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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한국교회사 속 예화를 찾아
성서와설교 (2018년 12월호)

 

  성탄절의 본질
  

본문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성탄 사건은 한 개인이나 민족을 넘어 전 인류와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을 안겨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짜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태어난 해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초기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서 12월 25일로 정해진 성탄절은 기원후 4세기경부터 기념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인 축제가 된 것은 중세 중반부터였다. 그 후 성탄절은 전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하였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하면서 변질된 성탄절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첫 성탄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사를 통하여 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유대 땅 작은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자기 양 떼들을 지키기 위하여 숙직하던 목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나타났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구세주가 탄생하셨다는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한 후 홀연히 나타난 천군들과 함께 천상천하를 향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대합창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천사들로부터 구세주 탄생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은 목자들도 베들레헴 여관을 찾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를 만난 후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린 후 돌아갔다. 이처럼 구유라는 가장 낮고 천한 자리로 오신 아기 예수는 진실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어 가장 높고 존귀한 분이 되셨다.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아기 예수의 나심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우리를 위해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다. 곧 성령 안에서 성자 예수를 통해 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다. 현재 오색빛깔 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교회용보다 세속용 캐럴이 울려퍼지는 한국 사회에서 성탄절은 교회 안팎으로 세속화되고 상품화되었으나, 한국교회 초기의 성탄절은 이 세상에 구세주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덕을 찬송하는 ‘예배의 자리’였다. 1897년 정동감리교회(현재 정동제일교회)가 예배당을 신축하여 봉헌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드린 성탄절 풍경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1

이십사일 하오 다섯시에 교우들이 새 회당에 모여서 기이한 그림을 구경할 터인데 문표 일천장을 미리 노나 주어 교중 형제와 교외 친구들을 다 청하여 찬미하고 기도한 후에 아편설라 목사가 잠깐 논설하고 여러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연보한 돈이 남녀 합하여 이십오원이라 수전한 후에 기이한 그림을 재미있게 잘들 구경하고 일곱시쯤 되어 파하니라.
이십오일, 이날은 우리 구세주의 탄신이라. 오전 열시에 교중 형제와 자매들이 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새회당에 모여서 찬미 기도하고 아편설라 목사가 십년 전에 전도한 논설을 다시 읽어 들리는데 그 분명한 말씀과 정론한 언론이 이치에 합당하고 추호도 차착이 없어 듣는 이가 다 귀를 기울이며 기이히 여기더라. 그 후에 교우 노병선씨가 논설하되 구세주의 탄신이 세계상에 제일 큰 명일이 되는 것은 구세주께서 만국만민의 죄를 대속하사 믿는 자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하고 각기 일심으로 하나님의 은덕을 찬송하고 열두시나 되어서 파하니라. 오후에 전날 연보한 돈으로 남녀 교우 중 빈한한 사람과 병든 이들을 차등이 있게 분배하여 구제하고 저녁 일곱시에 학원들이 배재학당 회당 앞에 등불 수백개를 켰는데 그중에 제일 큰 십자등 한 개를 만들어 금자로 광조동방 네 글자를 써서 공중에 높이 달고 아이들에게 실과를 주어 기쁜 날을 표하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
누가복음 2장에서는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성탄의 소식을 알렸지만, 마태복음 2장에서는 천사가 아닌 별이 나타나 동방박사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알렸다.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 유황, 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 세 가지 예물을 받은 아기 예수는 성장하여 공생애 시기에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마 25:31-46) 이 비유 속에서 지칭하고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성탄 시즌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상징적인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구세군의 상징이 된 ‘자선냄비’(Christmas Kettle)이다. 세계 각국에서 빈민구제와 봉사를 위해서 시행하던 자선냄비를 1928년 성탄 시즌에 한국구세군 사령관 박준섭(Josehp Barr, 1870-1942) 정령이 불우한 자들을 위한 구호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서울 거리에서 시작한 것이 효시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한 성탄 시즌에 병든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상징적인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이다. 황해도 해주에 구세요양원을 설립한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선교사가 세계 각국에서 결핵 퇴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되던 크리스마스실을 1932년부터 발행하여 국내 결핵 환자들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는 한센병, 화류병, 결핵 등 3대 질병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던 초기에 한 결핵환자는 크리스마스실을 결핵 약으로 알고 치 료 제로 여겨 매일 밤마다 가슴에 붙였지만, 기침조차 낫지 않는다고 하며 크리스마스실 값을 돌려달라고 셔우드 홀에게 편지를 했다는 웃지 못할 촌극도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결핵 박멸 운동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도입된 크리스마스실은 1940년까지 9번 발행되었다가 셔우드 홀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일제에 의해 추방되면서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의사 문창모에 의해 재발행되기 시작하여 6・25전쟁 당시 또다시 잠시 중단되었다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자선냄비’나 ‘크리스마스실’이 지극히 작은 자들을 위한 한국교회의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으나 지극히 작은 자들을 위한 이웃 사랑은 한국교회가 성탄절을 지키기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실천하던 것이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성탄절을 지키면서 초창기부터 실천해온 따뜻한 이웃 사랑은 일반 신문에서도 추운 겨울을 녹이는 훈풍 기사로 종종 소개되었는데, 그 일례로 1925년 1월 4일 자 「동아일보」는 평양 지역에 있었던 평양중앙감리교회와 이문리감리교회(훗날 채관리교회)의 빈민 구제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2

평양 이향리 평양중앙교회당에서는 작년 구주 성탄축하 당시에 빈민구제를 하기 위하여 일반교인들에게 구제금품을 다수히 모집하여 놓은 후 그때부터 동교회당 직원 수삼인이 창광산 아래의 빈민부락을 위시하여 교외에 산재한 적빈자들을 일일이 호별로 조사하여 약 이백사십호에 구제 시여권 일매씩을 각기 배급한 후 수일 전에 그 빈민을 전부 동교회내에 초청하여 이백사십호 이백사십명에게 각기 소미일두씩을 시여하였다는데 기근에 신음하던 일반 빈민들이 그 소미일두씩을 받아들고 너무 감격에 넘치어 모두 고마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하며 또한 이문리 감리교회에서도 극빈자 약 백호에 그 같은 방식으로 구제의 금품을 다수히 시여하여 피 구제자들은 매우 감사한다더라

온 세상에 소식을 전하라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베들레헴 지경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구세주가 탄생했다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구세주의 탄생이라는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새벽송이었다. 1918년생으로 최근 감리교회 평신도단체장협의회와 3개 신학대학교가 제정한 ‘자랑스런 감리교인상’ 1호를 수상한 정동제일교회 김옥라 원로장로는 2009년 12월 19일 자 「기독교타임즈」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강원도 간성감리교회에 다닐 때 자신의 키만큼이나 쌓인 눈 위에서 부른 새벽송을 아련하게 회상한 바 있다. 그녀는 이 회상을 통해 새벽송에 대하여 구주 나심을 제일 먼저 알리는 천사의 알림 노래요, 구주가 나셨으니 잠에서 깨어나라는 깨움의 노래요, 잠에서 깨어 다 함께 구주 오심을 기뻐하며 합창을 부르자는 초청의 노래요,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온 천하에 퍼지도록 다 함께 찬송할 구주 환영의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교회사가로 명성이 높은 윤춘병(尹春炳, 1918-2010) 감독은 한국교회 교회학교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 삼천리 방방곡곡 예배당이 서 있는 곳이면 온 동네를 들썩이며 즐겁게 하였던 새벽송이 마치 민족적인 행사 같았다고 회상하였다. 그렇지만 시대의 변천 속에서 한국교회의 새벽송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였다. 그는 2009년 12월 19일 자 「기독교타임즈」에서 자신이 평양 장대현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시절의 새벽송을 진한 그리움으로 회상하고 있다.3

새벽송은 삼천리 방방곡곡 예배당이 서 있는 곳이면 예수 탄생하심을 알리는 민족적 행사였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조를 짜서 구역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다니던 우리들을 아기 예수 맞이하듯 정성스럽게 맞아주던 교우들, 대문 밖에는 등불을 밝혀놓았고 찬송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와 함께 찬송하며 박수로 화답해줬습니다. 잠시 언 몸을 녹이느라 집안으로 불려 들어가 노티와 따뜻한 음료를 대접받기도 했습니다. 노티는 추석에 만들어 겨울 지나도록 저장해두고 먹던 기장쌀떡인데 노티의 붉은 빛은 지금도 정겹습니다. 새벽송이 끝나갈 무렵, 메고 다니던 자루는 쏟아지는 선물 때문에 불룩해지고, 눈만 내놓고 어깨까지 내려쓰고 다니던 모자에는 입김이 얼어 고드름이 매달렸던 추억들….


1 “정동새회당에서 행한 일,” 「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7년 12월 29일 자, 1-2.
2 “이백사십호에 소미일두씩분급,” 「동아일보」 1925년 1월 4일 자, 7.
3 “내 기억 속 성탄절을 소개합니다,” 「기독교타임즈」 2009년 12월 19일 자, 11.



고성은 | 목원대학교와 호서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신홍식의 생애와 민족목회활동 연구』, 『철마 정경옥, 생애 연구』, 『동부연회 순교자열전』(공저) 등이 있다. 현재 충남 홍성에 있는 광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목원대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2018년 12월호(통권 7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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