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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부활절, 부활신앙
특집 (2019년 4월호)

 

  부활절과 음악
  

본문

 

부활절의 유래

1) 부활절과 빠스카
부활절은 교회력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이며 기독교의 3대 축제일 중 하나이다. 부활절은 원래 그 전야(前夜)와 부활절 당일을 합하여 ‘빠스카’(Pascha)라고 불렀는데, 그 전날 일몰부터 부활 새벽까지 드리는 철야예배(Vigil of Easter Eve)는 성서 낭독, 시편 찬양, 기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때에 회심자들을 위한 세례식과 성만찬 예식도 거행되었다. 빠스카는 십자가와 부활을 하나의 전체로서 경축하는 것으로, 이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둘을 나눌 수 없는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순절이 확립되었고, 4세기 말경에 성금요일이 십자가 수난을 기념하는 날로 확립되면서 원래의 빠스카 주제(Pascha theme)가 나누어져 부활절에는 오로지 부활의 주제만 남게 되었다. 최근에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살려 빠스카 주제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순절과 성 고난주간과 성금요일을 부활절로부터 분리시킴에 따라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본질적인 일치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부활은 십자가를 전제해야 하며, 십자가는 부활로 완성되는 것이 우리 믿음의 핵심이기에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2) 부활절과 오순절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재림신앙과 밀접하게 연관시켰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재림 때까지, 그리스도의 영적 실존을 상징하는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의 강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부활절의 연장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50일’이라는 개념을 낳았고 부활의 날부터 성령강림의 날까지 50일간 전체를 부활절로 여기게 되었다. 이 기간을 ‘성대한 오십일간’(the great fifty days) 혹은 ‘오순절’(Pentecost)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오순절이란 50일간을 가리키거나 50일째 되는 날을 의미한다.
이 절기에 해당하는 영어 이름인 ‘이스터’(Easter)는 튜튼족이 받들던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4월달에 속한 부활절을 이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각 주일날은 모두 ‘부활주일들’(Sundays of Easter)이라고 불리는데, 부활절 첫째 주일, 부활절 둘째 주일 등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 절기의 색깔은 성령강림절만 제외하고 모두 축제의 색깔인 흰색이다. 성령강림절에는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사용한다.

3) 부활절과 주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부활 앞에서 고난과 슬픔, 질병은 물론 죽음조차도 의미를 가진다. 반대로 부활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부활이 없다면 나머지 절기는 성탄절이든 주의 만찬이든 심지어 십자가 수난까지도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는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부활의 사건과 그것이 드러내는 신비가 교회의 삶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을 ‘주의 날’(Lord’s Day)로 지키는 관습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일요일이 그들의 새 삶이 시작된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은 그날을 따로 구별하였으며 함께 모여 그 신비를 경축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뜻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4) 부활절과 세례
초대 그리스도인들 또한 세례를 부활과 밀접히 연관지었는데, 이는 그들이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필적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상징적인 죽음으로 이해되었고, 물에서 떠오르는 것은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부활 절기에 세례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사순절이 발전하게 된 토대가 되었으며 부활 전야의 예배(Easter Eve services)는 지금도 세례를 받기 위한 특별한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세례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승리의 결과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활절의 풍습

1) 초
부활절의 예배는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꾸며졌다. 풍성한 꽃과 화려한 음악, 그리고 “알렐루야,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다. 알렐루야.”라는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이 부활절 예배의 중요한 상징이 바로 빛이다. 따라서 교회는 일출 때 예배를 드려 감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는데 어둠에서부터 점차로 밝은 빛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날의 의미를 쉽고도 생생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절 전야의 철야예배는 여러 개의 초를 밝혀 빛의 의미를 살리려고 하였다. 이 철야예배의 기원은 몇몇 사도들의 생존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빠스카의 초(Paschal Candle)에 불을 밝히고 거룩한 세례를 집례하는 것은 이 예배의 오래된 전통적인 순서이다. 커다란 초에 불을 붙여 성소나 독서대 근처에 놓아두는 것을 가리켜 ‘빠스카의 초’라고 하는데 보통은 철야 때에 사용되지만 때때로 부활절 첫 예배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 빠스카의 초의 불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모든 초들의 불을 붙인다. 빠스카의 초는 오순절 날 소화할 때까지 예배 때마다 불을 밝힌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현존하시는 것을 상징하며, 또한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 인도했던 불기둥에 비견된다.

2) 달걀
달걀은 새 생명과 부활을 나타내기 때문에 부활절과 관련되는데 달걀을 장식하는 풍습 자체는 기독교보다 오래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에서는 달걀을 물들이고 장식해서 봄의 도래를 경축하는 선물로 교환하곤 하였다. 실제로 페르시아인들은 대지 자체가 거대한 알을 깨고 나왔다고 믿었다. 봄의 제전(spring festival)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을 나타내기 위하여 맨 처음 달걀을 사용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은 페르시아나 바빌론의 땅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주민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도 부활절 달걀을 붉게 물들이고 이웃들과 그것을 함께 깨뜨리며 부활절 인사를 나누곤 하였다. 달걀을 축복하고 선물로 교환하는 것이 당시 매우 유행이었기 때문에, 부활주일은 종종 ‘달걀주일’(Egg Sunday)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때때로 달걀에 메시지를 적어 넣기도 하고 날짜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사탕으로 만든 달걀도 있었으며 달걀 껍데기 안쪽에 부활절 풍경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아주 정교하고도 독특한 모습으로 달걀을 장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개천과 강물에 달걀 껍데기를 띄우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풍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남아 있다. 부활절 달걀으로 식탁을 장식하기도 하고, 부활절 달걀 사냥 혹은 달걀 굴리기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하며, 부활절 달걀을 선물로 주고받기도
한다.

3) 백합과 트럼펫
생명의 소생을 나타내는 꽃들은 오래전부터 부활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전통적으로 가장 애용되는 꽃은 부활절 백합(Easter lily)이다. 그것은 백합꽃이 정결을 상징하는 흰색인 데다가 그 형태가 기쁜 소식을 알리는 트럼펫 모양이기에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오늘날에도 부활절 연주에 흔히 동원되는 트럼펫을 화려하게 꾸며서 연주하기도 한다.

4) 토끼
부활절 토끼(Easter Rabbit)의 풍습은 독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 가난한 부인이 자기 아이들에게 줄 달걀을 근처 숲속의 둥지에 숨겼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걀을 찾아내자 토끼 한 마리가 도망가는 것이 보였으므로 아이들은 토끼가 그 달걀을 갖다 놓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토끼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초콜릿 등을 갖다 놓는다고 믿어 부활절 토끼 풍습이 유행하였다.

5) 왕관과 승리의 십자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을 경축하기 위하여 아주 많은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봄의 제의(祭儀)에서 기원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유대 기독교적인 유산으로부터 유래한 것들이다. 십자가는 원래 수치의 상징이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과 승리를 나타내는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고 이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 이 절기 동안 보통의 라틴 십자가(plain Latin cross)를 부활절 장미로 장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활절에 합당한 십자가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상(crucifix)이 아닌 왕이신 그리스도(Christus Rex), 즉 왕관을 쓰고 왕권을 나타내는 복장을 입고 있는 승리자 그리스도 상을 드러내는 십자가이다.

부활절의 음악

부활은 인류 최대의 카이로스이고, 부활절은 기독교 최대의 절기이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요 근간이다. 부활절 예배란 성서가 증언하는 부활을 믿으며 이를 기념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부활절 예배는 다른 예배보다도 음악의 역할이 더 강조되며 화려하고 잘 준비된 음악은 부활절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부활절에 관련된 교회음악은 다른 어느 절기보다 풍성하다. 부활절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일 것이다. 이 작품은 1742년 4월 13일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초연되었다. 요즘은 성탄절에 자주 연주되지만 초연의 시기로 보아 헨델의
<메시아>는 부활절 작품이다. 헨델의 <메시아>를 통하여 우리는 부활절 음악의 세 가지 특징을 생각할 수 있다.

1) 부활의 음악은 복음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이 온다. 그러므로 부활절의 음악은 수난의 음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 사건이 곧 복음이다. 인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부활로 이어지며 인류 구원을 완성시켰다. 음악은 이에 대한 응답이다. 위로부터 아래를 향한 복음에 대하여 아래로부터 위로 올리는 응답이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활절 음악에는 먼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노래가 있고, 그 후 부활의 노래가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증언해야 한다.
헨델의 <메시아>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 부활과 영생으로 되어 있다. 즉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응답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2) 부활의 음악은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음악으로 표현해야 진정한 부활의 음악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부활절 노래를 작곡해서도 안 되고, 불러서도 안 되고, 연주해서도 안 된다. 부활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하는 음악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부활절 음악예배를 한다고 성악가나 악기 연주자들을 외부에서 초청하여 비용을 지급하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일 뿐,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소리내는 음악은 신앙고백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은 아무리 세련된 소리를 낸다 해도 하나님께 올려지는 음악이 아니다.
헨델의 <메시아>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헨델은 1741년 전까지 그가 원하던 오페라를 작곡하여 성공과 더불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나, 말년에는 계속되는 반대파들의 방해와 시대적 트랜드의 변화로 인해 입지가 좁아졌다. 작곡가로서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설립한 오페라단 ‘제2아카데미’ 운영이 파산에 이르면서 그는 경제적으로도 몹시 빈궁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헨델은 중풍(뇌졸중)을 두 번이나 맞아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바로 이때 그는 신앙인으로 돌아와 그때까지 소홀히 하던 교회음악에 열정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헨델은 1741년부터 죽을 때까지 오라토리오에 몰두한다. 1741년! 그의 <메시아>가 작곡된 해이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작곡을 통해 런던에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동시에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작곡을 하였고 연주도 맡았다. 그의 음악은 곧 그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1759년 4월 6일, 런던 ‘코벤트 가든 홀’에서 <메시아>를 지휘하던 헨델은 마지막 곡인 <아멘 코러스>가 끝나자 쓰러졌다. 그리고 1주일 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애 마지막 작품인 오라토리오 <입다>를 다 쓴 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Soli Deo Gloria. Georg Friedrich Handel aetatis 66. Finis Agost. 30. 1751.”(오직 하나님께 영광.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66세. 1751년 8월 30일에 끝내다.)

3) 부활의 음악은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
부활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어 얻어진 기적이요 기쁨이다. 죄가 없는 예수께서는 제물이 되어 죽음으로 인류가 당할 죄의 값을 대신 치르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사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를 실현하셨다. 부활의 음악은 이러한 희생제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재현이다. 부활절 음악 행사는 인간들을 위한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로서의 음악이 되어야 한다.
성서에 따르면 제물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소나 양, 혹은 염소나 비둘기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제물을 드리든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하나님은 값비싼 제물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제물을 원하신다. 신명기 15장 21절에는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이 있다. 또 레위기 22장 22-24절에는 제물의 흠에 대하여 눈먼 것이나 상한 것,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 종기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 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것,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물로서 흠 없는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소같이 비싼 제물은 무엇이고 비둘기같이 싼 제물은 무엇일까? 화려한 기교를 드러내는 음악, 대규모의 웅장한 음악은 전자에 해당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규모의 음악은 후자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화려한 음악보다는 흠 없는 음악을 원하신다. 평범한 음악을 하든, 수준 높은 음악을 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흠 없는 제물로서의 음악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목소리의 음악이 아니라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이어야 한다.
성가대는 예배음악을 해야 한다. 무대음악을 해서는 안 된다. 예배음악은 하나님을 향한 음악이고, 무대음악은 사람을 향한 음악이다. 예배음악은 아멘을 기대하지만, 무대음악은 박수를 원한다. 예배음악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음악이지만, 무대음악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다. 한국교회의 부활절 음악이 대부분 무대음악으로 변질된 현상은 제물로서의 음악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부활절 음악이 온전한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음악가들이 먼저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물이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죽어야 제물이 된다. 온전한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장이 흠이 없어야 한다. 레위기 21장 17-21절에는 육체에 흠이 있는 자,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등 굽은 자,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 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 적용하면, 이 말씀은 육체적인 흠결보다는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흠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제물로서의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는 온전한 인격과 성품과 신앙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음악가들의 성격은 까다롭고 별나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교회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예배음악을 통해 제물로서 음악을 드리기 위해서는 지휘자를 비롯한 성가대원 모두가 개인적인 인격 수련과 언어 훈련과 원만한 대인관계와 신실한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4) 부활의 음악은 나눔을 위한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자선음악단체인 필하모니협회(Philharmonic Society)가 의뢰한 곡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귀족이나 부자, 권력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빚을 갚지 못해서 감옥살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초연된 곡이다. 그 후 헨델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메시아>를 32차례나 직접 지휘하였는데, 얻어진 수익금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부하였다.
교회에서 준비하는 부활절 음악은 나눔과 자선의 정신을 살려야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부활절 음악회를 교회 식구들 중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교회 밖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음악회로 구성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문성모 |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예배학을, 오스나브뤼크대학에서 음악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하를 묻고 답하다』, 『한국교회 예배와 음악 다시보기』 등이 있다. 대전신학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남제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2019년 6월호(통권 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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