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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10월호)

 

  세계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대표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보고서
  

본문

 

* 이 글은 1987년 11월 9-16일에 세계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사회과학원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박승덕과 대담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또 기독교 신학과의 접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이다. 영어 원문은 김흥수 엮음, 『WCC 도서관 소장 한국교회사 자료집: 조선그리스도교련맹편』(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138-142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방문보고서의 일부만을 번역한 것이다. 번역은 한강희 박사가 하였다. - 편집자 주

박승덕 세계교회협의회 대표단을 뵙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전에 드웨인 엡스(Dwain C. Epps) 씨와 아리에 브로우워(Arie Brouwer) 목사가 이끄는 미국NCC의 대표단을 접견한 바 있습니다. 특별히 드웨인 목사와는 좋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최근 주체이념 교육의 문제를 다룬 새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김 위원장은 이념적 배타주의를 반대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드높이는 모든 이념은 우리 자신의 이념에 의해서 수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저희의 근본 기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박승덕 교수 발제 “주체사상과 인간 운명의 형성”
이전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것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와 레닌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반뒤링론, Anti-Dühring)에 몰두할 뿐이었죠. 과거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물음이 종교나 신학에 속한 것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주체사상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점을 가르칩니다. 인간의 운명은 어떤 종속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1세기 기독교 역시 억압당하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 이러한 요구는 매우 강력해서 그 황제조차도 이러한 요구에 저항할 수 없었죠. 이러한 사실은 군중의 이념적인 요구를 결코 묵살할 수 없다는 예이기도 합니다.
주체사상은 자주성(independence)을 인간 존재의 본성으로, 즉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국가 또한 자주적 존재입니다. 자주성은 예속, 노예근성, 패권과 반의어입니다. 인간 역시 창조성을 갖고 있어서 세계를 주조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consciousness)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를 한국어로는 ‘자주성’으로 표현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 관계 전체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포이어바흐)으로 다루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지배자와 창조자인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이해하고 종교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라는 것이 실제와는 모순된다는 이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민중의 열망과 관련해서 종교를 다룰 수 없었고, 심지어 오늘까지도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시대와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진보적 신학자들은 성서 해석에 관해 아주 광범위하게 논쟁하곤 합니다. 이들은 역사비평에 근거해 비판적으로 성서를 연구하죠.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칼 바르트(Karl Barth) 등이 보여주는 성서에 대한 해석은 서로 꽤 다릅니다. 현대 종교인들이 기록된 그대로 성서를 믿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입니다.
더욱이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인간의 지배를 비판하며 혁명적인 방식의 자본주의 사회 개혁을 위해 투쟁합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자본주의적 부패를 비판합니다.(리쳐드 숄, 제임스 콘, 해방신학 등) 민중신학은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신학자들은 파시스트적 체제에 대항해 투쟁하는 중입니다.
주체사상은 종교가 어떻게 민중의 열망을 다루는가의 관점에서 종교가 읽혀져야 함을 요청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독교가 어떻게 억압에 저항하는가에 근거해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간주한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섭니다. 단순히 종교인들의 신념이 사실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에만 근거해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억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많은 예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öffer)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공모를 꾸밀 정도로 그 독재자와 대결했습니다. 종교인들은 핵무기와 경제적 위기에 대항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남한의 기독교인들도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김일성 위원장은 종교인들과 협력했으며, 항일운동에 참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북한의 첫 번째 부위원장은 기독교 목사(박창호)였습니다.1
주체는 인간 중심적 철학사상입니다. 인간은 세계로부터 고립되지도 않고, 세계도 인간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에서 인간은 자주적인 개체가 아닙니다. 경제적 필요의 한 요소로서 사회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사회는 생산구조가 발전할 때 진보합니다.
주체사상은 ‘인간’, ‘인간에 의해 창조된 가치’, ‘인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세 요소로 구성됩니다. 사회운동에서는 주체와 물질 이 두 요소가 존재합니다. 주체사상은 주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의 물질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주체입니다. 지도자의 강력한 결집력을 통해 사회운동의 주체들을 규합할 때 사회정치적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역사의 모든 성과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 기인합니다.
‘자유와 평등’의 원칙들은 사회정치적 완전성(integrity)과 반드시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체들을 연합하게 하는 혁명적인 동지적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물질적인 삶과 사회정치적인 삶 중에서 후자가 더 중요합니다. 사회는 개인의 관여나 참여를 통해서 개혁되어야 합니다. 사회(국가)는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단위입니다.
통일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중대 사항입니다. 그렇기에 통일은 두 이념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애국자와 반역자 사이의 투쟁입니다.
국가 사이의 진정한 우호관계는 평등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주성과 창조성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각자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모든 국가들과 연합하도록 합시다.


나이난 코쉬(Ninan Koshy, 세계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국장) 주체 문제와 기독교 신학과 관련된 지식에 대해서 명쾌하게 발표해주신 박승덕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야로슬라프 온드라(Jaroslav Ondra, 체코슬로바키아 에큐메니컬 교회협의회 국제부 총무)박승덕 교수님의 강의가 주체사상과 기독교 사상 사이의 상호 이해를 위한 의미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고 보여집니다. 일단 저는 역사적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창립총회가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었을 때, 미국의 교회학교 운동을 대표하는, 차후에는 미 국무장관이 된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라는 미국 대표가 세계교회협의회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적인 기독교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덜레스의 제안은 제 스승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요세프 로마드카(Josef Hromadka) 교수에 의해서 즉시 거절되었죠. 로마드카 교수는 덜레스가 말한 것이 기독교인의 과제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과제는 공산주의 사회 내에의 기독교적 존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유럽에서 교회의 번영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저는 주체사상을 이해하면서 그러한 가능성이 북한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배우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에릭 와인가르트너(Erich Weingartner, 세계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전문컨설턴트) 저는 논의를 좀 더 분명하게 하고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체사상은 자주성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민족 자결권과 해방이라는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가 점점 더 상호 의존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국가도 활발한 무역, 기술과 사상의 교환, 그리고 다른 국가와의 상호 관계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또 진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체사상은 자주성과 상호 의존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두 번째로 박승덕 교수께서는 주체사상의 핵심 개념으로서 국가를 두드러지게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각각의 역사적 시점에 있는 모든 한국인들이 주로 관심하는 바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반도처럼 단일민족국가는 거의 소수입니다. 오늘 세계에서 일어나는 만성적인 갈등의 일부는 독립국가들 내 소수민족의 존재에서 기인합니다. 가령 스리랑카의 타밀 사람들이나 일본에서 한국인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국가나 소수민족이 자주성을 주장함으로써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박승덕 마르크스는 국가의 자주성에 대한 물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국가 없이도 존재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르크스는 계급구조와 계급해방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주체사상에서는 만일 국가가 존재한다고 할 때, 계급만 있을 뿐이라고 간주합니다. 국가가 억압에서 자유로울 때에야 비로소 계급해방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체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을 위한 최우선의 과제는 민족통일입니다. 우리가 이해해는 바에 따르면 양 국가의 두 체제 사이의 대립은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는 체제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입니다. 무엇이 하나의 국가를 존속시킵니까? 자주성을 살아 있게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아마 소수민족이 훨씬 더 심각하게 느끼는 부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수민족이 권리를 박탈당하기 더 쉬운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인들의 슬로건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권리를 가지고 살자”입니다.
러시아의 한 마르크스 전문가는 독일이 한 국가라고 주장한 독일민주공화국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비판했습니다. 그 전문가에 따르면 동독과 서독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회적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체제 때문에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언어와 혈통입니다. 한국 사람은 세계 어디에 살고 있든지 한국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주성을 옹호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타밀의 문제는 타밀인들의 자주성이 완전하게 존중될 때 스리랑카 내부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또 상호 의존성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물론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국제적인 연대와 관련해서 가장 잘 이해됩니다. 우리는 국가의 자주성에 기초해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두 경향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하나는 국가의 자주성을 무시하면서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 연대를 희생시키면서 국가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어느 국가가 자신의 자주성을 방어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종속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만일 한 국가가 국제적 연대관계를 맺지 않을 경우 그 국가는 고립주의로 나가게 됩니다. 국가들 사이의 우호 관계는 오직 각 국가가 존경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대와 우호 관계를 지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주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권력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역사는 항상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발전에 희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문화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공해왔습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의 발전이 보여준 속성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경제적으로 약한 국가가 오히려 문화적 관점에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강대국의 국가적 배타주의와 약소국의 국가적 허무주의 모두에 반대합니다.
나이난 코쉬 저는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유럽철학 사이의 방대한 상호 영향에 대해서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아시아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박승덕 교수께서는 주체사상 가운데 어떤 부분이 세계의 철학 전통과 사조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왔다고 보십니까?
박승덕 주체사상은 인간 문화의 이해에 근거해 있습니다. 이 사상은 본질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모두의 문화적 성과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학 전통에는 지성 이론과 감성 이론 사이에, 의식 중심과 가치 중심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인도, 중국, 한국에서 우리는 인간, 가치, 윤리의 경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세계관에서는 물질적 측면과 인간 의식이 우선합니다.
주체사상은 어느 한 측면만을 보는 것을 지양하고 가치와 객관적 세계를 결합합니다. 인간은 중심에 있으며 의식성과 가치를 하나로 엮습니다. 주체사상은 과학과 이념, 실존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의 갈등을 극복해 왔습니다.
엘리자베스 살터(Elizabeth Salter, 영국교회협의회 국제부 위원장) 저는 박승덕 교수님의 말씀 가운데 종교인들과 종교를 구분 짓는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는 죄인과 죄를 분리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을 믿습니다. 인간성은 이념과 무관하게 각 인격을 존중하는 전제조건이 됩니다. 이는 서로를 진지하게 존중하려는 평화 만들기를 위한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승덕 이 점에서 혁명적인 동지적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상호 신뢰성은 동양의 전통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군가에 빚진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 신실함의 의무를 저버린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것이 됩니다. 자유, 평등, 신뢰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신뢰에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상당히 부도덕하다고 말씀드리고자 합
니다.
게르하르트 쾨벌린(Gerhard Köberlin, 독일개신교 교회와 선교협의회 아시아 국장) 유럽 철학에서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갈등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서를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것과 같은 일부 새로운 성서 해석은 성서가 종종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결합한다고 봅니다. 신약성서에서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개념은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극복합니다.
박승덕 관념론의 기원에는 말과 정신이 있습니다. 유물론은 물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관념론보다는 유물론에 더 관심합니다. 그 전제는 유물론의 한 결과인 유물론적 일원론(materialistic monism)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다원주의가 아닙니다.
저는 성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서가 관념론적이냐 유물론적이냐 하는 문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성서 속의 이야기들이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그 이야기들에서 도덕적 교훈이 도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유물론을 지지하느냐 혹은 관념론을 지지하느냐가 국가의 분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유물론이든 관념론이든 이 두 이념 모두 인간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Hegel)에서 배웠습니다. 주체사상은 이를 결합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대화가 공산주의 철학자와 기독교 신학자들이 함께 대화하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게르하르트 쾨벌린 그렇다면 동학혁명이 주체사상의 전조인지 좀 묻고 싶습니다.
박승덕 서독 사람들은 항상 이 질문을 던지더군요. 이 물음은 중대한 오해에서 비롯합니다. 물론 항일운동과 반미투쟁에서 몇 가지 진보적인 측면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동학은 그 구조에서나 외양에서 주체사상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동학사상은 외세에 저항하는 애국주의 운동입니다.2 주체사상 역시 외세의 공격에 대항합니다. 하지만 자주성이 한 국가의 삶과 영혼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있죠. 주체사상은 우리를 자주성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견인해 갑니다.


1 원문에는 ‘박창호’로 기록되어 있으나, 홍기주 목사이다. 홍기주 목사는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 편집자 주
2 박승덕은 동학혁명을 외세와의 관계에서만 보고 있지만 최근 북한의 역사가들은 1920-30년대에 활동한 천도교 철학자 이돈화의 『新人哲學』을 분석하면서 사람의 지위를 신의 지위로 높인 철학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돈화의 책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 연구서이다. - 편집자 주



한강희 |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신학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숭동에 있는 낙산교회 담임목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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