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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설교 (2018년 11월호)

 

  뱀처럼, 비둘기처럼
  마태복음 10:16-23

본문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16-23)

주제 설명
선교는 어렵다. 정신과 전문의 스콧 펙(M. Scott Peck)은 “삶은 어렵다.”라고 하였는데, 선교도 그에 못지않다. 우리의 선교 현장을 통해 쉽게 확인될 수 있는 그 어려움은 오늘 본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제자를 파송하는 예수의 말 속에 그들이 맞이하게 될 어려움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오죽했으면 예수께서 제자를 파송하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하였을까 싶다.(마 10:16)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다. 박해 속에서 선교를 감당해야 할 제자들이 반드시 겸비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을 텐데,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주문한 뜻이 궁금하다. 선교는 다양한 전략보다는 선교를 감당해야 할 사람이 문제인 듯하다.

본문 이해
본문은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고 파송하는 마태복음 9장 35절-12장 50절의 서두에 자리잡고 있다. 그 가운데 마태복음 10장은 제자들의 선교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자의 사명은 예수의 사명과 맞닿아 있다. 제자에게는 스승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당위성이 운명처럼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의 선교는 예수가 감당한 선교의 재현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제자들을 파송함으로써 그의 선교를 확장하고자 하였다.(5절) 제자들의 선교 대상(5-6절), 전파하는 메시지(7절), 선교를 위한 권능(8절), 그리고 받게 될 박해(24-25절)까지도 예수의 그것과 판박이다. 특별히 10장은 선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와 그 대처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자들은 예수처럼 공회에 넘겨지고 관리들에게 끌려가 죽음에까지 넘겨질 것이다. 또한 가까운 가족들의 배신(21절), 사람들로부터의 미움(22절), 그리고 계속되는 피신(23절)을 겪게 될 것이다. 제자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교를 축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다만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질 뿐이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였다. 이리 같은 반대자들에게 대항하려면 사자 정도의 힘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작 제자들에게는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이 요구되었다.
지혜롭다는 말(φρόνιμοι)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내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또 순결하다는 말(ἀκέραιοι)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가리킨다. 당시 근동 문화권에서 뱀은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이집트 유물 가운데 왕의 왕관에도 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왕에게도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 것은 광야나 사막과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는 타고난 능력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존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광야의 예수를 유혹하는 존재도 뱀이었다. 아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을 유혹하는 데는 남다른 영리함이 필요하다. 반면에 비둘기는 순결한 동물이었다. 부정하지 않은 정한 동물이었기에 구약시대 제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제물로 사용되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은 당시 유행하던 속담이었다. 제자들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극한의 박해에 직면할 제자들에게는 극도의 지혜와 순결이 필요했던 것이다.

설교 착상
예수는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했다. 선교 현장은 양들을 삼키려는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이다. 제자들은 이런 곳에 단지 먹잇감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먹이로 삼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실적으로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우리의 선교 현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러한 것에 굴복하지 않도록 바른 대비를 하여야 한다.
먼저 선교 현장은 이리 떼의 소굴 같은 곳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 현장, 그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을 너무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감상적으로 대하는 것도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목회자가 40일 금식기도를 한 다음 ‘믿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달려 나갔더니 낭떠러지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현장을 만만하게 보고 준비 없이 나가는 것은 제자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명령하였다. 뱀은 지혜롭지만 부정한 동물이다. 반면에 비둘기는 순결하지만 미련하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반대되는 성질을 지녔다. 박해자들이 제자들에게 이리 떼처럼 달려들 때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처신하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 현장에 어려움이 닥칠 때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이 필요하다. 박해를 받을 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는 이러한 지혜를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였다.(23절) 이에 앞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 전에 거기서 머물라고 하였다.(11절)
또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였다.(14절) 천국 복음을 선포할 대상을 찾아내는 것,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집을 미련 없이 떠나는 것, 박해자들을 피하는 것 모두 지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에게 뱀의 지혜에 반드시 비둘기의 순결을 합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결하지 않은 지혜는 간교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잔꾀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신중함이나 빈틈없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신실함과 순수한 의도를 지녀야 한다.
뱀의 지혜만으로도 안 되고 비둘기의 순결만으로도 안 된다. 반드시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이 함께 구비되어야 한다. 그것도 적당한 수준의 지혜와 순결이 아니라 최고의 지혜와 순결, 극단의 지혜와 순결이 요구된다. 지혜와 순결을 뱀과 비둘기에 비유한 것은 가장 지혜롭고 가장 순결한 동물을 통해 온전한 지혜와 순결을 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오늘날 선교 현장을 보면 이것이 뒤바뀐 상황이다. 다시 말해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뱀처럼 순결하고 비둘기처럼 지혜로운 경우가 허다하다. 비둘기는 순결하기는 하지만 매우 어리석고 뱀은 지혜롭지만 순결하지 못하다. 뱀의 순결과 비둘기의 지혜를 가지고 세상에서 재주껏 살 수는 있지만, 제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는 없다. 예수는 제자들이 뱀과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무기로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끝까지 인내하여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를 원하였다.

설교 자료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의 문양을 보면, 가운데 기둥을 감고 있는 뱀의 형상이 있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조상이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항상 뱀의 지팡이를 지니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의사는 병을 다루는 뛰어난 지식과 의술을 갖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을 고치는 지혜와 환자의 병을 돌보려는 순결한 자세가 갖춰질 때 의사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지혜만 있고 순결이 없거나, 반대로 순결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그 영향력이 반감한다. 진정한 영향력은 지혜와 순결이 함께할 때 힘을 발휘한다. 오염되면 가치가 없어지고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계산적인 것은 지혜로워 보여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때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순결이 큰 힘을 발휘한다. 지혜만 가진 사람은 큰 손해를 보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제자로는 합당하지 않다. 뱀과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로 제자의 온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홍관 | 미국 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M.A.)와 박사(D.Miss.) 학위를 받았고, 목원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였다. 현재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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