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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8월호)

 

  팔레스타인, 과거와 현재
  

본문

 

영국·미국의 정책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본 구조는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승전국이 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한 1917-48년에 형성되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분할하여 현대 국가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민족주의 이념을 활용하였다. 즉 영국은 유대인을 추동한 시온주의, 하심 가문을 추동한 아랍민족주의, 사우드 가문을 추동한 와하비즘으로 각각 이스라엘, 요르단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를 창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이 후원한 시온주의는 주로 이민자로 구성된 소수파 유대인을 국민 구성의 주요한 요소로 규정하고, 다수파인 무슬림과 기독교인을 배제함으로써 인종차별정책을 유지·강화하는 주요한 도구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서 현재까지 유지되는 불안정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구조가 창출되었고, 이후 미국의 정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2018년 현재까지 그 기본 구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에게 팔레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인 이점이 있었다. 첫째, 수에즈 운하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이다. 둘째, 1934년에 건설한 키르쿠크(이라크)–하이파 석유 파이프라인의 출구이다. 셋째, 인도 등으로 가는 국제 항공노선의 중간 기착지이다. 넷째, 이라크로 가는 사막 자동차도로의 관문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략적인 이점은 21세기 현재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예로 미국은 영국이 건설한 키르쿠크–하이파 석유 파이프라인을 재건하려는 계획을 2003년에 내놓았다. 그해 8월 미 국방부의 요구에 따른 이스라엘 국가기반시설부 조사 결과, 지름 42인치 파이프라인 설치에 1km당 40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이때 이스라엘 국가기반시설부 장관 유세프 파리츠키는 하이파 항구는 이라크 석유의 매력적인 출구라고 밝혔다.
2017년 9월 미국은 이스라엘 해안도시 하이파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다. 2017년 제정된 미국방수권법 1259항은 “동지중해에서의 해상 안보와 해상 영토에 대한 자각은 이스라엘 안보뿐만 아니라 미국 안보 이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미 국방부는 이 지역에서 안보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고 증진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현재 동지중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이 해역에서 발견된 천연가스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전역이 천연가스전 위에 존재한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미국 회사 노블에너지가 주도하여 이 유전들 대부분을 이스라엘 회사들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북부와 인접한 레바논 해역에도 대량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스라엘 북부 해안 도시 하이파에 건설된 미국 해군기지는 가자와 이스라엘 및 레바논 등 동지중해 전역에 풍부하게 매장된 천연가스전 지배권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동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봉쇄와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올해 5월 14일,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 개관한 날에도 가자지구에서는 항의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날 이스라엘의 실탄 공격으로 가자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62명이 사망하고, 2,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200만 명에 가까운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영국의 시온주의 정책과 팔레스타인 무력화
20세기 초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당시,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각각 종교 공동체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 위임통치 시대에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는 유대인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의 긴장이 발생하였다. 다음 표가 보여주듯이 이 시기에 발생한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유대인 대거 이주로 인한 종교인 인구비율의 커다란 변화이다.
1918년 전체 인구의 8%인 5만 6,000명을 차지하던 유대인 비율은 1945년 전체 인구의 31%인 55만 3,600명으로 영국의 통치 기간에 크게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영국의 유대인 이민정책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유대 이민은 1932년부터 5년간 최고조에 달했다.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던 영국은 이라크 북쪽에 위치한 키르쿠크 유전지대로부터 요르단을 통과하여 팔레스타인 하이파로 연결되는 원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였다.(1932-34년 이라크 석유회사2가 건설) 이 파이프라인은 시온주의자들에 대항하는 아랍대반란 기간(1936-39)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공격하는 표적이 되었다. 이때 이민자 유대인들은 영국 위임통치 지역을 통과하는 이 파이프라인을 아랍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국 정부는 키르쿠크–하이파 파이프라인과 하이파 정제소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간주하였고, 실제로 이 시설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 인근의 영국군과 미군이 사용하는 연료 대부분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시온주의 정책에 맞서는 아랍 봉기는 1920년 이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발발하였다. 특히 1936년 영국의 위임통치에 반대하는 아랍대반란이 발발하자, 예루살렘 최고 종교지도자(그랜드 무프티) 하지 아민 알 후세이니가 앞장서서 아랍고등위원회를 창설하고, 총파업, 유대인 이민 금지, 납세거부운동을 주도하는 등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운동을 통합하고 주도해나갔다. 1937년 7월 아랍고등위원회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창설을 요구하면서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안에서 유대인들과 소수자들의 권리와 영국의 이익이 합법적으로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영국 위임통치 정부는 아랍고등위원회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하지 아민 알 후세이니를 비롯한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추방하였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시온주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었다.

불공정한 열강들: 이스라엘 국가 승인 / 팔레스타인 국가 불승인
1945년 10월에 새로 발족된 유엔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처리하게 되었다. 유엔은 이 지역을 56.47%는 유대 국가가, 42.88%는 아랍 국가가, 0.65%는 유엔 대표가 관리하는 예루살렘시로 분할하기로 결정하였다.(1947. 11. 29, 유엔총회 결의 181호) 동시에 이 결의안은 1948년 10월 1일까지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 건설을 완료할 것을 요구하였다.
유대인들은 영국 위임통치 종결 8시간 전인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에 국민평의회 의장인 데이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국가의 창설을 선언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스라엘 국가 창설 다음 날인 5월 15일에 미국이, 3일 후인 5월 18일에 소련이 이스라엘 국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도 1948년 9월 22일 아랍고등위원회가 팔레스타인 정부를 구성하여, 10월 1일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민족회의3를 소집하였다. 여기서 하지 아민 알 후세이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하였으며,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법령을 선포하였다. 1948년 10월 15일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하였다. 그러나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과 트랜스요르단(요단강 동쪽 지역), 이라크 등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1994년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서안과 가자 지역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창설되었다. 2012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투표권이 없는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획득했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대로 정식 여권도 발행하지 못하며 여전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불리고 있다. 현재 50%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치정부의 정책에 실망하면서, 자치정부 해체를 주장하는 등 자치정부 자체가 심각한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주민 축출은 현재 진행형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은 영토와 그 주민들이다. 앞에서 언급한 1947년의 ‘유엔총회 결의 181호’를 토대로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유대 이민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다른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로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고 한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에 대한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약 79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존재한다. 이는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 1,210만 명 중 약 65%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절반은 국적이 없다. 현재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 2차, 3차에 이르는 대규모 난민 축출이 발생하고 있다. 2011년 이후 계속되는 시리아 분쟁으로 인해 난민 캠프 12개(공식 캠프 9개, 비공식 캠프 3개) 중에서 5개가 파괴되거나 접근할 수 없다. 2016년을 기준으로 시리아 내부에 남아 있는 45만 명의 난민 중 28만 명이 다시 한 번 시리아 내부 난민이 되었다. 약 5만 9,000명의 난민은 외국으로 강제 축출되었다. 또 2006년 여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약 1만 6,00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 내 다른 지역과 그 이웃 국가들로 축출되었다. 2003년 이후 2007년까지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점령으로 이라크에 거주하던 약 3만 4,00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중 50% 이상이 이라크에서 추방당했다. 1994년에 리비아는 오슬로 협상에 대한 불만족의 표시로 당시에 리비아에 거주하던 약 3만 5,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한다고 발표하고 이들 대부분을 추방하였다. 1990-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이라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와 걸프 지역 아랍 왕국들은 4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을 대거 추방하였다.
이렇듯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 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연맹 소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귀환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으면서도, 귀환을 위한 어떤 실제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스라엘 점령지와 이스라엘 국가 내부에서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06년 여름에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가자지구에서 5,000명 이상의 내부 난민이 발생했다. 2002년 이후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서안 지역에서 분리장벽 건설과 군사 통치와 관련된 사업으로 주민의 17%가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했고, 요르단 계곡의 도로 폐쇄와 주택 파괴, 강제 퇴거 등으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추방당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따르면, 2017년 8월에 이스라엘이 네게브에 거주하는 베두인 수백 명의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소하면서 이 베두인들은 국적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시민이었고,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했으며, 세금을 납부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시민권은 단추 한 번을 누름으로써 간단하게 말소되었다. 이스라엘 내무부는 그동안 실수로 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된 것이라고 주장할 뿐,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네게브 베두인들에게 만연한 현상이며,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들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의 땅 분할안 181호가 통과되면서 시작된 팔레스타인인 축출은 1948-49년 전쟁과 1967년 전쟁으로 가속화되었으며, 2018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속되는 재앙
이스라엘은 1948-49년 전쟁으로 확보한 영토(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의 78%)에서 축출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몰수하고, 그 땅을 국유지로 선언했다. 2017년 현재 이스라엘 토지 관리부가 이스라엘 영토의 93%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인들은 단지 4%를 소유하고 있다.
전쟁으로 점령한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몰수하고, 유대인 다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의회는 다음과 같은 법을 제정하였다. 1950년 3월 이스라엘 의회는 ‘부재자 재산법’을 채택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부재자의 재산은 그 재산의 점유자에게 귀속되며, 재산 점유자들의 권리는 땅 소유자들의 권리와 같다. 이를 근거로 토지 점유자들은 점유한 재산을 이스라엘 정부에 팔았다. 이스라엘은 이런 방식으로 손쉽게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의 재산권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팔레스타인이나 본인의 집으로 귀환할 근거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반면 1950년 7월 이스라엘 의회는 유대인들을 위한 ‘귀환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모든 유대인은 새로운 이주자로서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가지며, 귀환 신분증을 받는다. 이 법이 실행되기 이전에 이주한 유대인들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유대인들도 모두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1952년 4월 이스라엘 의회는 ‘국적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유대인뿐만 아니라 영국 위임통치 정부가 발행한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소유한 자(a Palestinian citizen)도 이스라엘 국적 취득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당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1948–49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 군에 복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이 아닌 원주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대부분은 국적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의 재산은 이스라엘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1960년 제정된 ‘토지법’은 국가 땅을 비유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967년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가 영역 밖에 존재하던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인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를 점령함으로써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전 영역을 통제하게 되었다. 현재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은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점령지이며,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식민화 정책에 희생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동예루살렘과 서안 소재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몰수하고, 이스라엘 점령촌을 건설하면서, 8m에 이르는 콘크리트 분리장벽과 이스라엘 점령민들을 위한 관통도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검문소 등을 세워 점령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비좁고 인구가 밀집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과의 경계를 분리장벽으로 둘러치고, 가자 연안을 어업금지구역으로 설정하여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가자와 이집트와의 국경도 닫혔다. 따라서 가자는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봉쇄정책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통치 집단 하마스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가자 인근 지중해 연안에 매장된 천연가스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서 봉쇄의 고삐를 더욱 조인다고 믿는다. 실제로 현재 이스라엘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동지중해 가스전들에서 천연가스 최대 시장인 유럽으로 가스를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공세적인 압박 정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1 이 통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OTTOMAN PALESTINE, 1878”(http://passia.org/maps/view/2), “Demographics of Historic Palestine prior to 1948”(http://www.cjpme.org/fs_007),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1946,” Great Britain and Palestine 1915-1945(HYPERION PRESS), 61-62.
2 이라크 석유회사(IPC)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자본으로 이루어졌고, 이라크 하심왕국(1921년 8월-1958년 7월) 대부분 지역에 대한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 1958년 7월 친소련 군부의 쿠데타 이후, 이라크 정부는 1961년에 IPC의 이권 지역 99% 이상을 몰수하였고, 1972년에는 IPC를 국유화하였다.
3 ‘팔레스타인 민족회의’는 1964년 예루살렘 회의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창설하였다. 현재 팔레스타인 민족회의는 PLO의 입법기구이자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정책결정 기구이며, PLO 집행위원회를 선출한다. 2017년 현재 669명의 회원으로 구성되며, 2년마다 회의가 개최된다.


홍미정 | 중동현대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팔레스타인 현대사』, 『21세기 중동 바르게 읽기: 재설정되는 국경』 등이 있다. 현재 단국대학교 중동학과 연구전담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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