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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2월호)

 

  요가, 힌두교의 수행 체계
  

본문

 

인도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 완전한 자유의 실현
인도인들은 고대 이래로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해탈을 열망해왔다.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종교는 이 경지를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행 방법을 발전시켰다. 힌두교의 요가, 불교의 선, 자이나교의 금욕적 수행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인도 종교가 공유하는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창조, 유지, 해체 과정을 반복한다. 이 우주순환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도 생사의 과정을 되풀이해 경험한다. 여기에서 업과 윤회는 우주와 인간 삶의 순환을 작동시키는 법칙으로 제시된다.
인도 종교에서는 현실 세계의 인간이 생성과 소멸의 변화,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과 같은 이원적 대립 상태를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속박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인도 종교와 철학은 이 속박되고 제약적인 인간의 존재 상태를 두카(Duhkha), 즉 고(苦)로 규정하며, 윤회는 이런 고의 존재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인도 종교와 사상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이상은 인간을 제약하는 존재 조건들을 모두 초월하여 완전하게 자유로운 존재의 지평에 이르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들이 세계관에서는 다소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공유하고 있는 사상이다.
요가는 영원한 해탈을 달성하기 위해 힌두교가 발전시켜온 수행 방법이다. 요가로 불리는 수행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그 범위가 아주 넓다. 또한 요가라는 명칭이 다양한 수행법에 자의적으로 붙여져 요가에 대해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된 이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가의 본질은 해탈을 위한 수행 체계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힌두교의 수행 체계로서의 요가
힌두교는 창시자가 존재하거나 통일된 교리 체계를 지닌 종교가 아니라 긴 문화융합 과정을 거쳐 다양한 신앙과 사상이 혼합되어 형성된 복합 종교이다. 따라서 일원론적(또는 일신교적) 다신교라는 독특한 종교 형태를 취한다.
힌두교가 제시하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궁극적 실재는 브라흐만(Brahman)이다. 이 브라흐만은 어떤 형태와 속성도 없고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우며 영원성을 지니는 비인격적 실재를 말한다. 그리고 이 근원적 실재가 속성과 형태를 취하며 인격화된 존재를 신(이슈와라, Ishwara)으로 이해한다. 이 신이 우주를 창조, 유지, 해체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유지의 신 비슈누(Vishnu), 그리고 해체의 신 쉬바(Shiva)가 바로 그들이다. 힌두교에서 이들 세 신은 기능과 형태는 다르나 본질은 같은 하나의 신으로 이해된다.1
우주와 피조물을 창조하고 그 창조물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유일신 종교의 창조주와는 달리, 힌두교의 신은 자신을 전 우주로 현현시킨 존재로서 우주의 모든 것 속에 내재하며 모든 것의 본질은 이 신의 본질과 동일하다. 따라서 힌두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인간 안에 본질로서 내재하는 이 신성을 실현하는 것, 즉 해탈이다.
힌두 사상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본질을 경험적 차원의 개별 존재로 인식해 욕망과 집착을 갖게 되며, 이로 인해 속박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힌두교와 힌두 철학은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 모든 세속적인 집착과 욕망을 버리는 무집착과 무욕망의 삶의 태도를 권고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서 무집착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종교, 사회적 관행과 제도가 만들어져 긴 기간 실천되어 왔다. 대표적 예인 요가의 수행 과정 역시 욕망과 집착을 없애고 자기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요가는 넓은 의미의 요가와 좁은 의미의 요가로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넓은 의미의 요가는 해탈에 이르기 위해 힌두교도들이 사용해온 다양한 수행 방법을 총칭하는 말이다. 복합 종교인 힌두교는 다양성과 이질성에 관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해탈을 달성하는 방법과 관련해서도 힌두교도들이 각자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해탈을 추구할 수 있도록 여러 해탈의 길을 열어놓았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으로는 세 가지 해탈의 길, 즉 세 종류의 요가가 있다.
먼저 갸냐 요가(Jnana Yoga, 지혜의 요가)는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지혜’(참 지식)를 통해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적 앎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체득되는 체험적인 자각이며, 이를 위해 명상과 요가 수행을 한다. 보다 대중적인 해탈의 길로는 박띠 요가(Bhakti Yoga, 신애의 요가)와 까르마 요가(Karma Yoga, 행위의 요가)가 있다. 박띠 요가는 신에 대하여 이기심을 버리고 지극한 사랑을 통해 신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길을 의미한다. 까르마 요가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 없는 행위를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로, 구체적으로는 신과 사회에 대해 자기 의무를 실천하는 길을 뜻한다.
이 세 가지 요가는 목표에 접근하는 방법상의 차이일 뿐, 그 핵심 목표는 욕망의 제거, 즉 욕망을 없애 해탈에 이르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이는 정통 힌두 교리이고, 일반 힌두교도 중에는 기복적인 목적을 가지고 종교행위를 하는 경우도 많다.
위에서 다룬 요가의 주요 세 유형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힌두교의 특징 중 하나는 최고의 종교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모두에게 하나의 길을 따르도록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본성에 가장 호소력 있는 길을 택해 종교적 목표를 추구하도록 다양한 실천 방법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즉 진심을 다해 헌신적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중시하고 방법상의 차이는 그리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인도 정신문화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고전 요가: 요가 철학파의 요가
좁은 의미의 요가는 인도의 6파 철학2 가운데 하나인 요가 철학의 요가를 지칭한다. 요가 철학은 기원전 2세기경의 인물 빠딴잘리(Patanjali)가 기존의 여러 요가 이론과 수행 방법을 체계화시켜 『요가 수뜨라』(Yoga Sutra)로 정리한 철학이다. 흔히 이 철학파의 요가 수행법을 ‘고전 요가’나 ‘빠딴잘리 요가’, 또는 ‘요가의 왕’이라는 뜻의 ‘라자(Raja) 요가’로도 부른다.
요가 사상은 기본적인 힌두 사상을 그대로 공유한다. 힌두 사상에서 말하는 인간은 물질적 요소(신체와 마음, manas)와 영적 요소(자아 또는 영혼, atman)로 구성된다. 신체와 마음이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개별 요소라면, 영혼은 보편 요소로서 모든 존재의 본질이자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 또는 그것이 인격화된 신과 동일하다고 본다.
개별자로서의 인간이 변화와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제약적인 존재로 이해되는 것과 달리 본질로서의 인간은 모든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이해된다. 따라서 자신의 본질이 우주의 본질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 우주와 하나가 되면 개별성이 갖는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힌두 사상은 이 경지가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 또는 그것의 인격적 현현인 비슈누, 쉬바, 여신 등과의 합일 혹은 인간의 진정한 본질인 자아와의 합일을 통해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이는 결국 인간이 개별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와의 일체감을 경험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하여 전 우주의 통일성을 자각한 사람은 자기의식, 다시 말해 개별 의식을 갖지 않게 되며, 따라서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자유롭게 되어 두려움이 전혀 없고 지고의 기쁨으로 가득 찬 평정 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힌두 사상이 말하고자 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인도의 성자들은 요가 수행 과정에서 직관적인 체험을 통하여 인간과 우주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아의 좁은 개별성을 벗어나서 우주의 근원적 실재와 하나가 되는 초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도 종교는 신학적 내용에 대한 믿음보다는 실천적 경험을 통하여 진리를 스스로 깨닫는 것(自覺)을 중시해왔다. 즉 진리는 계시나 이성보다는 인간 자신의 직관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인도 신비주의의 전형인 요가의 핵심 가르침이다. 따라서 요가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테크닉이 아니라 인도 종교 문화의 정신과 이상, 그리고 실천적 전통을 모두 포괄하는 인도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며, 인도 종교와 철학, 문화,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고전 요가 사상은 인간이 일상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게 되는 이유와 그 극복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물과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인식하며 이해하는데, 이로 인해 사랑과 증오, 행복과 슬픔과 같은 상반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부터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통일된 의식(순수의식 또는 초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이 통일된 순수의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파악한다면 이원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일된 의식이 우리의 마음작용(또는 변형이나 동요)으로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실천적 수행을 통하여 그 마음작용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빠딴잘리는 『요가 수뜨라』에서 요가를 ‘cittavrittinirodhah’로 정의했다. 즉 인간이 본래 지닌 순수의식(purusha)을 방해하는 마음(citta, 에고의식의 복합체)의 파동(vritti, 또는 변형, 작용)을 금지(nirodha, 또는 억제)하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마음의 작용과 그 마음의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요가를 흔히 마인드 컨트롤 방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요가 철학이 설명하는 마음의 작용과 그 제거에 대한 설명은 그 내용이 다소 난해하므로 마음의 작용(변형)을 일상적인 용어로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의 작용은 일상의식과 무의식의 활동으로 만들어진다. 즉 감각기능의 작용으로 생겨나는 일상의식, 모든 자기중심적인 행위와 의도의 모태인 무의식의 활동으로 인해 인간은 이분법적 구분을 하는 불안정한 의식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고전 요가는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들을 통제, 지배, 제거하여 어떠한 제약도 없는 통일된 순수의식 상태에 이름으로써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 방법이다.

고전 요가 수행의 여덟 단계
고전 요가는 오랜 기간 끈기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힘겨운 수련방법이다. 정통 요가 수행자들은 순수의식을 가리는 마음의 산만한 작용을 없애기 위해 먼저 정신통일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감각기능과 무의식의 활동에 의해 생겨나는 마음의 작용을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능력을 얻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의식 상태인 삼매(Samadhi)의 경지에 이른다. 이 과정은 구체적으로 8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두 단계인 야마(Yama, 禁戒)와 니야마(Niyama, 勸戒)는 본격적인 요가의 준비 단계로 윤리적인 수행에 해당한다. 욕망을 없애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사회와 다른 생명체들, 그리고 신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려 시도한다.
다음 세 단계는 몸, 호흡, 감각을 제어하여 마음 수행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과정으로 정신적 스승인 구루의 지도를 받아 배우도록 되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 단계부터가 요가 수행의 시작이다. 먼저 아사나(Asana, 坐法)는 요가식 몸자세로 신체의 제약을 뛰어넘어 의식(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이다. 아사나를 통해 자유자재로 몸을 통제하게 되고, 의식의 흐름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음 단계인 쁘라나야마(Pranayama, 調息法)는 우리 몸을 순환하고 있는 생명력인 쁘라나 곧 호흡을 천천히 규칙적으로 함으로써 마음을 통제하려는 호흡법이다. 불규칙한 호흡은 마음을 산만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주의력이 산만해지며 결국 불안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만하고 규칙적인 호흡을 통해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호흡 자체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다음 단계인 쁘라따하라(Pratyahara, 制感)는 감각기관의 작용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훈련이다.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면 외부 대상에 의한 감각작용이 중단되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후 마지막 세 단계는 심리적 수행 단계이다. 마음을 한곳에 고정시키는 수행인 다라나(Dharana, 凝念)는 이리저리 떠도는 마음의 움직임을 안정시키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고 명상한다. 명상 대상은 신체의 특정 부위, 신상, 만달라(Mandala), 얀뜨라(Yantra), 신의 이름이나 옴(Aum)과 같은 만뜨라(Mantra)의 낭송 등 다양하다. 다음 단계인 디야나(Dhyana, 靜慮)는 대상에 대해 깊이 명상하는 상태로 이 상태에서 명상하고 있는 대상이 수행자의 전 마음을 채우고 통일된 사고의 흐름을 형성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노력 없이도 정신집중이 되며 마음의 작용이 거의 사라진다. 요가 수행의 최종 단계인 사마디(Samadhi, 三昧)는 사물을 직관하는 관조의 경지를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마음의 모든 기능이 멈추고 명상의 대상과 주체가 하나가 되어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의식이 사라지고 통합된 순수의식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가 바로 해탈의 상태이다.

비(非)정통 요가
우리나라나 서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요가는 위에서 다룬 고전 요가가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주요 목표로 삼는 하타 요가(Hatha Yoga)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하타 요가를 요가 전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요가의 목적이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이므로 하타 요가 역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같지만 몸에 두는 비중이 아주 크다는 차이가 있다. 요가는 몸과 마음의 정화과정을 매우 중시하는데, 하타 요가는 그 주목적이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몸을 만드는 것이어서 특히 몸의 정화를 중시한다. 따라서 보통 하타 요가는 신체의 건강, 활력, 긴 수명을 위해 실천하며 간혹 영적 실현이 포함되기도 한다.
또 힌두 밀교파의 요가 형태로 꾼달리니(Kundalini) 요가가 있다. 이 요가는 인간의 몸, 특히 ‘꾼달리니’라 불리는 근원적 생명 에너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성 에너지를 활용하는 요가이다. 고전 요가 전통이 성욕을 포함한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욕망을 철저하게 버리는 방법을 택해온 것과는 달리 꾼달리니 요가는 성을 승화시켜 영적 완성의 도구로 사용한다. 인류의 종교사에서 성은 풍요의 목적을 위해 주술적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밀교와 도교의 경우처럼 보다 초월적인 종교적 이상을 달성하는 방편으로도 사용되었다. 인도에서는 성이 밀교의 등장과 함께 정신적인 완성이나 절대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된 것이다.
정통 힌두 종파들은 이들 요가가 때로는 신체적 주술력이나 초자연적 능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 요가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들을 정통 요가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하타 요가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요가가 되고 있으며, 꾼달리니 요가도 여전히 실천되고 있다.

에필로그: 예장 통합의 요가 금지 결정을 보면서
최근에 기독교인들 사이에 요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이를 우려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교단 산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요가에 관한 연구보고서’ 결과를 채택하여 모든 형태의 요가를 금하는 결정을 내렸다. 자기 신앙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내린 고뇌 끝의 결정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종교학자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진리라면 그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은 힘겨우나 자유로움에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학문과 사상도 진리를 추구하지만, 종교야말로 온몸과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그 본래 의미와 의도를 잘 파악하여 실천하는 신앙인이라면 신앙을 실천할수록 진리에 가까워지고 자유로움을 더 누리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큰 벽과 성을 쌓고 타자와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과연 자기 신앙을 잘 지키고 발전시키는 방법일지 의문이
든다.
종교도 하나의 생물체와 같다. 그래서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경직되어 화석화되지 않고 발전적으로 생존하려면 자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기독교인 사이에 기독교 이외의 어떤 사상이나 관행이 퍼져가고 있다면 그것을 단순히 배타시하여 이단으로 규정하는 방법으로는 그 현상을 제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현상이 파급력을 갖게 된 배경, 즉 기독교인들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를 찾아내어 그러한 욕구를 기독교의 틀 안에서 충족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런 유연함이 경직된 고수보다 더 생존력 있는 대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한 요가 수행자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수행처 방 벽에는 그가 따르는 요가 스승들의 사진이나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예수의 그림도 있었다. 힌두 전통이 이질적인 것에 관용적이라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예수의 경우는 그리 흔하지는 않아서 관심이 갔다. 그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를 힌두교의 한 구루로 수용하여 힌두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를 또 한 분의 훌륭한 스승으로 모시는 그의 마음과 행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 힌두교에서는 여기에서 언급한 주요한 세 신 외에 이 신들의 여러 배우자 여신, 이들과 관련된 여러 신, 그리고 자연물과 동식물을 신격화한 신들이 숭배된다.
2 인도 철학에서 정통으로 분류되는 6개의 힌두 철학파로 베단타, 미망사, 상캬, 요가, 니아야, 바이셰시카 등이 있다. 이중 상캬와 요가는 기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 흔히 상캬-요가 학파로도 부른다. 두 학파의 가장 큰 차이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에서 상캬가 인식론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요가는 실천적 수행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또 상캬가 근본적으로 무신론이라면 요가는 우주적 영혼으로서의 최고신을 상정하는 유신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신의 수행을 통해 요가 수행자의 개별 영혼과 우주적 영혼인 신과의 합일, 즉 해탈을 추구한다. 그러나 요가에서 신 개념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최고 경지에 이르기 위한 명상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류경희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인도 종교(힌두교) 관련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서울대 외래교수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인도의 종교와 종교문화』, 『요가, 초월을 향한 지향』 등이 있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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