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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선교적 성서읽기
성서와설교 (2018년 12월호)

 

  눈 뜬 자들의 성탄
  누가복음 2:8-20

본문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 2:8-20)

주제 설명
‘눈 뜬 소경’이라는 말이 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나 무엇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사람의 눈은 참 이상하다. 아니 눈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 때문일까. 안 보여서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안 보려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관심 없는 것들을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싶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둠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인간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빛으로 오신 예수를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였고 영접하지 않았다. 이렇게 예수는 눈먼 자들의 땅에 태어났다. 하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를 알아보고 경배한 자들이 있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의 눈 뜬 자들이었다.

본문 이해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예수 나심의 첫 소식을 목자에게 전하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베들레헴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의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은 누가복음의 전체 주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모세나 다윗이 목자였던 것을 보면 구약성서에서 목자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당시 신약의 세계에서는 매우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이 예수 탄생 소식의 담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이와 같은 자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는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소리 없이 태어나셨지만, 그 탄생의 목적과 의미는 범상치가 않다. 목자들은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δόξα)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였다.(9절) 하늘이 다시 인간의 일상적인 활동에 개입한 것이다. 어둠의 땅에 빛이 비치는 성탄의 이미지는 장차 메시아의 사역이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을 보게 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예표였다.
목자에게 전해진 천사의 메시지는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것이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천사를 통해 목자들에게 전해준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은 그의 세 호칭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구주(Σωτήρ), 메시아의 헬라어 동의어인 그리스도(Χριστὸς), 그리고 주(Κύριος)는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것임을 함축하고 있는 호칭이다.(14절) 평화의 주는 ‘아구스도’가 아니라 강보에 싸여 누워 있는 아기 예수임을 보여주고 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보고 천사가 아기에 대해 말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목자들의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일로 여겼지만 신앙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마리아만은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고이 간직함으로 온전한 믿음의 단계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19절) 목자들 또한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목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의 반응을 보였다.

설교 착상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는 것은 매우 생소하게 보인다.(마 16:1) 앞에서 이미 예수께서 수많은 표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입증하고 종말적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고 반문하였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안 보여서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보려 하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가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간청하여 고침을 받았다.(눅 18:36-43) 맹인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치며 예수께 간절히 구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제지하여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사람은 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믿음의 눈은 열려 있었기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아보았다. 반면 반대자들은 육신의 눈은 열려 있었지만 믿음의 눈이 닫혀 있었다. 예수를 보고도 메시아임을 알아보지 못한 자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예수 탄생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들은 목자들은 표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이것이 바로 표적이라고 하였다. 표징을 알아차리는 눈을 가진 이들은 주께서 자신들에게 알리신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서로 의논하고 곧 찾아갔다.(15절) 이들은 천사의 말을 따라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찾으러 베들레헴으로 갔다.(17절) 이들은 복 있는 눈을 가졌던 것이다. 비록 이들은 주변으로 밀려나서 가축을 치며 살아가는 비천한 자들이었지만 눈먼 세상에 눈 뜬 사람들이었다.
또 한 명의 눈 뜬 사람은 예루살렘의 시므온이었다.(25절) 정결예식을 위해 예수의 가족이 아기 예수와 함께 성전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30-32절) 목자들처럼 시므온도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아기 가운데 현존함을 보고 경배를 드렸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축복 선언을 할 때, 특별히 보는 눈에 대해 언급하였다.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 10:23-24) 제자들은 예수가 메시아 되심과 그를 통하여 구원의 때가 이름을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이다.
속담에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하여 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예수께서도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다. 유진 피터슨은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너희 눈은 너희 몸의 창문’이라고 하였다. “너희 눈은 너희 몸의 창문이다. 네가 경이와 믿음으로 눈을 크게 뜨면, 네 몸은 빛으로 가득해진다. 네가 탐욕과 불신으로 곁눈질하고 살면, 네 몸은 음습한 지하실이 된다. 네 창에 블라인드를 치면, 네 삶은 얼마나 어두워지겠느냐!”(유진 피터슨, 『메시지』, 마 6:22-23)
아우구스티누스는 성탄의 의미를 시편 말씀,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것”(시 85:10)으로 표현하였다. 성탄절은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입맞춤하는 날이다. 예수의 탄생은 새로운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는가?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훈계의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함으로 시작하고 있다.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목자들은 메시아의 표적을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이다. 또한 그 표징을 살펴보고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신저였다. 목자들은 증인된 전도자였다.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 전할 수 있는 눈과 발과 입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설교 자료
어떤 아버지가 매일 새벽 4시에 어린 아들을 깨워 소젖을 짜도록 하였다. 훗날 그 소년은 자라서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어도 새벽 4시만 되면 잠에서 깨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깨우는 소리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데, “여보, 난 새벽마다 로버트를 깨우는 게 너무 싫소. 그 애는 한창 잠이 필요한 나이인데, 내가 깨우러 갈 때마다 얼마나 곤히 자고 있는지! 나 혼자서 젖 짜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예요. 여보. 안 돼요.” “하지만 난 정말 그 애를 깨우는 것이 싫소.” 아들은 이 대화를 듣고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아버지가 부르자마자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성탄절이 다가왔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성탄절에는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나서 혼자서 모든 소젖을 짜놓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로버트는 성탄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서 소젖을 짠 후 아버지를 놀래주기 위하여 다시 방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 척하였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들을 깨우고 먼저 나가셨다. 로버트는 침대에 누워 아버지가 놀라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1분, 2분, 3분이 지나고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로버트 이 녀석, 너 날 놀렸구나!” “아빠, 오늘은 성탄절이잖아요!” “고맙다. 어떤 선물보다 멋지구나!” 사랑이 내 가슴에 살아 있게 된 것은 오래전에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날부터였다. 사랑만이 사랑을 깨우는 것이다.(펄 벅, “크리스마스 아침”)
존 라이스는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그분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노라고 말씀드리기까지는 진정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다.”라고 했다. 성탄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선물이 예수라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예수 안에서 구원의 약속을 보고 감사하며 기쁜 소식을 세상 가운데 전할 수 있는 절기가 되었으면 한다.

* 김홍관 목사님의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부


김홍관 | 미국 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M.A.)와 박사(D.Miss.) 학위를 받았고, 목원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였다. 현재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018년 12월호(통권 7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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