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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10월호)

 

  공산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의 사상적 화해
  

본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물러가면서 한반도의 북쪽은 공산주의 러시아가 점령하고 남쪽은 자본주의 미국이 점령하면서, 한반도는 자본주의 남한과 공산주의 북한으로 분단되었다. 자본주의의 미국은 특히 기독교의 나라이기에 남한에서는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반대로 북에서는 무신론적 공산주의 정치를 펴나갔기에 기독교가 크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필자는 북조선의 사상을 무신론적 공산주의로 전제하고, 앞으로 남과 북이 사상적으로 어떻게 서로 화해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남의 기독교인들 간에 사상적 화해가 이루어져야 실제적인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 이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공산주의 정권이 북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김일성 정권을 세우는 총선거가 있었다.(1946. 11. 3.) 이날을 하필 주일로 잡은 데부터, 김일성의 반기독교적 정서가 드러났다. 성수주일 신앙에 철저한 북의 기독교인들은 이 선거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북의 목회자, 장로, 집사, 교인들이 주일날 치러지는 선거를 거부하고 예배에 참석했던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김일성 정권은 기독교를 무섭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후 북의 기독교인들은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남과 북의 관계는 부침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계가 악화된 상태였는데, 오늘날 다행히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이어서 남과 북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이 만나서 분단의 길을 평화의 순례길로 만들어가고 있다. 꽉 막혔던 분단과 전쟁의 길이 점차 평화의 순례길로 바뀌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 민족의 대명제인 ‘한민족의 하나 됨’, 즉 남북의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있었던 갈등과 싸움으로 인한 상처와 그 아픔들을 조속히 추스르고, 남과 북이 하나로 대동단결해야 한다. 과거에 남과 북은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던 상대였지만, 이제는 한 형제로서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한 집안에서도 형제끼리,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과 충돌이 있게 마련이고, 그렇게 싸우다가도 서로 화해한다. 한반도에 사는 남과 북의 한민족 모두는 비록 과거에는 생각과 이념이 달라서 서로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줌으로써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 동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주체사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북의 동포들은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기독교의 신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70년이 넘도록 대결하며 살던 남과 북이 하나로 뭉쳐서 평화롭게 살려면 상대방의 이념과 삶의 방식을 서로 배워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장점은 받아주고, 단점은 고치고 바꿔가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북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당하고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북한 동족들을 큰 이해심을 가지고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북에서 공산당에게 심한 핍박을 당하여 남쪽으로 피난 온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들이 많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지만, 아직도 살아 계신 분들과 그 핍박의 아픔을 전해들은 후손들은 지금도 북의 공산주의자들을 만나는 일을 꺼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북한에 사는 동포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원수를 이기는 길은 그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북의 동포들을 친구로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들겠지만,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완전한 통일 국가를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북의 공산주의자들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기독교 박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산주의 시조인 마르크스가 왜 종교를 거부하였는가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기독교 신앙을 ‘아편’이라고 혹평하면서 기독교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를 깊게 파악하면 북의 사상을 이해하는 단초를 열 수 있다. 그리고 북의 공산주의자들은 남의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를 폭넓게 공부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특히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의 삶과 교훈을 잘 알아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파악하여야 한다. 이제 남한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동포들을 만나서 갖춰야 할 자세를 크게 두 가지만 적어본다.

북한 동포들의 삶의 현실에 우선 관심을 갖자
마르크스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에 관한 차이점”에서 기독교를 처음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 논문에서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를 희랍 세계의 첫 계몽자로 높이 찬양했는데, 그 이유는 땅 위에서 억압당하고 눌림을 당하던 인생들이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내밀고 도움을 청할 때에,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 괴물에 대해 처음으로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당대의 기독교를 거부한 것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에피쿠로스와 같은 자세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땅 위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앞장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종교의 소외성을 비판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기독교의 소외성을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이른바 헤겔의 ‘절대정신’을 신학의 ‘죽은 영’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신학은 역사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현실 밖의 초월, 즉 하나님을 믿는 신학이기에 그런 신앙은 역사 속에 사는 민중들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종교는 거부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올바른 종교나 철학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초점을 맞춰서 그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마르크스는 기독교가 초월을 강조함으로 인해 현실 안에서 아파하는 민중의 현실을 간과하는 잘못을 범한다고 비판하면서 기독교를 거부했다.
1842년 1월에 마르크스는 “슈트라우스와 포이어바흐의 중간자로서의 루터”라는 짧은 논문에서 루터의 주장 곧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수 있고 또 기쁘게 그것을 해주신다.”라는 내용을 반박했다. 인간이 약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을 보상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마르크스는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루터의 하나님 신앙이 인간의 무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강할 때가 아니라 인간이 약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루터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강함을 높이 세우는 포이어바흐를 찬양했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들어보자.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공부한 자나 못한 자나 당신네 예수 믿는 자 모두는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한 절반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본질을 그 본래의 모습대로 숨김없이 당신네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사변적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여! 내가 당신네들에게 충고한다. 진짜 당신네들이 사물들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실 그대로 접근하려면, 다른 말로, 당신네들이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이제까지의 사변적인 철학의 개념이나 전제에서부터 당신네들을 풀어버리시오. 그리고 당신네들이 진리와 자유에 이르는 길은 오직 불의 개천(철학자 포이어바흐)을 지나는 길 밖에 없소.1


마르크스는 당대의 교회가 역사의 현실적인 문제와는 동떨어지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중의 삶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현 세계 안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민중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종교가 그 반대의 결과를 만든다고 비판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철학 즉 ‘철학의 세계성’은 이 세상사를 초월해 있는 당대의 기독교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역사 안에서의 구원은 절대적인 초역사적 ‘정신’(Geist)에 의해서 보장될 수 없고, 오직 인간의 현실적 이성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현실 안에서 인간의 구원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구속해주고 또한 인간의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만 주어졌던 불의 사용권을 빼앗아서 그 불을 땅으로 가져온 자이다.
여기서 깊이 고려할 일은 남반도의 기독교인들이 북반도의 동포들을 대할 때에, 그들의 지상에서의 삶의 내용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나 초월자 하나님을 믿도록 전도하는 일을 하기 전에, 북의 동포들이 처한 지상에서의 구체적인 삶, 물질적인 요소에 먼저 관심을 가져서 그들의 삶을 보다 밝게 만들도록 도와야 한다.
‘북한 복음통일’을 외치는 기독교인 중에는 이런 제안에 반대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북의 동포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이 기독교의 복음인 하나님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라고 주장하면서 초월적 신앙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 안에서 반종교적인 자세가 굳어진 사람들에게 초월적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바로 꺼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그들이 귀를 막고 마음을 닫아버릴 위험성이 크다. 그들은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초월만을 강조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쪽에서처럼 북에 가서 ‘육신을 먼저 돌보지 말고, 영혼부터 살려야 한다.’는 식의 전도를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역사적인 현실에서의 삶 강조
마르크스 당대에는 이미 앙리 생시몽이나 샤를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있었는데, 마르크스는 이런 기독교적인 감상주의적 사회주의로는 당시 민중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마르크스는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진 독일에서 극심한 신문 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신문은 사람들 상호 간의 ‘이론과 실천’을 매개하는 존재이며, 이를 통해 국민들은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만들어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천은 현존의 실재를 인간의 행동을 통하여 혁명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정치적으로 사회화되고 또 대자적일 때에 가능하다. 신문을 통하여 사람들이 사회를 알고 사람들 간의 문제점을 알아서, 잘못을 가려내고 여론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들의 삶이 알려져서 정치인들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독일의 정신사를 지배하던 헤겔의 철학을 거부한 것은 그 철학이 현실 속에서 어렵게 사는 민중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신문은 공허한 사변이 아닌 밑바닥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을 알려주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마르크스는 “독일은 근본적으로 실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현대 국가들의 공적 지위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국가들의 직접적인 미래가 될 인간의 지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민중을 사로잡는 힘은 물질적인 힘인데, 이론이 물질적인 힘이 되려면 먼저 인간을 향해야 하고,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중에 기초한 마르크스의 사고는 추상적인 철학적 논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민중의 삶의 현실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하루하루 구체적인 역사의 현실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에 관심하였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아편으로 규정한 것은 그 신앙이 민중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현실에서 볼 때, 당대의 초역사적인 초월적 기독교 신앙은 구체적인 실천을 결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초월을 향한 종교는 초월의 신비에 빠져서, 땅 위의 구체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땅에 관심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종교는 구체적인 땅의 문제를 보지도 못할 것이고, 혹시라도 땅의 문제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모른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민중의 가난에 대한 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당시의 정치가들의 잘못된 통치에서 결과된 것이기에, 기독교가 정치인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초월자 하나님에게 해결해달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민중을 위한 선한 정치는 정치인의 과학적인 이론과 실천적인 노력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정치인에게 정치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데, 당대의 기독교는 초월의 신에게만 기도하였기에 크게 잘못한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이와 같은 기독교는 비역사적인 종교이기에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진리와 자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종교의 지배는 지배자의 종교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종교가 민중들을 초월로 인도하면, 무산 대중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지배자들을 위한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제거해야 한다고 외친 것은 당시의 기독교가 억눌린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종교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얻은 이후이다. 1843년 5월에 그의 친구인 루게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를 보면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관한 그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단지 다음의 사실에 자네가 주의를 집중하도록 환기시킬 수밖에 없네. 즉 천민주의의 적들, 즉 지각이 있고 고난받는 모든 사람들이 전에는 거기에 대해 방법을 결여했던 하나의 이해에로 도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조직이 새로운 인간성에 봉사하기 위하여 신병을 모집하고 있다네. 그런데 상업의 구조, 재산과 인간 착취의 구조가 인구 증가보다 한층 더 빨리 오늘의 사회를 깨뜨리고 있다네.…
생각하는 고통받는 인류들이 있고 또 억압받는 생각 있는 인류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천민주의를 가지고 수동적인 동물의 왕국을 계속 밀고 가려는 자들에게는 만만치 않고 속 편하지 않을 걸세.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또한 고난 받는 사람들이 집회를 여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재가 태중에 배고 있는 것이 더 건실한 생명으로 태어날 것일세.2


마르크스가 1843년 말에 파리에서 쓴 논문인 “헤겔의 법철학 비판”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서로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종교의 지배가 지배의 종교’라고 생각한 마르크스에게는 종교 비판이 모든 비판의 전제가 된다. 그는 그의 논문 서두에 그 말을 쓰고 있다. 그의 날카로운 종교 비판은 “사람이 종교를 만든 것이지, 종교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다른 말로 하면 “종교란 자기 자신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이미 잃어버린 사람의 자의식이며 자기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종교적 의식이 이 세계를 일그러뜨린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뒤틀린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의 구체적인 해결을 약속하지 못하고, 저 세상에서의 보상만을 약속하기 때문에 “종교는 억압당하는 피조물들의 탄식이요 마음 없는 세상의 마음인 것은 마치 그것이 정신없는 조건들의 정신인 것과 같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외쳤다.3
교회의 기능 역시 고통당하는 인간의 괴로움을 정신적 아편 주사로 일시적으로 잊게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종교란 실제적 행복을 주지 못하고 환상적인 거짓된 행복을 줄 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기 위해서는 환상적 행복으로서의 종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 속의 꽃’ 대신에 ‘생화’를 갖게 하려면, 신비적인 종교를 벗겨서 그 환상을 제거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은 자신의 진짜 현실을 보고 제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독교인들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청했다. ‘급진적’(ra-dical)이라는 말은 뿌리를 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뿌리는 인간 자신이다. 즉 급진적 변화 혹은 혁명은 인간의 해방이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멸시받고 가난한 민중들의 자유와 해방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의 당당한 삶을 요청하였다. 더 이상 초월에 매달리지 말라고, 더 이상 저들에게서 아편을 받아먹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민중의 역사와 사회를 만들어가라고 외
쳤다.


화해의 길
기독교를 비판한 마르크스 사상의 뿌리에는 노동 현장에서 땀흘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통일 후에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우선적으로 관심할 이들은 북한의 가난한 노동자들과 농민이다. 남한의 기독교가 북에서 환영받는 종교가 되려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북의 동포들을 초월 즉 하나님께로 이끌려는 전도 이전에, 현재 그들이 살아가는 육신의 삶에 깊이 관심하면서 일상의 삶을 돕는 일이 우선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궁극적으로는 북의 동포들을 초월의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야 할 최종의 목표가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선은 현실 안에서 저들의 일상의 삶을 도와야 한다. 그때 북반도의 동포들과의 평화로운 만남이 이뤄질 것이고, 그리고 그들과의 화해가 이룩될 것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북의 동포들에게 심을 수 있을 것이다.


1 Karl Marx, Fruehe Schriften, 109.
2 Karl Marx, Fruehe Schriften, 438.
3 Karl Marx, ¡°On ReIigion¡±, 42.


홍성현 |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새문안교회, 인천제일교회, 무학교회 등지에서 목회하였다. 저서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종교비판을 넘어서서』 등이 있다. 현재 갈릴리신학대학원 한국분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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