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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1월호)

 

  나의 총무 시기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본문

 

나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의 총무로 일했다. 하나님의 은혜다. 또한 부족한 사람이 직임을 감당하는 데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난 7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비판적 성찰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임기 동안 교회협이 감당했던 주요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객관적으로 써보려고 노력하겠지만, 필요하면 가벼운 평가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논의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교회협의 위치
교회협은 현재 9개 교단(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대한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구세군,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정교회)과 5개 연합기관(기독교방송, 대한기독교서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으로 구성되어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에서 임원회를 조직하고 주요 사항을 결정하며, 1년에 네 차례 열리는 실행위원회에서는 총회 위임사항과 그에 따른 주요 사항을 결의한다. 그리고 각 위원회를 조직하여 교회협이 감당할 시대적 사업을 실행한다. 물론 각 교단과 연합기관이 파송하는 사람들로 모든 조직이 구성된다.(위원회의 전문성을 위해 총무가 약간의 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 이는 교회협이 하는 모든 일에 각 회원 교단과 기관의 입장이 촘촘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협의 총무를 비롯한 실무자들과 교단 간에는 크고 작은 견해차가 발생한다. 특히 시국 관련 문제에서 그렇다.
각 위원회의 사업은 실행위원회의 책임 아래 진행된다. 여기에서 결의되는 주요 내용에 대해 각 회원 교단과 기관의 견해를 묻는 것은 어렵다. 파송받은 위원들이 해당 교단과 기관과 조율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결과 교회협의 견해는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일은 총무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교회협은 가맹 교단과 기관의 상위기구는 아니다. 각 교단과 기관은 그 운영 방식이나 절차가 다르고, 시국을 보는 견해도 다르다. 한국교회는 교회협을 통해서 그 견해를 조정하고 협력과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소중히 여긴다면 교회협이 또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 되도록 각 교단과 기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효율성 있는 선교를 감당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지난 7년을 돌이켜보면 총무의 역량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교회협과 각 회원교단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적이 있었다. 특히 총무 선출 문제에서 그 갈등이 극에 달해 일부 교단의 부담금 납부 지연 등 태업으로 인해 교회협의 위상이 실추되는 일도 있었다.
그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교회협은 헌장과 그 세칙을 고쳐 변화를 시도했다. 주요 내용은 총무의 정년을 70세로 수정하고, 부회장단 구성을 교단대표(3인), 기관대표(1인), 여성대표(1인), 청년대표(1인)로 하고, 연합기관과 지역협의회의 회원권을 강화하였다. 큰 변화라 할 수 있는 것은 교단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교회협에 연합기관의 역할을 강화함으로(1970년 헌장 개정 시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 현 명칭으로 바뀌면서 연합기관들이 빠지게 됨) 다양성을 더욱 강화하게 된 점이다.
지역협의회에게 그 회원권을 부여하고 교회협의 각종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 이들의 참여를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그동안 각 교단은 지역대표가 교단 중심의 교회협 운영에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참여를 반대해왔다. 기관대표나 지역대표들이 자신이 속한 교단의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바람직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제도라는 것은 시대적 여건에 따라 바뀌는 것이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즉 제도를 강조하면 운동성이 약화되고, 운동성을 강조하면 제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여야 할 과제가 한국교회에 있다. 한국교회가 자중자애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함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에큐메니컬 운동은 튼튼히 서 갈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
교회협은 일찍이 사회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제사장적 사명과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왔다. 교회협의 일관된 입장은 사회적 약자를 격려하면서 불의한 권력자를 비판하며 정의, 평화,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회협의 입장은 때로는 교회 간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교회 간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기도 하였다.
교회협 총무 직임 7년 동안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정부와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했고, 음양으로 탄압을 받았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동안 관례처럼 진행되어 오던 일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적극적으로 분명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4대강을 파헤치고 죽이고 있을 때, 국정원이 댓글로 민심을 왜곡하며 선거에 깊이 개입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을 때, 온몸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단지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그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재임 기간 많은 시국사건이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 탄핵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우리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은 우리 젊은이들이 수장되어 갈 때 권력과 사회는 무기력했다. 권력은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음모적이었다. 일부 한국교회의 무책임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대응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심지어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교회 단체가 급조되기도 하였다. 한국교회의 위상은 추락했고, 교회협 차원의 대응조차 세월호 가족들에게 불신을 받을 정도로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교회협은 ‘세월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유가족들을 위로, 격려하며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 참여하였다. 유가족들의 고통에 찬 외침을 대변하고자 노력했지만, 늘 부족했다. 그 후 백남기 농민이 경찰에 죽임을 당하는 등 시국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초 교회협의 사회선교 담당 위원장들이 긴급 모임을 열고 당시를 비상시국으로 진단하였다. 이어 열린 7월 실행위원회가 교회협 명의로 <박근혜 정권은 민족과 역사 앞에 사죄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비상시국대책회의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실행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조직된 비상시국대책회의(상임의장 김상근)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박근혜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어 기독인 1만 명의 서명으로 <박근혜 퇴진과 민족대전환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고, 광화문에서 비상시국기도회를 열고 촛불집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지만, 교회협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 일조를 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교회 일각에서 소위 태극기집회에 동참하여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노력에 큰 흠집을 남긴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들의 태극기집회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한 일이다. 그들은 예장과 감리회의 교회협 탈퇴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양 교단 총회에 탈퇴 결의안을 상정한 것이다. 주요 교단인 두 교단이 탈퇴하면 교회협은 무력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양 교단의 일부 세력은 평신도 단체를 앞장세워 매우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일을 진행하였다. 교회협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의 성명서 내용과 관점은 정보기관의 협력 없이는 얻기 힘든 내용이었다. 다행히 교회협을 지지하는 양 교단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탈퇴 운동이 무산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교회협으로서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교단 간의 협력과 연대를 튼튼히 하고, 악한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
었다.

평화통일 운동
교회협의 평화통일 운동은 남북교회의 만남, 평화협정 체결 운동, 세계교회와의 연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상시적으로 해오던 제3국에서의 남북교회 간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교회협은 정부와의 충돌을 감수해야만 했다. 급기야 정부는 ‘남북 교류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부과하며 압박해왔다. 교회협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제소하였고,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다.
정부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교회의 이해 부족이었다. 교회협이 작성한 한반도평화조약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교회를 설득하는 과제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교회협은 분단 극복의 첩경을 평화협정 체결로 보고 평화협정 당사자인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와 북조선 정부를 설득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제출하였고, 미국 백악관도 직접 방문하여 세계교회 1만 4,000명의 서명과 함께 문서로 제출한 바 있다. 많은 국가의 교회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통일위원회 중심으로 ‘평화 순례단’을 조직하여 미국의 주요 교단(22명의 대표단, 2016. 7. 18–30,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인디애나폴리스, 뉴욕, 워싱턴 방문)과 유럽의 주요 교단(2016. 6. 26–7. 6, 스코틀랜드, 영국, 독일, 스위스)을 방문하여 평화협정을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2018년에는 동북아 지역을 방문하여 일본교회와 중국교회와도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여정 속에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한반도를 돕는 것이 아니라 평화통일 신학을 정립하여 세계교회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201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 30주년 국제심포지엄을 서울에서 열기로 하였다.
감사한 일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울라프 트베이트(Olav Fykse Tveit) 총무와 국제위원회 국장인 피터 프루브(Peter Prove)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WCC 부산 총회 이후인 2014년 4월 17–19일 스위스 보세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협의회를 개최하였다. 세계교회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컬 포럼’(회장 피터 프루브) 실행위원회가 2015년 10월 23–30일 평양에서 열리게 되었고, 나와 신승민 국장이 실행위원 자격으로 참여하여 북조선을 만나 통일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다. 그 회의에서는 UN의 대북 제재 철회,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 평화협정, 국제협의회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있었고, 평양 호소문이 채택되었다. 그 일로 인해 정부의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세계교회 지도자들과의 연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어 2016년 11월 14–16일 홍콩에서 ‘한반도 평화조약에 관한 에큐메니컬 국제협의회’가 열리게 되었다. WCC가 주최한 회의에는 교회협을 비롯하여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세계YMCA, 세계YWCA, 캐나다연합교회, 독일개신교협의회, 미국연합감리교회, 미국장로교회 등에 속한 대표단 58명이 참가했다. 참석자들은 전 세계 에큐메니컬 공동체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협정안의 실현을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다짐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쟁 반대, 남북 상호 신뢰와 상호 인정 회복,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 중단 및 선제공격 반대, 남북교회의 만남, 특히 남북 청년 및 여성의 만남 확대, 전 세계 핵무기·핵발전소 폐기 등 여섯 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이후 세계교회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아쉬운 일은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WCC 부산 총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면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WCC 부산 총회에서 한국교회가 제안한 평화열차 안이 채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정부나 북조선정부 역시 상당 부분 평화열차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만약 WCC 차원의 사업으로 진행되었다면 남북 정부가 허락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북조선교회도 총회에 참석하였을 것이고, WCC 부산 총회는 평화의 대축제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교회협은 통일위원회 중심으로 중국 심양(2015. 5. 14–16, 2016. 2. 28–29, 2016. 6. 23)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열린 세계개혁교회커뮤니온 총회(2017. 6. 29–7. 7)에서도 북의 형제들을 만나 남북교회의 평화통일 운동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였다. 그리고 교회협 총무로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하였고,(2011. 11. 2–5, 2015. 11. 23–30)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일원으로 평양과 금강산(2015. 10. 15.)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남북의 경직된 상황에서도 평화통일을 위한 민간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북의 초청장을 받고도 국제 정세로 인해 방북이 무산된 것은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남북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자는 다짐과 함께 평화협정 체결 캠페인, 남북교회의 평양 광복절 공동예배, 3・1절 준비 공동위원회 조직 문제 등 광범위한 합의를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임기간 교회협 총무로서, 그리고 종교인평화회의 의장으로서 비교적 북의 고위층을 만날 기회를 몇 차례 가졌다. 그들의 분명한 메시지는 북조선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실망하지 말고 더욱더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WCC 제10차 부산 총회
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10월 30일–11월 8일 한국에서 열렸다. 한국교회가 힘을 합해 WCC 제10차 총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던 사람들에게는 기쁜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교회협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 유치를 원했다. 세계교회의 폭넓은 교제와 연대 활동이 한국교회의 발전에 큰 자극이 되고,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에 맞서 인권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었지만, 세계교회가 그동안 쌓아온 정의, 평화, 생명을 위한 연대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경험할 좋은 기회로 여겨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WCC 총회 준비는 순조롭지 못했다. WCC 총회를 위한 준비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필두로 보수단체와 보수교단(예장 합동 등)들이 WCC 부산 총회 개최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나아가 한기총은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A) 세계총회를 한국에 유치하여 맞불을 놓으면서 WCC 총회를 지원하려는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들은 WCC가 용공좌경 단체이며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를 추구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심지어 ‘적그리스도 단체’라고 비난하였다.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일정한 견제장치 없이 확산되어 갔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교회 준비위원회는 ‘누가’ 주도권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로 내홍을 겪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한국교회 준비위원회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WCC 총회를 위해 재정 기반을 확실히 갖추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로 나서야 하며,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사무국을 조직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WCC 총회는 세계교회 올림픽(사실 올림픽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으로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의 축제가 되어야 하고, WCC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국교회의 도움 없이는 총회를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쪽에서는 WCC 가맹교단(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을 중심으로 한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필요하면 비가맹교단의 협력을 받아야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내가 교회협의 총무로 부름을 받았을 당시(2010년 11월) 이 문제가 큰 논쟁거리로 등장하고 있었다. WCC 총회 유치가 결정된 이후 상당히 긴 기간 WCC 총회 준비가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진영에 큰 실망감을 주었다.
오랜 논쟁 끝에 결국 진보와 보수 모두가 참여하는 한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사무국은 별도로 두되 교회협의 총무가 집행위원장을 맡기로 하였다. WCC 총회를 약 1년 앞두고 겨우 김삼환 목사를 상임위원장으로 하는 한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된 것이다. 이후 지난한 과정을 거쳐 WCC 제10차 부산 총회는 준비되고 진행되었다. 한기총은, 교회협이 부산 총회를 앞두고 발표한 4개 조항의 합의문을 파기하자 이를 기회로 WCC 총회 반대를 더욱 노골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WCC 총회가 진행되었다. WCC 제10차 총회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뒤로 미뤄두가 두 가지 아쉬움을 간단히 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로 평화열차가 북을 통과하지 못하고, 북의 교회가 참석하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반도에 대해 의미 있는 선언문이 채택되기도 하였지만, 세계교회가 남북 평화통일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합의하지는 못했다. 둘째로 한국교회가 총회의 성공적 개최에만 집중한 나머지 WCC가 그동안 쌓아 올린 여러 가치 곧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기독인의 순례, 연합과 일치를 위한 치열한 대화와 합의, 수많은 신학적 축적들, 세계 각 교회들의 전통과 전례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여력이 없었다. 즉 한국교회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못했다. WCC 총회는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 확산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김영주 | 1990년부터 약 10년 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인권국장, 평화통일국장, 일치협력국장으로 일하였다. 그 후 감리교 본부에서 일하다가, 2010년부터 교회협 총무로 일하였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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