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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평양은 어떤 도시인가
특집 (2019년 1월호)

 

  도시의 중심을 장악한 문화의 위용
  

본문

 

문화 중심 계획도시 평양

북한의 수도 평양은 계획도시이다. 6・25전쟁으로 초토화된 폐허를 흰 도화지 삼아 처음부터 새롭게 그려졌다. 여느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도시를 국가의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집약하여 담아내는 도구로 파악한다. 도시 건설은 사상과 이념의 문제로, 자연적 발생이나 우연에 근거하지 않고 지도자의 방침에 따라 철저하게 계획된 결과물로 여긴다.
특히 김정일은 집권 이후 세속적 정치와 정책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많았는데, 도시 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전에 그는 『건축예술론』에서 “건축을 혁명적 수령관으로 일관시키는 것은 주체건축 창작에서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근본 원칙”이라 천명했다. 여기서 ‘주체건축 창작 원칙’은 단순히 건축물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그 건물의 배치 장소와 내부 구조, 그리고 건축물 안에 포함될 콘텐츠까지 사상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근본 원칙으로, 김정일 사망 이후 현 김정은 정권까지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기본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도시를 사상교양의 장소로 조성하고 도시 중심부에는 김일성 동상을 비롯한 혁명 기념물을 배치할 것, 둘째, 도시 규모를 제한해 근로인민의 편리를 보장할 것(김일성은 거주민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도시의 근본 없는 확장이 19세기 낡은 도시 개념의 병폐라 주장했다), 셋째, 위생문화적인 도시의 도모, 넷째, 아름다운 도시 건설, 다섯째, 형식주의를 반대하고 경제적 도시 건설을 위해 설계를 표준화할 것, 여섯째, 단계별 계획 수립을 위해 모든 도시계획을 순차적, 세부적으로 할 것 등이다.
이러한 도시계획에 따라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오늘날 평양의 도시는 대체로 세 곳으로 구분된다. 우선 정부수립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구도심이 있다. 대동강 서쪽과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 사이에 있는 ‘본평양’이 그곳이다. 그 옆으로 대동강 동쪽 구역에 있는 ‘동평양’이 해방 후 집중개발을 통해 먼저 개발됐다. 그리고 보통강 서쪽의 ‘서평양’은 1980년대에 개발된 지역이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먼저 개발된 본평양과 동평양 두 지역의 중심부에는 두 가지 축이 형성되어 있다. 하나는 김일성광장에서 대동강 건너 주체사상탑으로 이어지는 축으로 인민문화궁전–김일성광장–대동강–주체탑을 연결하는 정치사상 축이다. 다른 하나는 만수대기념비에서 강 건너 당창건기념탑으로 이어지는 축으로 만수대기념비–혁명박물관–대동강–당창건기념탑으로 이어진다. 평양의 주요 중심지구는 바로 이 두 축 사이로, 이 도시의 이미지를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다.
이 도시의 중심지구는 다름 아닌 문화시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정치 및 문화행사 위주로 사용되는 김일성광장 좌우에는 정부청사와 조선미술박물관(1960), 조선중앙역사박물관(1960)이 있으며, 그 뒤편 남산재에는 전통 양식으로 건축된 인민대학습당(1982)이 터를 잡고 있다. 또한 극장, 문화회관 등 인민들을 위한 공공문화시설들이 잔뜩 밀집해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도심부가 상업이나 서비스 관련 기관 및 빌딩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중심부의 재구성은 평양 전후복구 사업 중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1970년대 김일성 주체사상이 대두되면서 가시화된 것이다. 김일성은 이 중심지구를 구상할 때 “큰 광장 옆이나 번화한 거리에는 국가기관보다 근로자를 위한 궁전, 극장,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지침을 내렸다.1 이는 근로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시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이 도시의 주인임을 가시적으로 나타내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함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구성은 근로자들의 사상 및 정서 교양이 국가의 핵심 정책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평양의 문화시설

북한에서는 문화시설을 문화교양건물이라 부르는데, 이는 ‘근로자들을 정서적으로 교양할 목적으로 건설한 공공건물’로 정의된다. 이러한 문화교양건물은 극장 및 영화관과 같은 관람형, 도서관(인민대학습당) 같은 학습형, 박물관이나 전람관 같은 전시형, 문화회관 및 궁전 등으로 구분되는 소조운영형으로 나뉜다.
또한 문화교양건물과는 별개로 ‘사상교양건물’이 있다. 이는 혁명사상 교육을 목적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의 특수시설로 혁명박물관, 혁명사적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평양의 문화시설들은 모두 중구역, 모란봉구역 등 평양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다. 평양 내 주요 문화교양건물 및 사상교양건물 건설을 연대기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이전: 모란봉극장(1946/1954년 재개관)
1960년대: 조선미술박물관(1960), 조선중앙역사박물관(1960),
평양대극장(1970)
1970년대: 조선혁명박물관(1972), 인민문화궁전(1974),
만수대예술극장(1976)
1980년대: 인민대학습당(1982), 만경대학생소년궁전(1989),
평양국제영화회관(1989), 평양교예극장(1989), 동평양대극장(1989)
1990년대: 3대혁명전시관, 윤이상음악당(1992)
2000년대: 김일성화 및 김정일화 전시관(2002), 인민극장(2012)


지면의 제약으로 이들 가운데 공연장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평양 공연장의 특징은 거대한 스케일을 첫째로 들 수 있다.(이는 구소련 사회주의체제에서 건축된 공연장 대부분이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소수의 클래식음악 공연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1,500석에서 2,000석 이상의 객석을 보유한 대극장으로 대체로 객석이 무대를 둥글게 둘러싸는 프로시니엄(proscenium, 액자무대) 형식으로 건축됐다. 객석뿐 아니라 무대도 상당한 스케일인데, 이는 북한의 가극을 비롯한 공연 작품들이 대체로 포함하는, 수십 명의 단원이 동원되는 군중 장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대 남북 문화교류가 한창이었을 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한 평양어린이예술단 단원들이 리허설을 위해 무대에 들어섰을 때 ‘애걔?’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만큼, 북한의 극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 공연장의 두 번째 특징은 모두 상주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는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는 남한의 공연장들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상주단체 시스템은 각 공연 단체들이 안정된 제작환경 속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레퍼토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1) 모란봉극장
모란봉구역 내 모란봉 기슭에 위치한 모란봉극장은 광복 직후 가장 먼저 건립된 극장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평양신사를 철거해 처음에는 ‘국립예술극장’이라는 명칭으로 1946년 건립됐다. 6・25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을 때에도 지하에 임시극장을 만들어 운영하며 명맥을 유지했고, 휴전 직후 역시 가장 먼저 재건축에 들어가 1954년에 현재의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이 극장은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상주단체로 있으며, 일반적인 공연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의 회의장으로도 사용되는 복합공간이다. 사실 이곳은 예술보다는 북한 현대사에 있어 정치적 의미가 각별한 곳인데, 1948년 남북단일정부 구상 논의를 위해 남북조선제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당시 백범 김구가 참석했다. 또한 같은 해 제1차 최고인민회의 대회가 개최되어 김일성이 수상으로 추대된 곳으로 북한에서는 역사적・정치적 성지와 다름없다.
2004년 김정일의 지시로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해 2005년 재개관했는데, 이 공사를 통해 좌석 규모는 기존의 700석에서 400석 미만으로 축소된 반면, 무대 공간은 더 확장되었다. 이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공연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곳에서는 매년 조선국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와 설 명절 경축음악회가 개최되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와 같은 정통 클래식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2) 윤이상음악당
윤이상 음악연구소 산하 공연장으로 윤이상 관현악단이 상주단체로 자리하고 있다. 1992년 개관한 600석 규모의 중형 공연장으로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 안에 있는 실내악 홀을 참고해 건축되었다. 남한에는 1998년 윤이상 통일음악회를 통해 세간에 공개된 바 있다. 상주단체인 윤이상 관현악단은 1990년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평양음악대학)에서 선출한 42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윤이상 음악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실제 공연으로 활용하기 위해 창단되었으며 카라얀 콩쿠르 입상자인 북한 지휘자 김일진이 주도했다. 1999년부터 2004년 사이에는 수석 주자들로 구성된 ‘평양 윤이상 앙상블’이 독일 순회공연을 가진 바 있다. 독일 베르고(Wergo) 음반사에서 출시된 윤이상 실내악 음반에서 이들 앙상블의 정교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북한 단체가 연주한 음반이라는 이유로 이적 표현물(?)로 구분되어 수입이 금지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모란봉 상주단체인 조선국립교향악단이 대부분 남자 단원들로 구성된 반면, 윤이상 관현악단은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구성되고 연령층도 훨씬 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 중 일부는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청송악단, 모란봉악단 단원을 겸직하고 있다. 또한 윤이상음악당은 사회주의체제가 가장 혐오하는 난해한 현대음악이 자주 연주된다는 점에서, 평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이율배반적인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공연장 이외에 연습시설, 국제회의실, 문헌자료실, 민족악기 전시장 등이 건물 안에 갖춰져 있다. 물론 이들의 정책지침 변화는 작곡가 고(故) 윤이상이 북한 음악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 덕분이다. 남북이 공유하는 윤이상이라는 거장을 매개 삼아 클래식 음악계의 남북교류 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6년에는 지휘자 정명훈이 이 공연장에서 윤이상 관현악단을 객원 지휘할 예정이었지만, 핵실험 파동으로 인한 남북관계 악화로 무산됐다.

3) 인민극장
평양 중구역인 만수대지구에 위치한 신식 공연장으로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전용 콘서트홀이다. 클래식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규모라 할 수 있는 1,500석 객석의 원형생음악극장(라이브 콘서트홀)과 500석 규모의 지하극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로 북한 공연장 중 최신 설비와 어쿠스틱을 위한 음향시설을 보유한 곳이다. 특히 원형생음악극장은 서울의 롯데콘서트홀처럼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듯 설계된 빈야드 양식이다. 무대 뒤편에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공연 중 동영상을 보여준다. 전체를 통유리로 에워싼 원통형의 외관 또한 사각 모양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사회주의 건축물이나 전통양식을 절충한 민족주의 양식과 차별되는 현대성을 띤다.
공연장 중에서 유일하게 상주단체가 아직 불분명한 공연장이기도 하다.(과거 은하수 관현악단이 개관 공연을 담당했지만 당시 이들은 은하수극장을 상주 공연장으로 따로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 장성택 숙청사건에 은하수 관현악단 주요 단원들 다수가 연루되며 악단 자체가 와해된 이후에는 조선국립교향악단, 모란봉악단 등이 번갈아 공연하고 2015년 금관악기 위주로 구성된 청봉악단이 여기서 창단공연을 하기도 했다. 원형생음악극장이 음악 전문공연장인 반면 지하극장은 연극, 무용 등을 상연할 수 있는 다목적 홀로 활용된다. 무용수 최승희 탄생 100주년 기념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가 리메이크되어 상연된 곳이 이 지하극장이었다.

4) 평양대극장
평양의 승리거리와 영광거리 교차점에 위치한 극장이다. 재건사업 중 우선순위로 착공되어 1960년 완공되었다. 미학적으로는 이 시기 시험대에 올랐던 조선시대 기와를 지붕으로 올린 민족건축양식(‘조선식 건축양식’)의 초기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조선식’ 건축 계보는 옥류관(1960), 인민문화궁전(1974), 국제친선전람관(1978) 건립을 통해 꾸준히 이어진다.
처음에는 2,000석이 넘는 객석을 보유한 장대한 스케일의 공연장이었지만, 2009년 리모델링 후 재개관한 다음에는 객석 수가 1,300석으로 축소됐다. 이 리모델링을 통해 음향(5.1 돌비 시스템) 및 조명 설비들도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북한의 대표적 가극단인 피바다가극단이 상주하는 곳으로 5대 혁명가극(<피바다>, <꽃 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밀림아 이야기하라>, <당의 참된 딸>)이 레퍼토리로 상연된다. 이에 따라 극장 정면 좌우측 벽에도 혁명가극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1970년대에 발전한 정통 북한 가극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이다.

5) 동평양대극장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위치한 극장으로 1990년대부터 북한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단체로 꼽히는 만수대예술단이 상주단체이다. 1989년 평양학생축전을 준비하기 위해 건립된 공연장이다. 반원형의 현대적인 모양을 지닌 건축물로, 평양대극장과 마찬가지로 2007년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내부도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관람석도 3,500석 규모에서 1,500석으로 축소되었는데, 층별 구분 없이 모든 객석이 경사진 단층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만수대창작단 소속 화가들이 집단창작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회화 <울림폭포의 가을>과 2층의 <삼지연
못가>는 30여 명의 화가가 두 달 넘게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북한 정권이 문화외교 용도로 가장 자주 사용하는 공연장이기도 한데,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남북 예술인 공연이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2008년에는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곳에서 공연했다.(즉, 북한에서 미국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된 장소이다.) 지난 4월 ‘봄이 온다’는 제목 아래 레드벨벳, 윤도현, 조용필, 이선희 등 남측 대중음악인들로 구성된 예술단이 공연을 한 곳도 바로 이 동평양대극장이었다.

6) 만수대예술극장·봉화예술극장
이밖에 만수대예술극장은 중구역 만수대에 위치한 극장으로 평양신학교가 위치하던 곳에 지어졌다. 만수대예술단이 동평양대극장으로 이전하기 전에 상주하던 곳이다. 가극과 연극이 주요 레퍼토리로 상연되며, 공연을 하지 않을 때에는 정치적 집회 장소로 활용되는 다목적 홀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가장 화려한 외관을 가진 공연시설이자 1970년대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봉화예술극장은 본평양에 위치한 극장으로 평양예술단이 상주하는 곳이다. 동평양대극장과 마찬가지로 남북 문화외교에 적극 활용된 공간이며 리틀엔젤스예술단(1988)을 비롯해 태진아, 설운도, 최진희, 안치환 등이 이곳에서 공연했다. 길이 70m, 깊이 19m에 이르는 장대한 스케일의 무대도 압도적이지만, 당시 공연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무대 뒤의 위용에 더 감탄했다고 한다. 100명의 출연진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분장실과 별도의 연습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1 김일성, 『김일성저작집』 18권(1989), 89.

노승림 | 영국 워릭대학교 문화정책연구소에서 북한 기독교 문화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
다. 종교와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 문화외교 활동, 기독교와 서양음악이 한국 근대문
화 형성에 끼친 영향이 주요 관심사이다. 현재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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