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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한국교회의 인권 이해
특집 (2018년 12월호)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제도화와 그 의미
  

본문

 

인권의 제도화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나 규범, 조직 등의 장치를 의식적으로 구축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의 목표는 인권의 가치가 사회에서 하나의 안정적인 질서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2001년에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를 들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 관계에서 발생하는 광범위한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권고를 담당하고 있다.1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에는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인권 레짐(Human Rights Regime)의 형성, 국제관계에서 인권 거버넌스(Human Rights Governance)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 국가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하였는지의 여부와 그것을 국내에서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는 선진국가로서의 발전 정도를 평가하는 주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도 국제인권규약을 이행하기 위한 각종 인권 관련 법률과 제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고 인권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는 국내 인권운동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인권 단체들은 1993년에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 참석하여 국내 인권 문제의 실상을 알렸고, 국내에서는 국제인권규범의 중요성과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2 이때 중요한 것은 인권을 주장하는 목적 즉 인권의 실현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실천적인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전략적인 것인가에 따라 제도화 과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권의 제도화 과정에서 ‘어떤 제도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는 정부는 물론 민간에도 부여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중앙과 지역의 인권제도
법무부는 2007년부터 제1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2007-2011)을 수립하여 인권 보장을 위한 국가 단위의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NAP는 국가의 인권 증진을 위한 행동계획으로 국제인권규범의 이행에 관한 최소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NAP(2012-2016)에 이어 2018년 현재 논의 중인 제3차 NAP(2017-2022)에서는 다음의 일곱 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1) 모든 사람의 생명·신체를 보호하는 사회, 2)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 3) 모든 사람이 기본적 자유를 누리는 사회, 4) 모든 사람이 정의실현에 참여하는 사회, 5) 모든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사회, 6)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사회, 7) 인권의식과 인권문화를 높여가는 사회가 그것이다.
NAP가 국가 수준의 기본계획이라면, 지역 수준에서 인권정책의 기본 방향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인권기본계획이다. 지역에서 인권제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도 들어 각 지자체가 ‘인권도시’를 표방하며 관련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면서부터이다. 초기의 이런 분위기는 다른 지자체와의 차별화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지자체에서 인권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인권조례의 제정이다. 인권의 이행체계에서 보면, 국가 수준의 헌법과 인권법령이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기구로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있듯이, 인권조례는 지자체의 인권 책무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이며 지역인권보장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3년 ‘지방정부와 인권에 관한 결의안’을 통해 인권의 지역화와 더불어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대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2년과 2017년에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주민들의 실생활에서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권조례를 지자체에서 확대하도록 권고하였다.3 아래 표와 같이 2007년에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경남과 전북이 인권조례를 제정하였고, 2012년과 2013년도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충남, 전남 등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들이 인권조례를 제정하였다.

<지자체의 인권조례와 인권기본계획 수립 현황>
지역 조례명(제정 연도) 인권기본계획
수립 시기 인권기본계획 비전
광주 광주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07) 2011/2018 시민을 품고 세계와 연대하는
공존과 포용의 인권공동체 광주
전북 전라북도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2010) 2016 존중과 공감의 인권도시 전북
부산 부산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2) 2014 누구에게나 평등한 글로벌
인권도시 부산
충남 충청남도 도민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2012) 2014 모두가 행복한 인권 충남
전남 전라남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2) 2016 義로운 고장, 인권이 살아 있는
생명의 땅 전남
서울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2012) 2013/2018 함께 누리고 포용하고 참여하는
인권특별시 서울(2차)
울산 울산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2) 2015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되는
인권도시 울산
대전 대전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조례(2012) 2015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맛나게
경남 경상남도 인권증진조례(2013) –
강원 강원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3) 2015 사람/환경/평화, 인권道 강원
경기 경기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3) –
경북 경상북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3) –
충북 충청북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3) 2016 모두가 함께 하는 인권 충북도 실현
세종 세종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4) 2016 인권중심, 행정중심 세종시
대구 대구광역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4) –
제주 제주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2015) 2017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 지자체별 인권기본계획 참조 및 재구성

두 번째 단계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제도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인권정책을 행정의 주요 지향점으로 삼은 인권기본계획의 수립이다. 인권기본계획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종합계획으로 지방정부의 행정을 인권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통합하는 실행계획이다.
2018년 10월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인천을 제외한 16곳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였고 인권조례에 근거하여 경남, 경북, 대구, 인천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통상 4-5년 단위로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광주와 서울이 유일하게 2차 인권기본계획까지 수립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권조례의 제정과 인권기본계획의 수립이 실천적이기보다는 전략적이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남 지역의 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과 경남, 경북의 인권조례 제정 이후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충남의 경우는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빠른 시기인 2012년에 ‘충남 도민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그러나 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6년이 지난 2018년 2월 2일, 충남도의회는 인권조례 중 차별금지 항목을 문제 삼으며 “인권조례가 도민 간 갈등을 부추기고 동성애를 조장하고 있어 이로 인한 인명 손실이라는 흠결이 있다고 판단된다.”라며 인권조례를 폐지하였다. 이에 대해 충청남도는 4월 16일 충남도의회가 재의결 처리한 충남인권조례를 공포하지 않고 대법원에 폐지조례안 재의결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지만, 도의회는 5월 10일 자로 폐지조례안을 공포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충남 인권조례는 폐지된 지 4개월 만인 2018년 9월 다시 발의되었지만, 이런 종류의 갈등은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확대되면서 기초단체에서도 제정된 지 겨우 5개월이 된 인권조례를 폐지해버리는 일도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는 인권조례 폐지 결정에 항의하며 “한국의 일부 보수 종교단체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근거한 차별 보호를 약화시키려 한다.”라며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였다.4
경남과 경북 지역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표준조례안에 근거해 2013년에 각각 ‘경상남도 인권증진조례’와 ‘경상북도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그러나 조례를 제정한 후, 조례의 이행기구를 따로 두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실생활과 연관된 인권기본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상황이다. 인권조례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행 기구도 서울과 광주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인권규범 마련 이후에 실질적인 조치 마련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자체에서 조례 제정을 빠르게 진행했어도 이행에 소극적이거나 인권조례 제정 이후에 조례를 폐지하여 인권행정 전체를 무효화시킨 것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부터 인권행정에 대한 실천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인권조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라는 하향식 방식으로 확산되었으며 쉽게 제정된 만큼 이 조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형식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인권이 정치 세력에 의해 휘둘리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인권조례를 제정한 후 국제인권규범과 인권의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내용은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따라서 인권조례 제정 유무로 지자체의 인권도시에 대한 의지를 파악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인권기본계획이라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으로 인권행정에 대한 의지를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역적 특성에 근거한 인권기본계획의 수립
인권기본계획의 명칭과 구조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 형식은 인권정책의 비전과 목표, 전략과 구체적인 추진 과제로 구성된다. 비전에서는 인권기본계획을 통해 실현하려는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목표와 전략을 통해 어떠한 세부 과제들로 비전을 구체화할지를 보여준다.
각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인권도시를 선포한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인권평화도시’로 이어가고 있다. 광주는 민주화사업을 계승하면서 ‘아시아 인권헌장’을 선포하여 ‘공존과 포용의 인권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도 2012년에 인권도시를 선포한 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서울의 특성을 반영하여 시민의 관점에서 ‘인권을 누리고 포용하고 참여하는’ 글로컬 도시(Glocal city)를 기획하고 있다. 부산은 국제교류의 지리적 이점을 배경으로 ‘글로벌 인권도시’를, 제주는 4・3항쟁을 근거로 ‘평화와 인권의 섬’을, 강원도는 38선으로 분단된 지역이면서 세계적 생태환경의 보고를 자원으로 ‘사람/환경/평화’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남은 의병항쟁과 민주화운동의 진원지임을 근거로 ‘義(의)로운 고장’을, 세종은 계획된 ‘행정도시’의 특성을 인권 비전에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들은 인권도시의 근거를 각 지역의 지리·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경험에서 찾고자 하며 권력에의 저항, 민주화운동에 기반하여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권도시로의 근거를 현실의 제도화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의 문제이다. 인권을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실생활과 연관시켜 구체화하는 것이 인권기본계획의 지역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 지자체는 지역민들의 인권의식을 조사하고 지역의 인권실상을 파악하여 인권기본계획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부산, 강원, 전북, 충북, 세종 등에서 지역민들과 전문가들의 인권의식을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를 보면 공통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와 인권교육의 필요성, 지역민의 권리 향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흥미로운 점은 공무원이 지역민들에 비해 인권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인데, 지역 인권 문제에 책임이 큰 공무원들과 지역민들 간의 인식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5

한국 사회 인권의 제도화와 의미
한국 사회에서 인권조례나 인권기본계획의 수립은 일정정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를 이행하기 위한 인권담당관이나 인권센터 등의 설립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구체적으로 인권의 제도화 과정에는 계획을 수립하는 전문가와 제도를 이행하는 행정기관과의 비대칭성, 관료주의적 행정체계와 인권행정의 불균형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인권의 원칙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료제,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행정절차와는 사실상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또한 인권행정의 실행이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며, 행정가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인권의 원칙을 견지하기보다는 관료주의적 중립성으로 인해 인권에 대한 외부세력의 도전에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따라서 인권행정의 이행을 위한 제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 인권의 안정적인 제도화의 과정은 인권보장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현재 인권보장의 대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나누고 있는지, 또한 그 구분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1 국가인권위원회, 『2002 연간보고서』
2 인권연구소 창 미출간 자료집, 『인권활동가에게 듣는 인권역사』(2017)
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기본조례 재・개정 권고”(2012. 4. 14.) 참조.
4 “인권조례와 동성애,” 「충북일보」, 2018년 5월 17일.
5 상지대학교 산학협력단, 『강원도 인권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최종보고서』(강원도, 2015)
충북발전연구원, 『충청북도 인권증진 기본계획(2016-2020)–최종보고서』(충청북도, 2016)


이정은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인권사회학, 사회변동론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5월호(통권 7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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