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한국교회의 인권 이해
특집 (2018년 12월호)

 

  퀴어신학: 퀴어스레 신학하기
  

본문

 

“요즘 신약성서 분야에서 가장 새롭고 핫한 해석방법론이 무엇인가요?” 지난 여름에 강연차 한국에 온 에모리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에게 필자가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퀴어 해석이지요.”라고 답했다. 역시 그러했다. 필자가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에 민중신학까지는 배웠지만, 페미니스트신학, 다양한 포스트구조주의 해석방법론, 탈식민주의, 퀴어신학 등은 배우지 못했다. 지금 신학은 정보 혁명의 물결과 더불어 학제 간 연구를 하게 되었고 신학 인구도 훨씬 많아져서 그 어느 때보다 새롭고 풍성해졌다. 퀴어신학은 비교적 새로운 접근 중 하나이고, 필자도 조금씩 배우는 중이라 일천하지만 여기에서 나누고자 한다.
인류는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에 몰랐던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성(섹슈얼리티) 문제 또한 그러하다. 퀴어신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시작해야 할 듯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성은 복잡하고 광범위하여 역사, 생물학, 다른 생물(cross-species)과의 비교연구, 사회학, 심리학, 페미니즘, 퀴어이론 등의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이들 관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1
1) 인간의 성은 생물학, 사회, 문화, 심리적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복합성을 반영한다. 2) 성적인 행동에는 보편적인 패턴이 없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3) 자신의 문화적 가치와 신념이 자신에게는 깊은 의미가 있을지라도, 그 가치와 신념은 무엇이 정상이고, 자연스럽고, 도덕적인 성적 행동인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신학계 또한 1980년대 이래 이 주제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신학과 섹슈얼리티」(Theology and Sexuality)라는 학술지가 1994년부터 출간되고 있고, 수많은 단행본과 논문이 이 주제를 다루었다. 지난 몇십 년간 서구에 비해 한국의 신학계에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섹슈얼리티와 퀴어 코드로 신학하기’가 아니었나 싶다. 서구에서는 전통적 신학의 여러 분야, 곧 성서학, 실천신학, 윤리학, 교회사, 교육학, 조직신학 등 모든 분야에서 퀴어 시각을 적용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래에서는 남미 해방신학을 사용한 게이신학을 필두로 하여 페미니즘을 사용한 레즈비언 신학을 거쳐, 현재 퀴어이론에 기반한 퀴어신학과 퀴어성서비평에 대해 약술하기로 한다.

퀴어신학의 배경2: 스톤월 항쟁, 게이신학, 레즈비언신학
1) 스톤월 항쟁

퀴어신학의 시작은 스톤월(Stonewall) 항쟁이라는 인권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6월, 성소수자들이 출입하는 술집인 스톤월에 경찰이 정기 단속을 나오자 이에 맞서 나흘간 저항한 일이다. 이 사건은 현대 LGBTQI+(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닝, 인터섹스, 기타) 해방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엘리자벳 스튜어트(Elizabeth Stuart)는 “이 사건으로 동성애자는 각각의 목소리와 주체성과 자결권을 주장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되었다.”라고 분석한다. 이때부터 게이, 레즈비언은 공적인 문화 공간을 만들고 소수자 그룹으로서 사회적이고 법적인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 게이신학
1970년대에 게이 해방운동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게이신학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주로 남성학자들이 활동하였다. 영국 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책 Toward a Theology of Gay Liberation(게이 해방신학을 향하여, 1977)이 처음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향후 20년간 발전하는 게이신학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준다. 게이신학은 지배적인 신학과 교회의 가르침을 해체하는 데 있어서 게이 경험을 해석학의 도구로 적용하기, ‘객관적인’ 신학과 성서 해석 속 이성애의 규범성을 드러내기, 인간 존재에서 섹슈얼리티의 중심성 등을 다룬다. 이 책은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이후에 나온 게이신학 서적은 해방신학의 방법과 통찰을 많이 차용했다. 특히 하나님이 억압당하는 자의 편을 드신다는 당파성과 신학이 사회정의 투쟁에 대한 비평적 성찰로 이루어진다는 통찰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 클리버(Richard Cleaver)와 게리 캄스탁(Gary David Comstock)은 스톤월 항쟁을 출애굽에 유비하며, 둘 다 새로운 백성을 만든 사건이고,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닌 계약 백성으로 거듭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성찰하며 광야를 지나고 있다고 보았다. 로버트 고스(Robert Goss)는 퀴어 그리스도를 구성하면서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이 아닌 실천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시 종교 및 사회제도에 의해 억압당한 사람들과 연대하시는 분이다. 고스가 해석하기를, 부활이란 하나님이 예수 편에 서시고 그리스도의 지위로 올리시는 하나님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동성애 혐오적이고 이성애 성차별적인 세계에서 교회는 퀴어와 연대하고 그 공동체 속에 계신 그분을 알아보기를 촉구하신다고 본다.

3) 레즈비언신학
레즈비언신학은 게이신학과 페미니스트신학에서 레즈비언이 주변화된 경험에서 나온 신학이다. 레즈비언신학은 해방신학보다는 페미니스트신학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게이신학보다 전통에 대해 훨씬 더 해체적이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윤리학의 카터 헤이워드(Carter Heyward)이다. 헤이워드는 고전적인 이신론과 크리스천 자유주의(Christian liberalism)의 하나님을 거부한다. 섹슈얼리티, 신체성(physicality), 동등성에 무관심한 하나님이란 억압자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헤이워드에게 하나님은, 흑인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말한바, ‘성애적인 것’(the erotic), 즉 사람들이 자기 가치(self worth) 및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호성을 느끼게 하는 깊은 지식과 힘과도 같다. 이를 철저히 내재적으로 살려면 ‘godding’(타자와 진정으로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힘을 구현하는 관계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평등한 힘의 관계가 설정된 문화적 상황에서 이것을 이루기는 어렵다. 헤이워드가 강조하기를,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이 사람들 위에 있거나 초월하여 계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 그들 사이에 계신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예수의 중요성은 우리와 다름에 있지 않고 같음에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헤이워드는 남자와 여자, 섹슈얼리티와 영성,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의 이원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신성과 인성 사이의 이원론을 인정하지 않는데, 예수는 이 둘을 합하였고, 모든 인간이 신의 힘을 드러낼 수 있음을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게이신학과 레즈비언신학에서의 주요 요소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신학하기 과정에서 경험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 둘째, 견해에 따라 성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 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이견은 있지만, 안정된 성적 정체성이라는 가정이다. 이 둘째 요소는 퀴어이론에서 극복된다.

퀴어, 퀴어이론, 퀴어신학, 퀴어비평
1) ‘퀴어’라는 용어3

‘퀴어’는 ‘이상한, 낯선, 특이한, 궤도를 벗어난’이라는 뜻으로 본래 상대를 경멸하는 의미로 쓰였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용어로, 성소수자들의 긍지의 표시로 쓰였다. ‘퀴어’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퀴어는 포괄적인 용어이다. 소위 비표준적인 섹슈얼리티 및 젠더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가리켜 퀴어라고 한다. 또한 이성애자이면서 퀴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ally)도 ‘벗어난’ 셈이니 ‘퀴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째, 퀴어는 위법한 행동을 가리킨다. 퀴어들은 섹슈얼리티 및 젠더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통념을 위반하고 반대하는 것을 자랑스레 수용한다. 고스는 저서 Queering Christ(그리스도를 퀴어링하기)에서 규칙 위반이 퀴어신학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기존의 신학담론을 퀴어화하는 것도 포함한다. 퀴어를 동사로 사용할 때(퀴어하게 하다, 퀴어링하기)는 현 상황에 반대하거나 흩트리는 방식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셋째, 퀴어는 이성애/동성애, 남자/여자와 같은 기존의 본질주의적이고 이분법적인 분류와 사고를 깬다.

2) 퀴어이론
퀴어이론은 젠더 역할과 성적 지향에 대한 심리학, 사회학, 철학이론으로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일반적인 가정에 도전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이성애와 동성애로 자연스레 나뉜다든가, 이성애는 정상이고 동성애보다 우월하다는 등의 가정에 도전한다. 퀴어이론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에게서 나왔고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게일 루빈(Gayle Rubin), 이브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 등이 발전시켰다. 푸코는 고정되고 본질적인(essential) 정체성을 의문시하여 정체성이란, 담론과 지속적인 재정의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푸코는 에로티시즘이 담론적으로 형성되었다고 강조했는데, 특히 19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동성애가 정체성으로 구분되고 ‘동성’(homo)과 ‘이성’(hetero)이라는 제한된 이분법적인 형태로 말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욕망이 어떻게, 왜 심각하게 억압되었는지 보여주었다.
버틀러는, 여성의 몸과 연관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오류라고 주장한다.4 섹스, 젠더, 욕망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부정확하고, 젠더와 욕망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젠더는 내적 본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것(performative)이다. 즉 우리는 문화가 알려준 젠더 대본에 따라 여자나 남자가 되고, 우리의 모든 수행은 그 젠더를 우리 몸에 재각인한다. 그래서 버틀러에 의하면, 드랙퀸이나 부치 또는 펨 레즈비언은 젠더의 비자연적 본질을 드러내고, 그들에 의한 젠더의 패러디 수행은 섹스, 젠더, 수행 사이의 연결을 깨뜨린다. 한마디로 본질적인 섹슈얼리티나 젠더는 없다는 것이 퀴어이론의 핵심이다.
퀴어는 게이, 레즈비언 이외의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니며, 정체성을 급진적으로 비안정화(destablize)하고 어떤 정체성이든 자연스레 여기는 것에 대해 저항한다. 또한 사람들이 해부학적인 성과 사회의 젠더 역할과 개인의 성적인 욕구가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을 흔히 경험하는데, 퀴어이론은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개념이 이 점을 무시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3) 퀴어신학
퀴어신학은 섹스, 젠더, 욕망 사이가 유동적이라는 푸코와 버틀러의 개념을 전제로 하여 신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퀴어신학은 게이나 레즈비언만이 하는 것이 아니며 섹슈얼리티나 젠더만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패트릭 챙(Patrick Cheng)에 의하면, 퀴어신학은 ‘퀴어들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이다.5
챙은 퀴어신학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퀴어들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서, 퀴어들에 의한, 퀴어들을 위한 신학이다. 낸시 윌슨(Nancy Wilson)은 섹슈얼리티의 퀴어신학이 몸의 환대에 기반하며, 퀴어들에게 말한다고 본다. 둘째, 퀴어신학은 위법한 방식임을 의식하고,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사회 문화적 통념에 의도적으로 반대하면서 침묵당한 목소리와 숨겨진 관점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마르셀라 엘터스-리드(Marcella Althaus-Reid)의 저서 Indecent Theology(외설스러운 신학), The Queer God(퀴어 하나님)의 각 장의 제목은 사뭇 점잖치 못하다.6 ‘구강 섹스, 구술 신학에서의 성적인 그/그들의 역사’라든가 ‘무릎 꿇기–성 도착 신학자들’과 같은 것이 있다. 셋째, 퀴어신학은 생물학적 성 정체성과 젠더 정체성이라는 두 분류(동성애/이성애, 남성/여성)를 흔들고 깨뜨린다. 퀴어신학은 기존의 신학 담론이 말하는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분류의 경계를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스튜어트처럼 삶과 죽음, 신과 인간 같은 보다 근본적인 경계도 해체하는 작업을 한다.
퀴어신학은 기독교 신학 자체가 실로 퀴어한 활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삶, 죽음, 부활, 승천, 재림에 중점을 두고 있고, 이 모든 것은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중심과 주변, 시작과 끝, 무한과 유한, 죄와 용서에 대해 과거에 오랫동안 알고 있던 것을 뒤엎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퀴어이론이 그랬듯이, 고정되고 불변할 것처럼 보이던 두 분류를 결국 뒤흔들고 깬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4) 퀴어비평
퀴어비평은 퀴어이론, 퀴어신학을 전제로 성서를 창의적으로 읽는다. Take back the Word(말씀을 되찾아라)7 등 여러 단행본이 나왔지만, 대표적인 예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퀴어 시각에서 해석한 The Queer Bible Commentary(퀴어성서주석)이다. 이 단권 주석의 저자들은 소외된 섹슈얼리티 및 젠더 정체성을 가졌고, 퀴어이론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해체주의, 탈식민주의, 유토피아이론, 사회과학, 역사비평 등의 해석 방법론들도 사용했다.
먼저 신약성서의 한 예로 목회서신에 대한 퀴어적 해석을 여기서 소개한다. 고스와 데보라 크라우스(Deborah Krause)는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의 수사학을 게이 문화 안의 몸 만들기에 유비하여 퀴어하게 해석한다.8 목회서신은 일종의 권력 담론으로서 교회와 교회의 실천과 조직에 대해 저자의 특정 관점을 투사한다. 목회서신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는 현실과 이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바울의 이름을 차용하여 교회를 보호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로마 문화의 권력과 젠더 이데올로기 위에 교회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부풀려’ 강조했다. 저자는 동사 ‘휘기아이노’와 형용사 ‘휘기에스’를 8회 사용하여 그 비전을 표현한다. 이 단어는 ‘건전한(sound)’으로 번역되는데, 힘과 활력이라는 뜻을 내포하므로 ‘몸이 좋은(buff)’, ‘거대한(huge)’, 혹은 ‘근육질의(ripped)’이라는 번역도 가능하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이나 ‘교리’의 힘,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지니는 활력, 그리고 ‘디도’의 말이 갖는 건전함을 묘사한다. 저자는 디모데에게 교회를 강하게 지도하라고 당부하며, 훌륭한 병사, 훈련된 운동선수,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를 예로 들어 이상적인 과도한 남성성을 제시한다.(딤후 2:1-7) 이들의 업무는 ‘규칙’에 순종하고 일련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제니퍼 글랜시(Jennifer Glancy)는 목회서신의 남성성, 소위 ‘상남자’(real men)라는 개념이 다양한 남성성(세례 요한, 예수, 열두 제자, 바울)을 묘사하는 다른 정경의 문맥과 상충한다고 지적한다. 목회서신 저자의 ‘부풀려지고’ 과도한 남성적 이미지를 가진 교회 이미지는 여성 및 지위가 낮은 남성을 배제하며, 또한 남성적인 몸에 대한 이성애자의 관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일부 게이들은 에이즈가 급격히 퍼지자 근육질의 몸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과도하게 남성적인 게이의 몸은 헬스장의 기술이나 종종 위험한 스테로이드 강장제, 가슴이나 엉덩이에 넣는 보조물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근육질의 몸에 대한 숭배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게이들이 숭배하는 남성적인 아름다움은, 남성성 헤게모니의 한 형태로서 남성성 미학이라는 이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근육을 빨리 만들기 위해 쓰는 스테로이드와 헬스장에서의 몸의 미학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왔다. 남성의 가슴발달과 고환 축소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여성성을 거부하고 과도한 남성성을 신성화했기 때문에, 몸이 오히려 여성적인 특징을 발달시키기 위해 신체 리듬을 되돌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고스와 크라우스는 게이의 여성 혐오가 이성애자 남자의 여성 혐오만큼이나 파괴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목회서신의 저자가 생각한 교회의 ‘몸’이든, 일부 게이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몸’이든, 두 프로젝트는 범할 수 없고 안전하고 안정된 공간에 대한 욕망이 투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스와 크라우스는 교회와 몸에 대한 이러한 이상화가 공동체의 모습과 개인의 삶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구약성서 중에서는 호세아서에 대한 퀴어 해석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이클 카든(Michael Carden)의 호세아서 해석은 퀴어이론처럼 페미니즘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9 먼저 페미니스트 및 우머니스트를 비롯한 많은 학자는 호세아서를 ‘불편하고 불완전하며 비이성적으로 악명 높은 문서’로 평가하면서, 어떻게 가부장제의 규율들이 여성에게 문제가 되는지, 호세아서와 오랜 가부장적 해석 전통이 어떻게 여성을 늘 문제로 보는지를 고멜 및 여성의 관점에서 다루었다.10 퀴어 해석은 더 나아가 이성애 규범성에 기반한 호세아서의 은유를 문제삼는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필자 또한 이 글을 퀴어하게 마치고 싶다. 곧 카든의 호세아 해석을 전해주기보다는, 호세아 1-3장을 중심으로 카든의 해석과 필자의 생각을 곁들여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다. 다음 질문에 답하며 독자들이 직접 퀴어 해석을 해볼 것을 권한다.
호세아서가 ‘냉혈한 일처일부제와 가혹한 가부장적 이성애주의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을 보여주고, 호세아가 폭력적이고 통제광일 뿐만 아니라 불안하고 무능한 남편이라는 해석은 타당한가?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 및 부부 관계라는 은유에서 하나님은 어떤 남편인가? 등장인물의 이성애 결혼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이 은유는 어떤 면에서 이성애 은유의 한계를 보이는가? 일부일처제 은유는 본문에서 어떻게 전복되는가? 호세아서의 은유에서 야훼 종교와 바알 종교는 어떻게 다르거나 같은가? 이 은유에서 야훼와 바알의 경계는 어떤 식으로 무너지며 위험한 은유가 되는가? 섹슈얼리티는 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중심성을 갖는가? 모든 등장인물의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벌어지는가? 등장인물 중 누가, 어떻게 가장 퀴어적인가?

1 Spencer A. Rathus, Jeffrey S. Nevid, Lois Fichner-Rathus, Human Sexuality in a World of Diversity, 9th Edition(Pearson Publishing, 2013)
2 Elizabeth Stuart, “Christianity Is a Queer Thing: The Development of Queer Theology,” The Way Vol. 39. No.4(1999): 371-381.
3 Cf. Patrick Cheng, Radical Love: An Introduction to Queer Theology(Seabury Books, 2016), 2장.
4 Judith Butler,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Routledge, NY, 1990);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젠더트러블』(문학동네, 2008).
5 Patrick Cheng, 위의 책, 2장.
6 Marcella Althaus-Reid, Indecent Theology: Theological Perversions in Sex, Gender and Politics(Routledge Chapman & Hall: 2000); The Queer God(London: Routledge, 2003).
7 Robert Goss and Mona West, eds., Take back the Word(Cleveland, Ohio: Pilgrim Press, 2000).
8 Robert Goss and Deborah Krause, “The Pastoral Letters: 1 and 2 Timothy, and Titus,” in The Queer Bible Commentary(SCM Press, 2006), 684-92.
9 Michael Carden, “The Book of the Twelve Minor Prophets,” in Queer Bible Commentary(SCM Press, 2006)
10 Yvonne Sherwood, The Prostitute and the Prophet: Hosea’s Marriage in Literary-Theological Perspective(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6)


유연희 | 미국연합감리교회 소속 목사이다. 세계선교부 여성국의 아시아태평양 컨설턴트를 역임하였다. 저서로 『아브라함과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 『이브에서 에스더까지-성서 속 그녀들』 등이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구약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2019년 2월호(통권 722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