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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2] 한반도의 평화, 평양과 뉴욕 방문기
특집 (2018년 11월호)

 

  한반도 평화아리랑
  - “아라리가 났네”

본문

 

새로운 한반도-북한이 변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하면서 평양과 삼지연과 백두산 천지에서 새로 태어나는 한반도를 꿈꾸었다. 그 꿈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식민과 분단의 역사를 관통하며 고난 속에 농익은 꿈, 온전한 해방과 적극적 평화를 이루는 꿈이다. 그 꿈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와 원한을 치유하고 화해하는 꿈, 분단과 냉전의 세월이 만들어낸 민족공동체의 이질성을 조화로 극복하며 ‘제3의 길’을 찾아가는 꿈이다.
그 꿈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 된 채 전쟁의 위기를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온 한반도에 종전을 선언하는 꿈, 한라와 백두에 이르기까지 비무장지대를 확장하는 꿈이다. 그 꿈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자주성의 토대 위에 판문점–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대체하는 동북아시아 다자 간 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꿈, 미래의 일곱 세대가 동북아시아 공동체 건설의 새 길을 열어가는 꿈이다. 그 꿈은 한반도 주민들의 대화와 만남의 의지가 분단정권과 강대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절되지 않는 일상의 평화를 실현하는 꿈이요, ‘한반도민’들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며 공동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꿈이다.
필자는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북한 사회의 변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의 사회체제는 화석화된 부동의 체제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응답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유동적이며 유기적인 체제이다. 평양은 사회주의 정상국가의 수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대동강을 품에 안으며 기획된 건축도시 평양은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며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평양의 ‘두뇌’라는 김일성광장과 평양의 ‘심장’이라는 옛 장대현, 만수대 언덕은 주체적 사회주의 정체성을 강조한 주체탑거리와 새롭게 조성된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창광거리, 창전거리, 청춘거리 등과 조화를 이루어나가고 있다. 또한 이 유기체적 시공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평양 주민들의 활기찬 ‘일상’은 대규모 환영 인파와 집체공연에서 나타난 ‘동원’과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9월 19일에 방문한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교원대학에서 연마되고 있는 문화예술 및 과학기술교육의 토대와 기능은 다양한 미술 분야의 실기를 통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예술을 꽃피우는 만수대창작소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북한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며,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선진교육에 투자하면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문수물놀이장과 릉라곱등어관 등으로 대변되는 평양 시민들의 놀이문화는 평양대극장의 공연문화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환영만찬을 베푼 목란관의 북한식 정통 한정식과 9・19 평양공동선언문 발표 이후 환영오찬을 베푼 옥류관의 냉면정식은 최근 문을 연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의 해산물 음식들과 조화를 이루며 평양 주민들의 삶을 다채롭게 엮어가고 있다.
평양산원과 옥류아동병원에서 평양애육원(유치원과 유아원)과 평양양로원으로 이어지는 사회복지체계는 일종의 사회주의 복지시스템의 표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만 오랜 대북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개발구계획에 진보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수도가 갖는 차별성 기획으로 인해 서해 항로와 삼지연을 오가며 바라본 북녘 땅에서 평양은 여전히 절대 유일의 도시로 남아 있다.
한편 많은 외부인들에게 평양의 안과 밖은 인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미국이 주동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를 일상처럼 겪고 있는 북한 사회주의체제에서의 인권 상황을 서구적 관점의 정치적・시민적 권리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은 그 적합성에 문제가 있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차선책’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감으로써 북한 인민들의 보편적 인권을 위한 사회정치적 환경과 경제적 환경을 함께 증진시켜 가는 것이다. 적어도 북한 인민들의 삶에 일차적 피해를 가하는 대북제재를 완화 혹은 해제하면서 거기에 상응하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논해야 할 것이다. 냉전 프레임에 기초한 북한의 인권 문제 개입은 북한의 체제 문제와 정치적으로 깊이 연관된 것이기에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체제 위협의 요소로 간주되어 오히려 북한의 자발적 인권 환경 개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방북 기간에 이루어진 평양 주민들과의 직・간접적 만남을 통해 재확인된 상식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인권과 결부된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키는 방안은 자본주의 체제와 다른 차원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협력할 때 북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주권재민의 형상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과 북 사이의 관계 형성에 상호 배움과 상호 변혁의 차원을 담아낼 수 있다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 공존의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보편적 ‘한반도 인권’의 증진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불가역적 시간의 강을 건너다
9월 18일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시간에 특별수행원들은 정계, 경제계, 시민사회계로 나뉘어 별도의 부문별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개신교를 대표하여 참여한 필자가 속한 시민사회계에는 천주교의 김희중 대주교님, 불교의 원택 스님, 원불교의 한은숙 교정원장님이 종교계를 대표하여 문화예술계, 체육계, 민화협 등을 대표하는 인사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북측에는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 의장을 필두로 조선종교인협의회 강지영 회장 등이 참여하여 사회문화교류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필자는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소위 ‘88선언’)에 나타난 통일 5대 원칙 중 ‘민의 참여’ 원칙을 소개하며, 민간교류가 분단 정권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상시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북측은 김영대 민화협 의장의 모두발언과 강지영 회장의 추가 발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한반도 평화는 냉전식민주의의 극복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이는 ‘우리 민족끼리’가 지향하는 ‘열린’ 자주성을 토대로 일제와 분단식민주의의 근대성을 극복하면서 한반도 주변 동북아시아 강대국들이 평화의 길로 나가도록 설득해나갈 때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해 자주적 민(民)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분단체제가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있는 식민성 곧 분단과 냉전의식을 화해와 평화의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번 방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의 조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리더십의 표현 양식에서 나타났다. 자국의 부족함과 초라함을 솔직한 언어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인민 대중 앞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15만 평양 주민 앞에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소개하고 연설하게 한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은 이미 ‘극장국가’의 절대 유일한 패권자의 자기연출 방식은 아니다. 9월 18일 환영만찬에서 소개된 남측 마술사 최현우 군의 텔레파시를 주제로 한 마술에 호응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의 모습은 일상의 놀이를 함께하는 지도자의 인민성과 소통의 역량을 드러내고 있다.
필자가 북한 수뇌부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런 상호 존중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김영철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 의장,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일성 가문의 집사 김창선 비서실장 등을 만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하 조그련)과 교회협이 세계교회와 더불어 어떻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기여했는가를 설명하며 조그련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수용성은 북한 사회에서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했다. 화해와 협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상생과 공영의 평화공존 시대에 북한 사회주의체제 속 기독교가 ‘인민의 아편’이요 ‘미제의 앞잡이’라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극복하고, 인민의 사회정치적・경제적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기독교로 변화, 발전될 때 비로소 그 지속 가능성은 담보될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기간 내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수뇌부는 비핵화를 포함한 항구적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정책은 북한식 사회주의체제 구축에 중점을 둔 김일성 주석과 선군정치로 체제 안정에 집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한 사회주의 경제건설과의 병진노선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 개발 완성을 공표한 후, 올해 신년사와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화로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인민에게 쌀밥을 먹이고 싶다.”라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 실현이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정권 안정과 평화체제를 보장받으면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위해 ‘미래 핵’을 선제적으로 포기하는 전략적 평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완화, 남북 및 세계경협과 평화협정 체결 등 일련의 상응조치가 취해지는 가운데 ‘현재 핵’에 대한 비핵화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5.1경기장에서 행한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15만 평양 주민들은 진심으로 환호하며 응답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이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깊이 되새겨지고 있다.
9월 19일 옥류관 환영오찬 시 평양공동선언문을 받아 정독하면서 필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불가역적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한반도에 실사구시를 이루는 평화의 염원은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이어 4・27 판문점공동선언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이번 9・19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한 실천적 합의서이다. 평양선언에 담긴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는 사실상 종전선언이며, ‘미래 핵’ 포기를 위한 선제적 제안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선언이다. 또 개성공단과 금강산사업의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의 상시화는 전면적 남북교류의 신호탄이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작 ‘빛나는 조국’을 재구성하여 연출한 5.1경기장 집단체조공연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평화, 새로운 미래”를 향한 한반도 새 역사 만들기의 출범식이었다. 미국이 강대국의 오만에서 비롯된 일방주의로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고 상호주의에 입각한 평화 프로세스를 이루어간다면 한반도 평화의 시곗바늘은 결코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9월 20일 삼지연과 백두산 천지 방문은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구호가 담고 있는 전 민족적 염원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감동적인 역사의 시공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새로운 한반도의 예표였다. 다시 한 번 완전하고 가시적이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평화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발길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천지를 오르내리는 길목에 남북 두 정상 일행과 만나 가수 알리의 열창과 함께 펼친 <진도아리랑>의 난장(亂場)은 평화와 공영의 ‘아라리’가 난 한반도를 상상하게 하였다. ‘아라리’는 전통사회의 피지배 계급인 향촌 민중의 노래요, 여성적 해방의 정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노래이다. 그 날이 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의 아리랑, ‘아라리’ 난장이 펼쳐지리라. 그 날이 오기까지 수난당하는 민중의 모성을 동력으로 ‘한반도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천지와 백록담의 물을 합친 그 새로운 조화의 물에 붓을 적셔 “평화,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 역사를 함께 써나가야 한다.

교회–남과 북, 그 사이에 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기간 내내 필자의 기다림은 조그련 강명철 위원장을 향해 있었다. 지난 6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와 한반도에큐메니컬포럼에서 만난 조선종교인협의회 리혁철 선생과 동행하며 강명철 위원장과의 만남을 기대했지만, “북남수뇌회담 목표에 복종”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이번 방북단에 참여한 장상 박사님과 함께 옥류관 오찬석상에서 김영철 통전부 부장에게 강명철 위원장과의 만남을 부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리혁철 선생을 통해 안부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북남수뇌회담’에 집중하려는 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한편으로 이해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조그련의 입지와 존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필요성을 느꼈다.
삼지연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평양에서 다시 제1호기로 서울을 향해 돌아오는 길은 전환의 역사가 부여하는 책임감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1호기 일등석 공간에서 정부 관료들, 정치인들, 재계 대표들, 한반도 전문가들과 평양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을 전망하며 의견을 나누면서 필자의 마음을 스쳐가는 우려가 있었다. 남북관계로 인해 남남갈등의 덫에 걸린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전환을 긍정적으로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반공친미냉전 정치학의 논리로 무장하고 북한을 악마적 존재로 신학화해 온 한국교회는 이 전환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한국의 민주화운동 이후 세대들은 이런 변화가 이끌 한반도 통일의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가? 북한 인민들은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에 주체적이며 자주적인 성찰을 통해 참여하며 주권재민의 민주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분단체제를 통해 권력을 재생산해온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들은 이 변화 앞에 어떤 변신을 꾀할 것이며, 자주적 시민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 분단체제에 기생하며 챙겨온 경제적・군사적・지정학적 국익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분단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깊은 연관성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교회가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자신들의 선교의 과제로 수행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교회 안에 깊이 내재된 냉전의식이다. 반공신학의 기조 위에서 북한선교를 이해하는 교회들은 암묵적으로 북한체제의 전복을 전제로 한 북한교회의 회복과 재건을 선교의 목표로 세우고 있다. 반면에 평화신학에 기초하여 북한선교를 이해하는 교회들은 남북 간에 형성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교류의 활성화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함으로써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을 선교의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조그련을 북한 정부의 어용종교단체로 규정하고 지하교회의 실체를 인정하며 이들과 접촉하면서, 북한의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며 탈북자를 돕는 난민선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조그련을 상대로 남북교회의 교류와 사회봉사선교의 실천을 구상하는 동시에 평화통일을 위한 지정학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평화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후자는 전자를 한반도에 전쟁을 야기시키는 극우반공세력으로 폄훼한다.
따라서 민족공동체를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의 길로 이끌기 위해 한국교회의 내부개혁은 필수적 선교 과제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념과 정치를 앞세워 냉전 논리에 편승하였고, 민족의 분단과 고통을 외면하였으며,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살아오지 못했다. 평화의 사도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지역 간, 계층 간 갈등 속에 화해와 협력을 실천하지 못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일을 외치고, 경쟁적 대결 논리로써 대립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분단을 고착시킨 죄를 범하였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죄책 고백이 자주평화통일의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헌신의 결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주적 평화공존 시대에 남한의 기독교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기독교의 존재 방식인 조그련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소통과 교류협력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남한 기독교가 작동하는 방식인 개교회 및 교파 중심주의 소통방식을 극복하고 남북교회 교류를 위한 하나의 소통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조그련과 동역하며 지난 30년을 동고동락해 온 교회협은 복음주의권 교단들과 대북 사역기관들을 포괄하는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을 구성하고 교류협력을 위한 공적 통로를 작동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전환기 한반도 화해통일선교는 평화와 공영, 화해와 통일을 위한 제반 환경조성에 힘써야 한다.
특별히 남북 기독교인들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 조그련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행동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면서, 북한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봉사사역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 교파주의를 초월한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공교회를 건설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는 화평이신 하나님이시다. 원수 된 것, 즉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시며 치유하고 화해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안에서 평등과 사랑,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고 온전한 조화를 이루며 나눠진 둘을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남남 갈등의 원죄인 남북 분단의 사이에 십자가에 달린 채 가로질러 누워 계시며, 분단의 죄악을 십자가에 못 박고 진리 안에서 소통하라고 초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이에 계신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소통을 통해 남과 북에 요청하시는 새 사람, 새 세상은 어떤 것일까? 그 새로운 존재와 새 한반도를 위해 우리가 상대화하고 극복하고 끝내는 폐기해야 할 신조와 율법과 법조문, 이데올로기와 체제는 무엇일까를 깊이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남과 북의 화해의 사도로서 기독교인들이 냉전의식을 평화의식으로 전환하고 일상에서 ‘분단 넘기’를 실천함으로써 ‘사이에 선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 새로운 존재의 삶 안에서 새 한반도는 잉태되어 성장해갈 것이다.
필자의 마음속에 한반도 평화아리랑이 들려온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리리가 났네. 만나니 반가우나 이별을 어이해. 이별을 하라거든 왜 만났던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


이홍정 | 영국 버밍햄대학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목사이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로 일하고 있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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