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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4월호)

 

  기술과학 시대의 포스트휴먼 담론들
  : ‘포스트–휴먼’ 개념을 중심으로

본문

 

2016년 3월,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시스템 알파고와 오늘날 바둑계의 최고수로 널리 인정받는 이세돌 사이의 대국이 진행되었다. 이 대국은 인간이 발전시킨 정보기술의 정도에 관하여 일반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도 큰 인상과 충격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인공지능 알파고, 알파고를 대신해 무표정한 얼굴로 바둑알을 놓았던 구글 딥마인드의 선임연구원 아자 황, 그리고 인간을 대표하는 바둑기사 이세돌, 이렇게 세 ‘플레이어’의 긴장된 대국이 이어졌다.
인공지능에 세 번 내리 패한 후 인터뷰를 하던 이세돌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네 번째 대국에서 마침내 이기고 환하게 웃는 이세돌의 얼굴을 지켜보던 우리는 과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특징이 무엇인지,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이며 이 경계는 과연 유지될 수 있는지 혹은 유지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나 강연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인문, 사회, 예술,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와 학자들의 학술 모임에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아주 활발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야기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알파고와 인공지능을 부각시키는 상품들이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약진하고 있다.
알파고가 대중의 관심을 갑작스럽게 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에 관련된 연구들은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꾸준히 진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핵심적인 개념들이 꾸준히 소개되었다. 한스 모라벡의 1990년 『마음의 아이들: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2011년 번역), 다나 해러웨이의 유명한 ‘사이보그 선언문’이 들어 있는 1991년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2002년 번역), 캐서린 헤일스의 1999년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2013년 번역), 레이 커즈와일의 2005년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특이점이 온다』(2007년 번역), 슈테판 헤어브레히터의 2009년 『포스트휴머니즘: 인간 이후의 인간에 관한 문화철학적 담론』(2012년 번역), 로지 브라이도티의 2013년 『포스트휴먼』(2015년 번역), 맥스 테그마크의 2017년 『라이프 3.0: 인공지능이 열어갈 인류와 생명의 미래』(2017년 번역) 등 기술과 인간,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한 연구서들이 꾸준히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또한 신상규의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2014),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이 프랑스의 LABEX ARTS–H2H연구소와 같이 엮은 『포스트휴먼의 무대』(2015),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의 『지구에는 포스트휴먼이 산다』(2017), 이종관의 『포스트휴먼이 온다』(2017) 등과 같은 포스트휴먼에 관한 저서들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예민한 독자라면, 위에 소개된 저서들이 사용하는 핵심어인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1999년에 헤일스는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라며 과거형으로 질문을 하였지만, 2005년의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 즉 생물학적 인간을 초월한 포스트–인간이 수십 년 내에 가능하게 되리라며 근미래시제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 맥스테크는 ‘생명 3.0’의 단계, 즉 하드웨어는 진화를 통해 변화하고 소프트웨어의 많은 부분은 설계가 가능한 생명 2.0 단계(문화적 단계)인 인간을 넘어서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둘 다를 설계할 수 있는 포스트–인간 단계인 생명 3.0 단계(기술적 단계)가 올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여 ‘안전한 인공지능 운동’에 우리 모두가 지금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정해지지 않은 미래형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래에 올 것이라는 ‘포스트휴먼’과 이미 왔다는 ‘포스트휴먼’, 이 두 포스트휴먼은 과연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혹은 같은 것을 다르게 해석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의 혼란스러운 사용은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포스트휴먼 논의를 촉발했다고 평가받는 해러웨이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더 이상 포스트휴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할 정도이다.
하지만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로 분류될 수 있는 해러웨이의 포스트휴먼 용어 포기 선언은 단순히 언어 사용의 혼란만을 나타내는 현상이 아니다. 이는 똑같은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기술우호적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들 사이의 일종의 기싸움에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소개한 저자들과 저서들이 모두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 저서에서 ‘포스트휴먼’이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 단어가 언제나 똑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책들의 저자 중 일부는 자신을 ‘트랜스휴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른 일부는 자신을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용어와 정의에도 불구하고 여기 소개한 저작들은 모두 알파고가 제기한 문제들, 즉 정보기술, 생명공학, 나노기술, 인지과학 등 현시대의 새로운 첨단 기술과학이 인간의 현재와 미래에 제기하는 기술과학과 인간의 공진화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휴먼’과 ‘포스트–휴먼’의 경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넓게 포스트휴먼 담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휴먼 담론의 양대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라는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50년대 중반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이다. 하지만 첨단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 위에서 기술에 의한 새로운 인간의 탄생, 즉 트랜스휴먼(Transhuman)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실현이라는 철학 혹은 세계관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코어 생명연장재단 회장인 막스 모어가 1990년에 발표한 “트랜스휴머니즘: 미래주의를 향하여”라는 에세이와 그가 주관한 ‘엑스트로피: 트랜스휴머니스트 사상 저널’, 그리고 1998년에 옥스퍼드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주도 아래 결성된 ‘세계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와 그와 더불어 제정된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문’과 ‘트랜스휴머니스트 FAQ’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문건들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응용이성을 통해, 다시 말해서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적,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는 데 두루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과 희망을 높여주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으로 정의된다. 사이먼 영이 『디자이너 혁명: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2006)에서 더 간결하고 분명하게 외치듯,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휴머니즘이 우리를 미신의 쇠사슬에서 해방하였듯이 트랜스휴머니즘이 우리를 우리의 생물학적 쇠사슬에서 해방하게 하라.”라고 주장한다.
계몽된 이성의 산물인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조건을 향상시킨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기본 개념은 20세기 내내 과학자들의 연구개발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종관이 그의 책 『포스트휴먼이 온다』에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철학 혹은 세계관으로서의 트랜스휴머니즘이 급격하게 그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이다. 특히 최첨단 기업의 경영자 등 사회적 명성과 영향력을 갖춘 인사들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선도하는 집단에 가세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권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화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의 빌 조이(Bill Joy), 구글과 나사(NASA)가 지원하는 싱귤래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의 총장 레이 커즈와일, 나노물리학의 개척자인 드렉슬러(K. Eric Drexler), 한때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깅리치(Newt Gingrich),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 등 주로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축을 이루는 영미권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많은 경우 첨단 과학기술 현장의 선도자들이면서 동시에 이 기술들의 상용화에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상당수가 첨단 기업의 경영자 또는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경험과 이론 양 측면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력을 과학과 기술에서만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 정책에도 깊이 발휘하고자 한다. 이들의 담론에서 ‘포스트–휴먼’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현재 인간의 조건과 능력을 초월한 존재, 맥스 테그마크가 ‘생명 3.0’ 단계라고 정의한 바로 그 인간 이후의 인간, 생물학적인 조건을 초월한 인간을 의미한다.
2017년에 출간된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은 기술과학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방향이며 우주의 생명 잠재력을 창발적으로 살려낼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기본 개념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인공지능에 관한 하나의 의제나 예측을 강조하는 대신 가능한 한 많은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균형 잡힌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범용인공지능의 진정한 위험은 악의가 아니라 능력이며, 초지능인공지능은 자신의 목표를 아주 능숙하게 성취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의 목표가 우리 목표와 정렬되지 않으면 우리는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면서 인공지능이 노동시장, 전쟁, 정치체제에 미칠 영향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폭넓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편으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이 공동으로 인공지능 안전 연구를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인공지능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낙관과 염려 사이의 균형을 잡고자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안전한 인공지능을 위해서 전통적인 전산 과제뿐만 아니라 의미는 무엇이고 생명은 무엇이며 궁극적인 윤리 명령은 무엇을 가리키는지와 같은 철학적 난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며, 현재 우리 사회와 인간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책을 마무리한다. 물리학자인 그가 자신의 책 마지막 부분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남겨둔 바로 이 문제들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의 출발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포스트–휴먼’을 생물학적 인간을 넘어선 인간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면, 포스트휴머니즘에서 사용하는 ‘포스트–휴먼’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이는 포스트휴머니즘이 기본적으로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담론이기 때문이다. 즉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에서 ‘포스트–휴먼’은 기본적으로는 생물학적인 인간을 넘어선 인간이 아니라 근대 휴머니즘적 인간을 넘어선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근대 휴머니즘적 주체의 구조적 타자들 범주에는 성차별화된 타자인 여성, 인종화된 타자인 비백인과 식민지인만이 아니라 자연화된 타자인 동물, 지구, 자연 등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휴머니즘적) 인간을 넘어선 포스트–휴먼에는 (인간이라는 종을 중심으로 여기는) 인간을 넘어선 포스트–휴먼이 일부 중첩될 수 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다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기계–인간) 형상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를 진행하는 중요한 메타포이며 현실로 인정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이면서 동시에 ‘포스트휴먼’–이즘이다. 이때의 ‘포스트휴먼’도 휴머니즘적 인간 개념과 인간 종 중심주의적 인간 개념 모두를(때로는 각각, 때로는 중첩해서) 넘어서는 인간 개념을 의미하게 된다.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의 다양한 층위와 범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로지 브라이도티의 The Posthuman이다. 이 책의 번역서 제목은 ‘포스트휴먼’이지만, 저자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려면 아마도 ‘포스트휴먼적인 것’ 혹은 ‘포스트휴먼 조건’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할 정도로 이 책은 매우 폭넓은 영역에서 수많은 연구자에 의해 다루어지고 나타나고 연구되고 만들어지는 포스트휴먼적인 것들, 각종 현상과 조건들, 담론과 시도들의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 사유들을 분류하는데, 그녀가 속한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만이 아니라 그와 대립되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포스트휴먼 사유들도 폭넓게 포함하고 있다. 브라이도티는 우리 시대의 포스트휴먼 사유에 있는 세 가지 중요한 갈래를 소개한다. 첫째는 도덕철학에서 출발하여 반동적인 포스트휴먼 형태를 발전시키는 갈래이며, 둘째는 과학과 기술 연구에서 출발하여 분석적인 포스트휴먼 형태를 강화하는 갈래이고, 셋째는 반휴머니즘적 주체성 철학 전통에서 나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제안하는 갈래이다.
반동적 포스트휴먼 사유의 대표적 사상가로는 기술이 가져오는 도전과 위기를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응으로 고전적 휴머니즘의 이상과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학을 주장하는 마사 누수바움을 소개하면서, 그녀가 지난 30년 동안의 급진적 반휴머니즘적 철학의 통찰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아 모델을 실험한 여지가 전혀 없다고 비판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포스트휴먼의 발전은 과학과 기술 연구에서 나오며 이 분야의 주요 이론가로서 범인류(panhumanity) 이론을 전개하는 프랭클리, 루리와 스테이시, ‘생명사회성’과 ‘생명시민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니콜라스 로즈, 기술이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피터–폴 베어벡 등을 소개한다.
브라이도티는 과학과 기술 연구의 분석적 포스트휴머니즘이 현대 포스트휴먼 풍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이 견해들은 휴머니즘적 가치들을 선택적으로 도입하면서 그러한 접붙임이 낳은 모순들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즉 기술적 성취와 그에 따라오는 부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우리 선진기술이 발생시키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불평등과 커다란 모순들에 대하여는 충분한 연구를 꺼리며, 인간의 지위에 대한 윤리적 개념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 문제들이 주체성 이론에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를 꺼린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해 포스트휴먼 사유의 세 번째 갈래는 개념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모호함 없이 포스트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갈래이다. 브라이도티는 자신도 이 갈래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분석적 포스트휴머니즘을 넘어서서 포스트–휴먼 주체에 대한 긍정의 관점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신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도약해 들어가도록 영감을 준 것은 그녀의 반휴머니즘적 뿌리들이라고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포스트휴먼 곤경의 생산적 잠재력을 펼쳐 보이는 사유의 흐름은 계보학적으로 포스트구조주의자들, 페미니즘의 반보편주의 프란츠 파농과 그의 스승 에메 세제르의 반식민주의 현상학에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 주체와 인류 전체에 대한 우리의 공통된 이해를 위해 포스트휴머니즘이 함의하는 바를 끈질기게 헌신적으로 작업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브라이도티는 이 세 번째 갈래의 포스트휴먼 사상가들로서 포스트식민 이론가들과 인종 이론가들뿐 아니라 시바와 미즈 같은 생태학과 환경운동가들도 소개한다. 브라이도티가 주장하는 비판적 포스트휴먼 주체의 핵심은 다수의 소속을 허용하는 생태철학 안에서 다양체로 구성된 관계적 주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비단일적 주체를 위한 포스트휴먼 윤리학은 자아 중심의 개인주의라는 장애를 제거하고 자아와 타자들 사이에 상호 연계성에 대한 확장된 의식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인간–아닌 대지의 타자들도 포함된다. 브라이도티의 저서 『포스트휴먼』은 그 구성으로 볼 때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관을 비판하는 ‘포스트–휴머니즘: 자아 너머 생명’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인간 종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탈–인간 중심주의: 종 너머 생명’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 후 포스트휴먼 조건의 비인간적 냉혹함과 죽음의 문제까지 다루는 ‘비인간: 죽음 너머 생명’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이러한 복잡하고 폭넓은 포스트휴먼 사유와 조건에 대한 논의들의 토대에는 포스트휴먼의 조건과 곤경의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포스트휴먼 윤리와 긍정의 정치학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비단일적 포스트–휴먼 주체’ 개념에 대한 브라이도티 자신의 믿음이 깔려 있다.
이 짧은 글이 현대 기술과학 시대의 포스트휴먼 담론들의 지형도를 거칠게라도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영역의 연구들을 ‘포스트휴먼’ 담론이라는 우산 아래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기를, 그리고 여기서 소개한 책이나 개념 중 어느 한 부분에라도 흥미를 느껴 그 영역에 대한 글을 읽어보도록 자극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경란 |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국 여성소설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젠더와 여성문학, 경계와 소수자문학, 포스트휴머니즘과 영미문학, 디지털 주체와 신체화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젠더와 문학』, 『미국 이민소설의 초국가적 역동성』(2011, 공저) 등이 있다.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동 기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6월호(통권 7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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