, <다시 부활을 기다리며>(1993), 부분

예수가 부활하였어도 방 한 칸 구하지 못하는, 농사짓다 한숨짓는, 일터에서 쫓겨나 굶주린 이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최루탄에 쫓기며 싸운다.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기도할 수 없다. 예수는 외롭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은 죽음의 언덕을 넘고, 피를 흘리며 끌려간다. 이러한 현실에서 시의 화자는 “이 땅에 부활은 언제 오는 것인가” 질문한다. 부활은 핍박당하고 억눌린 자가 회복된 세계이다.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민중시에 나타난 부활을 살펴보았다. 요약하면, 이 세상의 모순은 부활신앙과 실천하는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은 2,0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며, 이 암울하고 척박한 땅에 예수는 다시 오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죽음은 투사의 실천적 죽음으로 맺혔다. 이들의 넋과 정신이 부활하여 남은 자들을 일깨웠고,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와 우리가 투쟁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세상의 변화라는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억압과 모순이 사라진 새로운 세상이 부활할 것이다.
부활의 주체가 ‘그리스도–투사–나–세상’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저항의 주체가 ‘기독교인–학생–노동자–여성, 사무직, 생태운동’ 등으로 확산되고, 결국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낸 당시 민중운동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기독교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화와 저항의 근원이 기독교였다는 사실은 21세기의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 내에서의 교회와 성도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정경은 | 서울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Ph.D.)하였다. 저서로 『한국 현대 민중가요사』, 『근대 학생들의 교지 만들기』 등이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강의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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