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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8월호)

 

  이스라엘 건국과 포스트시온주의
  

본문

 

1948년 독립한 신생 국가 이스라엘을 오늘날까지 지탱시키고 있는 두 요소는 첫째가 유대인 이민이요, 둘째가 아랍 국가들로부터의 끊임없는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이스라엘 사회의 내적 성격을 ‘다원 사회’로 규정하는 요소라면, 후자는 이스라엘의 외적 성격을 ‘단일 의식’으로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두 요소는 이스라엘을 창조적 긴장관계로 놓이게 함으로써 필수 불가결한 양극성의 모순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다원주의 사회인가
이스라엘 사회는 130여 개 국가로부터 이민 온 유대인들과 80개 이상의 언어 사용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 이스라엘 정부가 제정한 ‘귀향법’이 여전히 발효 중이며, 이민부를 두어 이 일을 전담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이민정책은 다산정책과 함께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동체 구성원들은 역사적・종교적・정서적 뿌리는 같지만, 언어와 습관, 삶의 가치 기준과 양식, 사회문화 형태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불균형과 부조화로 집단 간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련의 복잡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문화 형태를 지닌 다원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1
고전적인 신앙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흩어짐’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흩어진 유대인들의 ‘모음’(귀향)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신학사상은 구약시대부터 있었다.(사 66:18 이하) 이러한 사상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과 더불어 싹틔운 희망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2,600여 년간 이어진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귀향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 사상은 사실상 가지가 모두 잘린 채 하나의 ‘그루터기’로만 남게 되었다. 마침내 20세기에 이르러 나치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이 계기가 되어, 그루터기에서 간절한 희망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귀향에 대한 꿈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시온주의’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시온주의자들의 귀향에 대한 이념적 기초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종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시온주의 운동가들이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구현하는 방식은 철저히 ‘정치적’이었다. 여기서 이스라엘 회복, 즉 ‘시온으로의 귀향’을 하나의 메시아 운동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종교적 전통주의자들의 입장과 정치적 시온주의자들의 견해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간격)가 존재한다.

시온주의 운동은 메시아 운동인가
박해와 압제는 우리 유대인들을 멸종시키지 못했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도 우리가 가진 것 같은 투쟁과 고통이 없었다. 강한 유대인들은 박해가 멈출 때 우리의 줄기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우리의 복장, 관습, 전통, 그리고 언어를 되찾는 외적인 비슷함뿐 아니라, 느낌이나 태도까지도 동일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2

현대 시온주의 운동의 아버지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의 말이다. 비엔나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종종 발생하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 사건을 취재하면서 “반유대주의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으며, 소위 ‘유대인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대인 문제란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한 채 유대인이 받은 증오와 박해의 총체적 경험을 말하는데, 이를 일컬어 반유대주의라 부른다.3 그런 의미에서 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의 산물이다.
당대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 유토피아(메시아의 도래)의 실현과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현실적 고통(반유대주의)에서의 해방이라는 두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메시아의 임재는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이었지만 요원한 일이었으며,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노력(힘)이 필요했다. 둘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결합할 수 없는 두 원소와 같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전통주의자들은 시온주의자들이 전통적인 유대교의 유산을 의도적으로 세속화(정치화)시켰다고 비판하면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험한 세속주의자’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시온주의자들 역시 전통주의자들을 ‘형편없는 종교적 환상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소위 ‘종교적’ 이스라엘과 ‘정치적’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회가 떠안고 있는 딜레마가 되었다. 두 집단 간의 역사적 연속성과 이념적 불연속성 사이의 갈등은 급기야 지난 1995년 11월 4일, 한 유대 종교인 청년에 의한 이츠학 라빈 총리의 암살로 표출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4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 물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통주의자들의 뿌리 깊은 귀향(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종교적 믿음과 시온주의 운동가들의 정치적 이념은 어떻게 다르며, 과연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인가? 종교와 정치 사이에서 제기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둘째,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의 완성인가? 시온주의 운동의 목표가 분명 유대국가 건설이라면,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탄생으로 그들의 목표는 달성된 셈인가? 그래서 시온주의 운동은 끝났는가? 셋째,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 과정에서 발생한 급진적인 ‘새로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7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아랍–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종교적 구원과 정치적 현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의 메시아 도래에 관한 시간 계산(1096년, 1648년, 1840년 등)은 여러 차례 빗나갔다. 그들은 구원의 시간이 도래하면 하늘의 지혜의 문과 땅의 지혜의 샘이 열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으나, 고대하던 메시아는 한 번도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19세기 초 빌라의 가온이 주도한 메시아 운동이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자, 영향력 있는 랍비 여러 명이 메시아 도래의 실패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인위적인 인간의 노력에 의한 메시아 운동은 귀향의 실현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 메시아 운동으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것이 19세기 말 시온주의자들이 오직 정치적 의미(종교적 의미가 아닌)의 시온주의만을 고집하게 된 이유가 된 것일까? 시온주의자들과 종교주의자들 사이의 ‘국가 건설’에 관한 입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낳았다. 다시 말해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에 따르면,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져다주며, 구원이란 이스라엘의 회복 곧 땅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땅의 회복이라는 구원의 한 과정을 담당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시온주의 운동은 메시아 운동과 관련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유대인의 정치적 독립(국가 건설)을 향한 노력과 전통적인 메시아적 희망(이스라엘의 회복)을 동일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매우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다.
폴란드의 유대공동체를 이끌던 갈리시아의 랍비 오시아스 톤은 “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메시아니즘의 연장이다.”라며 시온주의 운동을 메시아니즘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했다. 그러나 메시아 운동과 시온주의 운동 사이의 구분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앞에서 언급한 헤르츨 자신은 시온주의 운동이 메시아 운동과 별개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력했다. 1904년 이탈리아 왕과의 대화에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느냐?”라고 왕이 묻자, 헤르츨은 “일부 종교인들 가운데는 그런 이들이 있으나, 학식이 있고 계몽된 사람들에게 그런 사상은 결코 없다.”라고 대답했다.
정치적 시온주의 운동은 종교적 메시아 운동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시온주의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 운동이며, 이스라엘의 과거 전통(성서)이 말하는 ‘신정국가 회복’을 지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온주의 운동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는 메시아니즘 간의 차이가 ‘두 종류의 구원’의 충돌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내 정치와 종교 사이의 주도권(헤게모니) 다툼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5 이러한 충돌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의 완성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독립 이후의 시온주의는 무엇인가? 시온주의 운동은 이제 끝났는가? 분명 국가 건설 이후 시온주의 운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시온주의는, 그것이 포스트시온주의이든 네오시온주의이든지 간에 아직 진행형이다.
포스트시온주의인가 네오시온주의인가 하는 논쟁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구체화된 쟁점 중 하나이다. 초기 시온주의 운동이 목표로 한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 완성된 이후, 비유대인(특히 아랍–팔레스타인)의 지위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시온주의의 새로운 이념과 목표를 두고 발생한 개념이다.
우선 네오시온주의는 ‘6일 전쟁’ 이후 우파 민족주의 및 종교주의자들이 소위 ‘확대 이스라엘’(Greater Israel–성서시대, 특히 솔로몬의 영토를 확보할 때까지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시켜 나갈 것을 주장하는 이들의 용어)을 주장하면서 시온주의의 목표는–적어도 전 세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이주시키고 유대 전통(유대교)에 기반한 히브리어 교육으로 유대인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기 전까지는–아직 미완성이라고 보는 입장을 대변한다. 이들은 성서시대의 영토뿐만 아니라 민족적 기풍이나 품위를 확보하고 확립하려면 보다 강력한 민족주의적・종교적 시온주의를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대인이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에서 아랍–팔레스타인인들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아랍–이스라엘인(팔레스타인인들 중에서 이스라엘 국적 또는 영주권을 가진 자들)을 ‘제5열’ 혹은 인구학적 취급대상(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한)으로 보며,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중 마지막 한 명까지도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대인 정착촌 확장 건설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평화적 해결이란 곧 ‘억제력과 앙갚음’뿐이다. 또한 이들은 유대국가의 정치–문화적 세속화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의 약화로 이어져 유대 문화와 전통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배격해야 할 요소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포스트시온주의(이 용어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에 체결된 오슬로 협정에 대한 좌파들의 입장을 비판한 우파들이 사용한 용어이다.)는 기본적으로 시온주의 운동이 이스라엘 국가 설립으로 인해 본래의 목표가 완성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시온주의의 보편적 이념, 즉 억압받는 약소민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가 건설의 권리는 그것으로 종결되었다고 여긴다. 이들은 반(反)시온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하여 유대인 귀향법 등을 비판적으로 본다.
포스트시온주의자들은 과연 이스라엘만이 유대 민족의 안전한 피난처인가, 보다 나은 조건에서 유대인들이 살아갈 거처가 다른 곳에는 없는가, (민족적) 유대국가와 (보편적)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가, 이스라엘은 유대인만의 국가인가 아니면 시민권을 소유한 모든 이들의 국가인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전적으로 흑백 문제인가, 이스라엘은 그 땅에 진정한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계속되고 있는 갈등의 책임과 원인이 아랍 쪽에게만 있는가 등을 물으면서, 시온주의 운동사를 통해 작금의 갈등과 분쟁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이스라엘 지식인들이나 양식 있는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들은 우파들로부터 ‘자기 기만적인 반시온주의자들’ 또는 ‘자기 증오적 유대인들’, 심지어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과 그 후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아랍–팔레스타인인들과의 갈등을 낳았다. 아랍–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과격한 식민주의이며, 유대인 이주는 하나의 침입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며, 유대인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시온주의자들의 침략, 점령, 폭력, 전쟁 등은 역사적 재앙(나크바)이었다. 아랍–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대국가(이스라엘)의 독립은 국제사회가 저지른 부당하고 불의한 행위의 영구화였다.
다른 한편, 유대인의 입장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모든 민족은 자신의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라는 보편적 정의의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정당하다. 초기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진보를 믿었으며, 보다 안전한 세계가 곧 오리라는 꿈을 꾸었다. 시온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눈으로 볼 때 유대인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토양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다가 자신의 고향에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건국 과정에서 그 땅에 오랫동안 살아온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을 배제시킴으로써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일으켰고,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안전한’ 세계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고 말았다. 냉전시대의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억압과 박해, 새로운 민족주의의 태동을 예견하지 못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 요구에 무력으로 답했다. 이제 그 땅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으며, 유대 민족국가의 장래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보편적 정당성을 상실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스라엘의 독립은 시온주의자들에게는 2,000여 년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과거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와 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을 씻는 명예 회복이었지만, 그 땅에 오래도록 살던 아랍–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소유하던 토지를 빼앗기고 그 땅에서 쫓겨나 생존권이 침해되고 결국 새로운 방랑과 수난이 시작된 ‘재앙’이었다. 한쪽에게 좋은 일이 다른 한쪽에게는 나쁜 일이 된 셈이다.
시온주의 운동은 서구 세계의 반유대주의라는 거친 토양에서 발아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이식되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여 무쇠처럼 억센 가시나무로 자라나 이제는 주변 나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해를 끼치기 시작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던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땅에서 낯선 이국인으로 적대적인 취급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 이 역사의 불가해한 현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어제까지 피해자였던 그들이 오늘은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 소름끼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유대국가 내에서는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불러 모아 서로 다른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차등 없이 연결되어 유대 민족의 단일한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잊힌 유대 문화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소위 ‘주의 도성 시온’이 새로운 정신적 북극성으로서, 인류 구원의 모델로서, 인간성 회복의 중심으로서의 보편적인 역할(사 60:14, 62:1)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주변의 아랍 국가들, 특히 아랍–팔레스타인과의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시온주의의 이념이 고통받는 모든 민족이 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1 다원주의 사회로서의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구조에 관해서는 Judith T. Shuval, “The Structure and Dilemmas of Israeli Pluralism,” in The Israeli State and Society: Boundaries and Frontiers, ed. Baruch Kimmerling(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9), 216-236을 참조할 것.
2 Theodor Herzl, Der Judenstaat. J. Kaplan, ed., The Zionist Movement, vol. 1
(Jerusalem: HU, 1983), 57-90.
3 반유대주의에 관해서는 필자의 『기억과 편견: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아서』(책세상, 2004)와 “기억-편견-미움-폭력: 반유대주의를 중심으로,” 「기독교사상」 통권 548호(2004. 8.): 34-51, 그리고 “세계 유대인 네트워크와 반유대주의,” 「디아스포라연구」,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제1권 제1호(창간호, 2007): 79-94 등을 참고할 것.
4 이 주제에 관해서는 필자의 책 『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푸른사상, 2015)을 참고할 것.
5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필자의 졸고 “시온주의 運動의 理念과 유대 民族統合戰略,” 『韓民族共榮體』(海外韓民族硏究所, 1997), 82-111을 참조할 것.


최창모 | 이스라엘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 대학 중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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