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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5·16 이후 한국 사회와 기독교
특집 (2018년 5월호)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한 한국교회 인물 분석
  

본문

 


* 본문에서 ❖표시를 한 주요 인사는 글 마지막에 표로 정리하였다. 또한 본문과 표의 ‘통합’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을 뜻한다.


이 글은 1961년 5월 16일에서 1979년 10월 26일까지 한국 개신교회 안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정치에 저항한 인물들을 사건별, 성명서별로 분석하고, 그들이 속한 교파와 교회(또는 대학과 기독교 기관), 공부한 신학교, 저항 당시 연령 등을 다루려고 한다.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장준하(43세)와 ❖함석헌(60세)은 1961년 7월호 「사상계」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민정이양의 혁명공약(6항)을 지키라고 최초로 주장했다.* 1963년 3월 26일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 NCCK)도 민정이양 촉구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해 10월 15일 대통령 당선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한일국교정상회담’을 추진했다. 1965년 7월 한일국교정상화 비준반대운동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7월 1일 자 성명서에는 ❖김재준(64세), ❖한경직(63세), ❖강신명(56세), ❖강원용(48세), 함석헌(64세) 등 215명이 연서로 반대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7년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1969년 9월 14일에 삼선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교계는 1967년 4월에 ‘공명선거캠페인’을 전개했는데, 이 당시 ❖현영학(46세), 강원용(50세), ❖지명관(43세),
❖서남동(49세), ❖노정현(38세), 노창섭, 장이욱 등이 전국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69년에는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가 성립되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염광회’ 회원이었던 ❖정일형(65세, 회장), 함석헌(68세), ❖윤보선(72세), ❖박형규(45세), 김상돈, 문옥태, 문장식, 민승 등이 참여하였다.
1972년 10월 유신부터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표할 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민주화 인권운동은 가장 강력한 반유신운동이었다. 1971년 4월 8일 저명인사 25인이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때 개신교 인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김재준(70세), ❖조향록(51세), ❖안병무(49세), ❖정하은(43세)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한철하(47세)가 참여하였다. 12월 13일에 기장 전주남문교회 ❖은명기 목사(51세)는 성직자로서는 최초로 유신반대로 인해 구속되었다. 1973년 4월 22일 남산부활절연합예배 당시 시위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박형규(50세, 기장, 서울제일교회 목사), 권호경(32세, 동 교회 전도사), ❖김동완(29세, 기감, 반석교회 전도사) 등이 구속되었고, ❖조승혁 목사(38세, 기감, 에큐메니칼현대선교협의회 총무), ❖손학규(학생), ❖나상기(KSCF 회장), ❖황인성(KSCF 학사단 회장), ❖이상윤(KSCF 학사단 단원), ❖정명기(KSCF 부회장), 서창석(KSCF 부회장) 등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지도력은 기독교계 목회자들,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운동, 도시산업선교회와 기독청년운동에서 배출되었다. 당시 한국에는 민중을 직접 조직하는 사울 알렌스키(Saul David Alinsky, 1909-72)의 방식과 간접적으로 지도자를 길러내는 독일의 에버하르트 뮐러가 창안한 아카데미 방식이 있었다. ❖오재식은 미국 예일대학교에 유학하던 중 알렌스키를 만나 조직교육을 받았고, 1968년에 KSCF 총무 박형규 목사와 함께 학사단운동을 조직했다. 그들은 연세대학교 노정현 교수가 책임자로 있는 도시문제연구소 아래 수도권선교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강원용 목사는 크리스챤아카데미를 통해 후자의 방식을 택하였다.
1973년 5월 20일 <한국그리스도인 선언>이 발표되어, 기독교 사회참여의 정당성을 신학적으로 천명했다. 이 문서는 지명관(49세), ❖김용복(35세), 오재식(40세)이 일본에서 작성하여 국내로 들여왔다. 세계적으로 ‘제2의 바르멘 선언’으로 알려질 만큼 중요한 문서였다.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 데모를 주동한 학생들 중에 ❖나병식(국사학과4), ❖정문화(외교학과4), 강연원(정치학과4), 황인성(독문과3)은 KSCF 출신과 제일교회 대학생들이었다. 또한 1973년 12월에는 소장 목회자 총 27명이 금식기도를 하면서 3회에 걸쳐 유신과 대일예속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이들의 교단 소속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 내부에 민주화운동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강동수(통합), ❖김상근(기장), 김선배(통합), 김종렬(통합), 김종희(통합), 안광수(기감), ❖오충일(복음), 유경재(통합), 윤방웅(기장), ❖이해동(기장), 임인봉(루터교), 조승혁(기감), 허송(루터교), 김인호, 김준부, 백천기, 이영준, 이원황, 이종형, 전학석, 정진영, 조규향, 조석오, 최건호, 홍종택, 황예식, 황태준

그해 12월 장준하를 중심으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국민운동본부’가 구성되었다. 당시 대표는 30여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기독교인은 다음과 같다.

함석헌(72세, 종교인), 김재준(72세, 전 한국신학대학장), ❖김동길(45세, 연세대 교수), ❖김관석(51세, NCCK 총무), 안병무(51세, 한국신학대학 교수), ❖문동환(52, 한국신학대학 교수), ❖김정준(59세, 한국신학대학장), ❖김찬국(46세, 연세대 신학대학장), 백낙준(78세, 연세대 명예총장), 문상희(51세, 연세대 교수)

1974년 1월 17일 도시산업선교회 소장 목회자들이 유신반대 시위와 성명서 발표로 인해 구속되면서 현장의 목회자들이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했다.

김경락(36세, 기장, 도시산업선교연합회 총무, 목사), 이규상(34세, 기장, 수도권특수선교위원회, 전도사), ❖이해학(29세, 기장, 성남주민교회 전도사), 박윤수(29세, 기장, 창현교회 전도사), 임신영(32세, 기장, 경동교회 목사), 김진홍(33세, 통합, 활빈교회 전도사), ❖인명진(27세, 통합,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김성일(32세, 능곡교회 전도사), 홍길복(29세, 통합, 대현교회 전도사), ❖박창빈(30세, 통합,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전도사)

차후 유인물 배포로 구속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김동완(32세, 기감, 약수형제교회 전도사), 권호경(33세, 기장, 서울제일교회 부목사), 박상희(29세, 한신대3), 김용상(24세, 요가 강사), 박주환(25세, 한신대3), 이미경(24세, 여성, 에큐메니칼 현대선교협의회 사무간사), 차옥숭(23세, 여성, NCCK 사무간사), 김매자(22세, 여성, 이화여대3)

1974년 1월 14일 「기독공보」의 고환규 편집국장(35세, 통합)이 언론 보도 관련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많은 고문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대학의 반유신운동을 막기 위해 1974년 4월 3일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고 ‘전국민주청년학생동맹사건’(민청학련)을 일으켰다. 이 당시 KSCF 관련자 26명을 구속시켰다.

박형규(KSCF 이사), 김동길(지도교수), 김찬국(지도교수)
이직형(37세, 서울제일교회, 총무), ❖안재웅(34세, 서부지역 간사), ❖정상복(30세, 중부지역 간사), 나상기(25세, 1973년 회장, 숭전 졸), ❖서경석(26세, 전 회원, 새문안교회, 66학번, 서울대 졸), 황인성(21세, 1973년 학사단장, 서울대4), ❖이광일(1972년 서기, 육군일병), 정문화(전 회원, 서울대4), 나병식(25세, 학사단원, 서울제일교회, 서울대4), 서창석(회장, 새문안교회, 70학번, 연세대4), 최민화(서울지구 회장, 연세대3), 김경남(회원, 서울제일교회, 한신대3), 장영달(서울지구 임원, 국민대3), 신대균(서울지구 임원, 새문안회장, 72학번, 서울대3), 이원희(서울지구 임원, 새문안교회, 73학번, 한국외대2), 정명기(1972년 수석부회장, 감신대학원), 권진관(22세, 회원, 새문안교회, 71학번, 서울대4), 구창완(회원, 서울제일교회, 서울대3), 윤관덕(회원, 고려대3), 김형기(22세, 전 회원, 새문안, 70학번, 서울대 졸), 이재웅(전 회원, 연세대2), 이종구(회원, 서울대3), 김효순(전 회원, 서울대 졸)


기독청년학생들의 대규모 구속 사태로 1974년 8월 5일 교계 지도자 한경직(통합), 지동식(루터교), 윤창덕(기감), 이천환(성공회), 진용섭(구세군), 유호준(통합), ❖김동수(통합), 김관석(NCCK), 이해영(NCCK 인권위원장, 기장)이 김종필 총리를 방문하였다.
11월 5일에는 8개 교단 320명의 이름으로 ‘기독교정의구현전국성직자단’이 조직되었다.1 교단별로는 예장통합 48명, 기감 110명, 기장 135명, 그 외 성공회, 복음교회, 구세군, 성결교회가 27명이었다. 11월 18일에는 66명의 이름으로 <한국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 발표되었고, 독재정권 규탄, 국가와 종교관계, 인권, 교회선교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2
11월 27일에는 71명의 재야인사가 기독교회관에서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했는데, 창립총회(12월 25일) 때에 ❖이태영, 강원용, 함석헌이 대표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당국의 보복조치로 백낙청(서울대), 김병걸(경기공업전문대) 두 교수가 최초로 해직되었으며, 안병무, 문동환, ❖박봉랑, 서남동, ❖이우정 등이 경고조치를 받았다.
유신정권은 기독교운동을 이끌며 학생운동을 지원하는 NCCK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4월 5일에 ‘한국특수지역선교회 선교자금 유용사건’을 일으켜 공금 배임혐의로 김관석 목사(53세, NCCK 총무), 박형규 목사(52세,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위원장), 실무자 권호경 목사(34세), 조승혁 목사(40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체 사무총장) 등을 구속하였다. 독일의 세계급식선교회(BFW)에서 받은 자금 2,700만 원 중 400만 원을 구속자 가족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는 죄목이었다.
1975년 5월에는 기독자해임교수협의회가 조직되었다. 그 위원은 한신대 안병무(기장), 문동환(기장), 연세대 서남동(기장), 이계준(기감), 고려대 이문영(성결), 김용준(통합), 서울대 한완상(통합)이었다. NCCK는 1975년 11월 15일에 인권위원회를 조직하였다. NCCK 인권위원회의 임원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1975-79년 임원명단
공덕귀(통합), 김상근(기장), 김윤식(통합), 김정국, 김찬국(기감), 김한림(서강대생 김윤의 어머니), 김호식, 나선정(기장 장로), 도건일(기감), 신익호(기장), 오충일(복음), 유경재(통합), 유창복, 이두성(성공회), 이우정(기장), ❖이재정(성공회), 이정규 이해동(기장), ❖이해석(기감), 정영관(기감), 주재숙(기장), 홍순용
1980-84년 임원명단(위의 명단을 포함해서)
고영근(통합), 금영균(통합), 김동완(기감), 문익환(기장), 박창빈(통합),
이두수(통합), 차선각(통합), 허병섭(기장)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교계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국내 지도력과 해외 지도력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해외의 인사들은 1975년 11월 5일과 8일에 한국의 NCCK와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고, 1977년 10월 뉴욕 회의에서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로 명칭이 확정되었다. 주요 인사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김재준(캐나다), 이상철(캐나다), 이승만(미국), 손명걸(미국), 김인식(미국), 오재식(일본), 최경식(일본), 장성환(독일), 이삼열(독일), 신필균(스웨덴), 박상증(스위스), 홍동근(미국), 김용복, 동원모(미국), 구춘회, 이신행(미국), 이선애(스위스), 김상호, 지명관(일본), 선우학원(미국), 차현희(중앙위원 중 국내 인물은 이태영, 강문규)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9호가 내려졌다. 1976년 소위 ‘3・1 민주구국선언’에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11명이 서명을 하였는데, 이는 대규모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기장 목사 문익환(58세), 문동환(55세), 이해동(42세), ❖윤반웅(66세)과 해직 교수 이문영(49세), 서남동(48세), 안병무(54세)가 구속되었고, 김대중 씨와 여러 신부들도 구속되었다.
1976년 3월 12일 기장의 단양장로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청받은 ❖고영근 목사(43세)가 정권의 부정부패와 육영수 여사 묘소의 크기와 참배를 비판했다가 구속되었고, 1977년에도 정권 비판으로 구속되었다. 8월 11일 광주 양림교회(기장)가 결의문을 발표하여 전남노회 소속인 조흥래, 강신석, 윤기석, ❖유연창 목사가 구속되었다.
1977-79년 사이에 민중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민중운동을 대변하는 기독교인들의 구속이 늘어났다. 1977년 2월 3일 성남주민교회 이해학 전도사(32세)가 구속되었다. 5월 13일에는 김제 나난교회 ❖강희남 목사(58세)가 구속되었다. 7월 21일에는 복음교단의 총회장 ❖조용술 목사(57세)가 구속되었고, 오충일 목사(37세)도 설교문 배포로 인해 구속되었다. 1978년 5월 1일에는 청주산업선교회에서 설교(4월 17일)한 내용 때문에 인명진 목사(31세)가 구속되었고, 11월 5일에 동일방직 노조운동을 지원한 혐의로 ❖조화순 목사(44세, 기감)가 구속되
었다.
1977년 12월 29일 대다수의 재야 민주화 인권운동을 망라하는 ‘한국인권운동협의회’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의 회장에 ❖조남기(56세, NCCK 인권위원장, 통합), 부회장에 김승훈 신부, 안성열(동아투위 위원), 서기 김상근 목사(39세, 수도교회)가 선출되었다.
NCCK는 목요기도회 또는 금요기도회를 통해 민주화에 참여하는 신앙인들이 신앙적・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다음은 1977-79년에 열린 금요기도회 설교자들의 명단이다.(신부와 외국인 설교자의 명단은 제외)

고영근 권호경 금영균 김경락 김관석 김동길 김명욱 김상근 김영준
김용준 김정준 김찬국 김창식 김태규 김현영 남정길 노명식 문동환
문익환 문재린 박대인 박형규 배명준 서남동 성내운 안광수 안병무
오충일 유경재 유연창 유은필 윤반웅 이국선 이기영 이용식 이문영
이우정 이재정 이해동 이해학 인명진 장형일 전학석 정진철 조지송
최기준 한완상 한장현 함석헌 허병섭 홍길복 황규록 황원옥

1979년 3월 9일 유신 말기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으로 여성사회 간사 ❖한명숙(35세), 농촌사회 간사 이우재 교수(43세), 황한식 교수(31세), 장상환(28세), 산업사회 간사 김세균(32세), ❖신인령(36세) 등 6명의 간사와 정창렬 교수(42세, 한양대 사학)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79년 8월 11일 YH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으로 인명진 목사(32세), 문동환 목사(58세), 이문영 교수(53세), 서경석 목사(31세) 등 8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부마항쟁을 불러왔고, 10・26사태로 박정희 정권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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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치하 민주화운동을 이끈 한국 개신교회의 운동을 흔히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 명망가들의 선도적 투쟁, 투옥과 고문을 이겨내는 신앙과 용기 이면에는 많은 이름 없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기도와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고문–강신명, 김창희, 강원용, 김기동, 김관석, 지동식, 이천환, 정용섭
지도위원–김형태, 김윤식, 조남기, 김준영, 김성열, 박봉배, 이영민, 은명기, 이국선, 윤방웅, 조용술, 이재정
실행위원회–이해석, 도건일, 구덕관(감리), 오충일(복음), 이해동, 권호경, 신익호(기장), 황배식(성결), 강동수, 김종희, 황인기, 이승하(통합), 김종원(구세군), 이재정, 김용걸(성공회)
사무국장–조승혁(기감) / 차장–유경재(통합) / 대변인–신종선(기장) / 회계–이승하(통합)
2 강문규, 강원용, 고용수, 구덕관, 김관석, 김상근, 김연수, 김용옥, 김이곤, 김인태, 김정준, 김종열, 김형태, 노명식, 노정선, 마경일, 맹용길, 문동환, 문상희, 문익환, 문희석, 박광재, 박근원, 박봉랑, 박봉배, 박용익, 박창환, 서광선, 서남동, 소홍렬, 신종선, 안병무, 안희국, 오명근, 오충일, 윤병상, 윤성범, 윤순덕, 윤정옥, 은준관, 이남덕, 이문영, 이영민, 이형헌, 이우정, 이해영, 이효재, 장일조, 전경연, 정웅섭, 정의숙, 조승혁, 조요한, 조용술, 조향록, 조화순, 주선애, 주재용, 지동식, 차풍로, 한영선, 한완상, 한준석, 함성국, 현영학, 황성규.


정병준 | 현재 서울장신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교회사와 에큐메니컬 신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호주장로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소죽 강신명 목사의 생애와 사상』 등이 있다.

 
 
 

2018년 5월호(통권 7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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