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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2월호)

 

  한국에서 요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본문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발흥 이래 세계 각 지역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은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서구 문화와 과학의 틀 안에서 재해석되고 변화되어 왔다. 요가 역시 서구 문화와 결합하여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 세계적인 도시 문화의 일부가 된 요가는 세계화의 대표적 산물로서 단순히 ‘요가’로 부르기보다는 ‘현대 요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제102회 정기총회에서 교회의 요가 참여를 금해야 한다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연구보고를 받아들였다. 이 보고서는 전통적인 요가와 현대 요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새천년에 들어서 비로소 시작된 현대 요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아직 현대 요가의 정체성을 확실히 설명해내지 못하는 실정에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깊이 있는 보고서의 제출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하간 현대 요가는 마치 한의학이 서구 의학과 전통 의학 사이에서 아직 확실히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의학이 둘 사이에서 변화와 발전을 계속 모색하는 것처럼 현대 요가도 전통적 요가와 서구 과학, 특히 생리학과 체육학 사이에서 계속 발전을 모색하며 변화해가고 있다.
요가 학자의 입장에서 요가, 특히 현대 요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보고서를 받아들인 예장 통합 총회의 결론은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유엔이 지정한 ‘세계 요가의 날’을 맞이하여 최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모스크에서 수많은 무슬림 요가인들이 운집하여 요가를 한 일이나, 명상이 종교와 관계없이 과학적・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미국 중산층의 주류 문화가 된 상황에서 이번 예장 통합 총회의 결정은 20세기 말 이후의 보편적 현상인 세계화에 역행하는 일이요, 오히려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싶어 우려되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 요가의 모태가 된 것은 19세기 인도 요가와 서구의 신비주의, 생리학, 체육학이다. 즉 현대 요가는 동양 정신과 서구 정신의 혼종이요, 근대화 혹은 세계화의 대표적 산물이다. 특히 최근의 현대 요가는 정신적 측면이 거의 탈색되어 에어로빅이나 보건체조를 대체하는, 일종의 체력단련법이 되었다. 전통적인 요가의 정신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러한 현대 요가의 육체 중심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있지만, 원래 요가 자체가 이념이나 교설보다는 수련을 통한 결과를 더 중시한다는 점으로 보아 어쩌면 현대 요가의 이런 실용적인 변화는 요가 자체에 배태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 요가의 모태가 된 19세기 인도 요가는 많은 유파 중에서도 하타 요가의 행법을 골간으로 하되 그 이념은 베단타1 사상을 채택하고 있다. 원래 하타 요가는 고대의 인도 고행주의 전통과 10세기 이후 탄트라2의 일원론적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11세기 이후 발전한 사상이요 수행 체계이다. 그러나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탄트라의 일원론 사상은 탈색되었고 인도의 주류 사상인 베단타 사상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10세기 이후 인도를 침입한 이슬람 세력 역시 큰 거부감 없이 하타 요가의 수행 체계를 받아들였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하타 요가의 수행 체계는 수련자의 형이상학이나 신앙 체계와 관계없이 수련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타 요가는 형이상학적 교설 체계를 무시하거나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날 현대 요가가 종교나 문화와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현대 요가의 모태를 이루는 하타 요가의 이러한 실용적 특징 때문으로 보인다.
서구에 요가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은 19세기 인도의 베단타 승려인 비베카난다(1862-1902)이다. 그는 19세기 말 인도 요가를 이루고 있던 두 요소 중 하나인 하타 요가의 실용적 요소를 ‘하타 요가’라 이름하고, 정신적・이념적 요소인 베단타의 일원론 사상이나 요가수트라의 삼매 사상을 ‘라쟈 요가’로 이름붙였다. 그리고 하타 요가를 영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보조적 수단일 뿐이라며 육체 훈련법으로 폄하하고, 라쟈 요가만을 진정한 요가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구분은 오늘날까지도 은연중에 이어져 육체 훈련 위주의 하타 요가가 명상 위주의 라쟈 요가보다 격이 낮다는 선입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1910-30년대에 인도의 선각자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군사적 침탈에 대항하여 인도인의 체력을 강화시킨다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요가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19세기 말 인도 요가가 지닌 하타 요가의 실용적, 신체 단련적인 요소에 주목한 대표적인 인물들은 쿠발라야난다(1883-1966), 요겐드라(1897-1989) 등이다. 이들은 기존 하타 요가의 신비주의를 탈피하여 서구 생리학 관점에서 요가의 신체 단련법이나 호흡법들을 설명했고, 스웨덴의 링(1776-1839)과 같은 체육학자나 독일의 해부생리학자 물러(1801-58)의 다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30년대 크리슈나마차리야(1888-1989)는 19세기 인도 요가의 신체 단련법과 서구 체조를 혼융하여 신체의 유연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신체 단련법을 만들었다. 이것은 그의 제자인 파타비 조이스(1915-2009)의 아쉬탕가빈야사 요가, 다른 제자인 아이엥가(1918-2014)의 아이엥가 요가로 발전되어 오늘날 현대 요가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크리슈나마차리야 계열의 현대 요가는 1960년대에 이르러 몇몇 서구인들에 의해 구미 각국에 전파되었고, 특히 1990년대 이후 크게 유행하여 전 세계에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수련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요가의 전래에 대해 불교 법상종 기원설(김순금), 류영모 자생적 기원설(김광백), 정태혁 도입설(이거룡), 정태혁・장인선 2인 도입설(심준보)이 있다. 불교 법상종 기원설이란 불교심리학인 유식학을 연구하는 종파인 법상종이 신라 시대에 도입되면서 요가가 들어왔다는 것인데 이것은 불교의 요가와 현대 요가를 혼동한 데서 발생한 것이다. 요가라는 용어는 원래 수행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법도 요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오늘날 한국인이 수행하는 현대 요가 또는 그 모태가 된 하타 요가와는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요가의 기원을 불교 법상종의 도입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다른 기원으로 논의되는 류영모(1890-1981)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매우 주체적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를 다룬 전기에는 그가 젊은 시절 오산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던 시기인 1910년대에 평양 유림인 백이행에게 요가를 배웠다고 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는 『활인심방』 같은 한의학 전통의 건강체조이지 결코 현대 요가가 아니다.
정태혁(1922-2015)은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요가를 강의한 인도철학 및 불교학 연구자이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요가 학자인 사호다 등과 더불어 요가를 연구하고 수련했다. 또 종로 근처에서 요가 도장을 열고 요가를 지도하기도 했다. 정태혁은 인도철학자로서 요가 수련뿐만 아니라 학문적 연구에도 매진하여 한국 요가학 연구의 토대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요가 도장을 개설한 인물은 장인선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요가를 수련하고 지도하던 장인선은 1961년에 ‘신명원’이라는 이름의 요가 도장을 한국 최초로 개설했다. 그러나 장인선은 정태혁과 달리 인도철학의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인물도 아니고 우연히 외국의 요가 서적을 접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수련한 독학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명원에서 배출된 많은 요가 지도자들은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요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인선의 신명원이 물리적 시간상 최초의 현대 요가 도장이라는 점, 또 정태혁이 장인선보다는 약간 늦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인도철학의 학문적 기반을 두고 실제 수행과 더불어 학문 분야에서도 큰 공헌을 한 점,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현재의 한국 요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점에서 두 사람을 같이 한국 요가 최초 도입기의 인물로 보는 것이 정태혁・장인선 2인 도입설이다.
장인선은 1967년에 『소화된 요가』라는 책을 냈는데 독창적이기보다는 서구나 일본에서 나온 기존의 요가책을 참고하여 만든 요가 수련 실용서이다. 여기서 장인선은 심리와 육체가 상호 작용하는 것임을 깨닫고 바른 관념을 통해 육체의 불건강을 치유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는 종교다원론적인 입장을 주장한 일본의 종교가 다니구치 마사하루(1893-1985)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태혁은 요가를 해탈의 도구로서 종교적・철학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한편, 대중의 건강을 위한 방편으로서도 요가 수련을 적극적으로 수련하고 지도했다. 장인선과 정태혁이 지도한 현대 요가는 다분히 앞서 언급한 쿠발라야난다나 요겐드라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구나 일본에서 유행하던 1950-60년대 당시의 현대 요가를 도입한 것인데, 이 시기는 1930년 이후 발생한 크리슈나마차리야 계통의 요가가 아직 서구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발라야난다와 요겐드라는 서구 생리학이나 체조 등의 관점에서 전통 요가 수련법의 효과를 검증하려고 노력하면서 전통 요가의 신비주의를 털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을 인도의 전통적인 영적 스승(구루)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환자에 대한 의사나 치료자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런 점은 이런 스타일의 요가를 배운 장인선과 정태혁에게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이 요가의 정신적 효과를 강조하더라도 이것은 영적 차원이 아니라 정신 건강의 차원이다. 특히 정태혁은 인도철학의 배경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이후 철학과 종교로서 요가가 지닌 의의와 효과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강단에서 가르쳤지만, 대중적인 요가 보급 측면에서 결코 힌두교의 도그마적인 관점을 강조하지 않았다. 장인선은 본인 스스로가 질병의 고통 속에서 요가를 만났기 때문에 정태혁보다도 더욱 실용적이고 치유적인 측면에서 요가를 강조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현대 요가가 처음 도입된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 김광백 등에 의해 한국 최초의 법인 단체인 한국요가협회가 결성되었고, 서서히 한국에 요가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1970-80년대는 일본의 현대 요가 지도자인 오키 마사히로(1919-85)의 영향력이 은연중에 국내에 강하게 작용하였다. 그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1966년 출판된 『요가: 신기한 건강의 비법』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서구에서 활동하던 인도 출신 요가 수행자 비달다스(1911-89)의 책과 오키 마사히로의 책들을 편역한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요가라는 이름을 최초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명성을 기반으로 그는 197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을 자주 방문하여 건강 세미나를 열었으며, 이때 주로 자신이 창안한 요가의 동작을 통한 신체의 수정행법과 심리적 자신감의 강조, 그리고 단식 등을 강의하여 당시의 한국 요가인들과 자연치유 연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쿠발라야난다의 요가 연구소에서 다년간 요가를 수련하기도 한 오키 마사히로의 수행 체계는 1910-30년대 인도의 현대 요가 스타일에 일본에서 발전한 자연치유 이론을 결합시킨 형태이다. 오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요가 지도자들은 1990년대까지 한국 요가계의 중심 세력으로 활동하는데, 이런 점에서 196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요가의 정체성은 1910-30년대 인도의 현대 요가 스타일과 유사한 성질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에 나타난 크리슈나마차리야 계통의 요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수입된 것은 아이엥가 요가인데, 이 요가는 동작의 정확함, 보조도구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미국에서 건너온 다양한 형태의 요가 스타일이 보급되는데, 대개 이들은 파타비 조이스의 아쉬탕가빈야사 요가나 여기에 아이앵가 스타일을 결합하여 변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쉬탕가빈야사 요가의 본격적인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현대 요가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파타비 조이스의 아쉬탕가빈야사 요가 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의 요가는 아이엥가 요가와 더불어 강한 근력을 요구한다. 이런 점은 아름다운 외양과 강한 근력을 추구하는 서구인들의 속성과 잘 맞아 떨어졌고, 이에 따라 급속히 전 세계로 보급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도 크게 보급되었다.
1910-30년대 요가들이 치유를 목적으로 한 것에 비해 크리슈나마차리야 계열의 요가들은 육체적 미와 균형, 근력 강화에 더욱 중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이런 점에서 크리슈나마차리야 계열의 요가들은 1910-30년대 요가보다 더욱 신체훈련을 중시하는 경향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요가 도장들은 1910-30년대 현대 요가의 이념과 수련법을 가르치는 계통과 아쉬탕가빈야사의 수련을 가르치는 두 형태가 혼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가 더욱 인기가 있으며, 대개 기독교인 요가 수행자들도 이런 형태의 요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자라고 하더라도 명상을 지도한다거나 요가의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종교적 특징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심신의 상관성, 심신의 종합적 치유를 아쉬탕가빈야사 요가보다 더욱 강조하는 경향을 띨 뿐이다. 간혹 요가 도장의 인테리어에서 인도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종교적인 측면이기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이고, 그나마 이런 도장들도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요가의 영적인 측면에 경도되어 수련하는 경우는 대개 불교도이거나 비종교인의 경우이고, 기독교인들은 대개 치유적 효과를 기대하거나 근력을 단련하여 미용상 효과를 보려는 의도로 수련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요가는 아직도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요가는 종교와 같은 도그마가 아니다. 한의학에서 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을 선택할 때 환자가 기독교나 불교 등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듯이, 현대 요가는 현대인의 선택 가능한 운동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인도 정부는 현대 요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만방에 과시하려는 민족주의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종교적 가치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요가 수행으로 인해 요가의 이념에 경도되는 기독교인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방치료를 받다가 중국 전통의 음양오행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이미 하나의 운동이 되어버린 현대 요가를 하다가 힌두교도로 변신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통 요가와 기독교는 교리상 일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최소한 현대 요가는 기독교와 배치되는 부분이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예장 통합 총회의 교회의 요가 참여에 대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연구보고 수용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거나 정확하지 못한 자료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1 인도 고대 종교인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근간으로 하는 철학.
2 초월적인 세계를 주장하던 인도 고대철학과 달리 현세의 강조, 육체, 여성 등의 가치를 강조한 4-6세기 이후 10-12세기까지의 전인도적인 종교적 사조.


심준보 | 인도철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쉬바파 일원론의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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